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머니 수련생이 세상을 떠나신 후 나는 정 속에 빠져서 소침함과 고통, 깊은 후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머니를 돌보느라 장시간 법을 잘 배우지 못해 심성도 따라서 떨어졌다. 그러자 사악(邪惡)이 호시탐탐 날 노렸고 주변에서 가장 친한 수련생 A를 이용해 날 비난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내 문제점을 한 무더기 지적하면서 날 나무랐다. 이전의 내 장점도 단점으로 변했고, 마지막에는 발정념할 때 침 넘기는 것, 법 읽는 것도 그녀를 교란한다고 했는데, 법공부가 끝나고 함께 다니면 남들이 우리가 사이가 좋은 줄로 여길 테니 같이 다니지 말자고 했다. 결국 그녀는 나와 말하기도 싫고 보기도 싫으니 더 이상 함께 다니지 말자고 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그녀에 대한 정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왜 곤경에 처한 날 도와주지 않지? 나는 정말 그녀 말처럼 그렇게 형편없을까? 난 정말 그녀 말처럼 실패작일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의기소침해 있을수록 그녀는 더욱 날 마음이 들어 하지 않았고 더욱 날 비난했다.
내가 실망하고 괴로워하며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부정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다른 한 수련생을 통해 날 깨우쳐주셨다.
어느 날 나는 B의 집에 갔는데 그녀는 기뻐하며 아들이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했다. 나도 매우 기뻐하며 근황을 물었다. 그녀는 흥이 나서 아들이 입학하는 과정을 말했는데, 그녀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마음이 매우 괴롭고 심란했다. 즉시 그녀 집을 떠나고 싶었고 다시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매우 놀랐는데 즉시 인식했다. 나는 평소 그 아이를 걱정하고 아꼈다. 그 아이가 학원을 개원할 때 나는 매우 지지했고 그 아이가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도록 내 아들을 그의 첫 번째 학생으로 보냈으며, 이후 학생 두 명을 더 소개해줬다. 나는 그가 사범대학을 나오지 않아 수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내 아들을 그의 첫 번째 학생으로 맡겼다. B의 아들이 개원하는 날 나는 축의금을 주며 격려했다. 나는 내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몇 초간 멍해졌는데 ‘질투’라는 두 글자가 내 머리에서 떠올랐다.
2020년 전염병 기간, 아파트단지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사람들에게 긴장되고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그날 밤, 나와 B는 한 팀이 되어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전날 막 봉쇄된 아파트에 가서 단지 절반에 배포했다. 돌아온 후 B는 이번 전염병이 많은 사람을 도태시킬 것 같다며, 모든 중생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맨 위층까지 자료를 배포했다고 했다.
이튿날 나갈 때 사존께서 에너지를 주셔서 내 몸의 매 세포가 격동되고 기뻐했다. 우리 둘은 정정당당하게 아파트단지를 걸어 나왔는데 차에서 지키던 사람도 막지 않았다. B가 어떻게 돌아갈지 물어서 나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자고 말했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B에게 우리 두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뒤에는 위풍당당한 천병천장(天兵天將)과 호법신(護法神)이 있다고 격려했다. 왠지 모르게 그때는 마음이 크게 격동됐다. 한 아파트단지에 이르자 우리는 대범하게 바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경비원도 우리를 막지 않았다. 나는 B 몸에 있는 눈을 털어줬다. 장쩌민을 고소할 때의 마음처럼 장엄하고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B를 보면서 조급해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말한 후 집집마다 자료를 배포했는데 마음이 평온하고 전혀 힘들지 않아 전날 상태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사부님께서 에너지를 주신 것을 알았다. 돌아올 때도 막힘없었다.
그런데 B가 갑자기 화가 잔뜩 나서 내가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그녀를 무시했다며 다른 수련생에게 말했다. 원래 다른 아파트단지에도 가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날 부르지 않았다. 그 이후로 B는 날 멀리하고 배척했으며 점점 냉담해졌다. B의 아들이 대학원에 합격한 장면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모든 것이 우리의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B에게 그녀의 몇 가지 질투가 담긴 표현을 말했는데 그녀는 왜 이제야 말하냐고 했다. 나는 우리 둘이 사이좋을 때는 몰랐는데 최근 깨달은 거라고 했다. 나는 함부로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야 했고 내 인품에는 문제가 없었다. 순간 마음이 확 트이고 즐거웠다. 마침내 마음의 매듭을 풀었다.
