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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아 사람에서 걸어 나오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5년, 24살 때 기쁘게 법을 얻었습니다. 문득 돌이켜보면 인생 대부분을 대법을 수련하며 보낸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고 심하게 넘어졌으며,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은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지난해 8월이 돼서야 사존의 자비로우신 일깨움과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무엇이 정법(正法) 수련이고 어떻게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야 하는지 진정하게 깨달았습니다. 1년간의 수련 체득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한 부의 답안지를 제출하려 합니다.

1. 법을 실증하면서 수련하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수련하여 올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채용했다. 즉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압축해 그 법 안에 넣었는데, 다만 당신 자신이 얻으려 하는지만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법을 스승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1]

법을 배우는 것은 수련에서 제고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장입니다. 이를 위해 수련하면서 우선 법공부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법을 외우기도 하고 통독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법을 배웁니다. 법공부를 통해 아래와 같은 관념을 바꾸었습니다.

1) 자기를 실증하던 데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바뀌다

저는 수련하기 전에 비교적 강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하고 오만했으며 자신이 총명하고 능력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수련하면서도 ‘자아’ 관념이 매우 강했으며, 늘 ‘나’라는 글자가 앞섰고 신사신법(信師信法: 스승을 믿고 법을 믿음)에서 에누리가 있었습니다. 법을 배우면서 사존의 일깨움으로 어떤 법리를 깨닫기라도 하면 ‘내가’ 무엇을 깨우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존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제게 보내주셔서 진상을 깨닫게 하면 ‘내가’ 사람을 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존께서 제 입을 빌려 수련생을 일깨워주시면 ‘내가’ 수련생을 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줄곧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했습니다.

사존과 대법은 일찍이 대법제자와 전 우주 중생을 위해 가장 좋은 일체를 개창해주셨습니다. 극한의 지혜로도 상상할 수 없는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사존의 은사를 받고 이 모든 것이 있으려면 오직 자아를 내려놓고 조건 없이 대법에 동화해 반본귀진(返本歸真: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해야 합니다. 내려놓고 동화한 만큼 얻게 됩니다. 반대로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대법에서 더 멀어지고 소멸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는 원래 구우주(舊宇宙)의 성주괴멸(成住壞滅) 법리에 따라 소멸로 치닫는 보잘것없는 미세먼지 속 미세먼지에 불과했지만, 사존의 무량하신 자비로 대법에 동화해 신우주(新宇宙)로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사존의 선택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고 사존께서 최고의 영광과 이 모든 것을 주셨는데, 과거의 제가 어떻게 감히 하늘의 공을 탐하고 대법을 이용해 자신을 실증할 수 있을까요?

구우주에 태어난 우리 예전의 본성은 바로 위사위아(爲我爲私: 자신을 위하고 사사로움을 위함)입니다. 아울러 ‘사(私)’와 ‘아(我)’는 구우주와 신우주의 분수령입니다. ‘사’와 ‘아’를 품고 내려놓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학식, 기능에 집착하고 심지어 재산, 지위, 명성에 집착한다면, 겉으로 아무리 허울 좋고 요란하더라도 모두 자아를 실증하고 있고 자심생마 과정에서 구우주와 함께 소멸로 치닫게 됩니다. 오직 대법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바른 깨달음을 수련해내야 비로소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우주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사무아에 도달하면 진정으로 법에 용해되어 법의 한 알 입자가 될 것이며, 대법의 끝없는 법력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든 막론하고 사부님과 대법은 우리에게 더 많고 좋은 것을 주시는데, 동시에 이 과정도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입니다.

이제 저는 기꺼이 가련하고 무지하며 오만했던 ‘자아’를 내려놓고 겸허히 사존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제게 주신 모든 것에 절을 올려 감사드리며, 제가 대법의 용광로 속에서 합격한 법의 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개인수련에서 정법수련으로 바뀌다

천체가 정법(正法)이 이미 끝나고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로 넘어가고 있는 오늘날,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사부님께서는 기타 설법에서 여러 번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1999년 ‘7.20’ 때 ‘7.20’ 이전의 수련생을 전부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주셨는데, 그 후의 수련은 중생구도, 대법 실증을 위한 것으로 정법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정법’에 있어서 늘 저력이 부족했는데 이 역시 신사신법이 충분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한 탓입니다.

구세력은 우리의 일사일념을 배치했고 우리 수련의 길에 매 시험과 고비를 배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구우주 개인수련의 표준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다 중생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법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완전히 다르며, 반대로 정법의 장애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구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는 근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과 올바르지 않은 사상은 모두 자신이 아니며, 구세력이 억지로 가한 것으로 반드시 깨끗이 없애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는 곧 구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2. 안으로 찾아 심성을 높이다

대법에서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한 수련인으로서 법리의 요구에 따라 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심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았고 어떨 때는 내켜 하지도 않았습니다. 갈등에 부딪혔을 때 종종 밖으로 보았고 안으로 찾지 못했습니다.

