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정심(淨心)
[밍후이왕] 2005년, 남편은 양쪽 대퇴골두 괴사로 노동력을 잃고 내 보살핌을 받게 됐다. 부부가 모두 집에만 있어 수입이 없다 보니 생계 문제 등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30살이 되던 해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2006년 1월 어느 날, 친척이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며 파룬궁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운 좋게 수련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을 구한 파룬따파
나는 수련 전에 남편의 치료 문제로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는 4천 위안을 들여 무슨 귀신이 붙은 물건을 모시라고 했고,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내 의견을 무시하며 나에게 직접 그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고 남편도 시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난 정말 화가 나서 이혼하고 싶었지만 병든 사람과 차마 헤어질 수 없었다.
남편은 병이 심해지자 병원에도 가고, 영체도 모시고, 또 불상도 모시며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지만 남편의 병은 점점 심해졌다. 키 170에 체중이 120킬로로 늘었다. 남편의 치료를 위해 남은 돈마저 다 써버렸다.
당시 남편의 나이는 32세였다. 나중에는 창춘(長春)에 있는 중의사가 병을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남편은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집안 돈은 다 썼고 고모에게 5천 위안을 빌린 후 갚지 못하자 누구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언니가 5천 위안을 빌려줘서 남편은 그 돈으로 창춘 병원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20여 일간 있으면서 조금의 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약이 위장을 상하게 해 위장약과 함께 복용하다가 결국 복통이 심해져 복용을 중단했다.
남편이 5천 위안이 넘는 돈으로 받아온 약을 더는 먹지 않자 버리기 아까워 내가 다 먹었다. 그때 나는 심신이 허약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온몸에 힘이 없어 물건이 조금만 무거워도 들 수 없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온 후 남은 돈 1천 위안으로 다른 약으로 바꿔 복용했지만 병세는 다시 심해졌다. 당장 먹고살 수 없어서 나는 친구가 구해준 직장에 출근했는데 출근 하루 만에 남편이 내 출근을 막더니 말했다. “출근하지 말아. 집에서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부탁이니 제발 출근하지 마. 설이 지나면 이혼해줄 테니 몇 달만 참아줘….”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날 질책했다. “출근을 안 하다니? 둘 다 집에 있으면 뭘 먹고 살려고!” 그때 고생하는 날 본 언니가 말했다. “네 남편은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었어도 낫지 않았어.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써 보는 것이 좋겠어.” 무슨 방법이 있냐고 묻자 “내 둘째 동서가 전에 간이 안 좋아 복수가 차는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좋아졌어”라고 말했다. ‘파룬따파’가 뭐냐고 묻자 ‘파룬궁(法輪功)’이라고 했다.
당시는 중공(중국공산당)이 어느 때보다 파룬궁을 심하게 박해해서 누구도 감히 수련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였다. 언니는 “너희는 지금 방법이 없어. 집에서 몰래 하면 되지 않겠니? 그렇게 해서 몸이 좋아지면 되잖아”라고 했다. 나는 “파룬궁을 정부에서 심하게 반대하니 시댁에 물어봐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그럼 해보지! 방법이 없잖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 없어”라고 했다.
다음날 언니의 둘째 동서에게서 ‘전법륜(轉法輪)’을 얻어 우리 부부는 집에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무리 바깥 날씨가 맑아도 마음이 암담했는데, 두 번째 페이지를 읽자 마음이 확 트였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책이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이날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법을 배우기 시작한 후 집에 있던 각종 약을 전부 버리고 공양하던 영체와 불상도 치웠다. 오직 대법과 사부님만 믿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매일 법을 공부하고 연공만 했다. 그런데 남편은 겨우 한 달을 배우더니 더는 배우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두 달이 넘자 남편은 서서히 혼자 활동할 수 있었고 나도 출근했다. 직장 일은 무척 힘들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왜 나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심신이 괴롭지 않지?’ 나는 늘 몸 한쪽이 저렸었다. 자고 나면 몸 한쪽이 저리고 힘이 없어 한나절이 지나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신경통이 한 번 발작하면 15~20일간 계속됐고, 목디스크가 발작하면 속이 메스껍고 힘이 빠져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또 견주염으로 두 팔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또 심장 등 여러 곳이 온전치 못했다.
