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 초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법공부와 연공이 부족하고 수련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다. 수련을 할 줄도 몰랐지만 아마도 생명의 숙원과 서약이었을 것이다. 나와 수련생들은 일찍이 여러 번 천안문에 가서 법을 수호했다.
이 글을 쓴 것은 호법(護法)의 거센 흐름 속에서 한 작은 물보라의 시각을 통해 우주 대법을 수호하려는 파룬따파 제자들의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정념을 반영하고, 역사적 장면을 되찾아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실증하고 사존의 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보호를 칭송하고자 하는 데 있다.
1.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후 나와 몇 명의 수련생은 즉시 비행기표를 사서 서둘러 베이징으로 가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몇 명이 올라왔는데, 경찰 한 명이 나의 신분증을 보려고 했다. 그는 신분증을 본 후 예의 바르게 떠났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라는 한마디가 나타났고, 곧바로 비행기가 휙휙 소리를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그때는 파룬궁(法輪功)을 모욕하는 선전 기사가 넘쳐났고 우리의 마음은 너무 답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며칠 동안 우리는 목적 없이 거리를 걸었는데 심정이 어땠는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앞문 거리에서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서로 말을 걸자 베이징의 부부 수련생 A와 B였다. 그들은 외지에서 베이징에 와 법을 수호하는 수련생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 가족을 찾았는데, 사부님의 배치는 정말 신기하다!
그들은 우리를 자신의 누추한 집으로 안내했는데 집에는 이미 10여 명의 외지 수련생이 있었고 또 어느 지역의 보도원도 있었다. 수련생들은 만나자 친밀감을 느꼈고 교류하면서 서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수호한다는 정념을 굳게 다졌다.
자정이 조금 지나자 남성 수련생의 어머니와 동생(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이 와서 욕설을 퍼부으며 우리를 쫓아냈고 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위협했다. 여러 수련생은 더는 배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 후 수련생들은 두세 명씩 각자 천안문으로 달려가 대법제자가 대법을 수호하는 신성한 서약을 지켰다.
한여름의 베이징 거리를 걷다가 약간의 한기를 느꼈지만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문의 결과 우리는 민원실에 도착했다. 짙은 나무 그늘을 지나 많은 경찰이 테이블을 차려놓고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책상 위에 민원 등록서가 있었고 많은 수련생이 그곳에서 등록했으며 취업 박람회처럼 떠들썩했다.
우리는 파룬궁을 위해 청원한 목적을 설명하고 개인 정보를 등록했다. 정오경에 우리는 불법적으로 넓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압송되었다. 오후에는 우리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고 들어오고 나가는 수백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좀 지나 또 사람이 들어오고 좀 지나 또 다른 사람이 각지의 베이징 주재 사무소에 인계되었다.
저녁 무렵, 우리 성의 베이징 주재 사무소에서 우리를 베이징 주재 사무소로 데려갔다. 사무소 주임은 매우 화가 났지만 우리는 구타를 당하지 않았고 사무소 사람들은 파룬궁의 진상을 알고 싶어 했다. 다음날 우리 회사의 총지배인과 사무실 주임이 베이징으로 왔고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현지로 돌아왔다. 돌아간 후 바로 파출소로 가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2. “집으로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2000년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노 수련생과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의 “천상변화는 만약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속인사회에 어떤 상태도 가져다줄 수 없으며, 그것을 천상변화라고 할 수도 없다.”[1]를 배우고 수련생과 교류한 후 나는 법 입자로서 움직여야 하며 천상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천안문에 가서 호법하려고 했다.
그날 나는 혼자 아침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갔다. 베이징의 젊은 부부 A, B와 함께 교류한 후 나는 배낭과 증명서를 그들에게 맡기고, 점심 식사 후에 나는 종이봉투를 들고 천안문으로 출발했다.
