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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는 근본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법공부의 중요성을 거듭 알려주셨다. 내 생각에 신수련생을 제외하고, 만약 오랫동안 수련한 노수련생이 지금까지 내심에서 법공부를 중시하지 못하고, 매일 자발적으로 법공부를 할 수 없으며, 법공부를 여전히 외재적인 무슨 형식에 독촉받고 이끌려서야 배울 수 있다면, 그는 대법의 위대함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대법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못했으며 이 방면에 여전히 누락이 있는 것이다.

나 자신과 내가 아는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이 업력이 가득하고 악을 제거해야 하는 미혹의 세간에서, 수련의 개념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지혜롭게 각종 집착과 사악을 구별해 타파하려면 법공부를 잘해 각종 가상에서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고 각종 시련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전혀 해낼 수 없다.

정상적으로 법공부할 수 없는 것은 수련자의 가장 큰 고통

여러 해 전에 사당(邪黨: 공산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1년간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서야 정상적으로 법공부하지 못하고 연공하지 못하는 것이 대법제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런 고통 속에서 나는 박해당하기 전에 장기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지 못했으며, 일이 생기면 법에서 안으로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리 현지에서 공인하는 정진하는 노수련생에게 물어봤고, 스스로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착실히 제고하지 못했다. 일이 생기면 늘 남에게 물어봤는데,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시고 법에서 제고해야 할 얼마나 많은 수련의 기연을 놓쳤는지 모른다. 동시에 또 다른 수련생과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지체했다.

그 당시 우리 현지에서는 나처럼 이러한 사람들이 또 적지 않았고, 이후에 그 노수련생은 사악의 모략으로 납치돼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게 됐다. 이후에도 나는 그 노수련생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고 여러 번 가고 싶었지만 한 가지 생각이 늘 머리에 떠올랐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자.’ 그러나 밖으로 추구하는 집착이 너무 강렬해 이 정념은 사람 마음에 의해 묻혀 버렸다.

이후에 사악에 의해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1년을 당했다.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사악은 내가 법공부하지 못하게 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공부와 법 암기를 막았다. 이뿐만 아니라 수련생 사이에 교류도 불가능했다. 매 대법제자는 매일 몇몇 감시자에게 24시간 밀착 감시를 받았다. 대법제자가 서로 만났을 때 마주 보고 한번만 웃어도 ‘암호 전달’로 여겨져 고문을 받게 되는데, 이때 누구를 찾아서 교류한단 말인가?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수련하려면 스스로 법을 외워야 하는 것 외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왜 자신이 그때 그런 단절과 박해를 당했는지 알게 됐다. 장기간 법에서 독립적으로 수련하지 못했고 일에 부딪히면 늘 남에게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악이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려고 강제적인 수단으로 박해하는 구실이 됐다.

그러한 잔혹한 박해 환경 속에서 끝없는 비방, 모함 등 정신적 시달림과 각종 혹독한 매질, 고문 등 육체적 시달림을 마주했는데, 그곳에서 수련하려면 진짜로 후퇴할 길이 전혀 없었다. 의지할 사람이 없고 오로지 대법에 의지해야 했다. 정념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로지 법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때서야 정상적인 환경에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외우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게 됐다.

이때 필사적으로 기억해낼 수 있는 모든 법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사부님의 ‘홍음’과 일부 짤막한 경문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일 반복적으로 외웠기에 법의 위력과 사부님께서 부여해주신 힘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울러 매우 많은 시기에 사악의 비방과 모함을 마주하고, 또 대법에 대한 단장취의(斷章取義)와 악의적인 왜곡을 마주했을 때 법이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 반영됐다.

법은 사악의 그러한 비방이 얼마나 저능하고 황당하며 가소롭고 유치한지 알려줬다. 이런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단락 한 단락 법을 나는 외운 적이 없었다. 그것은 확실히 사부님께서 내 머릿속에 넣어주신 것이었다. 바로 이렇게 시시각각 법공부하고 사상 속에 법이 충실하게 있었기에 잔혹한 박해가 수시로 일어나는 검은 소굴에서도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를 시시각각 체험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시련에서 뛰쳐나왔고 걸어 나왔다.

