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린린(林林)
[밍후이왕] 1997년 6월, 막내딸과 딸 친구는 나와 아내에게 파룬궁 수련을 권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면 출가하지 않아도 수련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뻤다. 나는 부처님을 믿었고 수련하고 싶었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어부 집안에 태어나 배에서 생활했다. 어부는 늘 위험에 처해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위로는 형 셋과 누나 한 명이 있었다. 어머니는 홀로 아이 다섯을 키워야 했는데 많이 힘들어 나는 늘 입양이란 공포 속에 살았다. 어머니는 부처님을 믿었고 마음씨가 착하고 책임감 있으셨다. 어머니는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분향하고 부처님께 빌었는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분향하고 부처님께 빌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사람은 마음씨가 착해야 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손해 보는 게 이득이다”, “고통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가르치셨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가족들은 날 육지에 보내 공부하도록 했다. 나는 홀로 남의 집에서 기숙했는데 얹혀사는 삶은 어린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어리고 담이 작았고 공부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책을 읽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숙제했으며 아침에 일어나 책을 외우고 단어를 기억했는데, 가끔은 일하면서도 책을 외우고 단어를 외웠다. 철이 들고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어부 집안의 불안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형과 누나들에게 집안에 꼭 공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고, 형과 누나들이 그걸 기억해서 날 육지에 보내 공부하게 한 것이다. 그때 매일 저녁이면 낮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가끔 관세음보살을 보기도 했다. 그땐 몰랐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 두려워 이불속에 숨어있었다.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두려워하지 마. 그냥 보면 돼. 괜찮아”라고 하셨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어릴 적에 천목이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부님의 대법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체질이 허약했던 나는 신경쇠약을 앓아 수면이 큰 문제였고 단체 기숙사는 사람이 많아 잘 수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국방산업대학[軍工學院]에 다닐 생각을 해본 것도 아닌데, 어쩌다 우연히 그 대학에 다니게 됐다. 대학 1학년 때 직장 궤양을 앓았고 장이 나빠지니 위도 나빠졌는데 그 후에는 간낭종이 생겼다. 40대에 체중이 20kg 정도 줄어 겁나서 체중을 잴 엄두를 내지 못했다. 40대에 칠팔십 대 노인처럼 걷기 힘들었고 신경쇠약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져 생활이 힘들었다. 중의학, 서양의학, 기공 수련 등은 전부 효과가 없었다.
사부님께서 늘 보호해 주시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는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됐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운 좋은 수련생이 됐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2001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급히 출근길에 올랐다. 덤프트럭이 왼쪽에서 빠른 속도로 날 추월했고 앞에는 다리가 있었는데, 오르막이라 힘을 내서 다리 위까지 올라가 내리막을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 그 덤프트럭이 앞쪽에서 천천히 돌면서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 옷자락이 덤프트럭 뒷부분에 닿은 상태였다. 그대로 아래로 돌진하면 트럭을 들이받았을 테지만 나는 침착하게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며 자전거를 오른쪽으로 당겼다. 그 과정은 흡사 곡예 같았는데 트럭과 충돌하는 치명적인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사부님 법신께서 날 구하신 것임을 알았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큰절을 올려 감사드렸다!
또 2001년 어느 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도로로 가고 있었는데 역주행하는 자전거가 있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그칠 사이 없이 다녔는데 나는 피할 곳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내가 길옆 화단에 앉아있고 자전거는 바로 내 옆에 세워진 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나는 자전거 좌측에서 오르내릴 줄밖에 모른다. 그런데 그때 내가 어떻게 자전거 오른쪽 화단에 앉아있고 자전거도 넘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답은 단 하나,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만이 이와 같은 큰 신통법력이 있으시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돌이켜보면 사부님께서는 오래전부터 날 보호해 주셨다. 어릴 때 전쟁이 났었다. 배가 부두에 정박했는데 비행기 폭격을 당했다. 나는 도망치다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는데 매우 위험했다. 이때 옆 배에 있던 형이 마침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배에 앉아 발을 뻗어 날 쉽게 구해줬다.
또 한번은 토네이도 때였다. 큰바람에 강 밑에 내렸던 닻이 느슨해지며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고 뱃머리는 여러 번 교각 사이의 아치형 구멍에 들어갔지만 돛대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온 가족은 무릎 꿇고 부처님께 살려달라고 빌었다. 우리는 배가 전복되고 사람이 죽는 재앙을 아슬아슬하게 면했다.
이제 나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내가 법을 얻고 수련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보호해주신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 주시다
법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을 했다. 다 마치고 저녁 6시경에 휴식을 취했다. 새벽에 깨어나 보니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옷과 침구가 흠뻑 젖어있었는데 땀이 계속 흘렀다. 나는 땀을 실컷 내보려는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땀은 계속 흘렀고 아침 6시가 되니 점차 멈췄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저녁 6시가 되니 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끓인 물을 많이 마시고 침대에 눕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시루에 있는 것처럼 땀은 끊이지 않았는데 날이 밝아서야 괜찮아졌다. 셋째 날 저녁, 땀은 좀 덜 났고 아침까지 자고 깼더니 신경쇠약이 다 나았으며 3~5일에 한 번씩 감기에 걸리던 일이 더는 없었다. 몸은 개운해졌고 너무 편해졌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어느 날 저녁, 음식을 좀 먹었는데 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잤다. 그런데 배가 꼬르륵 꼬르륵거리며 난리가 났고 복통이 극심하더니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20번 넘게 설사하니 좀 괜찮아졌지만 다 나을 때까지 30여 차례 설사했다. 이렇게 괴로운데도 기운이 났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신 후 나는 장과 위가 다 나았다. 수십 년간 마른 음식을 먹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거의 못 먹는 음식이 없게 됐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집을 리모델링하게 되어 나는 임대 주택에서 살게 됐다. 환경은 비교적 지저분했고 연공도 보장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왼쪽 중지가 부어올랐다. 3일 만에 손가락은 배로 부어올라 피부는 번쩍거렸지만 통증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 3일 후 낮에는 통증이 없었지만 밤에는 통증이 심해 참을 수 없자 나는 내일 집에 가서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자 통증이 가라앉았고 잠들 수 있었다. 깨어나니 통증은 사라졌고 찐득한 느낌이 있어 불을 켜고 봤더니 손가락에 고름이 흘러내려 휴지로 닦고 자세히 보니 새로운 피부가 자라있었다. 집에 가서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새 피부가 자라기까지 불과 3~4시간에 불과했는데 참 신기했다.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낭종이 사라졌고 나는 건강해졌으며 병이 없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제도해주신 크나큰 은혜는 천 마디, 만 마디 말로도 감사하기에 부족하다.
10여 년간 나는 대면 진상을 견지하며 중국인들을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시켰다. 탈퇴한 인원수는 정진하는 수련생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사부님의 당부를 기억하고 나 자신의 사명을 기억해 줄곧 견지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3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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