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고부 사이는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3년간 사이좋고 평범하게 지냈지만 남편, 시누이, 시동생들은 감동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고 남편은 장남입니다. 시어머니는 진상을 알고 대법 수련을 몇 개월 하셨지만 84세부터는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셨습니다. 시동생들은 출근하느라 바빠 간병인을 두었는데 모두 그만뒀습니다. 시어머니는 86세라 혼자 돌보기에 어렵고 밤에도 돌봐드려야 합니다. 조건을 따지면 우리집에서 시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합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고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자아를 내려놓고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으며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사람으로 수련 성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이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습니다. 여동생과 함께 시어머니를 돌봐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잘 앉지 못하시고 일어나시면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저는 “어머님, 왼쪽으로 기울면 넘어지지 않으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시어머니는 늘 오른쪽으로 넘어지셨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몸이 바르게 앉은 것은 어머님 탓이 아니다. 어머님을 내 요구에 맞춰 돌봐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마땅히 어머님 조건에 맞게 돌봐드려야 한다.’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최대한 시어머니의 상황에 맞춰 돌봐드렸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는 먼저 시어머니를 변기에 앉히고 문을 닫은 후 밖에서 기다리다가 부르시면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제가 소리를 듣고 문을 열자 시어머니는 이미 넘어지신 후였습니다. 왼쪽 눈까풀이 찧어서 붉게 부으셨습니다. 그 후부터 문을 열고 대소변을 보시게 했습니다. 처음에 좀 더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마음은 이기적이고 대법 요구에 부합되지 않으니 그것을 닦아버려야 한다고 의식했습니다. 의식한 후 자신을 바로 잡았더니 그 마음이 담담해졌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이 제가 시어머니를 부축하는 것을 보고 선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저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명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렇구나”하고 답했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왜 내가 선하지 않다고 했을까? 반드시 선하지 않은 점이 있을 거야.’ 안으로 찾으니 선하지 않은 근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편한 대로 시어머니를 부축하고 시어머니의 처지에서 부축하고 돌봐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동시에 귀찮아하는 마음이 있었고 더러워하는 마음을 아직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으니 행동이 선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대법제자는 무조건 사부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1년 후 큰시누이가 시어머니를 뵈러 왔습니다. 1년간 딸을 보지 못했던 시어머니는 기뻐하셨습니다. 큰시누이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집에 온 후 시어머니를 돌보고 집안일을 앞다투어 했습니다. 저도 도와줬습니다.
모녀는 서로 아주 편하게 대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시면 큰시누이는 시어머니를 나무랐습니다. 큰시누이 각도에서 보면 시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지만 시어머니는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며칠이나 날 나무라다니. 다른 사람(나를 가리킴)은 오랫동안 날 돌봐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네 올케의 여동생도 날 잘 돌봐준단다. 바지에 실수해도 원망도 없이 닦아주지. 두 자매가 없었다면 난 여기에서 살기 싫었을 거야.” 그러자 큰시누이는 감동해 신앙 있는 사람은 역시 일반인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저는 손에 상처를 입었을 때도 시어머니를 목욕시켜드렸습니다. 시어머니께 특수한 상황이 있거나 목욕을 원치 않으시면 목욕 시간을 뒤로 미룹니다. 매번 목욕 후 시어머니는 저를 칭찬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말합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도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저는 출근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집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것은 자연히 남편 몫이 됩니다. 특수한 상황이 있을까 봐 두려워 저는 되도록 집에 일찍 갑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룻밤만 남편이 돌봐드리게 합니다. 처음에 시어머니는 간혹 밤에 일어나십니다. 시어머니는 목소리가 작아 다른 사람을 부르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일어나시거나 화장실에 갈 때 벨을 누르시는데 그럼 남편이 잠에서 깹니다. 때로는 제가 듣지 못하면 남편이 시어머니를 돌봐드립니다. 남편은 벨소리를 귀찮아하며 어머니께 무슨 일이 있는지 묻거나 화도 냅니다. 힘들게 시어머니를 부축해 변기에 앉혀 드려도 볼일을 보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럼 남편은 더욱 화를 냅니다. 이때 제가 듣고 일어나 도와주고 남편에게 어머니를 이해해드리라고 합니다.
한겨울 새벽 2시에 시어머니께서 벨을 누르셨습니다. 제가 일어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또 벨을 누르셨습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옷도 다 입지 못하고 급하게 시어머니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모르고 달려가다 문에 부딪혔습니다. 시어머니 침대 앞에 가서 물으니 별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시어머니께 선의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옷을 입어야 하니 잠시 기다리시면 되세요.”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지나간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식사하신 것도 잊고 간혹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에 벨을 누르시는데 규칙이 없습니다. 시어머니께 무슨 일인지 물으면 저녁을 먹었냐고 묻거나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처음에 저는 밥을 드셨다고 알려드리고 어떤 것을 드셨다고 알려드립니다. “어머님, 잊으셨어요?” 시어머니는 듣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은 후 저는 시어머니께 다시 식사하고 싶은지 여쭙고 음식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부터 늘 밤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남편은 힘들어서 제가 출근할 때도 집에 돌아와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라고 했습니다. 며칠간 저는 저녁 8시에 집에 도착했고 자연히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는 일은 제가 합니다. 그리고 자정에 발정념을 하고 잡니다. 이튿날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 25분 전에 출근합니다. 때로는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부님의 법과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고생을 낙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간 남편은 감동해 제게 잠을 더 자라고 하거나 휴식하라고 권했습니다.