나는 침통한 교훈 이후에 진짜로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진정으로 법공부를 중시하게 됐다.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여러 해 동안 나는 법공부를 무척 중시했고,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모두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았으며, 아울러 법공부할 때 마음에 잘 들어왔고 늘 법리를 볼 수 있었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인간세상은 바로 명리정(名利情: 명성, 이익, 정)의 큰 염색용 항아리인지라 우리는 매초 항상 정과 업력 속에 젖게 된다. 정에 포위되고 오염돼 진아(眞我)의 본성을 잃기가 매우 쉽다.

이후에 환경이 느슨하다고 느껴지고 자신이 괜찮게 수련했다고 느껴지자 자만하기 시작했다. 점차 명리정에 서서히 유혹되고 천천히 수련이 느슨해졌다. 저도 모르게 새로운 험악한 환경 속에 처하게 됐고, 그런 험악함은 노동수용소 등 검은 소굴에서 볼 수 있는 험악함과 달랐다. 그것은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고 속인의 층차와 각도에서 인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깨우치지 못하고 알아채지도 못하는데,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삶는 것과 같은 그런 험악함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일함과 느슨함, 해이함에 빠지게 되며, 업력과 정의 포위 속에서 점차 욕망, 사람 마음과 각종 집착에 통제되고 좌우지되며, 천천히 정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에는 업력과 정욕이 온몸에 가득해져 벗어날 힘이 없고 회복할 힘도 없어진다.

무수한 사실과 교훈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과 같아 전진하지 않으면 곧바로 후퇴한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적지 않은 수련자들이 무슨 큰 박해와 시련에 부딪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점차 정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업력이 가중돼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일부는 육신을 잃었고, 일부는 심지어 수련하지 않는다. 그중 한 가지 원인을 많은 수련인이 알지 못하는데, 느슨함 속에 알아채지 못하는 험악함과 시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서다.

나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법공부할 때 아주 오랫동안 임무를 완성하듯 공부했기에 법을 배우는 시간에 대부분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아울러 법공부가 생활과 수련에서 벗어나 버렸고, 법공부할 때는 자신이 수련자임을 떠올릴 수 있었지만 책만 내려놓으면 느슨해졌다. 느슨함 속에서 수시로 각종 욕망과 사람 마음이 사상을 점거했고, 세파에 휘둘려도 어찌된 상황인지 몰랐는데 바로 이렇게 여러 해를 보냈다. 나중에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고통을 수시로 느꼈다. 법공부에 대한 교란이 너무 컸다. 흐리멍덩해져 책을 들어도 바닥에 떨어뜨렸다. 많은 사람 마음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고 난이 하나하나 이어지자 비로소 나는 놀라서 깨어났다. 나는 더는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법 암기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이 법을 외운 교류와 경험을 많이 보았고 나는 법을 외우는 방식으로 법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어 법공부하는 중에 반복적으로 읽고 기억했기에 정신은 집중되고 마음에 들어온다. 아울러 나는 판매 일을 하기에 가게로 달려가고 배달하는 과정 중 많은 시간에 법을 외울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사상 속에서 속인의 칠정육욕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계속 법을 외우는 방식으로 법공부를 했다. 매일 양을 추구하지 않고 몇 단락만 외워도 좋고 한 절을 외워도 좋았다. 반복적으로 외우고 최대한 정확하게 기억하고 익숙하게 외운 후 책을 보지 않고 모두 정확하게 외웠다.