온몸이 병든 상태라 아마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40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련하면서부터 자신의 병을 떠올린 적이 없다. 법공부와 연공만 했는데 부지불식간에 병이 다 나았다. 언제 나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제야 법을 배운 지 반년 만에 사부님께서 몸의 병들을 전부 없애주셨음을 깨달았다.
그때 친척과 친구들 모두 내게 이혼하라고 권했다. 어떤 사람은 완곡하게, 또 어떤 사람은 강하고 직설적으로 권했다. “그와 계속 살 거야?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워!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들은 남편이 그런 형편인데도 시댁 식구들이 누구도 상관하지 않자 이혼을 권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떠날 수 없어요. 저는 대법을 믿는 수련인으로 모든 건 사부님께서 관리해주세요. 제가 밥을 구하면 그와 함께 먹고, 죽을 구하면 그와 함께 먹을 거예요. 저는 그를 버릴 수 없어요.” 그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몸과 마음이 변한 것을 보았고 ‘파룬따파’가 대단한 수련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19년 남편은 건강검진 때 외조카와 함께 갔다. 의사는 남편의 필름을 보더니 조카에게 “이 사람은 반신불수 아니면 휠체어를 타야 합니다”라는 진단 결과를 말했다. 그런데 조카가 “외삼촌은 멀쩡해요. 운전도 하세요”라고 말하자 의사는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연공(煉功)하면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는다.”[1]는 사부님 말씀을 실증했다. 모두 대법 사부님의 자비였다.
이웃과 친척이 남편을 보러 왔다가 집안이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남편이 중병에 걸렸으므로 고생스럽게 살면서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지저분한 몰골로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만약 대법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우리가 대법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집이 지저분하고 정리 정돈이 안 된 것은 고사하고, 나도 이 집에 없었을 것이고 우리 가정은 진작 망했을 것이다. 나는 절체절명 위기에서 운 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해 다시 살아났다. 나에게 사부님이 계시므로 모든 것이 다 좋아졌다!
물과 불같은 고부 관계가 좋아지다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시어머니의 앞뒤가 다른 처사에 마음이 불편해 관을 넘지 못했다. 남편에게 불만을 표하면 그가 화를 내는 바람에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다퉜다. 그러나 다투다가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걸 인식하고 참으며 혼자 골방에서 울기도 했다. 수련 전에는 부부 싸움을 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았고 남편을 찾아다니며 싸웠다.
매일 12시간씩 힘든 일을 해서 매우 피곤했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저녁 식사 후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하자 남편이 거절하며 “당신이 죽지 않는 한 설거지는 당신이 해야 해”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참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상을 치우며 울었다. 어떨 때는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생각하며 울기도 했다. 그래도 참다 보면 마음이 안정됐다.
1년 반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도 남편은 일하지 않았다. 한번은 폭설이 내렸을 때 퇴근 후(1박 2일 근무) 4시간 동안 눈을 등에 지고 30여 미터 떨어진 폐기장에 버렸다. 이웃이 걱정하며 말했다.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면 안 돼요.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누가 당신을 돌봐주겠어요?”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대법이 절 관리해주세요!’ 나는 피곤할 때마다 ‘나는 신이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일하니 오히려 힘이 났다.