그날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천안문 광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수련생도 보지 못했다. 한백옥(漢白玉)의 금수교(金水橋)에 이르렀을 때 몇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보았다. 나는 종이봉투를 발 옆에 놓고 눈을 지그시 감고 포륜(抱輪)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나의 팔을 잡아당겨 눈을 떠보니 젊은 경찰이었고 아주 상냥해 보였다. 그는 나에게 “어디에서 왔어요?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온 목적을 물었다. 나는 상황을 보고하려고 왔고 정부가 파룬궁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잘못이고, 파룬궁 수련생은 억울하고 우리 사부님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데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은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돌아가고 싶습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베이징에 놀러 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이 일 때문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나를 경찰차에 태울 때 하늘이 흐려졌고, 차는 천안문 부근을 빙빙 도는 것이 공안부 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주셨을 거로 생각한다. 나는 붙잡히는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없었고, 그때 나는 사부님께 부탁할 줄 몰랐지만, 마음이 안정되고 텅 비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결국 버스정류장까지 차를 몰고 와서 나를 내려놓고 차는 떠났다.
내가 A, B 수련생과 만나는 장소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1분도 안 돼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나는 평생 그렇게 큰 비를 몇 번 본 적이 없다. 거의 한 시간 후에 차에서 내리자 비가 신기하게 그쳤는데, 하늘은 씻긴 듯 맑고 깨끗했으며 공기 중에 신선한 냄새가 났다.
3. 천안문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치다
2000년 말, 아래층 방범문이 갑자기 열리지 않았다. 처음 베이징에 청원한 후 집과 직장에서 늘 경찰이 소란을 피웠다. 나는 사악이 행동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당일 나와 C이모, D수련생은 간단하게 짐을 싸서 다시 베이징에 가서 호법하려고 결정했다.
우리의 신분이 모두 폭로되었기에 우리는 시외버스터미널로 서둘러 갔다. 어느 중급 도시에서 내려서 우리는 작은 여관을 찾아 묵었고, 다음날 우리는 톈진행 기차표를 사서 검문을 피해서 순조롭게 톈진에 도착했다.
나는 D 수련생과 함께 밤새 택시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운전사는 길에서 자주 경찰이 차를 조사하고 파룬궁을 잡는다고 말했다. 그때 전자책이 없어서 나는 베이징에서 공부하려고 사부님의 설법을 많이 가져왔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순조롭게 베이징에 도착했다.
한 친구가 우리를 맞이했고 그는 우리에게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빌려주었다. 친구는 C이모가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우리는 C이모를 도와 방을 임대했는데, 난로를 피워야 방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그해 베이징의 겨울은 음산하고 스모그가 많았는데 호법하려는 많은 수련생은 그런 초라한 환경 속에서도 견지하고 있었다.
나와 D수련생은 매일 법을 대량으로 배우고 외출하지 않았다. 베이징에 온 목적은 호법이지만, 사당의 박해가 잔혹하다는 말을 듣고서 우리는 나가지 않았다.
보름 남짓한 어느 저녁, 방에 난방이 안 되는 것을 느껴서 D수련생과 나는 상점에 가서 솜옷과 양고기, 당근을 사고 돌아와서 따뜻하게 식사했다.
다음날 정오가 다 될 때 난방은 더욱 안 되고 변기 물도 고장 나 내리지 못했는데, 우리는 이는 점화이며 더 미룰 수 없다고 깨달았다. 이때 E수련생이 우리를 불러서 빨리 천안문으로 가라고 했고 수련생들이 100m 현수막을 친다고 말했다. 그날은 아마 2000년 12월 29일 일 것이다.
새로 산 두꺼운 솜옷을 입고 우리 둘은 서둘러 E수련생을 만나러 갔다. 100m 현수막을 치는 기회를 놓치자 E는 우리에게 진상 현수막(최소 2m며 두 사람이 펼치기 좋은 것)을 주었다
나는 정말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감개했다. 기차가 톈진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는 천안문 청원과 연공을 모두 했는데 이번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했다. 현수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이 나왔지만, 그 후 어떤 노력도 한 적이 없었다. 또한 이 현수막의 크기, 내용은 모두 나의 마음에 들었다.
