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아첨과 자심생마’를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밍후이편집부에서 ‘아첨과 자심생마’라는 글을 발표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해당 문제가 있는 수련생에게 스스로 깨닫고 다그쳐 돌아올 기회를 주셨음을 깨달았다. 만약 사부님께서 직접 이런 보편적이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 설법하셨다면 이 부분 수련생은 스스로 깨달을 기회가 더 적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실수록 관련 수련생이 더 분명히 알 수는 있겠지만, 길은 스스로 걸어야 하기에 돌아오려면 저항과 사악의 교란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밍후이편집부에서 우리 수련의 부족함과 잘못을 지적한 글을 올렸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중시하고 제때 법에서 자신을 고치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소중히 여겨야 할 몇 안 되는 정법 수련의 기회와 인연이다.

자심생마(自心生魔)로 엄청난 난(難) 속에 빠진 수련생

자심생마에 처한 수련생은 사실 엄청난 난 속에 있다. 이것은 구세력이 멀고 오랜 연대 전에 이런 사악한 계획을 세워놓고, 누구누구가 언제 자심생마의 상태와 행동을 보일지 다 계획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강요했거나 이 부분 생명이 점점 더 나빠져 스스로 이런 선택을 했을 수 있는데, 어쨌든 이것은 그들 생명의 액운이다. 그리고 그들 사람의 일면이 대법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기에 법에 있지 않아 법의 강력한 에너지로 자신의 문제를 부정할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구세력은 또 주변에 사람마음으로 숭배하는 사람을 배치했다. 이런 사람의 비이성적인 끊임없는 아첨과 칭찬은 그들 몸과 공간장에 부패한 물질을 던져 이성을 가려버려서 더욱 벗어날 힘이 없게 만든다. 그래서 가엾게도 구세력이 조종하는 정법을 교란하고 대법을 파괴하는 ‘바둑알’이 되어 끔찍하게도 구세력이 마련한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

자심생마 상태에서 그들의 사람마음과 업력은 사악에 의해 끊임없이 증폭되고 이용돼, 주이스(主意識)가 자신의 육신을 지배할 수 없고, 몸과 공간에는 난법(亂法)하고 법을 파괴하는 사악한 마(魔)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사악한 마들은 그들의 육신을 조종해 횡설수설하게 하고, 대법제자를 비난하며, 수련생을 현혹하고, 밍후이왕을 공격하며, 심지어 대중 앞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한다. 업력이 커질수록 그들 사람의 일면이 강해지는데, 오만과 이성을 잃은 모습은 사실 주이스가 매우 약해진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생명이 깨어날 수 있을지, 돌아올 수 있을지는 정말 그들 자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내가 주로 교류하고 싶은 문제는 아니다. 오늘 교류하고 싶은 문제는 왜 우리의 수련 환경에서 이런 사람과 일이 생겨났냐는 것이다. 그들은 왜 우리의 수련 단체에서 시장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수련생들의 어떤 사람의 마음을 노리고 왔을까?

사람을 숭배하고 비이성적으로 아첨하는 것은 자심생마의 ‘옥토’

어떠한 일이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에 대한 질투와 그 자신의 목적으로 이런 배치를 한 것이다. 그들은 대법제자가 쉽게 수련 성취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대법제자의 환경이 깨끗하지 않게 하려고 몇몇 사람이 나타나 우리의 환경을 어지럽히고, 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소위 대법제자를 ‘시험’하며 광범위하게 대법제자를 끌어내려 망치려 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일이 중국이나 해외에서 적지 않게 나타났다. 한때 중국의 광범위한 연설 난법의 표현은 구세력이 배치한 혼잡한 상태가 정점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밍후이편집부가 2013년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라는 글을 발표해 이를 제지하자 대량의 연설 난법은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전후로 각종 난법 현상이 각종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으며,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해외 수련생이 폭로한 해외의 법을 이탈한 난법 행위와 현상 역시 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다.

구세력이 왜 이런 나쁜 일을 저지를 수 있었고, 많은 수련생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엄청난 난에 처하게 됐는가? 사실 우리의 수련에 문제가 생겼고 게다가 광범위하게 문제가 생겼는데, 솔직히 말해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은 탓이다.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을 따르며 법을 배우지 않고, 수련 중에 항상 다른 사람을 보는 등 사람마음을 질질 끌며 버리지 않는데, 이것이 구세력이 이런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근본 원인이다.

국내외에서 각종 난법 행위는 모두 자심생마의 상황임을 보았다. 자심생마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당사자로 볼 때 근본적으로 과시하는 마음,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외부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숭배하고, 사람을 따르고 법을 배우지 않으며, 사람의 정으로 겉모습만 보면서 사람마음으로 표현하는 아첨과 칭찬이 자심생마를 낳는 ‘옥토’가 됐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이러한 사람마음의 틈을 이용해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다. 자심생마가 나타난 사람과 이들을 숭배하는 사람은 항상 상부상조하며 나타나는데, 구세력은 바로 수련생의 숭배하는 사람마음을 버리게 한다는 명목으로 자심생마가 나타난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런 사람이 파멸로 가는 과정에 그(그녀)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책임이 있다.