지금 ‘전법륜’을 이미 7번째로 외우고 있고 매번 외울 때마다 이전보다 조금씩 더 빨라졌다. 진정으로 법을 외우는 것이 마음에 들어오면 사부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어느 한 단락을 외우는데 늘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한시적으로 외워도 억지로 외우는 느낌이었고 쉽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해하고 알게 된 상태에서 외우면 매우 빨랐고, 매우 정확하게 기억했으며 매우 깊이 기억됐다. 이러면 늘 온몸이 홀가분하고 마음속 깊이 기쁨을 느끼는데 매우 미묘한 느낌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각종 사람 마음과 집착, 좋지 못한 관념을 쉽게 분간할 수 있고 나오기만 하면 붙잡을 수 있다. 나는 체험했다. 법을 잘 배우면 각종 집착과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동시에 또 자비롭고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쉬우며 각종 갑작스러운 갈등에서 진짜로 마치 일종 물질장이 나와 갈등 사이에 완충 작용을 해주어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혹은 가끔 자신이 갈등과 전혀 다른 시공에 있고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느꼈다. 이때 또 사부님 법이 생각난다. 나는 원래 그러한 갈등과 억울함을 마주하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화가 났다. 화나는 상태가 바로 법을 외운 후 천천히 제거됐다. 이는 법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지혜와 힘으로, 그것은 사람의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법을 외울 때도 교란은 여전히 있고 가끔은 매우 격렬했다. 그런 교란은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나타났고 속인 업무에서도 나타났다. 각종 사회, 가정 일에서 방법을 바꿔가며 나타났다. 예를 들면 오랜 시간 교란을 의식하지 못해 늘 그것들에 따라가서 생각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법을 외우면서도 그런 것들에 교란당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법을 외울 때 모든 나타난 생각과 염두는 모두 교란임을 알았고, 그것들이 나오자마자 스스로 의식하고 멈췄다. 그러한 난잡한 사상을 향해 몇 분간 발정념을 하면 또 법 암기가 마음에 들어간다. 교란이 비교적 약할 때는 그것을 의식한 후 일념으로 해체할 수 있다.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발정념도 잘할 수 있어

이전에 나는 한 수련생이 발정념할 때 열이 나고 에너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해 매우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태가 매우 적었다. 수련생은 발정념할 때 모두 밍후이왕의 요구에 따라 큰 범위에서 사악을 찾고 제거한다. 현지에 일이 있어도 간단하게 일념을 가할 뿐이었고 늘상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 수련생은 이전에 이렇게 나에게 알려줬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더욱이 발정념할 때 늘 자신과 현지의 안전 방면에 대해 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로 인해 발정념 중에 늘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고 흐리멍덩하거나 매우 피곤했다.

밍후이왕에는 수련생들의 이 방면 교류문장도 적지 않다. 한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읽었을 때 한 가지 인식이 날 일깨워줬다. 나는 자신이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란 이 한 마디를 잊고 있음을 발견했다. 평소에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겨 자신의 매우 많은 것을 추가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인식을 법보다 더 높게 두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사실 추가한 매우 많은 것들은 이기적인 것이고 제한적인 것이며 매우 작은 범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박해당하는 것을 피한다’ 등등인데 자세히 생각하면 이는 정말 정념이 아니다.

나는 이제야 마침내 인식했다. 발정념할 때도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비로소 잘할 수 있다. 구체적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법제자는 이 방면에서 대면적으로 악을 제거하는 사명과 책임이 있고, 중생은 우리가 대면적으로 악을 제거하는 중에 구원된다. 둘째, 정념은 타인을 위한 것이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모두 그렇게 이기적이고 늘 제한된 작은 범위로 자신이 박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고만 한다면 그 힘은 약해진다. 물론 특수한 상황은 제외한다. 개별적인 시간에는 긴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장기간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을 대법제자의 정체(整體) 속에 놓아야 하고, 법 속에서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법의 강대한 힘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밍후이왕의 발정념 요구에 따라 발정념을 하고 있고 단번에 상태가 변했다. 발정념이 흐리멍덩하지 않고 에너지를 느끼게 됐으며 발정념할 때 매우 뜨거움을 느꼈다.

그 외에 발정념은 엄숙하고 신성한 일임을 인식했다. 특수한 장소 이외에 평소에 발정념할 때 우리의 앉는 자세와 자태도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비로소 정념을 잘 내보낼 수 있다. 나의 이해로는 밍후이왕에 발표된 사부님의 발정념 자세가 바로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몸을 반듯하게 하고 허리는 쭉 펴며 단수 입장할 때 손을 가슴 정면에 세운다.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을 할 때 손가락 열 개는 최대한 펼치고 두 팔은 힘있게 들어올려야 한다. 나는 자신이 허리를 구부리고 아주 편안한 쇼파 등 물건에 기대는 등등 상황에서 발정념을 하면 흐리멍덩하고 잘 되지 않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수련생들도 이렇게 발정념하면 손바닥이 넘어가고 흐리멍덩한 현상이 매우 심해졌다. 자세가 단정하지 못하면 마땅한 정념이 나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매번 심성관을 넘을 때 사람 마음에 이끌려 불평하고 넘어가지 못하며 조용해지지 못할 때는 모두 발정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임이 기억났다. 이 방면은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심심할 때 인터넷에서 속인 영상을 보고, 뉴스를 보며, 속인 노래를 듣고 따라서 흥얼거리면 그날은 발정념이 몹시 흐리멍덩하고 법공부도 흐리멍덩해졌다. 그리고 장시간 둥타이왕(動態網)을 보고 각종 국내 소식과 국제, 사회 형세에 매우 심하게 이끌려 마음이 기복이 일어나고 잡생각을 하면 발정념을 할 때 흐리멍덩한 상태가 쉽게 나타났다.

