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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세 차례 교통사고에서 신기하게 회복하다

글/ 지린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7년 봄, 저는 고향의 한 공장 광산에서 은은하고 듣기 좋은 음악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를 찾아 어느 장소에 도착하니 파룬궁수련자들이 연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드럽고 우아하고 느슨한 연공 동작, 평온하고 자상한 얼굴, 마치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듯한 이 장면에 저는 친절함과 편안함이 느껴져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법을 얻고 수련하다

보도원은 제 마음을 알아차린 듯 예의 바르게 “공법을 배우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다고 하자 아침에 연공장에 오면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3일간 저는 4가지 동공(動功) 공법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일이 바빠서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으로 인해 제 주변 환경이 좋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화목하지 않았던 부부 사이가 좋아졌고, 갈등이 많았던 업무환경이 순조로워졌으며, 저를 괴롭히던 위출혈, 심장병, 부인병 등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호전돼 삶이 알차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두 차례 대규모 ‘대법 심득교류회’에 참가했는데 교류회에서 수련자들의 교류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8년간 마비돼 많은 질병을 앓던 한 현장(縣長)이 대법을 얻은 후 병이 없어져 온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감격에 겨워 울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모범교사는 임종 직전에 운 좋게 대법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이런 실제 사례들이 제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기에 대법에 대한 믿음과 사부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1998년에 저는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20여 년 수련 과정에서 여러 번 위험한 일을 겪을 때마다 사부님의 노심초사와 자비로운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중 세 차례 교통사고에서 완치된 기적을 공유하려 합니다.

첫 교통사고

2009년 5월 4일, 진상자료를 다 배포한 뒤 남편 자전거 뒤에 앉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쏜살같이 달려오는 흰색 승용차에 치였습니다. 이 차는 원래 오른쪽 길로 갔어야 했는데, 역주행하며 왼쪽 길로 달려왔습니다. 남편은 별문제가 없었으나 저는 머리가 땅에 부딪히고 왼손이 땅에 닿으면서 손목뼈가 부러져 힘줄만 연결돼 있었습니다. 우리 둘이 땅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사고를 낸 운전자는 이미 도망쳤고 자전거는 망가져 탈 수 없었습니다. 이 구간은 앞뒤 마을도 가게도 없었고 집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떡하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저를 부축해 다친 팔을 받쳐 들고 한 시간 넘게 걸어서 간신히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외과 의사는 즉시 세척, 소독하고 부분 마취를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다친 팔이 마취제를 맞든 말든 통증이 없는 무감각 상태임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고통을 감당해주셨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의사가 뼈를 이어 놓은 후 깁스를 하고 사진을 찍는데 3시간 남짓 걸렸고, 깁스의 무게는 2.5kg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밤에 잘 때 다친 팔을 어떤 자세로 놓아도 불편했고, 조심하지 않으면 더 아파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힘들었는데 3일째 되는 밤, 엄청나게 졸리는 상태에서 갑자기 따뜻한 손이 상처를 꽉 잡아주는 느낌을 받았고 ‘뚝’ 소리와 함께 다친 곳이 덜 아프고 점차 조금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깁스 안 피부에 생겨난 노란색 물집이 터지고 분홍색 핏물이 흐른 후 피부가 아물고 부기가 가라앉았으며 딱지가 생겼습니다. 10여 일 후 깁스가 너무 헐렁해 낄 수 없었고 팔은 이미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더니 주치의는 깁스를 다시 단단히 조여줬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깁스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의사는 “안 돼요. 최소 100일은 착용해야 합니다. 상처가 심각합니다! 뼈가 빗나가면 어쩌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억지로 하루 착용했는데 너무 괴로워 저는 남편에게 깁스를 벗겨내고 붕대로 팔을 목에 걸고 있으면 법공부도 연공도 편리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아예 팔걸이 붕대도 걸지 않았습니다.

