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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한 모자가 함께 성장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아이를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했습니다. 제24회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저와 아이가 함께 수련한 일부 이야기를 글로 적어 사부님의 가없는 자비로움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자 합니다.

1. 아이에게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를 마음에 새기게 하다

제가 대법을 얻어 수련할 때 틈만 나면 3살 된 아들에게 ‘홍음(​洪吟)’을 외우게 했습니다. 저는 전법륜(轉法輪)를 읽었고 또 늘 ‘논어(論語)’를 읽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도 ‘논어’를 외울 수 있어 저는 그때 매우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어릴 적부터 대법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어 크게 떠들어대지 않았고 매우 차분하고 이지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의 교사가 저를 찾아 “어머님, 다른 아이가 아들의 손목을 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서 보니 아들의 손목에 깊은 잇자국이 있고 피도 흘렸습니다. 교사는 너무 놀라 저를 원망하며 “아이가 자아 보호 의식을 가지게 가르치세요. 그 아이가 물어도 어머님의 아들은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희가 당신 아들 손을 들어 그 아이를 때리게 했으나 그는 때리지도 않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셨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모두 아이라서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교사는 그 아이의 부모에게 기어코 제게 사과하라고 해서 저는 “괜찮아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부모는 제게 사과했습니다. ​

수련한 후 저는 줄곧 매우 즐거웠고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아이도 아주 쉽게 교육했습니다. 아들이 지식을 배우는 것은 교사가 해야 할 일이기에 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숙제도 제가 확인하지 않았고 아들이 스스로 서명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들이 점심때 집에 돌아왔을 때 ‘정진요지(精進要旨)’를 외우게 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불성과 마성(佛性與魔性)’ 그 경문을 외우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점심에, 그는 놀고 있었고 저는 바삐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어머니, 시간이 됐으니 빨리 발정념 하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알았어”라고 말하면서 돌아보니 아들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는데, 아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저를 박해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네가 발정념 해서 사악을 제거하라고 내게 알려주니, 사악이 발악해서 너를 박해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자 아들의 코피는 멈췄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들을 데리러 학교 교실에 갔었는데, 아들 앞에 키 큰 학생이 앉아서 아들이 앞을 보는 데 영향 주는 것을 봤습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제게 화를 내면서 교사에게 말해 아이의 자리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엄마가 선생님에게 말해 너의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할까?”라고 묻자 아들은 말했습니다. “아니요. 어머니가 아시다시피 지금 어머니들은 모두 자기 아이가 선생님과 가까운 곳에 앉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곤란하게 할 수 있으니 찾아가지 마세요.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허리띠에 매달아도 소용없습니다. 옛날에 생활 형편이 매우 어려운 아이는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해 창문 밖에서 수업을 들었어도 잘 배울 수 있었어요. 저도 창문 밖에서 수업을 들어도 잘 배울 수 있지만, 저는 교실에 있잖아요?” 아들의 말을 듣고 저는 매우 즐거웠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어느 날 아들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저에게 “어머니, 왜 할머니가 슬프게 우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가 모르는 일이 하나 있다. 너를 여기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우리는 네 고모 집을 샀어. 돈을 이미 네 고모에게 다 줬지만, 네 고모는 집의 소유자 명의를 우리에게 변경해주지 않으려 하고, 네 고모부가 우리에게 빌렸던 돈 5만 위안(약 900만 원)도 갚지 않으면서 사실을 부인했어. 내가 네 할머니께 말씀드렸으나 할머니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저 눈물을 흘리시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왜 할머니께 이 일을 말씀드렸나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할머니를 속상하게 하시면서요. 저는 교과서에서 노인을 안심하게 하라고 배웠는데, 제가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길 바라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또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모네 집을 돌려주세요, 그 집 때문에 고모네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집은 나중에 네 소유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그래도 저는 싫으니 고모께 돌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이 집착심을 내려놓았고 더는 그 집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2년 후 시누이는 그 집을 우리에게 소유권의 명의를 변경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친구들이 “너는 너무 착해, 나중에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괴롭힘을 당하면 어떡하지?”라고 물으니, 아들은 “나는 선량한 사람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고 믿어”라고 답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에 다니면서 스스로 ‘전법륜’을 공부했고 ‘밍후이주간’을 즐겨 봤습니다. 저는 아들을 여러 학원에 보내지 않았고 많은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게 하지도 않았지만, 아들의 성적은 매우 좋아 교사는 아들에게 학습위원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교사가 저를 찾아와 “어머니의 아들은 너무 성실해서 나중에 과학에서 성과를 거두어도 다른 사람에게 도둑맞을 수도 있어요. 어머니는 아이를 좀 가르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아이는 성실하고 선량해야 좋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교사에게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렸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아들의 학습위원을 취소했고, 때때로 아들에게 칠판을 닦으라고 했으며 게다가 교실 밖에 서 있게 했습니다.

