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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제고를 돕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9년에 보서 ‘전법륜(轉法輪)’을 읽었다. 그때 오빠가 ‘전법륜’을 어머니께 드리면서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연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함부로 보지 말고, 제가 먼저 알아볼게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단숨에 ‘전법륜’을 다 읽었다. 그 당시 일부러 어디서 출판됐는지도 알아봤다. 그 후 나는 어머니께 “사람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해야 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함께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다. 이후 가끔 대법서적도 읽었다. 경서를 읽고 사람은 무엇을 하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그러자 장사가 점점 더 잘되어 밥을 먹을 겨를도 없었고 연공하고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 바빠서 대법을 스쳐 지나갔다.

2019년이 되자, 오빠는 나에게 부모님을 돌보러 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바쁜 생활을 마치고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나는 두 달 반 동안 모든 대법 경서를 다 읽었다. 이때부터 진정한 수련의 길이 시작됐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중병으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아버지를 마주했다. 어머니는 검사해보니 암 진단을 받았다. 모든 면에서 내가 직접 챙겨야 했다. 나는 특히 깔끔한 성격이지만 요리를 잘하진 못했다. 매일 세 끼를 준비하고 씻기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지치게 했고 내 마음은 통제력을 잃기 직전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왜 내가 매일 대소변을 받아야 하지?’라고 물었다. 마음속에는 두 목소리가 싸우고 있었다. 한 목소리는 ‘사람을 고용하면 얼마나 간단해. 자매가 몇 명인데 왜 내가 보살펴야 하지? 빨리 떠나자. 앞으로는 더 견디기 어렵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목소리는 ‘너는 수련해서 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 신이 그렇게 쉬우면 모두가 다 신이 되지, 지옥의 귀신이 어디 있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해 난관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종종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부님, 제가 먼저 수고도 원망도 마다하지 않는 효도하는 자식이 되게 해주세요. 저는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나는 날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를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졌으며, 가짜 자아를 조금씩 벗겨내고 수련하여 마성의 통제를 제거했다. 다음은 수련 중의 몇 가지 사례이다.

깨끗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닦다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어머니께 “저 냄비 좀 봐요. 태우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앉아서 깜빡 잊고 냄비에 물이 적어지자 평소에 마시던 물을 부으셨다. 어머니는 물을 마시면 쉽게 목에 걸렸고 그럴 때마다 다시 컵에 뱉어내셨다. 컵에는 밥과 물, 침이 들어 있었는데 어머니는 이것을 솥에 부으셨다. 이를 곁눈질로 보았을 때의 내 감정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사부님, 왜 이 일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깨끗함을 좋아하는 저의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을 보니,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사부님, 그냥 넘어가게 놔두세요’라고 생각했다. 밥 먹을 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밥그릇을 집어 들고 아무렇지 않게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이 일을 이때까지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감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다

한번은 여동생과 매제가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보기 편하다고 하면서 설치하겠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 동영상으로 보세요. 집에 자주 동료 수련생이 와서 불편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설치하려고 했다. 이후, 수련생이 오면 나는 전원 플러그를 뽑았다. 하지만 종종 전원 플러그를 다시 꽂는 것을 잊어버렸고 아예 더 이상 플러그 꽂지 않았다. 동생과 매부는 자주 이 이야기를 집안에서 꺼냈다. 나는 항상 사람이 와서 플러그를 꽂고 빼는 게 너무 번거롭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동안 플러그를 뽑았다가 꽂았다. 어느 날 그들은 다시 언급했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나는 ‘일도 하지 않고 돈도 쓰지 않으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어떤 마음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안으로 찾았다. 카메라가 있으면 동료 수련생들이 불편할 수도 있다.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내가 심성을 지키지 못하면 그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찾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나는 속으로 ‘누가 성깔이 없어 매일 대소변과 씨름하고 매일 말을 듣지 않는 부모를 대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의 두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한 목소리는 “수련하지 마. 열받아. 너를 가사도우미처럼 감시했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목소리는 “너는 진수(真修)하는가? 네가 잘하면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두렵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것은 나를 제고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일어나서 카메라 전원 플러그를 꽂고 자신에게 “진수하는 사람은 당당해야 한다. 나는 진수한다. 두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부님께서 가족을 이용해 내가 빨리 제고하게 하신 것이다.