27일째, 깁스를 다시 팔에 끼고 병원에 가서 깁스를 제거해 달라고 하자 의사는 마지못해 승낙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결과 상처 봉합 부위에 머리카락처럼 가는 실 한 가닥 자국만 남았을 뿐 완쾌됐습니다. 의사는 기뻐했습니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하며 이렇게 빨리 회복된 사례는 본 적이 없었어요. 물 한 통을 드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두려움 때문에 의사에게 제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알리지 못했습니다!

2차 교통사고

2017년 11월 20일, 오후 3시가 넘어서 이웃 마을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한 후 집으로 돌아가며 길을 건널 때 좌우를 보니 차가 없었습니다. 막 도로 한가운데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빨간 승용차 한 대가 곧장 질주해 오더니 저를 쳤고, 저는 20여 미터 날아가 까무러쳤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이봐요! 이봐요! 어떠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다친 곳이 있는지 좀 봐요. 병원으로 모셔다드릴게요”라며 누군가가 저를 불렀습니다.

이 소리는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가까스로 눈을 뜨자 하늘과 땅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부부가 저를 부축해 일으켜 줬습니다. 저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으나 속으로는 ‘괜찮아,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왼팔이 탈골되고, 팔이 부러지고 삐었으며, 왼쪽 엉덩이 꼬리뼈도 어긋난 느낌이 들었고, 어깨뼈가 아파 죽을 지경이어서 녹초가 돼 누워있었습니다. 저는 기사 부부에게 교통경찰을 찾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저는 괜찮아요. 가보세요!”라며 그들에게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데리러 오기 위해 작은 전기 오토바이 한 대를 빌렸습니다. 그러나 저를 태우려 하니 정말 어려웠습니다. 업을 수도, 안을 수도, 부축할 수도 없었고, 걷지도 못했으며, 움직이면 아파서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편이 억지로 저를 안아서 오토바이에 실었고 저는 기절할 정도로 아파 땀투성이가 됐습니다. 집에 도착해 내리려 하니 더욱 힘들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겨우 저를 침대에 올려놨으나 앉지도 눕지도 못했습니다. 엉덩이뼈가 부러져 어긋나고, 왼쪽 다리가 부어서 굽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부축해서 억지로 앉았으나 너무 아파서 눈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살려달라고 외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습니다. 남편은 제가 제대로 앉지 못할까 봐 이불로 두르고 베개를 몇 개 더 받쳐줬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전화로 휴가를 신청하려 했습니다. 저는 “휴가를 낼 필요 없어요. 사부님 법을 들을 거니 어서 녹음기를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사부님의 광저우(廣州) 설법을 틀어줘서 저는 법을 들었습니다. 남편은 밥을 차려줬지만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잠결에 사부님께서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연단에서 설법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눈을 감으면 밤새도록 그 광경이 보였습니다.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들어 움직이고 싶었지만 왼쪽 몸이 큰 바위처럼 무겁고 부은 팔과 다리가 저고리 소매와 바지에 단단히 끼어 옷을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손발은 부어서 마치 자줏빛 빵 같았습니다. 당시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정 정념 시간 5분 전 12시에 깨어났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오른손을 가슴에 앞에 세우고 힘겹게 15분간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때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습니다.

