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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중에서도 자신을 수련해야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와 A는 둘 다 대학 강사다. A를 아는 수련생들은 다 그녀의 별명을 부르고 또 친근함을 나타내며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다. 반면에 나를 아는 많은 수련생은 나를 S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하며 예의 바르고 공손하다.

수련생 Z는 처음 나를 봤을 때 내가 몹시 정색하고 표정이 없어서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는데, 교류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Z는 다른 수련생도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백화점 판매원이 내가 교사 직업인 것을 알아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때로는 판매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냉담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지만 수련생과 심득교류를 하는 외에는 사람들과 잡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 수련하기 이전에 갖고 있던 취미들은 모두 희미해졌다. 한때 이것은 자신의 수련 경지가 제고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속인의 것이 적어진 데는 아마도 확실히 수련의 요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Z의 말을 듣고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굳은 표정을 짓지 않았고 그 당시에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줄까? 나는 수련인이고 평온한 표정이어야 하는데, 왜 사람들이 날 보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가? 이건 정상이 아니다!

나는 줄곧 내가 당원이 아니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또 일해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하므로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와 관련 없다고 생각해왔다. 수련한 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일찍이 당문화에 물들었더라도 진작 닦아 깨끗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지 않다. 당문화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단독으로 표현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내 사상 속에 섞여 있고 일상적인 사업과 생활에 스며들어서 은폐되어 있으므로 자세히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3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아 왔기에 나는 고압적 말투에 익숙해져서 수련생에게 수련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할 때, 일단 수련생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마치 학생을 대하는 것처럼 말투가 딱딱해졌다. 말투가 온화하지 않고 수련생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며 내가 수련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A는 내게 억세고 당문화가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할 말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말할 뿐이라고 느꼈고, 내가 말한 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완벽을 좀 추구하기에 안목이 까다롭다. 만약 자신에게 요구한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많은 경우에 밖을 내다보고 습관적으로 비교하며 장단점을 따지는데, 그 이면에는 매우 강한 쟁투심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단지 자신이 진지하게 책임지고 일을 빈틈없이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나는 Z가 날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던 원인을 찾았다. 나 혼자 있을 때는 눈빛도 마음도 다 냉담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는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볼 때가 많아서 누구에게도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몹시 나쁜 생명에 의해 통제되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후천적으로 부가된 이 생명을 자신으로 여기면서, 그것이 내 공간장에 존재하도록 허락하고 보호했으며, 그것이 내 일과 생활에서, 심지어 수련에서 이래라저래라하게 했다. 수련 중에 자신이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수련하고, 자신이 보존하고 싶은 것은 보존하며 선택적으로 수련하는 것은 구세력의 방법과 매우 비슷하다.

어쩐지 내 수련이 더디다고 늘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나는 줄곧 독선적으로 수련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수련하며 사부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법공부를 하면서도 법에 동화할 수 없었고,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사악을 보호하고 있었다. 진상을 알리는 것도 선택적으로 했으며 세 가지 일은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래 내 수련은 줄곧 부분적이었고, 단편적이었으며, 누락이 있었다.

제자리걸음

수련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고 법공부도 계속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이런 문제가 있을까? 나는 또 다른 수련생에게도 비슷한 양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자신이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다며 내기를 했다. 그는 공중제비로 하늘가를 넘어 다섯 개의 큰 기둥을 보고는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자신이 하늘가에 도착해 이미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며, 그 다섯 개 큰 기둥이 바로 여래불의 다섯 손가락인 것을 전혀 몰랐다. 손오공은 결국 여래불의 손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관념이다. 그는 여래불의 손바닥이 바로 그가 본 그만큼 크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 행동 범위를 설정해, 하늘이 그의 행동 범위의 한계이며, 하늘 밖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수련 중에서 많은 관념을 제거했지만 마찬가지로 아직 제거하지 않은 관념도 많아서 수련 중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념에 통제됐지만 스스로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는 우리가 속인으로부터 수련을 시작하고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나타나는 수련 과정에서의 표현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법에서 바로잡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다. 수련은 누락이 없어야 하므로 우리는 늘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2022년 11월, 전염병이 만연해 도시 전체가 ‘확진’이 됐다. 역병이 끝난 후 수련생이 찾아와 단체 법학습에 참석하자고 했지만, 시간이 아까워 난 가지 않았다. 나는 단체 법학습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매일 명혜망에 접속했다. 이렇게 하면 효율이 높고 수련의 큰 환경도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이 제자가 잘못을 저지르며 돌파할 수 없는 것을 보시고 일련의 일로 경고하셨다. 연초에 나는 명혜망에 접속할 수 없어서 사부님께 세배 카드도 보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실 때, 나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고 신경문을 받은 후에는 다시 끊어졌다. 매주 한 번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고 문장을 받은 후에는 또 끊겼다. 나도 발정념을 해서 인터넷 차단 가상을 부정했지만 상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서 내가 수련생 집을 찾았고, 수련생이 나를 초청해 법학습팀에 참가한 후에야 스스로 자신을 봉쇄했으며 수련생과 정체(整體)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여 나는 또 순조롭게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다.