평형되지 않는 마음을 제거하다

또 한번은 동생이 카메라에서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안 좋으신 것을 보고 돌아왔다. 나는 “너도 엄마가 밤에 항상 시중드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보았으니, 며칠 후에 와서 나 대신 저녁에 있고, 낮에는 내가 있을게”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동생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 둘은 밤낮으로 교대했는데 며칠 안 돼서 동생은 바쁘다고 하면서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 동생이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빠한테 전화해 울면서 동생의 잘못을 하소연하고 있는데 형님이 전화를 받고 나를 위로하며 “나도 어르신을 돌보았기 때문에 자네의 심정을 이해하고, 얼마나 힘든지 아네. 채팅방에서 자네가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네. 이번에 자네 전화를 받고 자네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게 되었네”라고 말했다. 그들은 사려 깊지 못했다고 하면서 돈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려고 했다. 나는 좀 더 계속해 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여동생이 돌아오기 전에는 나 혼자 밤낮으로 바빴고, 시간을 내서 세 가지 일을 했다. (외출할 때 아이가 좀 봐주었다) 여동생이 돌아와서 나는 며칠 쉬려고 했는데, 평형되지 않는 마음이 드러났다. 그 후 나는 여동생을 돌려보냈다. 여동생은 이렇게 떠난 후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매일 밤 한 시간도 못 자고 어머니에게 불려갔지만, 네 차례 정시 발정념 시간을 빼먹지 않았다. 동료 수련생의 말을 빌리면 짜임새가 정연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어머니에게 식사를 차려드린 후,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평소에 자신의 심성을 지키고, 오후에 틈을 내서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틈만 나면 발정념으로 구세력이 모친을 이용해서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과 요소를 청리했다. 동시에 어머니의 육신을 박해하는 흑수, 난귀와 구세력이 어머니에게 강요한 일체 난관의 공간장을 어머니를 도와 청리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어머니는 내가 사람을 구하러 나가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의지하려는 마음을 제거하다

나와 협력했던 수련생들이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어 혼자 진상을 알릴 때가 되었다. 수련생들이 떠나기 전에 혼자 나가서 진상을 알리려고 했는데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기가 정말 힘들었다. 입을 열어도 선별적으로 말했고, 중생들이 진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왜 진상을 듣지 않는가? 나의 정념이 순수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수련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충분한 자비심을 베풀지 못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어느 날 아침, 시장에 가서 채소를 파는 언니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녀는 삼퇴에 동의했다. 내가 천안문 분신이 파룬궁을 먹칠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듣지 않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때 다른 고객이 와서 다시 말하기 곤란했다. 떠날 때 나는 “나중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면 반드시 자세히 들어야 해요. 그것은 당신이 얼마를 벌어도 비교할 수 없는 값비싼 보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저 자신을 돌아보고 다음 날 그녀에게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음 날, 가기 전에 나는 파룬궁이 중국에서 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몇 개 써서 그녀 스스로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녀가 채소를 파는 곳으로 곧장 갔는데 사람들이 아직 많았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면서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그녀의 노점 앞에서 채소를 사면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 식사도 못 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채소를 가지러 갔다. 나는 내친김에 그녀의 손을 잡고 “언니, 당신을 위해서예요. 아무리 바빠도 평안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파룬궁이 중국에서 합법이라는 몇 가지 제목의 글을 그녀의 돈주머니에 넣고, 시간이 날 때 꼭 보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이날 “특별히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제발 휴대전화로 확인하세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떠나려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나는 또 속으로 ‘당신을 구하기 위해 저는 삼계로 내려왔습니다. 당신을 평안하게 하려고 저는 밤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서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심성을 높이 닦아 이제는 대법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항상 대법의 위력에 감탄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처럼 향수하기를 매우 좋아하고, 고생을 두려워하고, 온실에서 자란 사람을 대법은 낯선 사람과 먼저 말을 걸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혹한과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 내세의 서약을 이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잠들기 힘들었다. 무엇이 중생을 구원하는 것을 막고,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가? 오! 결과를 서두르는 마음, 명을 찾는 마음, 체면을 차리는 마음,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등이었다. 이렇게 많은 마음이 어떻게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나는 물러설 수 없었고, 어려움에 놀라지 않고 매일 나가는 것이 닦지 못한 각종 사람 마음을 해체하는 것이고, 그 과정이 내가 인간에서 신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이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넘쳤다.

