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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에서 연마하다

글/ 중국 후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57세로 1995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조사정법(助師正法) 수련의 길에서 여러 관문과 시련을 겪었으며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위험 없이 걸어왔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이후에 나보다 스무 살 많은 남자를 만났는데, 온 가족이 결혼을 반대해 그야말로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결혼 후 나는 집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성질이 급하고 변덕스러워서 한마디 말한 다음 두 마디부터는 사람을 때렸다. 나도 물러서지 않아 사흘에 한 번 다투고, 나흘에 한 번 싸우면서 나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

29살 때 파룬따파가 우리 마을에도 널리 전해져서 수련에 들어갔다. 그때 책은 ‘파룬궁(法輪功)’이 전부였고 이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지만, 결가부좌를 할 수 없어서 반가부좌를 했는데 다리가 고사포처럼 치켜 올라갔다.

나중에 ‘전법륜(轉法輪)’이 출판됐다. 나는 법학습, 연공, 심성 수련으로 마작과 모든 나쁜 습관을 끊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결가부좌를 하기 위해 쌀을 자루에 담아 다리를 누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끊임없는 법학습, 연공을 통해 마침내 1996년 5월에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3년간 수련하는 내내 남편은 종종 나와 갈등을 일으켰다. 남편은 내가 법공부하는 것을 반대하며 늘 욕을 했다. 나는 항상 눈물을 머금고 참았다. 내가 평생 그를 위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는데도 오히려 나를 이렇게 대하니 그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제자가 깨닫지 못하자 사부님께서 깨우침을 주셨다. 밤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 남편이 정말 죽었고 날 찾아와 결판을 내려 했다. 나는 그를 제지하지 못하고 “리훙쯔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세 번째 소리를 질렀을 때 한 도인이 내 앞에 서서 “넌 그에게 빚진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가 죽으면 넌 원만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 남편을 살려달라고 부탁드렸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마침 연공 시간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내가 남편에게 진 업보를 갚으러 이번 생에 온 것이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도 내 변화를 느꼈다. 파룬따파는 이렇게 날 변화시켰다.

1999년 7월, 장쩌민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고, 각지 수련생들은 성(省) 정부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그날 우리는 수련생 수십 명과 떨어져 있었는데, 도로에 많은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제지하며 수련생들을 돌려보냈고, 우리 5명만 성(省) 정부로 갔다. 7월 20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남편도 내가 어디 갔다 왔는지 묻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999년 겨울, 향(鄕)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나와 다른 한 수련생에게 회의하러 가자고 통지했는데, 나는 속으로 다시 시련이 왔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향 정부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와서 나와 수련생을 데리고 갔는데, 가서 보니 이미 수련생 10여 명이 있었다. 향장이 단상에서 파룬궁은 ×교라고 했고, 각자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며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파출소에 구류된다고 했다.

밤에 비가 와 날씨가 매우 추웠다. 우리는 밤새 그곳에 앉아있었고, 현(縣) 공안국 ‘610(파룬궁 탄압기구)’ 경찰이 차를 몰고 와서 몇 차례 조사했다. 다음날 파출소장이 우리를 불법 심문했다. 소장이 날 불러 들어갔더니 연달아 세 번이나 “연마할 겁니까?”라고 물어서 “나는 반드시 연마할 겁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소장은 우리를 현 구치소로 보내 불법 감금했다.

그해 겨울은 매우 추웠는데 그들은 나에게 구두를 벗고 맨발로 감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나와 수련생은 매일 법을 외우고 연공했으며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대법을 전하고 박해의 경과를 말해줬다. 다행히도 한 경제사범이 내가 갖고 간 ‘홍음’을 빌려 보고 외웠다.

설이 다가오자 남편과 수련생이 우리를 석방하라고 파출소에 왔다. 파출소 지도원이 그들을 데리고 구치소에 와서는 우리를 나오라고 불렀다. 지도원이 “오늘은 당신들을 집에 돌려보내는데,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결심하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 보증서 쓰는 것을 말하는데, 설날에 집에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요. 보증서를 안 쓴다고 여기에 갇혀 있지만 무슨 죄를 범한 것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지도원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2014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며칠 만에 손자가 태어났다. 모든 무거운 짐이 나에게 떨어졌고, 손자가 한 살이 넘어서부터 내가 돌봤다. 손자가 두 살 때 그의 외할머니가 그를 데리고 이틀을 묵었다. 그때 나는 몇 명 수련생과 함께 진상 소책자를 나눠주러 나갔다. 첫날은 순조로웠지만, 다음날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경찰 다섯 명이 날 에워쌌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1].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내 가방을 강제로 빼앗고 우리를 현 파출소로 데려갔다. 또 내 가방에서 진상 책자,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 이틀간의 삼퇴 명단을 찾아냈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물건이 어디에서 났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오늘 마침 손자를 외할머니가 데려갔기에 시간이 생겨서 진상 책자를 배포하고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렸다고 했다.