아들은 집에 돌아와 제게 “어머니와 선생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은 없었고 그저 선생님에게 진상을 알렸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알았어요. 괜찮아요. 저도 칠판 닦는 것이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집에 돌아와 즐겁게 “어머니, 선생님이 오늘 저에게 칠판을 닦으라고 하지 않아서 그래서 조금 적응이 안 됐어요!”라고 말해서 저는 웃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고 있어 저와 아들은 전혀 병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중점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허리를 굽히고 가슴을 부둥켜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왜 그러니?”라고 묻자 그는 “가슴이 아파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아버지가 우리에게 식당에 와서 식사하라고 하는데, 그럼 너는 가지 말고 있어. 내가 가서 음식을 조금 포장해올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니 침대에 누운 아들이 “금방 ‘전법륜’을 조금 공부했어요. 어머니, 저의 가슴에서 ‘졸졸’ 하는 물소리가 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들어보니 ‘졸졸’ 하는 물소리였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일어나 밥 먹고 학교에 가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밥을 먹은 후 학교에 갔습니다. 아들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프지 않고 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아들은 모두 신사신법했고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에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에 중공이 저를 세뇌반에 납치했는데, 남편이 아이를 돌보지 않아 아들은 스스로 빨래하고 밥을 사 먹었습니다. 아들은 늘 제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토요일에 학교에서 등산하러 가서 일요일에 뵈러 갈 테니 꼭 확고하게 견지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일요일에 아들은 저의 여동생과 함께 저를 보러 왔고, 항상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세뇌반의 담당자가 저의 아들에게 저를 잘 권고하라고 하자 아들은 그에게 “좋아요. 그러면 저와 어머니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태블릿 PC(모든 대법 전자 파일을 담음)를 천으로 감아서 주면서 “어머니, 절대 ‘전향’하지 마세요, ‘전향’하면 오점을 남길 수 있어요. 잠만 자지 말고 발정념을 많이 하시고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세요. 저의 시험 성적은 평소보다 30점 더 높아졌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발표가 매우 성공적이어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박수를 150초 쳤고 저의 발표 원고를 서로 전해 보거나 복사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세뇌반의 담당자는 제게 “당신 아들은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후 이웃이 제게 “당신 아들이 학비 내려고 제게 600위안(약 10만 8천 원)을 빌렸어요. 제가 당신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디 갔는지 묻자 아들은 웃으면서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납치됐다고 말했어요. 당신 남편에게 물으니 친정집에 갔다고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모두 웃었습니다. 이웃은 “당신 아들은 정말 좋아요. 저는 매우 좋아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대학 입시를 마친 후 한 수련생이 그를 미국에 가서 공부하게 하려 했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아들은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련생이 아들을 타이르며 “미국은 천당처럼 정말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저에게 “미국이 천당이라면 고생을 할 수 없으니 수련할 수 있나요? 중국이 좋지 않지만 저는 중국 사람이어서 중국을 건설할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대학원을 다닐 때 저는 그래도 그가 중국을 떠나 민주국가에 가서 생활을 체험해보게 하려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는 왜 저를 외국에 가라고 하는 건가요? 외국에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나요? 만약 제가 국내에서 중공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되시면 말씀드리는데, 전 인류가 이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침해받아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어요. 게다가 미국 문화는 마성이 더 커서 만약 아이의 의지력이 강하지 못하면 더 쉽게 침해받을 수 있어요. 우리는 대법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2. 아이가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일하게 하다