비유하자면 구세력이 그런 사람을 깊은 절벽 아래로 밀었을 때 주위 사람들의 숭배하는 사람마음, 아첨과 칭찬의 언행이 한 번 밀치고 발로 차는 셈이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과 무책임한 언행은 사악한 죄악의 안배에 협조하는 것인바, 파란을 조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심생마가 나타난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를 숭배하는 주변인에게 교란과 미혹을 일으키고, 법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아 그들까지 아래로 끌어내렸으니 그것은 정말 사악의 배치 속에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

아첨과 칭찬은 마가 사람을 망가뜨리는 수단이자 꼼수

‘전법륜(轉法輪)’에서 사부님께서는 마(魔)가 수련자를 방해하고 유혹할 때 모두 아첨과 칭찬이라는 수법을 쓴다고 여러 번 제시하셨다.

“갑자기 그 어느 날 당신은 한 높고도 큰 대신선(大神仙)이 온 것을 보게 된다. 이 대신선은 당신을 두어 마디 칭찬해 준 다음, 당신에게 무언가를 좀 가르쳐 주는데, 당신이 또한 가진다면 당신의 공은 곧 난잡해진다.”[1]

“그 마(魔)는 또 당신을 칭찬할 것인데, 당신이 얼마나 높다고 하고 당신은 얼마나 높은 대부처, 얼마나 높은 대도(大道)라고 하며 당신을 대단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부 가짜다.”[1]

“그는 정전(正傳) 기공사에게도 불복하며, 귀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다. 만약 누가 그를 좋지 않다고 하면 그도 좋아하지 않으며, 명리심이 모두 일어나서 그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고명(高明)하며 그가 대단하다고 여긴다.”[1]

마는 당신을 유혹해 결국엔 당신이 속아 넘어가게 하는데, 아첨과 칭찬은 마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당신을 망치려면 먼저 칭찬부터 하는데 우쭐거리며 뽐내게 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남들보다 뛰어나고 고명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득의양양한 가운데 얼떨결에 사악한 마의 수법에 걸려들게 하거나, 아니면 칭찬 속에서 당신의 명성과 이익에 대한 마음과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아래로 떨어뜨려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데, 결국 조종받아 자심생마의 길로 가게 만든다.

물론 마가 와서 하는 아첨과 칭찬은 다른 공간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사람마음이 있는 사람을 조종해 이런 일을 하게 한다. 이 공간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항상 아첨과 칭찬을 한다. 아첨과 칭찬을 하는 사람이 마가 아니라, 그들의 사람마음이 마에게 이용되거나 조종되어 교란받는 사람에게 한 번 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외 중국공산당 스파이들이 대법 수련생에 대한 아첨과 칭찬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것은 당신을 사로잡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이용하는데 결국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일이다.

그래서 항상 타인을 칭찬하는 버릇이 생긴 수련생은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신의 이런 습관 뒤에 마가 조종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사람마음이 사악한 마에게 이용되어 항상 수련생을 ‘시험’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사람 중에서 표현하는 모든 능력을 법보다 높게 보는 게 아닌가? 우리의 마음속에 대법을 어떤 위치에 놓았는가? 사실 아첨과 칭찬은 정말 다른 사람의 몸과 공간장에 썩은 물질을 던져주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미혼약(迷魂藥)’을 먹이는 것이다. ‘시험’을 겪는 수련생이 결국 파악하지 못하고 난을 당하거나, 자심생마를 초래해 반대편으로 나아가 수련을 망쳤다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아첨과 칭찬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피해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역사적 교훈 중에 고대 인도의 데바닷타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데바닷타는 출가 전 석가모니 부처의 사촌 동생이자 왕자였고, 게다가 초기에는 수련에서 좋은 표현과 큰 공능이 나타났기에 많은 세속을 떠나지 않은 거사나 출가승로부터 맹목적인 숭배를 받았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의 큰 제자 중 한 명인 사리푸트라[舍利弗]는 특별히 데바닷타에게 가서 “왕가에서 출가하고 총명하며 큰 공능이 있고 용모가 단정하다”, “큰 신통에 큰 위력이 있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세속을 떠나지 않은 거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르다 왕국의 아자세 왕자는 데바닷타에 대해 더없이 칭찬하고 숭배했다. 그는 놀랍게도 데바닷타를 ‘부처보다 더 큰 스승, 그 덕이 특별하다’라고 칭송했고 동시에 매일 데바닷타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좋은 음식 500 솥을 제공했다.

