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나는 1995년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 속인사회에 미혹돼 명예, 이익, 정(情), 색(色) 등 각종 욕망의 항아리 속에서 많은 업을 지어 젊은 나이에 각종 질병이 나타났다.
심계항진과 불면증으로 수면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또 간장 질환으로 1년 이상 휴직했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기공을 연마해 증세가 잠시 완화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어려운 삶을 살았다.
고생 끝에 대법 만나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친구로부터 그날 밤 파룬궁 강의 비디오 상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는 파룬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병을 고쳐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9일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약 1km의 오르막이 있어 늘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올라갔는데, 그날 밤은 나도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가족들도 신기하다고 했고 나도 ‘이 공법은 분명 좋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9일 강의를 빼놓지 않고 전부 들었다. 9일 강의가 끝나자 내 몸의 병이 전부 사라져 병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심신이 가벼워져 생명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았고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진정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다
연공 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성격도 좋아지고 원한 관계도 해소돼 원망하는 마음 없이 항상 남을 먼저 배려했다. 주변인들은 모두 나의 변한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고, 아이도 날 따라 수련을 시작한 후 간질성 폐렴, 사시, 약시 등이 좋아져 가족들도 대법의 혜택을 받았다. 남동생은 대법서적을 보고 영상 강의도 시청했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을 때 안경만 부러졌을 뿐 전혀 다치지 않았다. 공장에서도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는 등 대법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다.
학교 교사인 나는 수련을 시작한 후부터 학생들을 자식처럼 대하며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보며 직위를 따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직위나 명예를 위해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 부탁해 발표하지 않았다. 직장 상사와 학부모들은 모두 그런 날 인정해줬다. 나는 상사에게 대법을 알렸고 동료에게 사부님의 강의를 보여주었으므로 그들도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대법 책을 읽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또 ‘학생 법공부 팀’을 결성해 학생들을 대법 수련으로 이끌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갈등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대법을 배운 후 진선인에 따라 마음을 닦아 갈등도 적어졌고 학습 상태도 좋아졌다.
나는 사회와 직장에서 친척과 친구들에게 대법을 전했다. 법을 전할 때 경험을 말해주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려줬다. 수련 전에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서툴렀지만 수련 후에는 누구를 만나든지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수 있었다. 어떤 동료 교사는 날 보고 “명랑하게 말을 잘하시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련 전에는 건강상 이유로 사람 만나기를 피했지만 대법을 연마하면서부터 명랑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래서 큰소리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 “수련하라!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가져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가야 할 길이다. 당신은 반본귀진(返本歸真)해 진정한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먹구름 뒤덮여도 믿음은 변함 없어
사악한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1999년부터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일부 직장 동료들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정부에 대항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교장과 서기가 번갈아 날 찾아와 대법 수련을 포기하고 책을 바치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항상 수련자임을 명심했다. 대법이 어려울 때 날 구해주었으므로 배신할 수 없었다. 교장이 결과에 대해 책임지라고 위협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내 수업권을 박탈시킨 뒤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많은 동료 교사들이 대법 진상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안 쓰고 누구를 쓰려는 걸까요?”라며 위로했다.
원래 겁이 많던 내가 이렇게 용기가 생긴 것은 사부님 덕분이다. 사부님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교장은 내가 흔들리지 않자 다른 교사가 결석할 때 날 수업에 복귀시켰다. 나중에 서기가 말했다. “그때 교장이 당신을 해고하려 했지만 제가 당신은 아직 젊으니 기회를 다시 주자고 했어요.” 사실 이건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격려해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오직 제자의 마음만 보신다. 난 대법 책을 단 한 권도 제출하지 않았고 소위 보증서라는 것도 쓰지 않았다. 계속 사부님을 따라 대법을 수련했다. 이후 그 서기는 선한 행위로 복을 받았는데 은퇴 후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날 파면하려 했던 교장은 당뇨병에 걸렸다.