시어머니의 가래 빼드리는 일도 처음에 싫어했습니다. 보통 여동생이 있으면 제가 할 필요가 없었지만 저 혼자 있으면 이 일을 피하지 못합니다. 저는 싫어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되고 반드시 그것을 닦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인 일에서 자신을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았고 시어머니를 도와드렸습니다.
여동생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남편은 제 여동생이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것을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은 점이 많다고 하자 마지못해 동의했습니다. 여동생도 저와 마찬가지로 파룬궁수련자입니다. 여동생도 처음에는 이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형부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 자매 사이의 관계에 영향 줄까 두려워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부탁해서야 여동생은 이 일에 응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은 여동생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때로는 여동생을 가정부로 취급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여동생의 시어머니, 시누이, 동서 앞에서 여동생의 좋지 않은 점을 말해서 여동생의 체면을 깎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여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저는 남편을 나무랐지만 여동생은 몇 번이나 성실하게 말했습니다. “언니,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거야. 이런 환경에 왔으면 수련 환경으로 대하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대법 요구에 맞지 않은 사람마음을 닦아 버려야 해.” 저는 여동생이 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동생이 돈이 부족해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매번 날씨가 좋지 않으면 시어머니는 가래가 많아지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더부룩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시어머니는 힘이 없어 가래를 뱉지 못하십니다. 한번은 가래가 올라올 때 가래를 뱉지 못하자 안색이 변하셨습니다. 여동생이 재빨리 손을 시어머니 입에 넣어 가래를 꺼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놓으셨습니다. 가래는 노랗고 좀 딱딱했습니다. 시어머니께 가래를 빼드리는 일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전혀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이 모습을 보고 여동생에 대한 태도가 변했습니다.
여동생은 늘 앞다투어 일합니다. 여동생이 시어머니를 부축해 침대에 올려드리는 모습은 마치 아이를 침대에 부축해 올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시어머니를 품에 안고 옷을 잘 입혀드리고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합니다. 시어머니의 머리를 빗겨드리고 얼굴도 씻겨 드리는데 참 세심합니다. 저도 감동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바지에 대소변을 봐도 신속히 깨끗이 닦아드리고, 시어머니가 춥지 않게 잠옷을 입혀 침대에 부축해 올려드립니다. 시어머니가 잠이 들면 더러워진 옷을 빱니다. 여동생은 시어머니의 옷을 빨고 집에 가다가 옷깃에 오물이 묻어있는 걸 여러 번 발견했지만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보통 좋은 음식이 있으면 우리는 여동생이 바빠서 밥을 잘 먹지 못하기에 여동생에게 좀 남겨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겨준 음식을 시어머니께 드리거나 남겨서 우리가 다음 끼에 먹게 합니다. 매번 우리가 남겨준 음식이 냉장고에 고스란히 있으면 여동생에게 묻습니다. “너에게 남겨준 음식인데 왜 먹지 않았니?” 여동생은 말합니다. “저는 조금만 먹으면 돼요. 많이 먹어도 좋지 않아요.” 3년간 여동생은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먹은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시어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밥이 없으면 국수를 끓여 대충 때웁니다. 집의 과일이나 간식도 여태 먹은 적이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여동생은 법을 얻기 전에는 ‘날라리’에다가 ‘술꾼’이었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머니와 대화해도 눈을 부릅뜨곤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은 위대합니다. 이런 ‘날라리’가 선하고 어질게 변했으며 남을 위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돌볼 때 여동생은 시어머니를 업고 거실, 화장실, 주방을 오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여동생에게 감동해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여동생은 자식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여동생의 일거일동과 평소 시어머니에 대한 세심한 돌봄과 선한 모습을 보고 남편도 감동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자식도 여동생처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여동생은 마지막 한 달 임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자매 사이에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형제자매는 앞다투어 돈을 더 내고 우리에게 내지 말라고 해서 우리에게 여윳돈이 생기게 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러 형제자매와 함께 효도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외조카가 전화를 걸어 제게 말했습니다. “둘째 이모는 복이 많았어요. 두 분이 세심하게 돌봐주셔서 잘 주무시고 좋은 음식을 드시고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형제자매는 함께 모여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남겨둔 돈이 있었는데 저는 형제자매에게 똑같이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발적으로 제 여동생도 한몫 받아야 한다고 했고 온 가족이 동의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자주 시어머니를 돌보지 못한 형제자매들은 함께 여동생에게 귀중한 금 장신구를 사주어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맏며느리라 시동생과 동서들은 저를 어머님처럼 대하며 갖은 방법으로 돈을 주려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시누이는 자주 내게 옷을 사주고 여동생에게도 사줍니다. 받지 않으려 해도 안 됩니다.
사회에서 부모님 돌보는 일로 형제자매가 다투고 심지어 원수가 되는 것과 비기면 저희 집안은 따뜻하고 화목합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말씀에 따라 남을 선하게 대하고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으니 대법제자의 가정은 이처럼 상서롭고 화목합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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