그러나 데바닷타는 세상의 명성과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기에 칭찬과 숭배, 공양을 모두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데바닷타는 갈수록 자신을 더 높이 평가했고 심지어 대중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내가 여래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석가모니 부처를 질투하게 됐고, 점차 각종 무서운 망념이 생겨 자심생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됐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를 대신해 승단을 통솔하겠다는 망상까지 했다. 이러한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이 거절당하자 부처님을 해치려는 사악한 염두가 생겨 몇 번이나 자객을 보내 석가모니 부처를 살해하려 했고, 나중에는 설득하러 간 석가모니 부처의 여제자 우파라반나[蓮花色]를 때려죽였고, 사람들을 미혹시키기 위해 그럴싸한 말을 지어내었는데, 막 입문한 많은 사람이 미혹돼 그를 따라 가야산으로 갔다. 온갖 도리에 맞지 않는 짓을 한 데바닷타는 죄악이 하늘까지 다다랐다.

결국, 모든 사악한 시도가 실패한 데바닷타는 엄청난 고통과 죄악 속에서 죽었다. 석가모니 부처는 데바닷타가 죽은 후 “데바닷타는 내 불법에 있었으나 그의 행위에서 선행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렇게 악명을 남기고 죽은 후 지옥에 떨어졌다.

석가모니 부처도 만약 마르다 왕국의 왕자 아자세가 데바닷타에게 500 솥의 좋은 음식을 주지 않았다면 미련한 그가 결코 이런 나쁜 짓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다. 맹목적인 추앙과 칭찬으로 데바닷타를 득의양양하게 만들어 결국 지옥에 떨어지게 한 것이다.

데바닷타가 아무리 오만하고 이성을 잃었다 해도 아자세 왕자가 조건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다른 승려들의 아첨과 칭찬, 부화뇌동이 없었다면 그도 쉽게 ‘자심생마’란 죽음의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데바닷타를 칭찬하는 사람 중에는 석가의 제자 중 ‘지혜의 으뜸’으로 불리는 사리푸트라가 있었다. 사리푸트라는 자신의 불심이 확고하고 수련도 탄탄하지만, 아첨과 칭찬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해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데바닷타가 간 파멸의 길에서 ‘지혜의 으뜸’이었던 사리푸트라가 일시적으로 비이성적으로 데바닷타에게 한 아첨의 말은 다른 일반 승려들보다 훨씬 더 나쁜 역할을 하게 됐다.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왔나니”[2]. 인류의 모든 것은 마지막에 대법을 전하기 위해 문화를 깔아 주는 것이다. 예전에 데바닷타와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은 오늘날의 대법제자에게 거울로 삼으라고 제공한 교훈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아첨과 칭찬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큰 해악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다.

“삼강의 물을 휘저을지언정 도인의 마음을 휘젓지 않는다.” 이것은 속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수련인 사이에서도 해당하는 말인데, 아첨과 칭찬으로 동문의 마음을 교란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반대로, 아첨과 칭찬을 받는 사람도 반드시 경계하고 제때 안으로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마에게 이용돼 이른바 날 ‘시험’한다면 나의 어떤 사람마음을 겨냥해 온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이런 상황에 부딪혔을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하고,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하며, 제때 안으로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와서 아첨하고 칭찬하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고 생각되면 과시심,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좋은 말만 듣고 싶고 나쁜 말은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자심생마가 나타날 기미가 나타난 게 아닌가?

그리고 항상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항상 자신의 학식, 지위, 능력, 기능, 전생에 누구였고, 수련 중에 나온 공능 등으로 인해 의기양양하며 스스로 비범하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사람마음은 줄곧 숨어 있어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그럼 지금 누군가가 와서 아첨하고 칭찬해 표면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때가 바로 사부님께서 주신 강력한 정념으로 그것들을 완전히 해체할 좋은 기회 아닌가?

만약 우리가 이렇게 명석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면, 사악한 마의 어떤 배치든 부정할 수 있다. 만약 스스로 이러한 나쁜 생각을 의식하고 있지만 자주 나타나고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낀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두드러진 이상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법륜’의 ‘자심생마’ 이 부분을 보라고 건의하는데, 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당태종의 명언 “나를 비방하는 자는 나의 친구요, 나를 칭찬하는 자는 나의 적이다”라는 말의 대체적인 의미는 나에게 나쁜 말과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고, 항상 아첨하고 칭찬하는 사람은 나의 진정한 적이라는 것이다. 아첨하는 말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고, 반대하는 말에 겸허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와 맑은 정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현명한 군주가 될 수 있다.

수련자가 이런 지혜와 맑은 정신,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할 수 있고, 사부님께서 정해주신 정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고,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안배를 부정할 수 있으며, 결국 빛나는 미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개인적인 깨달음을 참고로 제공하니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2-연극 한 편’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7/18/46310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7/18/463102.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