이전에 나는 이런 것들은 모두 ‘작은 일’로 치부했다. 지금은 이미 이런 문제의 엄중성을 의식했고 그러한 취미, 욕망과 나쁜 습관을 배척하고 제거하기 시작했다. 한가할 때 최대한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며 발정념을 하고 더는 대량의 시간을 그러한 무료함을 달래는 일들에 낭비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사상은 갈수록 청정해졌고 갈수록 법공부하고 싶고 발정념하고 싶어졌다.

그 외 나는 최근에 자신이 장기간 자신에 대한 청리(淸理)를 중시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발정념 전 5분간 잡념이 너무 많았고 늘 이 짧은 5분간 많은 일을 생각했다. 많은 시기에 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종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정념을 내보낼 때 비로소 자신을 청리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장기간 자신을 잘 청리하지 못해 교란이 컸고 발정념을 전혀 잘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나는 최근에야 발견했다. 자신이 장시간 발정념이 흐리멍덩하고 손바닥이 넘어가는 몇 가지 원인과 이것이 관련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장기간 이 부분에서 잘 수련하지 못했는데 나는 각 방면의 원인을 바로 잡은 후 발정념 때 흐리멍덩하고 손바닥이 넘어가는 상황이 갈수록 적어졌다. 나는 이렇게 견지해나가면 나아갈수록 더욱 좋은 양성 순환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인식했다.

대법제자가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에 대한 체득

대법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고서 이제야 체험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은 서로 보완되고 원융[圓容]되므로 동시에 잘해야 한다. 세 가지 일 중에 매 한 가지 일에는 모두 수련 제고해야 할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

실천 속에서 나는 체험했다. 장기간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말겁(末劫)의 최후의 최후에서 업력은 크고, 인간 세상은 너무나[太] 미혹적이며, 도덕성이 너무나[太] 타락했고, 각종 업종은 너무[太] 복잡하기 때문이다. 각종 깊은 원한이 너무나 잔혹하고 위에서 아래까지 정법 수련자에 대한 교란과 유혹은 너무너무 많다. 사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태(太, 너무)’자는 부적합하고 ‘최(最, 가장)’가 비로소 적합하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인류가 이 정도로 타락되기 전에 일찍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신우주 중에는 ‘멸(滅)’이 없고 생명은 ‘괴(壞)’가 됐을 때 대법이 그들을 좋게 변하게 하고 더는 오늘날 같은 이러한 무서운 상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늘날 마주한 것은 가장[最] 복잡하고 가장[最] 타락하며 가장[最] 간고한 환경과 국면이다. 그러나 마침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잘해야 하고 해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 동시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럼 우리의 승화와 제고는 반드시 가장 착실한 것이어야 하고, 무수한 중생도 이로 인해 구원된다.

사실 이는 사부님과 대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더욱 실증해준다.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따라 가장 간고한 정법수련의 길을 걸어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찍이 준비해주신 최고의 영예를 반드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이 20여 년 정법수련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련의 길에서 위험한 상황이 잇달아 나타났지만, 많은 시기에 바로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고 끊임없이 법을 외워서 비로소 걸어올 수 있었다. 법이 우리에게 지혜, 자비와 강대한 에너지를 부여했다. 우리가 법 속에 있어야 사부님께서는 비로소 우리를 더욱 잘 보호하실 수 있고, 비로소 우리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중에 그 고비들을 넘을 수 있으며, 그렇게 많은 간고한 위험과 교란에서 헤어나올 수 있고, 어둠과 소멸에서 계속해 걸어 나올 수 있으며, 광명과 희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향해 머리 숙여 절을 올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3년 6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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