동시에 큰언니(수련생)는 나를 많이 포용하고 이해해줬으며 나에게 한 생명이 다른 한 생명을 감화시킨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주인이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늪에 빠졌다. 주인은 구할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떠났다. 이 말은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한 무리 말이 와서 이렇게 좋은 말이 늪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말의 우두머리가 심사숙고한 후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구할 수 있을지는 이 말의 운명에 달렸다고 했다. 우두머리 말은 형제들에게 말을 전부 데리고 와서 기슭에서 늪에 빠진 말을 둘러싸고 있는 힘을 다해 뛰라고 했다. 늪 속에 있는 말은 말 무리의 감화를 받고 세 번 노력한 끝에 마침내 늪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바로 늪에 빠진 말과 같았다! 큰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나에게 큰 감동을 줬고 나는 꼭 분발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큰언니에게 감사드린다.
그 시기 나는 매우 힘들었다. 내 인품에는 문제없다는 것을 깨닫자 열등감으로 묵묵히 A의 꾸짖음을 참던 데에서 반대로 그녀의 언행을 지적해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수련 상태는 좋았다가 나빴다가 했다. 여동생(수련생)은 “언니는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표면에 드러나 있어”라고 말했다.
동시에 진정으로 어머니(수련생)를 돕지 못한 날 자책했다. 우리 세 자매의 효성은 의료진과 환자 및 환자 가족을 감동시켰고 어머니의 형제자매와 조카들을 감동시켰다. 어머니 친정에서도 감동해 어머니를 끝까지 돌봐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렸다. 그러나 나는 깊이 후회했다. 잘 수련하지 못해 사부님께서 어머니에게 연장해주신 생명을 놓친 내가 미웠다. 수련생이 부모님을 도와 병업관을 넘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매우 괴로웠고, 어머니의 생명력이 매우 강하다고 한 의사의 말이 생각나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말의 진정한 뜻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는 것 같았다. 4개월 동안 어머니는 몇 번에 걸쳐 병원에 총 70여 일을 입원하셨는데 나는 전력을 다해 정념으로 어머니를 돕지 못했다. 한 손은 신(神)을 잡고, 한 손은 정(情)을 잡고 있었으니 수련을 너무나 못했다. 내 후회는 너무 늦어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유감이 됐다.
다행히 내 유감이 주변 수련생의 심금을 울려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수련생)를 법공부 장소에 끌고 나왔다. 나는 노년 수련생과 법공부하면 종종 어머니가 생각나 때로는 울어서 법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사부님, 저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면 법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정말 무엇이 두려워하면 그것이 왔다. 붙잡으려고 할수록 붙잡지 못했다. 자신이 고립되고 배척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면 정말 그런 상황이 왔다.
어느 날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납치되자 큰언니가 나에게 집에 며칠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집에 있으면서 나는 완전히 깨어났다. 나는 정 속에 빠져 소침해 있어서는 안 되고 정의 교란을 받아 이성이 흐려져선 안 된다. 반드시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나는 강대하고 확고한 일념을 내보냈다. 나는 이전의 흐리멍덩한 ‘가짜 나’가 되고 싶지 않다. 이전에 나는 단순한 사람이 수련하기 쉽다고 여겼다. 수련생들도 나에게 사람 마음이 적다고 했고 나도 의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적다고 우둔한 건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내가 문제의 한쪽 면만 본다고 지적했는데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면 대법제자는 총명해질 수 있다. 나는 법에서 지혜와 이성을 닦아내고 ‘진짜 나’로 자신을 지배할 것이다. 나는 교활함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이 강대하고 확고한 일념을 내보낸 후 우선 법공부 태도를 바로잡았다. 혼자 집에서 법을 배울 때 읽는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없고 다른 수련생이 방해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최대한 마음에 닿게 천천히 법을 배웠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워 예전에 날 화나게 하고 짜증 나게 한 많은 일을 천천히 내려놓았고, 현재 층차 표준의 요구에 따라 다시 수련했다. 나를 새로운 단계로 내딛도록 절묘하게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자아를 실증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찾았다. 그때 나는 수련생들이 날 무시하고, 오해하며, 고립시키고, 배척할까 봐 두려워 항상 어디를 가든 해명했다. A는 내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뻔뻔스러워 남들이 오해하기 쉽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면 그대로 믿어서 날 만나는 사람은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상대를 믿는 것에 익숙했는데 비난을 받으니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 A와 나는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법공부 팀에서 나는 항상 조심스럽게 해명하려 했다. 두려운 마음과 자아를 수호하는 마음을 갖고 말하니 남들은 듣고 무슨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무시당하고, 배척되고, 고립될까 봐 두려웠다. 그때의 나는 매우 연약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집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의존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이곳에 돌아와서는 특히 A에게 의존했다. 지난 몇 년간 그녀가 한 말을 나는 의심한 적이 없었고 일이 있으면 그녀를 찾아가 결정해달라고 했다. 이제 그녀가 없으니 나는 생활할 줄 몰랐고 외롭고 무기력하고 억울했다. 평소 자주 연락한 사람은 법공부 팀의 그 A와 B 수련생이었다. A가 또 나를 배척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자 고립되고 배척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것이 너무너무 두려웠고 이 마음이 매우 강했다. 이 두려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법공부 팀에 변동이 생겨서 날 부르지 않아 비롯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침체기에 있었고 잇따른 충격으로 고독하고 우울했으며 외롭고 무기력했다. 감당력이 극한에 달했고 그때 사악이 날 망치려 했다.