아들이 취직한 후 저는 우주의 특성이 일체를 통제하고 있으니 이익을 앞자리에 놓고 문제를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비교적 큰 변호사 사무소에 취직한 첫날에 상사는 매우 많은 사건을 배당했지만, 업무를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은 이미 마음이 초조한 상황에 그다음 날 다른 변호사와 외지에 사건을 처리하러 출장 갔고 그 도중에 그가 아들에게 “당신네 부서장은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고 부서 내 변호사들과도 갈등이 심해요. 그래서 변호사들이 줄줄이 그만둬서 상급에서 이미 당신네 부서장을 해임하려 하고 있어요. 주변에 변호사 사무소가 매우 많으니 서둘러 다른 데를 알아보고 여기를 떠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저는 아들에게 “너는 이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하기로 계약했어. 사무소에서 너를 해임하지 않는 이상 너는 이직하지 않는 것이 좋아. 사람은 신용을 지켜야 하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으면 돼. 업무를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법률을 찾아보렴. 일이 많으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마음을 내려놓은 후 며칠 지나서 상급 상사가 아들을 다른 부서로 안배했고 아들도 만족스러워했으며 상사의 신뢰도 받았습니다.

6개월이 되기도 전에 아들의 전공과 일치한 다른 부서의 상사가 찾아와서 아들이 자기 부서로 오라고 건의해서 아들도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부서장이 동의하지 않으면서 여러모로 타일렀지만, 아들은 여전히 현재 부서를 떠나려 했습니다. 새로운 부서의 상사와 기존 부서장이 논의했으나 기존 부서장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기존 부서장이 너를 중시하며 남기려고 하는 것은 기존 부서의 이익을 위해서고 네가 떠나려는 것은 너의 장래를 위해서다. 우리는 수련생으로서 먼저 타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 말을 듣고 기존 부서장에게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10여 일이 지나서 설 연휴쯤 기존 부서장이 아들에게 “지금 이직 절차 밟으세요”라고 말했고 새로운 부서 상사는 “설이 지나면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두 부서에서 연차 수당을 모두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라. 연차 수당은 내가 주마.” 아들은 다투지도 묻지도 않은 채 마음을 내려놓고 집에 돌아와 가뿐하게 설을 보냈습니다. 설이 지나서 두 부서의 상사는 아들에게 각자 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아들은 이 일을 통해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은 진정으로 수련하기 시작했고 법공부뿐만 아니라 세 가지 일을 모두 했습니다.

3. “우리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의 혜택을 받았어요”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역병 기간에 남편은 끊임없이 각지에 출장 다녔습니다. 어느 한번은 출장 갔을 때 동행한 동료가 양성으로 판정되어 호텔에 격리당했습니다. 이후 각 방면의 협의를 거쳐, 전염병 통제 부서는 그들이 승용차를 빌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는 데 15시간 정도 걸렸지만, 남편은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아들이 재택 근무할 때 저는 아들과 함께 고향에 가서 친정 부모님을 보살폈는데, 부모님은 모두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양성으로 판정됐습니다. 아버지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반나절 주무시고 나니 나았습니다. 어머니는 증상이 심했지만, 제가 보살펴서 2일 만에 건강을 회복하셨는데 부모님은 모두 약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부모님은 늘 ‘9자진언’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습니다. 저와 아들은 부모님을 약 8일 정도 보살폈지만, 모두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오빠, 남동생, 여동생 등 가족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고 믿으며 ‘9자진언’도 외웁니다. 그들의 증상은 모두 심하지 않아 며칠 지나니 나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 가족은 자네의 혜택을 받았네”라고 말했고 저는 “우리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의 혜택을 받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이모는 그때 증상이 매우 심했지만, 제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알려드려서 하룻밤 지나니 신기하게 나았습니다. 이튿날 이모가 제게 전화를 걸어 “내가 ‘파룬따파하오’를 외워서 병이 하룻밤 지나니 나아서 다음 날 아침에 정원에서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단다. 나중에 또 거리에 나가서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어”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는데, 중생들은 각성했습니다.

제자는 자비롭게 제도해 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큰절을 올립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6/2/4609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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