법리에서 사람의 이치는 반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좋지 못한 것이며, 한 수련인으로서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하고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조건 없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1)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아 착실히 수련하다

어려서부터 저는 줄곧 뭐든 비교적 잘해왔으며 사회에서 ‘조금 유명하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구세력은 정말 어려서부터 제게 오만하게 하고, 체면을 차리게 했으며,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고, 자신에 대한 남의 의견을 인식하게 하는 등, 명성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켰습니다. 이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은 주로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없앴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다닐 때 마침 ‘어리고 경망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박해 받은 후 일자리에서 기존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아들은 원래 저를 ‘우러러보던’ 것에서부터 가끔 ‘가정주부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잘난 체하면서 늘 제게 ‘수업’을 했습니다. 속인의 마음이 올라올 때 마음속으로 서운함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염병 발생 상황에서 아들은 두 학기 내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았습니다. 거의 매일 24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제가 심성을 지키지 못했을 때 아들과 다퉜고 늘 자신을 어머니라는 자리에 놓고 “부모가 가르치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청해야 하고 부모가 질책하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게 문제가 있더라도 아들에게 ‘제자규(弟子規)’에서 나온 말처럼 “부모님께 과실이 있을 때는 고치시도록 간청을 드려야 하는데, 말할 때는 기쁜 얼굴과 부드러운 어조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아들에게 “어린 시절 네게 ‘제자규’를 가르쳤는데 이게 뭐니?”라고 하면서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기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정말 아들과 소통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여러 번이나 유사한 갈등을 빚은 뒤,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체면을 차리고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며 강함을 다투며 승부욕이 강한 등, 후천적인 관념과 집착을 찾았습니다. 발정념으로 이것을 깨끗이 제거하고 아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모자 관계는 서서히 개선됐습니다.

사실 아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부터 저는 아들에게 사부님 설법을 들려줬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 저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어린이 대법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박해받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들은 180도로 바뀌어 대법을 반대했고, 제가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며 발정념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대법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못한 탓이고 안으로 찾아 착실히 수련하지 못해 초래된 것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았습니다. 아들과 갈등을 빚은 뒤에만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평소 아들의 매 한마디 말과 매 하나의 눈빛이 모두 자신을 찾아보도록 자극했습니다. 서서히 아들은 조금씩 저를 이해하더니 “엄마, 대법을 배우세요!”라고 했습니다. 점심과 저녁밥을 짓고 식사 때 발정념 시간이면 제가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을 지지해줬습니다. 제가 잊으면 일깨워줘서 발정념을 지체하지 않게 했습니다.

가끔 자발적으로 제게 대법에서 얻은 것을 묻곤 했는데 밖으로 찾던 것에서부터 안으로 찾게 된 것, 틀렸을 때 안으로 찾게 된 것,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조건 없이 안으로 찾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또 가끔 제게 문제가 있어도 알지 못하면 아들에게 보고 지적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제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엄마, 대단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들 빨래를 할 때 세탁기에 전원이 들어왔지만 두 번이나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사람을 불러서 수리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세탁기가 고장 난 게 아니야. 내가 안으로 찾아 자신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세탁기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찾은 뒤 세탁기는 정말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들도 대법 수련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2) 수련생과 함께하며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오다

수련하면서 속인과 갈등을 빚을 때는 안으로 찾기가 비교적 수월해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수련생과 갈등을 빚을 때는 오히려 밖으로 보고 법으로 수련생을 가늠합니다. 특히 가족 수련생과는 더 그렇습니다. 수련생 사이에는 생생세세 윤회하는 과정에서 선연이 있고 악연도 있습니다. 구세력은 지난 생에서 매 극 중 역할의 은원(恩怨)을 오늘날 대법제자들에게 억지로 가해 각종 간격을 초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편(수련생)과 지낼 때 저는 늘 물러서고 양보하며 노력했지만 남편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또 가장 상처 주는 말로 저를 자극해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게 했습니다. 남편이 꿈에서 제가 이전에 남편에게 목숨을 빚진 장면을 보고 제게 알려줬어도 저는 각성하거나 깨닫지 못했으며, 늘 사람의 이치 속에 빠져 항상 억울하고 서럽다고 생각했고, 상대가 대법에 따라 하길 요구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겨났습니다.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는 것은 조건 없이 안으로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떠한지 보지 않고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개인수련의 각도에서 그저 상대방을 선하게 대하려고만 대했기에 장기간 시련에 빠져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진정한 자신은 사람의 각종 관념과 집착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반영되어 나온 각종 나쁜 관념과 집착은 모두 ‘진아(眞我)’가 아니라 구세력이 억지로 더해 넣은 ‘가아(假我)’였습니다! 안으로 찾을 때 반드시 ‘나’에게 무슨 집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진아의 각도에서 그런 사람 중의 관념과 집착을 깨끗이 없애야 합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구세력은 우리의 지난날 원한을 이용해 가족 수련생에게 특별히 저를 자극하는 언행을 ‘창[矛]’으로 삼고, 또 제게 상대방의 관념과 집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을 ‘방패[盾]’로 삼아 억지로 더해 넣었습니다. 이러한 ‘모순(矛盾)’은 상대 수련생의 ‘진아’와 저의 ‘진아’ 사이에 생겨난 것이 전혀 아니며, 구세력이 수련생과 제가 잘 수련하지 못한 일면에 억지로 더해 넣어 간격이 생기게 한 것입니다. 제가 만약 사람 속에 빠져 자신의 집착만 없앤다면 줄곧 구세력에 의해 틈을 타게 될 것입니다. 오직 본성적인 일면으로 법을 실증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후 남편이 아무리 듣기 싫은 말을 하고 제 흠을 잡아도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표현은 모두 구세력이 억지로 더해 넣은 것이며 진정한 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바르지 못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는 동시에 발정념으로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는 요소를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평소에도 강도를 높여 오랜 시간 발정념을 해서 우리 사이에 간격을 조성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없앴습니다. 동시에 그가 제게 불만이던 부분은 저 역시 되도록 잘하려 했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서 그는 더는 저를 질책하지 않았으며, 여러 해 쌓였던 우리 사이의 간격이 마침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1년 동안의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니 사소한 수확 하나하나가 모두 대법에서 얻은 것이며, 사존께서 자비롭게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아직 부족하고 바로잡지 못한 부분이 많아 신사신법하고 신의 길로 나아가는 도중에 분발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존께 절을 올려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7/2/462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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