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질투’는 자신과 타인의 대비에서 비롯되며, 세상에는 완전히 동일한 개체가 없기에 비교 결과는 두 가지일 뿐이다. 하나는 타인이 자신보다 우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뛰어난 능력, 아름다운 외모, 높은 지위, 풍족한 생활 등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이 자신보다 못하지만 상황은 자신보다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업무 능력은 평범하지만 고위직에 있고, 외모와 가정 환경이 보통이지만 좋은 반려자가 있으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진취적이지 않고, 품성이 낮지만 여유롭게 지내는 등이다.
타인이 자신보다 우월할 때 질투심이 생기는 것은 속인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을 너무 중시하고 너무 현실적으로 본 것으로, 겉모습을 꿰뚫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과를 통해 인연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덕이 있어야 복이 있다. 누가 뛰어난 것은 그가 생생세세 쌓아온 복덕의 소치로서, 본래 순리대로 된 일인데 질투할 게 뭐 있는가?
타인이 자신보다 못할 때 무시하는 것도 사실은 질투심이다. 현재 그의 처지에 비해 그에 대해 더 높게, 더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식당은 뷔페식이고 요리와 디저트가 풍부하고 맛있다. 어떤 사람들은 디저트와 분식을 포장해 집으로 가져간다. 그걸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시다. 그녀들이 품성이 낮고 탐욕스럽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파보면 질투심이 배후에 숨겨져 있다. 내가 별도로 챙겨가지 않은 것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한 것으로 원망도 후회도 없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1]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을 보면 마치 자신이 손해를 본 것처럼 평형을 잃는다. 그 질투에는 이익에 대한 추구와 식탐이 섞여 있으며, 동시에 직원들이 그녀들을 제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은근히 있다. 이것은 증오심 아닌가? 질투심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의 제고를 방해하기도 한다. 사실 그녀들이 그렇게 가져가면 덕을 잃는다. 돈은 쓰지 않았지만 덕을 썼기에 조금의 이득을 얻지 못했으니 미혹 속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가!
동료들 사이에도 남을 무시하는 질투심이 숨어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료가 인맥을 통해 어느 부서로 옮겨가서 일도 잘 안 하고 한가롭게 보내면, 나는 그녀들이 진취적이지 않다고 무시한다. 일부 상사의 업무가 미숙해도 불만을 품는데 그의 덕이 직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파고들면, 그들이 왜 노력하지 않고도 그런 직위를 얻을 수 있는지 질투하는 것이다. 잠재의식에서는 신께 ‘그가 저렇게 형편없는데 어떻게 그의 인생을 이렇게 안배하실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데, 이러면 신께 업을 빚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보기에는 당신이 무엇을 해도 다 잘하지만 당신의 명(命) 중에는 없으며, 그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지만, 그의 명 중에는 있기에 그는 간부가 되었다.”[1]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본질은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반본귀진(返本歸真)해 중생을 구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시간을 주셨지 두리번거리고 앞뒤를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 남을 질투하는 것은 마치 걸음을 멈추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과 같은데, 수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집착만 늘어난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무꾼과 양치기 두 사람이 숲에서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저녁이 됐다. 양치기는 배불리 먹은 양 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무꾼은 그제야 자신이 하루를 허비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사명을 명심해야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시간을 다른 사람을 질투하면서 허비할 수 있겠는가!
속인에 대해 전혀 질투할 필요가 없다. 우선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이고 온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생명인데 어찌 미혹 속에서 무지하게 업을 빚고 발버둥 치는 중생을 질투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세인들과의 관계는 그들을 구하고, 인연을 마무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제고하는 것뿐이다.
이 밖에 질투심은 실질적인 물질이며 밧줄처럼 수련인을 속인 이 층차에 묶어둔다. 세상의 다른 것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과 오락, 명예와 금전, 은혜와 원한, 사랑과 증오, 이런 집착심은 삼계 내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당신 생각 속에 숨어있다. 당신이 제고하려 하면 즉시 달라붙어 당신을 지면으로 끌어당긴다. 집착이 많을수록 몸이 무거워지는데 어떻게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수련생에 대해서는 더욱 질투해선 안 된다. 우리는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의 인연 관계를 모르고, 수련 성취한 후 서로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가 원만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서로 질투하면 다른 수련생이 안 좋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구세력이 보고 싶어 하는 결과이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속인의 입학시험은 합격 비율이 일정하고 평균 점수에 따라 합격선도 변동하며, 다른 사람이 처지면 자신이 합격할 기회가 많아지고 서로 간에 경쟁 관계가 있다. 하지만 수련은 완전히 다르다. 사부님께서는 원만할 인원을 제한하지 않으셨고, 천국은 무량무변해 기준에 도달한 사람은 누구나 올라갈 수 있지만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도 올라갈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마감 시간을 거듭 연장하시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경지에서 ‘합격선’에 도달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지적하셨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우리는 이 구절의 법의 무게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 질투심을 닦아버리는 엄숙함을 깨닫고 진지하게 깊이 파헤쳐야 한다.
대도(大道)는 비록 무형(無形)이지만 내 마음에는 경계선이 있고, 몸은 속세에 있지만 “생각은 그 밖에 있다”[2]. 항상 깨어있고 누락 없이 수련해야만 원만 성공할 수 있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5-2005년 맨해튼국제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8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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