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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글/ 샌프란시스코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 대법(파룬궁)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26년간 수련의 길을 걸어왔다. 26년이면 한 아이가 훌쩍 자라 성인이 될만한 시간이다. 지난 26년간의 수련을 돌아보면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수련의 매 단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건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내 인생의 길을 바꾼 것은 대법이다. 수련 초기 나는 앞으로 길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대법 수련만이 남은 생의 유일한 길이라고 인식했다. 나는 대법을 잘 수련해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적 같은 신체 정화

처음에 대법을 배우면서 사람의 업력(業力)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수련에서 우리는 수련 주체로서 스스로 업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사실 사부님께서 제자의 거의 모든 업을 감당하시고, 나머지는 제자의 깨달음을 위해 여러 단계로 조금씩 나눠서 우리가 제고하게 이용하신다. 법을 깨달은 후 나는 그간 모아두었던 약을 모두 처리했다. 이것이 내가 일상에서 수련을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소업(消業)은 이런 작은 실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시험도 있었다.

한번은 거대한 풍선이 대장을 막은 것처럼 변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이 답답하고 땀이 많이 나며 온몸이 마비돼 쓰러질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참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업을 없애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업력, 난 널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어도 널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번 생에서 널 제거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계속 수련해야 한다. 나는 널 제거해야 한다.’

사상이 복부에 집중되자 복부 부위에 하얗고 밝은 것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납덩이처럼 보이는 것이 갑자기 배출됐다. 몸이 단번에 이완되고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배출된 것을 보러 갔을 때 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매우 이상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날 괴롭혔던 완고한 치질과 치열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후로 건선, 빈혈, 부인과 질환, 좌골 신경통 등과 같은 모든 신체적 문제도 사라졌다. 물론 내 몸의 정화는 모두 수련하는 동안 계속 내 몸을 정화해주신 사부님의 관리하에 있었으며, 이런 신체 정화는 수련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1. 환골탈태

중국공산당(중공)은 ‘끝없는 기쁨을 위해 하늘과 싸우고, 끝없는 기쁨을 위해 땅과 싸우고, 끝없는 기쁨을 위해 사람들과 싸우라’라고 선동하면서 우리에게 ‘무신론’을 심어줬다. 중국 전통문화 파괴는 점차 모든 면에서 사람들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결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인생관을 형성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윤회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인과응보가 있음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법을 공부하면서 내 세계관은 바뀌었다. 대법은 불도신(佛·道·神)이 실재하며 수련을 통해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깨닫게 됨을 가르쳐 줬다.

사부님께서는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은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 이기심은 수련의 가장 큰 장애물이며 수련해 버려야 할 요소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명예, 이익, 정 및 모든 종류의 욕망을 담담히 보아야 한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1] 갈등이 발생하면 참고 안으로 찾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대법은 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줬다.

법리를 이해하고 나니 머리가 특별히 맑아지고 마음이 열렸으며, 매일 잔뜩 찡그렸던 얼굴이 밝고 활기차게 변했다. 마침내 인생의 의미와 삶의 방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래에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가정에서

나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버지를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지치지 않고 모셨다. 그 결과 병원과 직장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형제, 친척, 친구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됐다. 공산당의 대법에 대한 가혹한 박해 속에서 누구도 파룬궁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압박받고 연루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줬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오빠는 나에게 “나는 네가 한 일을 절대 할 수 없어. 정말 대단해”라며 감동했다.

2) 직장에서

수련 시작 반년 후인 1998년 초, 나는 주택 개혁을 담당하게 됐는데, 6천 명이 넘는 직원과 가족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사무실은 매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나는 정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 기간 나는 시 주택국, 주택기금 관리센터, 시 서민주택 개발센터에서 바쁘게 일했고 사방에서 지원을 받았다. 우리 부서도 주택개혁 선진부서로 도약했고, 시 주택 당국은 나를 지방주택 개혁 선진 업무 우수자로 추천했으며 나는 총회에서 연설했다. 나는 직원 전체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 및 지방에서도 칭찬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직원을 위한 주택개발, 직원을 위한 주거용 건물 건설, 퇴직직원을 위한 활동센터 건설 등 업무로 옮겨갔다.

법을 얻기 16년 전, 나는 직원교육 담당자였을 때 거의 매일 직장에서 물을 마시고 신문을 읽으며 한가하게 보냈고 공장에서도 대충대충 일했다. 그러나 법을 배우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주택개혁 작업은 특히 어렵고 공장에서 여러 사람을 교육에 참석하도록 보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공장 내에서 주택을 개발하고 자본을 조달하고 공장 밖에서 건설 현장과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고 나 스스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대법이 날 변화시켰고, 대법은 내가 사회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었다.