경찰이 어떻게 알렸냐고 물어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알렸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이에게는 “오라버니, 큰언니, 큰이모, 아저씨, 파룬궁 진상을 보시겠어요? 파룬궁은 박해당했고 ‘천안문 분신’은 꾸며낸 거예요. 자료를 원하시면 드리고 원치 않으면 드리지 않겠어요”라고 큰 소리로 알렸다고 했다. 경찰관이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나에게 “서명하면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나는 그 위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보니 사회질서 교란, 사교 자료 유포, 구류 15일이었다. 내가 파룬궁은 사교가 아니라고 하자, 경찰이 그럼 뭐냐고 해서 파룬궁은 정법 수련이라고 했더니, 그 경찰은 그 위에 그 말을 쓸 수 있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구류장에 ‘파룬궁은 사교가 아니라 정법 수련이다’라고 또박또박 썼다. 그는 내가 쓴 두 문장을 갖고 ‘610’과 국보대대로 갔다.

약 3시간 후, 경찰이 다른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면서 서명을 요구했다. 살펴보니, 원래 15일에서 13일로 바꿨지만 나는 서명을 거절했다. 경찰은 내가 오늘 서명하거나 말거나 서명이 된다고 했다. 나는 결단코 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사람이 대신 서명했다. 나는 당신이 서명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위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불법적으로 유치장에 감금됐다.

유치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협조하지 않았다. 유치장 옷을 입지 않았고, 운동장에 집합해도 그들의 구령에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 주지 말고 옆으로 비켜서라고 했다. 집합이 끝나면 우리는 감방에서 연공했다.

하루는 소장이 당직을 서다가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발견하고 손에 쇠막대를 든 채 죄수 두 명을 데리고 와서 “누가 연공하라고 했지?!”라고 고함쳤다. 나는 연공을 계속 견지했다. 그러자 그들은 쇠막대로 내 왼쪽 어깨를 때렸는데 뼈에서 ‘뚝’ 소리가 났다. 내가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위법이라고 하자 소장은 가서 신고하라고 했는데, 내가 나가면 고소하겠다고 하니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소장이 날 찾아와 자신은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읽어 봤으며, 사실 파룬궁은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이것은 자기 일일 뿐이라며 사과했다. 그 이후 나는 연공하고,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했으나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다. 게다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몇 사람을 삼퇴(三退: 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시켰다.

2017년 어느 날, 나는 수련생과 함께 다른 마을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했다. 갑자기 마을 서기가 경찰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수련생의 대법서적과 사부님 법상을 전부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나에게 “어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그리 멀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서기는 “그녀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내가 우리 마을 주소와 이름을 말하자 그는 “또 당신이네, 당신이 불교를 배우러 간다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평생 파룬궁만 배울 거라고 하자 그들은 나와 수련생을 파출소로 데려가려 했다. 내가 우리는 법률을 어기지 않았고 시민은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했더니, 그들은 또 당신들 집에 가보자면서 나와 수련생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

나는 차에서 사부님께 나와 수련생을 도와주십사 부탁드리며 줄곧 발정념을 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경찰 두 명은 수련생 집에, 두 명은 우리집에 갔다. 한 경찰이 책을 뒤지기 시작했고 한 경찰은 내 옆에 서 있었다. 내 책상 위에 대법서적 두 권과 ‘밍후이주간’ 두 부, 경문 한 권을 경찰이 손에 쥐었다. ‘전법륜’은 내 수련을 지도하는 책이며 매일 봐야 하므로 가져갈 수 없다고 했더니 나와 함께 서 있던 경찰이 “그만해”라고 했고, 나는 즉시 그 경찰 손에 있던 두 권의 대법 책을 가져왔다.

내가 물 좀 마시라고 하자 그들은 안 마신다며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이 진상을 들으러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파룬궁이 사람에게 선과 도덕성을 회복하도록 가르치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할 것을 요구하며, 질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유지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장쩌민은 당신들을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하고 그를 위해 일한 당신들을 제거하려고 하므로 ‘총구를 1㎝ 높이는 것’(역주: 상부의 총살 명령에도 무고한 사람을 일부러 빗맞힌다는 뜻)이 당신과 가족에게 좋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나만 말했고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들은 가버렸다. 그때 이웃이 와서 또 날 잡아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다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진상을 알릴 줄 몰라서 늘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면 발정념만 했다. 오늘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비로소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20여 년 수련하는 동안 나는 온갖 고난과 집착심을 제거하는 고통을 겪었는데, 어떤 관은 잘 넘겼고, 어떤 관은 잘 넘기지 못했다. 잘 수련한 수련생에 비하면 나는 아직 멀었다.

앞으로 수련할 때 나는 반드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모든 집착을 닦아내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2–두려울 것 뭐냐’

 

원문발표: 2023년 7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7/20/4631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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