새벽 2시쯤 화장실에 가려고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이 의자를 가져와 저를 침대에서 의자까지 옮긴 뒤 의자를 조금씩 잡아당겨 화장실로 끌고 갔는데 30분 이상 걸렸습니다. 일을 본 후 남편은 다시 의자로 저를 끌어당기면서 불평을 털어놨습니다. “당신을 친 사람을 보내 놓고 이 번거로운 일을 내게 떠넘기다니, 이런 상황인데도 병원에 안 갈 거야? 장애인 아내를 시중들지 않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도 망가지지 않았어요. 법공부와 연공만 열심히 하면 며칠이면 나을 거예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의자를 거실까지 끌고 갔을 때 저는 계속 이렇게 할 수 없으니 아예 방 침대보다는 거실에 있으면 번거로움을 덜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안 돼, 얼마나 추운데!”라고 말했습니다. 남부 지방에는 보통 방에 난방시설이 없어 겨울에 썰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괜찮아요. 이불을 가져다 잘 덮어주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의자에서는 이불을 잘 덮을 수 없었기에 저는 추워서 몸을 덜덜 떨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부님 설법을 들었습니다. 이윽고 한 줄기 따뜻한 기운이 저를 에워쌌는데 온몸이 훈훈해지면서 듣다가 잠이 들었고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장면이 또 나타났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시계를 보니 마침 연공 시간이라 저는 의자에 앉아 한쪽으로만 연공했습니다. 파룬이 쉴 새 없이 회전하는 것을 확연히 느껴졌는데 정말 편안했습니다. 거실에서 약 20여 일간 머물렀는데 줄곧 따뜻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매일 법을 듣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고, ‘홍음4’만 외웠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움직이려면 다친 다리를 먼저 움직여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부은 팔과 다리는 위에서 아래로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고, 팔 골절 부위에는 작은 그릇 크기의 자라 등 같은 딱지가 생겼습니다. 팔은 가슴까지 들 수 있었고 가부좌할 때 엉덩이뼈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서서 연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어서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래 서 있지 못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연공할 때 파룬이 회전하는 강한 힘에 저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습니다. 3장 공법을 할 때 누군가(아마도 사부님)가 다친 팔에 붕대를 매우 단단히 감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위로 충(沖)할 때 마치 밧줄이 팔을 위로 잡아당기는 듯했고, 관(灌)할 때도 기제(機制)가 특히 강했습니다. 어느덧 왼팔(다친 팔)의 딱딱한 딱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위로 당기는 느낌이 없어졌을 때 왼팔을 위로 올리는 동작이 거의 정상이 되었습니다. 4장 공법을 할 때는 기제가 더욱 분명히 느꼈으며 마치 기계 장치처럼 자유롭게 오르내렸습니다. 이 기제는 또 제가 서고, 앉고, 침대에 눕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서고 싶으면 저를 일으켜 세우고, 앉고 싶으면 자동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한가한 시간에 침대를 에돌며 걷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며 연습을 시작했고, 침대에서 이동하는데 처음에는 다친 팔이 힘을 쓸 수 없었으나 차츰 나아졌습니다. 또 걷는 연습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곁을 오갔습니다. 나중에 딸이 바퀴 달린 컴퓨터 의자를 사줬습니다. 저는 앉아서 발로 컴퓨터 의자를 굴리며 집안을 오가며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도 거의 혼자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약간의 진전이 보여도 사부님께서는 남편 입을 빌려 “좋아! 아주 좋아! 참 잘하고 있어!”라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45일 만에 부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차에 치이고부터 치유까지 모든 과정은 자비로운 사부님의 보호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제자의 강한 정념이 없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해주신 것입니다.

3차 교통사고

2021년 11월 13일 오후, 저는 의치를 하러 고향 치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길을 건너다가 쏜살같이 달리던 파란색 승용차에 치여 넘어졌는데 엄청난 관성에 끌려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주저앉으며 왼발이 엉덩이 밑에 깔렸습니다. 20대 청년인 운전기사는 저를 일으켜 세운 뒤 교통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집에 데려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여기 곳곳에 카메라가 있어요. 제 차는 보험에 들었습니다. 교통경찰을 찾지 않으면 제가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친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면 뒤처리가 더 번거로워집니다.” 이때 저는 타인의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의 요구에 동의했습니다.

젊은이는 교통경찰을 불러왔고 제 발목은 이미 매우 굵게 부어올랐습니다. 증거를 수집한 후 교통경찰은 이 사고는 전적으로 그 젊은이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교통경찰은 젊은이에게 “지체하지 말고 빨리 병원으로 모셔가세요”라고 다그쳤습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니 발목 양쪽 복사뼈가 부러지고 발등 두 곳이 부러졌는데, 한쪽 발뼈는 네 군데나 부러졌습니다.