육친정의 관을 넘다

한번은 어머니를 침대에서 일으켜 앉히려고 하다가 뼈만 앙상한 모습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 나는 잘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병업을 겪을 때 나는 대법으로 되돌아왔어요. 내가 엄마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나는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어요. 효도는 더욱 다 하지 못했어요. 전에는 항상 엄마에게 변화를 요구했어요. 엄마의 힘든 상황을 헤아리지 못했어요. 나는 자비심이 없었어요.” 나는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거라, 울지 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또 울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놀랐다. 오늘 어머니가 나에게 정의 관을 넘게 하지 않았는가?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심성을 지키셨다. 나는 어머니께 “엄마, 오늘은 왜 이렇게 평온하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20년 넘게 수련했는데 그동안 친혈육과 남편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정은 사라졌단다. 너는 수련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정에 이끌린 마음을 아직 잘 처리하기 힘들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수련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나를 수련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 아직 고쳐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지적해 드리면,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고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가겠다는 말씀을 끝내 하지 않으셨고, 자신은 병이 아니라고 하셨다. 임종할 때까지 어머니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셨다.

어머니께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다

내 심성이 제고되면서 나중에 법공부와 연공을 할 때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어느 날 어머니께 내가 어디가 잘못됐는지 말씀해 달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지금은 괜찮다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는 나빴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예전에는 너무 심했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지금은 심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지금은 상냥하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웃자 어머니도 아이처럼 웃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보름 전에 나는 물건을 사러 길거리에 나갔었다.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동안 봐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왔을 때 친척이 “어머니께서 늘 자네의 이름을 부르셨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법의 힘이 나를 결국 동행할 수 있는 사람, 진짜 수련생으로 만들었다고 감탄하셨는데, 어머니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도 “네 힘을 빌리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가 연공할 수 있을 때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묻고 요구하고 원망한 것을 후회하며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집착에 너무 집착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불평, 비난, 분개, 혐오, 자비심 없음, 자아, 타인에게 강요, 참을성 없이 다른 사람을 바꾸기, 조바심 등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나는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수련생님,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지금은 괜찮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살아계실 때 폭로시켜준 사람의 마음을 기억해야 하고, 반드시 다음 제고 단계에서 그것을 수련하고 제거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글은 나처럼 집에 병업이 있는 수련생이 있으면, 더 인내하고 덜 비난하고 더욱 정념을 보태주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작성했다.

사부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은 결코 지적해서 좋아진 것이 아니고, 나 이 사부가 누구를 비평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당신들이 서로 비평하고 지적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닦아서 수련이 잘된 것이다.”[1]

가족을 잃은 지난 3년간의 경험을 떠올리면 나는 올라가자마자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심성의 고비를 넘기지 못할 때의 고통의 눈물, 가부좌할 때 고통의 땀방울이(지금 나는 두 시간 동안 힘들지 않고 가부좌 할 수 있음)이 있었다. 사부님의 한결같은 가지와 자비로운 보호에 더욱 감사하며, 제자가 괴로워하고 무력할 때마다 제자에게 정념을 불러일으키고 법리를 점화해 주셔서 난관을 극복하게 하셨다. 할 말이 너무 많다. 제자는 정진실수하여 아직 닦아내지 않은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모녀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동료 수련생들께 감사드린다. 이들은 대법이 만든 대법제자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끼게 하고 수련의 길을 더욱 굳건히 걸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상은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를 바란다.

이번 생에서 대법을 만난 것에 감사를 드린다.

사부님의 은혜에 절을 올린다. 허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5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5/2/45048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5/2/4504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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