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 대법제자
[밍후이왕] 친황다오는 한동안 박해와 교란이 계속돼 수련생 구출 활동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현지에서 발생한 ‘지속적 박해’의 형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는 교류를 통해 구세력이 우리의 업력과 제고를 명분으로 정법 수련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빈틈을 파고드는 것은 특히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사람을 구하는 정법시기에 정체(整體)적인 중생제도를 심각하게 교란했다. 따라서 이런 박해는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 대량의 박해 사건에 직면하여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감각해져서는 안 된다.
친황다오의 대법제자로서 우리 모두 책임이 있으며 나아가서는 지역 정체에 대한 이런 교란을 주도적으로 제거할 의무가 있다. 이런 박해 형세는 또 ‘조사정법(助師正法)’에 대한 교란이므로, 이 방면에서 냉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개인의 수련표준을 깎아내릴 수 없으며 반드시 우리 자신을 찾아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썩은 물건을 자신의 공간장에서 제거해 버려야 한다. 우리는 수련인이다. 문제가 생기면 수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친황다오 정체에 박해 국면이 크게 나타난 것은 바로 우리 대부분 수련생의 수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여러 차례의 교류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았다.
1. 먼저 우리 수련인들 내부에서의 간격인데,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선을 닦는 것이 부족하고 자비심이 부족하다. 수련생에게 문제가 발생해도 정면에서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바로잡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흠을 잡고, 질책하며, 손가락질하고 또 밖으로 밀어냈다. 구출 활동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트집 잡고 비난하고 밖으로 보며 안으로 찾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바다처럼 허리를 굽히고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이 있을 때, 선뜻 상대에게 감사하고 주동적으로 사과하며, 큰 관용이 있어야 한다.
2. 일하다 보면, 때로는 일에 빠져서, 수련생을 어떻게 구출할지(집으로 데려올지)에만 온 정력을 쏟을 뿐, 우리 지역의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 등과 많은 중생은 완전히 잊고,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때 진상을 알린 말과 선행을 권한 서신이 진정한 선(善)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우리의 친족이다! 경찰과 배후의 사악을 구분하려면 기점이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우주의 기준은 이타적인 것이다. 모두 사부님의 자녀들이니 우리는 손잡고 돌아가야 한다!
3. 개인의 수련 방면에서 보편적으로 뒤처진다. 특히 색욕(남녀 예절), 사부님 공경과 대법 공경, 과시심, 질투심 방면에서 자주 문제가 발생하며 자신의 언행을 통제하지 못 한다. 심지어 중요한 일을 맡은 협조인이 줄곧 그 속에 틀어박혀 스스로 알지 못한다.
4. 자아에 집착하여, 자신이 법을 실증한 업적을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고, 사부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잊었다! 이로써 자신에게는 물론 대법을 실증하는 정체에 어려움과 손실을 초래했다. 협조가 필요할 때 늘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5. 대법이 요구하는 안전 방면에서 미숙하다. 현대 전자 제품 등 물건에 집착해 그중 내재돼 있는 안전 위험과 오염을 수련 환경으로 끌어들였다. 다른 한편의 수련생은 단지 배격하고 흠을 잡아낼 뿐, 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점도 간격 형성의 한 원인이다.
우리가 사악을 해체하려면 우리 자신을 수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수련생에 대한 부정적 사유를 배제하고 내심에서 진정으로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 진념(真念)을 움직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불법신통(佛法神通)으로 이런 사악한 박해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은 우리의 환경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동적으로 정법의 기점에 서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또 사악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으며 쇠퇴 몰락의 종말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짓 박해의 허상에 눈이 가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념이 있으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악한 박해 형세는 바로 우리가 보는 것을 실체로 여기는 사람 관념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므로, 우리의 발정념은 신심이 있어야 하고 진념이 있어야 한다. 즉 진정한 대법제자의 정념이어야 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우리 어떤 수련생은 흔히 이런 교란을 받으면, 그것을 모두 우리 이 대법으로 저지한다. 그는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그는 대법에 의거하여 저지한다. 예컨대, 그가 와서 우리 법을 파괴하고 있다! 하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럴 수 있는지 하는 자신의 원인을 찾지 않는다. 우리들이 어디에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자신은 어디에 잘못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거나 또는 우리를 고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1]
“나쁜 사상이 있는 사람이 바르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당신 장(場)의 강렬한 작용하에서 그의 사상을 개변할 수 있어, 그는 그때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누구를 욕하려 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욕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정법수련의 에너지장만이 비로소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2]
그래서 수련인에게는 어떤 환경이든 우리가 제고하고 사람을 구원하며 사악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이지, 사람들 중의 재수 없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수련만 하면 사부님께서 큰문을 여는 걸 도와 주실 것이다.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이므로 잘못된 점은 여러분께서 대법 중에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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