낮 12시 40분쯤 우리는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갑자기 한 줄로 늘어선 건장한 사내들이 다리를 벌리고 뒷짐을 진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정말 살기등등하고 악귀 같았고 하나같이 1m 80cm 이상이었다. 두 다리 간격은 반 미터나 벌어져 있고 1m 간격으로 한 사람씩 서 있었는데, 우리에게 그곳에서 방금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톈안먼 광장은 음풍이 간간이 불고 하늘이 흐려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숙연한 분위기였다. 100m 현수막을 친 수련생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작은 붉은 깃발을 파는 소상인들은 몸을 떨고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를 막고 있었다. 광장은 비교적 넓었고 우리 근처에는 10~20명밖에 없었는데, 관광객인지 사복경찰인지 아니면 수련생인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C이모가 현장에 있었고 E수련생도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잡념도 없었고 시계를 여러 번 보았는데 마음이 점점 급해지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반드시 오후 1시 전에 현수막을 펼쳐야 한다.
1시 전, 나와 D수련생은 현수막 한쪽 끝을 잡고 재빨리 갈라지면서 현수막을 펴고 달렸다. 현장이 단번에 활기찼고, 다른 수련생들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현수막을 펼치는 사람이 있었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과 사복경찰도 어디선가 나타났는데 혼란에 빠진 것처럼 뒤쫓아왔다.
달리는 중에 D수련생이 현수막을 잡아당기지 못해서 우리는 달리다가 갈라졌다. 나는 혼자 오른손에 현수막을 들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현수막이 날아다니는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반복해서 고음으로 크게 외치는 내 목소리만 들렸다.
나는 다른 공간을 걷는 것 같았고 경찰에게 차여 넘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뛰어다녔다. 그 발은 속인이라면, 달리기 선수를 놓고 말하면 관성이 더해 죽거나 중상을 입기에 충분했지만 나는 다치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다. 나는 사존께서 나를 도와서 감당해 주신 것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차여 넘어진 후 기억이 끊겨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음 장면은 내가 경찰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장면이 또 바뀐 것을 발견했다. 햇빛이 찬란히 비치고 경찰차 여러 대, 한 무리 경찰, 많은 수련생과 구경꾼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몰랐다. 그 우람한 체격의 사나이들은 모두 ‘증발’했고 그 장면은 지나갔다. 나는 솜옷 안주머니에 진상 스티커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구경꾼들에게 던지려다가 경찰에게 발견되어 던지지 못했다.
그때 E수련생도 차에 잡혀 오른 것을 보았는데, E는 20대 젊은이로 머리를 맞아 피가 많이 났다. 나는 경찰에게 호통쳤다. “때리지 마!” 차 안에 다른 수련생도 있었지만 C이모, D수련생은 없었다. 이어 우리는 천안문 인근 파출소로 끌려갔다. 수십 명, 수백 명의 수련생이 뒤뜰에 갇혀 있었는데, 붉은 벽돌담의 높이는 4~5m였다. 우리는 한목소리로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2]를 외웠다. 우리는 한 번 또 한 번 외웠고 소리는 우렁차고 비장했으며 불굴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외울수록 한결같았고 외울수록 견정했다. 경찰들은 제지하거나 폭행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매일 이렇게 많은 선량하고 인내심이 강한 대법도(大法徒)를 상대하면서 사실 경찰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반나절 만에 한 파출소에 많은 수련생이 들어왔고 또 어떤 수련생은 천안문 광장을 무사히 빠져나갔는데, 그때 매일 천안문에 가 호법한 수련생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후에 우리는 버스에 실렸고 사람들로 붐벼서 거의 틈이 없었지만, 수련생들은 계속해서 한목소리로 ‘홍음’을 외웠다. 한 파출소에 차를 몰고 가서 몇 명을 내려놓고 또 한 파출소에 가서 몇 명을 내려놓았다. 우리 수련생 6, 7명은 먼 파출소로 끌려갔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먼저 다녀간 수련생들이 자비로 바로 잡은 한 무리 경찰, 특히 선량한 파출소 F소장을 만났다.