정념정행,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중공의 독재 통치로 사람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도 공포심으로 감히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이후 사당(邪黨: 공산당)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 방송해 대중의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법을 매도하며 공격하게 했는데, 이는 결국 공산악령이 대중을 파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대법의 바름과 사부님의 무고함을 알려 원래 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처음에는 밍후이왕에 접속할 줄도 몰랐고 컴퓨터도 매우 적어서 진상 전단지 한 장을 복사해 배포했고, 펜으로 직접 벽에 글자를 쓰거나 출퇴근 길에 자료를 배포했다. 당시에는 아무리 높은 계단을 올라도 힘든 줄 몰랐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도 두렵지 않았다. 시간이 없을 때는 밤이나 새벽에 자료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었으며, 친지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전에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었지만 그때부터 학교 동창회 등 모든 모임에 참석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알렸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퇴근 후 진상자료를 다 배포한 후에야 가서 돌봐드렸다. 어머니도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반대하지 않으셨다.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대략 한 글자가 1미터 정도 크기였다. 평소 서예 연습도 하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큰 붓을 사용해 글자를 썼다. 수련생들이 모두 아주 잘 썼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어떻게 썼는지 알 수 없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 법을 실증하려는 제자의 마음을 보시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중공이 수련자들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하는 사악한 행위가 세상에 폭로됐지만 진상 전단지를 입수하기 어려웠다. 펜 몇 자루를 들고 아파트 단지에 중공의 잔혹함을 썼고, 진상자료를 시내 거리는 물론 아파트 단지마다 돌렸다. 밖에 나갈 때마다 발정념을 했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두 번이나 나쁜 사람과 마주쳤지만 무사했다.
나는 비바람 속에서 20년 넘게 대법을 실증해왔다. 그 과정에서 구치소에서 박해를 받든, 바쁜 일상생활에서든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사부님께서 도와주고 자비롭게 격려해주시며 보호해주신다. 처음 구치소에 감금될 때 조금 무서웠다. 경찰이 내 이름을 부르며 “정부에 보호자가 있으니 하나도 무섭지 않겠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그 경찰의 입을 빌려 제자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후 5일간 단식했고 차분한 마음과 정념으로 구치소에서 나왔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그 힘든 시기에도 흔들림 없이 어떤 보증서도 쓰지 않은 것은 사부님께서 많은 난을 감당하고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제자는 사부님께 보답할 길이 없다. 오직 더 정진하고 마지막까지 견지하는 마음으로 수련하는 수밖에 없다.
생사 고비에서 대법과 사부님을 굳게 믿다
이후 큰 도시에서 근무하게 됐다. 경제 여건이 좋아지자 물질적 유혹과 안일한 마음이 나왔다. 비록 법공부와 연공은 하고 있었지만 구세력에게 빈틈을 타게 해 몇 번이나 신체적 박해가 왔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부님의 도움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법공부를 하다가 여행책도 보고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구세력은 내 그런 안일함을 보고 병업 상태가 나타나게 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어지럽고 호흡이 힘들어졌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구세력의 박해다. 인정할 수 없다.’ 의자에 앉아 계속 발정념을 했다. 사부님께서 항상 옆에 계신다는 것이 떠올라 당황하지 않았다. 사부님께 청을 올리고 1시간 넘게 버티자 증세가 사라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을 안다. 안으로 찾아보니 열심히 수련하지 않은 결과였다. 법공부와 연공을 하자 상태가 점차 좋아졌다.
그러나 집 인테리어를 하면서 다시 집착이 생기고 안일함에 빠져 두 번째 박해를 불러왔다. 아침에 음식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심장에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 왔는데 죽음의 공포도 밀려왔다. 호흡이 약해지면서 입장(立掌)을 똑바로 할 수 없었다. 오직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마음만 굳게 먹고 있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로 오직 대법의 배치에만 따를 것이다.’ 또 대법제자의 발정념은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1시간 정도 지나서 왼쪽 갈비뼈에서 뭔가 한 조각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즉시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또다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렸다. 수련은 엄숙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착실하게 자신을 닦으며 정진하겠다고 다짐했고, 세 가지 일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두려움을 돌파하고 진상을 알리다
‘공산당의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이 발표된 후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먼저 친척, 동창, 동료, 학생 등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자 대부분 응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은 학교에 신고했고, 또 일부 학부모도 학교에 전화로 항의했다. 그렇지만 평소 학교 각급 책임자들에게 진상을 잘 알렸으므로 그들이 일정한 선을 지켜 주었고 어떤 번거로움도 없었다. “좀 주의하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날 박해했던 교장은 이미 퇴임함)
이후에 다른 지방에서 근무하게 됐다. 수련생들과 연락하기도 어려웠고 밍후이 자료도 볼 수 없었으므로 컴퓨터를 샀다. 사부님께서 밍후이왕을 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자유문(프리게이트)’ 인터넷 돌파 카드를 얻게 해주셨다.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고 수련자들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켜주고 있음을 알았다. 박해당한 적이 있고 또 혼자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감히 사람들을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몇 번 결심한 후 번화가에 갔지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진상을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겨우 용기를 내 한 젊은이에게 말하자 그는 듣고 놀라 도망쳤다. 낙담한 나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전의 정념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중생이 중공에 속아 위험에 처해 있는데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은 구우주의 태도 아닌가? 반드시 후천적으로 형성된 이기심을 돌파해 사람을 구해야 한다.’ 날마다 법을 외우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두려워 입이 안 떨어질 때는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고 자신감을 주셨다. 먼저 대학생이나 아르바이트생부터 상대하기 시작했다. 중공이 도덕을 파괴하고, 전통문화를 파괴하며, 각종 정치 운동으로 박해하고 학살한 사실을 말해줬다. 그들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관심을 보였고 중공 조직을 탈퇴했다. 매일 많은 사람을 접할 수는 없었지만 상세하게 말해줬다.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젊은이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은 것이 참으로 기쁘다.