2. 정법 수련에서의 시험

1999년 7월 20일 오후, 공장에서 중요한 TV 콘텐츠를 시청하기 위해 오후 2시에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이것이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 탄압 시작임을 알았다. 지난 며칠간 우리 수련장에는 이미 수많은 경찰과 경찰차가 와서 수련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문화대혁명을 경험했고 부모님이 당한 핍박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또는 10년 전 6월 4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중공의 천안문 대학살의 공포가 반복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너무 괴로웠다. 나는 사부님과 파룬궁을 비방하는 모임에 가기 싫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많은 보도원이 비밀리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는 보도소에서 현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시에 퇴근 종이 울리자 사람들은 하나둘 강당으로 향했고, 건물 전체는 고요하고 섬뜩했으며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나는 곧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때 수련생 한 명이 오후 3시에 시내 중심가에서 행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유혈 사태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3시에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준비했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온 지 얼마 안 된 중학생 딸아이에게 월급 통장을 꺼내주며 “이건 엄마 통장이고 비밀번호는 이거야. 밤에 엄마가 안 오면 할머니 집에서 가서 자고, 돈이 필요하면 통장을 갖고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해”라고 일러줬다. 딸은 내 말을 못 들은 듯 “할머니 집에 안 갈 거예요, 그냥 집에서 잘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딸에게 다시 설명해줬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시청 방향으로 달렸다.

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길은 매우 넓었으며 페달을 세게 밟지 않았지만 자전거는 날아갈 듯 가벼웠다. 부대 입구를 지나 익숙한 공장을 작별 인사하듯 한 번 쳐다보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수련생들과 만났지만 행렬은 보이지 않았고 시청 앞 도로를 지키고 있는 총을 든 무장경찰 한 명만 보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기척이 없어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TV 시청이 막 끝났고 공장의 모든 작업장과 부서에서 파룬궁수련생 명단을 보고하고 있었으며, 명단에 있는 수련생들은 큰 교실에 모여 학습해야 했다. 종이 울렸을 때 나에게 아무도 학습실로 가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재무과에 근무하는 수련생도 명단에 없었다. 퇴근해 집 위층으로 올라가며 속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어!’라고 외쳤다.

갑작스러운 시험

파룬궁 박해가 점점 더 심해졌고 공장은 온갖 종류의 회의를 열고 각종 문서와 통지를 받았다. 내가 일했던 용역회사의 당 지부 서기는 회의 중에 항상 날 쳐다보며 우리 회사 내부에 깊숙이 박혀있는 파룬궁을 파헤쳐야 한다고 드세게 말하곤 했다. 당시 나는 우리 공장의 일부 수련생들이 강제로 이혼당하거나 정신병원이나 세뇌반에 보내지거나 직위 강등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01년, 업무로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공장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부터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서둘러 업무보고서를 작성하고 당위원회 사무실 건물로 갔다. 문을 열었을 때 징계 검사위원회 서기 외에 당위원회 부서기도 참석한 것을 보았다.

나는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업무보고를 시작했다. 나와 나란히 커피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부서기가 내 귀에 대고 “당신이 파룬궁 수련을 한다고 들었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고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나만 내 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보고가 끝난 후 나는 상부에서 지원해주기를 바란다는 요청을 덧붙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고 문을 닫으면서 방안을 흘끗 보았는데 두 사람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곁에서 날 보호해주셔서 겁먹지 않고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위험은 사라졌다. 그 후 두 사람은 다시는 내게 파룬궁 수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010년 어느 날, 나는 일하러 용역회사 비서를 만나러 갔는데 일을 막 끝내고 나갔을 때 그가 창문에서 손을 흔들며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왜 그러는지 물었다. 그는 갑자기 “당신이 파룬궁 수련을 한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단호히 “제가 수련해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책상으로 돌아와 우리 공장에 있는 수련생의 이름을 말하며 “누가 사람들에게 당을 그만두라고 했나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사람들에게 당을 탈퇴하라고 말함으로써 선행을 베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멍하니 날 쳐다보며 “그게 왜 선행이죠?”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아 그에게 반우파 운동과 같은 공산당 운동은 전부 잘못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은 10년 후 그때 탄압받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옹호받고 있지요. 또 공산당은 대중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을 총살했습니다. 이제는 파룬궁 탄압이죠. 파룬궁 무슨 잘못이 있나요? 기공은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인데, 분명 미래에는 탄압 선동자들이 민중의 분노를 받을 겁니다.” 내가 계속 이야기하니 그는 벌떡 일어나 아직 할 일이 있다며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재빨리 그의 등에 정념을 보냈다. 그 후 그는 파룬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수련생들이 매일 납치돼 장기적출을 위한 검사를 받는 상황에서도 나는 매일 수련했다. 나는 매일 법공부하고,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배포하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하고, 매일, 매달, 매년 진상지폐를 사용하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수련자들은 모두 조용히 서로 협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소통하고 교류했다. 중국에 있을 때는 사부님을 생각하며 미국을 떠올렸고, 법회에서 사부님을 직접 뵙고 사부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해외 수련생들이 부러웠으며 정말 행복하겠다고 느꼈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 있는 수련생들이 사부님과 가까이 있어 수련을 잘하고 빨리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2014년 나는 미국에 왔고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사실 진정한 수련의 관건은 법을 잘 배우고 이해해 진정으로 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저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되며 중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상관없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똑같이 대하시니 우리는 어디에 있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면 된다.

대법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시간을 아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응해야 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잘못된 곳은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25/4642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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