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랴오우(了悟)
[밍후이왕] 나는 올해 61세다. 2003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병이 없고 몸이 가벼웠다. 아래에 나와 가족이 대법의 혜택을 받은 몇 가지 사실을 말하겠다. 특히 남편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로 살아남았다.
1963년, 나는 허베이성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나와 오빠, 동생을 고생스럽게 키우셨다. 비록 그때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1980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나중에 간암이 생겨 1년 후 세상을 떠나셨다. 그해 나는 19살이었고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머금고 잠들곤 했는데 자주 꿈에서 울다가 깼다. 어느 날 밤 나는 아주 생생한 꿈을 꿨다. 하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선녀가 내려오는 꿈이었는데 나는 너무 기뻐서 “엄마, 엄마, 드디어 엄마가 생겼어요!”라고 외쳤다. 그때 깨어났는데 알고 보니 꿈이어서 또 한바탕 울었다. 지금까지도 이 꿈을 나는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법을 배운 후에야 나는 내 진짜 어머니가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편두통, 고혈압, 심장병, 고지혈증, 신장병, 류머티스 관절염 등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렸다. 나는 결혼 후에 또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아 매일 싸웠다. 임신 중에 나는 온몸이 풍선처럼 부었지만 남편은 본체만체했으며 언제나 나 혼자 병원에 검사하러 다녔다. 아이를 낳을 때 5일을 입원했는데 꼬박 5일간 잠을 자지 못했더니 나중에 심한 불면증이 생겨 수면제를 다섯 알이나 먹어도 소용없었다.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고 성격도 나빠졌다. 이런 날이 언제 끝날지 늘 생각했으며 때로는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아이가 불쌍해 시도하지 못했다.
내가 절망에 처했을 때 전환기가 왔다. 2003년 9월 3일 오후, 대학에 합격한 조카딸을 축하하려고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오빠 집에 갔다. 오빠와 언니는 모두 대법제자로서 1996년에 법을 얻었다. 나는 오빠네 집에 도착해 그들과 함께 사부님께서 지난(濟南)에서 하신 설법 녹음을 들었는데, 잠시 듣고는 졸음이 쏟아졌다. ‘무슨 일이지? 왜 이렇게 졸릴까?’ 여태껏 없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정신이 또렷했는데 유독 나만 졸려 했다. 이렇게 나는 한 시간 동안 흐리멍덩하게 들었는데 다 듣고 나니 기운도 나고 졸리지도 않아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역시 피곤하지 않았고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너무 신기하다.’ 나는 흥분한 마음으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너무 신기해. 온몸의 병이 모두 없어져서 꿈만 같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죽어도 믿지 못했을 거야.” 오빠와 언니들은 일찍이 나에게 대법서적을 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보지 않고 7년 시간을 헛되게 낭비했다. 어쨌든 지금 나는 만고에도 얻지 못할 대법을 얻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법을 얻은 후 내 신체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겼고 성격도 좋아졌다. 나는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남편을 잘 대하고 보살피고 배려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남편은 내 변화를 목격하고 대법에 공감하며 내 수련을 매우 지지했다. 때로는 나를 도와 진상자료를 배포하거나 스티커를 붙이며 진상도 알리고 수련생을 잘 대해준다. 내가 박해를 받고 노동수용소에 있을 때도 원망하지 않았고 언제나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몸에 지니며 매일 ‘9자진언’[九字真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을 외웠다.
2012년 겨울, 난방을 하기 전인지 후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집이 너무 추워서 몇 년 전에 남겨둔 연탄에 불을 붙였다. 새벽 2~3시가 되어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 했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토할 것 같아서 즉시 남편을 불렀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남편은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쓰러졌고 인사불성이 됐다.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남편을 불렀지만 아무리 해도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나는 가스 중독임을 알았다. 나는 얼른 사부님께 남편을 구해달라고 부탁드린 다음, 아들을 불러 함께 남편을 침대에 올려놓고 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그 과정에서 나는 줄곧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다. 이윽고 남편이 깨어나서 우리는 함께 ‘9자진언’을 외웠다. 잠시 후에 남편은 많이 좋아졌다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5시가 넘었다. 아침 7시 15분에 그는 일어나서 괜찮으니 출근해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머리가 아프지 않은지,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조금도 괴롭지 않다고 했다. 나도 괜찮았다. 그제야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 둘을 구해주셨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렸다.
남편의 직장은 고압 스위치 캐비닛을 생산하는데 그는 주로 회로 검사를 담당한다. 매번 회로를 점검할 때마다 두 사람이 함께 갔지만 그날은 남편 혼자서 갔다. 남편이 쪼그리고 앉아 회로판을 만지자마자 두 손에 즉시 전기가 흘렀다. 게다가 손을 잡아당길수록 더욱 팽팽하게 끌려갔다. 전류는 왼팔에서 오른팔로 흘렀다. 순간 남편은 전류가 심장을 통과했으니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 남편은 뒤로 넘어졌고 기절해 바닥에 쓰러졌다가 한참 후 의식을 되찾았다. 마침 동료가 와서 남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남편은 자초지종을 말했다. 나중에 조사한 결과, 직장에 새로 온 한 대학생이 회로판을 잘못 연결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직장 상사는 남편 마음씨가 좋은 것을 보고 염라대왕조차 남편을 데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당신 사부님께서 목숨을 또 구해주셨어.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 거야!” 정말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었다!
또 한번은 업무 중에 남편의 실수로 새끼손가락이 절단되자 다른 손으로 새끼손가락을 꽉 잡았다. 몇몇 동료들이 재빨리 남편을 시병원으로 보냈지만 시병원에는 환자가 많아 다시 재빨리 관도국(管道局) 병원으로 옮겼다. 그날은 삼복이어서 날씨가 유난히 더워 기다리기 힘들었다. 의사가 보니 손가락 상처가 가지런하지 않아 다시 칼로 가지런히 다듬고 나서 약을 발랐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저녁에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니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내가 “마취약 기운이 지나가면 좀 아플 거예요. 열 손가락은 다 심장에 연결돼 있으니까요”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계속 ‘9자진언’을 읽었기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16일을 쉬고 출근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남편의 동료가 비슷한 사고를 당했는데 가운뎃손가락을 다쳐서 2만여 위안(약 380만 원)의 치료비를 쓰고 두 달 넘게 쉬었고 아파서 날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겨우 1천여 위안(약 19만 원)의 치료비를 썼을 뿐만 아니라 조금도 아프지 않았는데 바로 대법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언어를 다 써도 사부님에 대한 제자의 감사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제자는 오로지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세 가지 일을 열심히 잘하고 중생을 많이 구해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다.
원문발표: 2023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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