가족들은 입원 치료를 받으라고 했으나 저는 뭐라고 해도 입원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단호한 태도를 본 의사는 가족들에게 “입원해도 요양할 뿐 별다른 치료는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상처는 백일이 아니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요. 속담에 근육과 뼈를 다치면 백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절대 서둘러 걷지 마세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온몸의 힘을 받는 곳을 다쳤기에 다친 뼈는 어긋나기 쉽고 곪을 수 있으므로 더 번거롭게 됩니다, 뼈를 깎고, 철판을 놓고 쇠못을 박아 이탈된 관절이 원래 위치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저는 속으로 ‘연공인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나타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매일 꾸준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다친 발이 땅에 닿으면 아프고, 깁스하고 있으니 불편했고, 무릎 아래로 다리가 매우 굵게 부어올라 결가부좌를 하면 아파서 온몸에 땀이 났지만 그래도 한 시간을 견지했습니다. 다리는 무릎 아래로 멍들어 시커멓게 부어올랐고, 깁스를 한 부위의 발과 다리에는 피가 잘 통하지 않아 큰 물집이 생기며 누런 물이 흘렀는데 매우 간지러웠습니다. 어느덧 사흘이 지난 후 꿈속에서 깁스에 감겨있는 발이 앞뒤로 움직이고 다시 좌우로 움직이며 이렇게 5분간 반복했는데, 가려움도 해소되고 또 매우 상쾌해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이런 상태가 나타났고 움직일 때마다 다친 발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20여 일 후, 깁스한 채로 걸을 수 있었고, 한 달 후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재검한 결과 뼈는 회복이 잘 됐습니다. 한 달 반 후에 다친 발이 깁스에 끼어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깁스를 벗겨 달라고 부탁했는데 벗겨 주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스스로 벗겨 버렸더니 자유롭게 걸을 수 있어 장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때마다 모두 법을 배우고 연공하자 원상태로 회복됐습니다.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고, 속인의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빨리 나았습니다. 파룬따파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탄복한 남편은 “이 공은 정말 대단해. 아내를 금강불괴의 몸으로 단련해냈어”라며 기뻐했습니다. 설날 사돈과 한자리에 모였을 때 사돈은 깜짝 놀라며 “다 나으셨어요? 벌써 다 나으셨나요? 그 공을 연마하고 나은 거죠?(파룬궁을 가리킴)”라고 묻자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혜택을 본 가족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 남편과 딸도 몇 차례 큰 위험을 겪었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남편은 기계 수리공입니다. 한번은 중간 휴식 시간에 세 사람이 작은 나무 밑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말벌에 쏘여 두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 주사를 맞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제 남편은 며칠 동안 빨갛게 부어 있었지만 아무 치료도 없이 회복됐습니다.

또 한번은 남편이 기계를 점검하던 중 절단용 그라인더 날이 축을 벗어나 남편 머리 위로 곧장 날아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마치 누군가가 지휘하듯 그라인더 날이 남편의 입술에 상처를 내고는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생명 위험은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어요”라며 놀라워했고 또 어떤 사람은 “집에서 부처님을 모시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또 한번은 기계 점검 과정에서 지름 약 30cm의 베어링이 남편 발등을 내리쳤는데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보니 발등에 작은 흰 반점만 있을 뿐 뼈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용접할 때 남편 발등이 납땜에 데어 물집이 여러 개 생겼고 살갗은 마치 익은 것 같았는데 곪지도, 헐지도 않았습니다. 물집은 조금씩 쪼그라들었고, 딱지가 앉았으며, 딱지가 떨어진 후 새살이 났고 며칠 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딸도 몇 차례 교통사고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망가진 적이 있지만 전혀 다치지 않았고, 다른 여러 위험한 상황에서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딸은 대법을 매우 인정하며 대법서적을 전부 읽었습니다. 딸은 아주 좋은 직업과 남편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이 가져다준 복입니다.

이상의 각종 난을 겪으면서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자는 인간세상의 언어로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정진해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멀리서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5/18/46017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5/18/4601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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