법을 배운 후 ‘진선인(真·善·忍)’으로 시댁 식구를 대하고, 무조건 베풀어 물과 불같았던 고부 관계가 개선됐다. 수련 전에 시어머니는 날 만나고 싶지 않아 했고, 나 역시 그랬다. 수련 후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심성을 닦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시어머니는 “사람이 달라졌구나. 정말 예전 같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든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의 조건에 맞게 물건을 살 때 샀고, 일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다투지 않았다. 이전에는 시댁 식구들이 날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내가 수련한 후 그들은 내 변화를 보았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다투면 모두 날 불러 중재를 하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나중에 암에 걸려 위독해지자 동서는 시중을 못 든다고 했고, 시누이도 허리가 아파서 시중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2개월 누워있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수발을 들었다. 내가 시어머니 집에 부족한 것을 사다 놓으면 큰아주버니가 전부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보다 못한 시누이가 나를 향해 “바보예요? 왜 뭐든 다 사요?”라고 했다. “괜찮아요, 필요하면 더 사드릴게요”라고 말하자 시어머니도 참지 못하고 “돈 그만 써”라고 하시고, 시누이에게 “필요하면 오빠보고 사라고 해라”라고 하셨다. 시누이가 다시 나에게 말했다. “올케가 장을 보기만 하면 오빠가 가져가니 더는 사지 마세요”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러나 나는 살 것이 있으면 샀다.
이틀 만에 시어머니 집에 갔을 때 시이모가 날 맞이하며 말씀하셨다. “왔구나, 우리에게 맛있는 것 좀 만들어 줘. 자네가 없으니까 음식이 전부 딱딱해 먹을 수가 없어.” 두 분은 치아가 부실해 부드러운 음식이 아니면 잘 드시지 못했다. 시누이에게 “제가 없을 때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어 드리세요”라고 말하자 시누이는 “물컹물컹한 것만 드시려고 하는데 늘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나요? 난 그냥 하던 대로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평소 시어머니에게 효심이 많던 시누이도 시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자 지친 듯 심통을 부렸다.
내가 대법의 진선인 원칙에 따라 처신하며 시댁 식구들을 대하자 모두 날 다시 평가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지 않았을 것이고, 일찍이 그 집과는 인연을 끊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가 며느리 덕을 볼 줄 몰랐다. 며느리가 날 돌봐줄 줄 몰랐다”라고 말씀하셨다. 큰아주버니도 “어머니를 돌봐주실 줄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했다. 시댁 친척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하자 시어머니는 “탈퇴해, 대법은 정말 좋아! 우리 며느리가 변한 걸 봐. 원래 이렇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셨다.
날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던 시이모도 날 챙겨주셨다. 시이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 가족 간의 갈등과 시어머니의 유산에 대해 말해줬고, 시어머니의 돈은 전부 시누이가 갖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시이모에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말씀드렸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진선인에 따라 해야 하므로 돈에 대해 다투지 않아요.” 시이모는 날 믿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고 또 그 외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법을 얻기 두 달 전, 나는 철저히 무너질 것 같았다. 남편이 앓아누워 꼼짝하지 못해도 시어머니는 날 도와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아프다고 며느리가 이혼하려고 하면 고소해”라는 이웃의 말을 듣고 날 협박하기도 하셨다. 견디기 힘들어 점집에 가서 점을 봤다. 점쟁이는 “괜찮아요, 두 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너무 고집이 세고 무식해서 아들이 병이 났는데도 며느리를 이렇게 대하네요. 며느리가 아들을 버릴지도 모르는데 두렵지도 않나?”라고 말하면서, “걱정 말아요. 두 달 후면 운명이 달라져요. 그들에게 진 빚을 아직 다 갚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과연 두 달이 지나자 나는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한 후 남편은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다. 1년 반 후 그는 출근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한번은 그가 열이 났는데 근처에 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졌다. 그에게 약을 먹으라고 하자 그는 “신경 쓸 것 없어. 이건 소업(消業)이야”라고 말했다.
올해 초,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유행하자 동료가 약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약을 준비하며 병을 기다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염하면 사부님께서 책임져 주시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진상지폐(파룬궁 진상 정보를 인쇄한 지폐)도 쓴다. 남편의 수입은 동종업계 종사자 중 가장 높고 하루 근로시간도 길지 않다.
사부님의 대자대비에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의 제도를 찬양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5/19/46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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