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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좋은 일’에 대한 깨달음

[명혜망] 수련 중에 내가 갈등, 억울함, 번거로움, 병업(病業) 등 각종 교란에 부딪힐 때마다, 특히 한동안 내가 정진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단락 법이 항상 떠오른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1]

그러나 자신이 아주 정진했다고 느낄 때 갑자기 난관이 나타나면 한동안 갈피를 잘 잡지 못했고, 심지어 때때로 난관을 통과하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세 가지 일을 제대로 잘했는데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신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든지, 법을 실증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든지, 혹은 개인의 수련제고를 위한 데서 비롯됐든지 간에, 마난은 같은 것이다. 당신이, 나는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나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해서 이 마난이 마땅히 길을 비켜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1]

오늘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처음 본 것처럼 느껴지다가(이전에 여러 번 봤음) 홀연히 깨달았다. 잘하고 있을 때도 각종 교란, 난관, 고통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의 제고를 위해 하신 것이며, 나도 모르게 “수련의 길에 고생 있음이 아니라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음이로다”[2]라는 법이 떠올랐다.

세세생생 천만년의 윤회를 거치며 얼마나 많은 업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속인들에게는 업력이 크고 덕이 적으면 사는 것이 고생스럽고 힘들며 어려움이 많고 가난하게 된다. 업력이 적으면 부유하고 어려움이 적으며 뜻대로 된다. 수련인으로서는 업력이 크면 수련 중에 시련과 어려움이 좀 클 것이다.

이전에는 이 몇 단락 법을 스쳐 지나가면서 피상적으로만 이해해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오늘 여기까지 읽으면서 갑자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좋은 일’에 대해 법리적으로 또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됐다. 수련을 택했으니 모든 일을 수련인의 기준으로 보아 관념을 바꾸고 사람의 이치에 얽매이지 않고 가늠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좋은 일이고, 생각이 단순하고 순수해져서 누구를 봐도 좋게 된다. 또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지(加持)해주실 것이다.

이상은 제가 현 단계에서 체득한 것으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과 교류하오니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각지설법8-2008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인과(因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8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23/4645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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