올해 5월 13일, 사부님께 카드를 보내드렸다. 나는 몇 명의 노년 수련생을 도와 카드를 만들었는데, 수련생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전에 나에게 거절당한 수련생이 나를 특무(스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하하 웃었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이 일이 늘 머릿속에 나타났다. 나는 방금 사부님께 수련생과 정체를 형성하겠다고 표명하자마자 이 시험이 왔다고 생각했다. 순간 사부님께서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 동영상에서 언급하신 말씀과 법리에 대한 내 이해가 떠올랐는데, 특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장이 불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련의 문제이며,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서 안으로 찾아본 후에 자신이 수련생을 깔보는 마음이 있고, 배후에는 쟁투심이 있으며, 당문화가 방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꿨는데 이전에는 계단을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날 엘리베이터에 타게 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전에는 없던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다

여름이 되자 샌들 한 켤레를 사놓고 한동안 두었다가 꺼내 신었는데, 신발 두 짝이 비대칭이고 왼발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발견했다. 당시 자신이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고, 또한 이 기회를 이용해 판매원에게 진상을 알려 두 사람을 탈퇴시켰으며, 마음속으로 이 신발을 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수련생이 대법 책이 필요한데 이전에 연락하던 수련생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수련생에게 책 표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내용을 인쇄한 후 제본하고 보니 중간에 4페이지가 매우 심하게 기울어졌다. 새로 산 신발 중 한 짝이 기울어졌고 이번에 인쇄해보니 책장이 또 기울어져, 나는 잘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머릿속에는 법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연공(煉功)함에 꼭 빗나가고 삿된 길로 나가게 되는데, 바로 사람이 밖에서 구함을 가리킨다.”[1]

나는 내가 매우 심하게 밖으로 추구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거의 매번 내가 받은 대법 경서는 제대로 제작되지 않았고 크고 작은 흠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거슬려 항상 속으로 수련생이 열심히 일하지 않고 대법 책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엄숙하지 않다고 책망했다. 하지만 수련생의 고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문제는 더욱 찾지 않았다.

법학습 팀에서 발정념을 할 때, 끝날 무렵에 수련생이 내가 다른 동작을 추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수련생과 교류한 의견에 따라 명혜편집부에 문의했는데, 받은 답장은 끝은 끝이고 다른 동작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몇 글자를 보았을 때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는 마치 사부님의 엄숙하신 목소리를 듣고, 근엄하신 표정을 본 것 같았고 또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아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원래 나는 자신의 위치도 바로잡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해야 하며, 사부님 말씀은 바로 법이다. 제자는 따르는 몫밖에 없는데 어디에 ‘보완’할 자격이 있겠는가? 독선적이고 너무 위험하다! 나는 지금 너무 기울어져 있다.

깊이 사고한 후 나는 줄곧 ‘빈틈없는’ 관념에 지배되어 인간의 논리로 수련 중의 일을 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다음 날 아침 가부좌하고 연공할 때 나는 처음으로 입정(入定)이 어떤 느낌인지를 체험했다.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수련은 어떠한 관념도 없이 사부님 말씀을 따라야 하며, 무조건 ‘진선인’에 동화해야 한다. 언제든지 어떤 환경에서도 먼저 자신을 수련한 다음에 사람을 보고 일을 봐야 한다.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해야 하며 선(善)이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의 약간의 인식을 써낸 것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는 거울로 삼으시고 굽은 길을 적게 걸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6/4637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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