한번은 광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한 청년이 매우 흥분하며 통화하고 있었다. 잠시 옆에 서 있다가 통화가 끝나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사진 좀 찍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부탁하자 그는 사진 여러 장을 찍어줬다. 그와 벤치에 앉아 몇 마디 주고받으며 그가 방금 직장에서 해고돼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대법의 지혜로 그를 안정시켰다. 그는 차츰 진정돼 우리는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중공의 전체주의 통치, 세상의 부조리함, 대법과 사악한 세력의 박해 진상을 말해준 뒤 탈당을 권하자 그는 머뭇거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발정념을 하면서 다른 내용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함께 지하철 통로에 들어서면서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중공)의 순장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갑자기 밝은 표정으로 “그럼 할게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그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와 헤어진 뒤 집에 돌아왔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전보다 월급이 더 많은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고 했다. 그는 현명한 선택으로 복을 받은 것이다.
2020년 전염병이 시작돼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고향에는 내가 구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안일함을 버리고 오래된 셋집을 얻었다.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생활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주로 젊은이들을 상대했지만 이제는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온갖 사람들을 모두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역시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막상 얼굴을 맞대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한 마음이 또 올라왔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전염병이 창궐해 모두들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데 나만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두려움은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해야 함을 잘 알면서도 문만 나서면 정념이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어느 날 우연히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만나게 해주셨다. 함께 진상을 알릴 때 그는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일부러 나에게 밀어줬다. 이렇게 사부님의 배려와 법공부를 더 많이 하면서 두려움이 차츰 줄어들었다. 혼자 공원이나 버스정류장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진상을 알고 탈퇴해 감사를 표하는 사람, 악담하는 사람, 신고하겠다며 위협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상황과 마주쳤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뜻이고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굳게 믿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자료점도 만들었다. 혼자 편집하고 인쇄해 스티커, 인터넷 봉쇄돌파 카드, 새해 달력 등 다양한 진상자료를 만들어 배포했고 효과도 좋았다. 더 잘하는 수련생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매일 10~20여 명씩 삼퇴 명단을 올릴 때는 감개무량하다. 처음에는 감히 말도 못 붙였지만 이제는 혼자 나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당연해졌다. 모두 사부님의 보살핌과 수련생의 격려와 도움 덕분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수련의 길은 순탄치 않다. 두려운 마음도 겹겹이 제거해야 한다. 삼퇴자 수가 한동안은 많고 한동안은 적었다. 적으면 마음이 조급해지며 기분도 좋지 않았다. 어떨 때는 두 시간 내내 단 한 명도 탈퇴시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신기하게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면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탈퇴시키게 된다. 나중에 삼퇴 숫자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으로 찾아보니 원만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삼퇴 숫자를 채우지 못하면 사부님과 함께 돌아갈 수 없다고 걱정하는 이기심이었다. 사람들이 진상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내 마음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탈퇴자 수가 많은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기뻐하겠는가. 진상 활동은 사부님의 보호 아래서만 할 수 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사람들에게 전할 뿐이다. 그걸 깨달은 후 이기심을 철저히 제거했고 발정념을 열심히 했다.
진상을 알리러 나가기 전, 집에서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다. 1시간을 할 때도 있었다. 길에서 법을 외우며 안정된 마음으로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탈퇴할 때마다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 제자와 중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시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번 생에 사부님의 제도를 받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 기회를 소중히 여겨 정진하며 자신을 잘 닦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
맺음말
28년간 대법을 수련하고 사부님을 따라 20년 넘게 정법시기를 걸어온 것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사부님의 설법 ‘깨어나라’를 보면 시간의 긴박함을 느낀다. 중공 사당의 거짓말과 세뇌로 많은 사람이 진상을 몰라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많은 집착이 있다. 게으르고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은 수련자의 정진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매일 4시간 진상을 알리고, 수면은 3시간 내외, 그 외 남는 시간은 대법 일과 법공부, 발정념을 한다. 조용히 내심에서 대법에 맞지 않는 것들을 찾는다. 찾은 뒤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면 효과가 매우 좋았다. 끊임없이 정진해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서약을 실천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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