4. 당당하게 파출소에서 나오다
우리는 구치소 같은 일반 침대가 있는 텅 빈 큰 방에 갇혔는데, 모두 사악에 협조하지 않고 개인 정보는 일체 말하지 않는다고 간단히 교류했고, 곧 저녁 시간이 되었다. 경찰이 도시락을 가져다주었지만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모두 먹지 않았다.
그러자 지도자의 모습을 한 남자 경찰이 다가와 “우리 대법제자는 밥을 먹어야지, 밥을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F소장이었다. 그는 틀이 없고 온화한 태도에 심지어 약간의 열정까지 가지고 있었고 우리를 조금도 범인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를 했고 도시락에는 삼실(돼지고기, 닭고기, 죽순을 실같이 가늘게 썬 것) 볶음면이 가득했다. 우리가 밥값을 주려 하자 경찰이 받지 않았다.
나는 불법적으로 두 번 심문당했다. 처음에는 능청스러운 경찰이 나를 심문했는데, 나는 “내가 말하면 나를 보내 노동교양을 시키기에 말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자 친한척하며 우리는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신분증을 안 가져와서 그들도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한 늙은 경찰이 나를 심문했고 나는 똑같이 대답했다. 옆에 있던 경찰 몇 명이 나를 18살이라고 추측하고 내 말투를 들어보니 베이징 교외라고 말해 나는 몰래 웃었다. 이 경찰들의 전문성은 많이 향상되어야 한다.
나중에 늙은 경찰이 “네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10년, 8년 후가 될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늙은 경찰의 태도를 보니 사람을 풀어줄 것 같지 않았다. 비록 나는 착실히 수련하지 않고 법리가 분명하지 않지만, 생각이 단순해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려놓은 셈이다.
그 며칠 나는 법을 많이 배워 정념을 충실히 했다. 사부님의 가지로 나의 수련한 면이 강해서 심문에 직면해 매우 확고했다. 집착은 억제되고 인간의 용기와 정의가 우세했으나, 그때는 정법이 곧 끝나기 때문에 법을 수호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는 집착이 있었다.
저녁이 되자 F소장이 야근을 하며 나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F소장과 나는 대화가 잘 통했다. 이 사람은 솔직하고 정직해서 기회를 엿보아 유도 신문하여 자백하게 할 의사가 없었고, 나는 당연히 대법 진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서랍에서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꺼내며 “이것 봐, 여기 너희 책도 있고 나는 보았어”라고 말했다. 내가 달라고 하자 그는 주지 않았다.
그는 몸을 굽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내가 보기에는 장쩌민이 파룬궁을 이렇게 하다가는 점점 격화될 것 같아, 이건 아닌데…” 나는 듣고 위안이 되었다. 대법제자의 바른 표현이 착한 경찰을 감동케 하고 감화시켜 파룬궁을 정면으로 대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했다.
…결국 F소장이 우리를 찾아왔고 경찰 몇 명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F소장은 엄숙하게 “여기저기 만원이어서 보낼 곳이 없어요. 그녀들을 데리고 빨리 떠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당당하게 파출소 문을 나섰다. 몇 명의 수련생은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지만 개인 정보는 교환하지 않았다.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그녀들의 모습이 모두 희미해졌다. 그 수련생들은 모두 잘 있는지? 돌아간 후 다시 천안문으로 갔을까?.
세 번째 호법을 돌이켜보면 그 심금을 울리는 경험은 아주 위험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사실 나의 평소 심성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중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제 위치에 밀어놓지 않으셨다면 온몸에 업력인 작은 수련자는 근본적으로 걸어 지나가지 못한다. 수련하는 길에 도랑과 골짜기를 사존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넘어져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는 유감이 없다. 파룬따파를 헐뜯고 위대한 사존께서 비방당하는 동안, 수많은 대법제자가 폭력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혈과 생명으로 세상에 오기 전 사부님과 맺은 이 신성한 서약을 실천했다!
삼가 이 글로, 이로 인해 생명과 자유를 잃은 수련생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진실한 기억임을 밝힌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무존(無存)’
원문발표: 2023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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