큰언니의 포용력과 지혜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나는 큰언니가 나를 인정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표현하고 싶을수록 마음이 더 무거웠고 더 이상해 보였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장기간 벗어나지 못하자 날 크게 일깨워주셨다. 사부님의 안배는 가장 좋은 것이다. 주이스(主意識)가 강하고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며, 법에서 수련한 정념으로 자신을 지배하고, 대법에서 수련한 이성과 지혜로 다른 수련생에 대한 의존과 정을 완전히 내려놓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법공부 팀을 찾지 않고 모든 것을 사부님의 안배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수구가 중요하다. 수련생마다 각도가 다르고 층차가 다르기에 이해도 다르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행동으로는 심층을 알 수 없다. 정념을 예를 들면, 진정한 정념인지 속인의 담력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뒤에서 어떤 수련생에 대해 말할 때 그 수련생을 긍정적으로 일깨워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것인지, 서로 다른 수련 경지에서 한 말은 표현한 심층의 뜻도 다르기에 일률로 논할 수 없다. 층차마다 서로 이해가 다른데 분명하게 해석하지 못하면 집착이 되어 간격을 조성하기 쉽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수련생의 세 가지 일을 지체할 수 있다. 안전에 대한 주의는 법에서 수련해낸 정념이 있어야 하고 사람의 이성과 지혜가 결합되어야 한다. 아무튼 수구는 너무나 중요하다.
나에게는 날 지적하는 말을 싫어하고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 환희심과 체면 때문이다. 체면 뒤에는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은 또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과 관련 있었다. 나중에는 쟁투심도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과연 쟁투심도 있었다. 사실 이런 마음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질투심의 뿌리는 결국 이기심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마디 말을 하고 싶다. 몇 년 전 우리 팀 수련생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팀도 어떤 이유로 해체됐다. 그 과정 중에 나는 질투심을 분명히 알게 됐다. 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이 질투심에서 일어난 것이고 질투심이 근원임을 발견했다. 그때 수련생은 나에게 질투심에 대한 인식을 쓰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질투심을 닦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이 생각했다. 질투심은 여기저기에 뻗친 가지처럼 너무 복잡한 것 같았다. 당시 수련생들은 그 사건에 관심이 있었을 뿐 내가 깨달은 질투심의 표현과 근원에 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여동생(수련생)은 처음에는 원망하고 쟁투하는 마음으로 내 말을 막았다. 한번은 내가 “네가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불공평해 하고, 원망하며, 억울해하고,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질투심이야”라고 말했더니 여동생은 마지못해 “언니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겠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동생이 이렇게 인정하자 질투심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이후 자신의 질투심이 하늘을 뒤엎듯이 전부 드러났다고 했다. 여동생은 놀랍게도 이 2년간 잘 넘지 못한 고비의 뿌리가 모두 질투심이라는 걸 발견했고, 수련에서 장기간 존재했던 집착을 많이 돌파할 수 있었다. 나중에 여동생은 현지 수련생과 이런 인식을 교류했다. “이것은 언니의 인식이고 깨달음인데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한 달 후 여동생이 수련생 집에 갔는데 그 수련생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 여동생은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그 수련생의 변화는 너무 컸어. 정말 많이 변했어.”
이 원고를 쓰는 과정에 나는 꿈을 꾸었다. 교실에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8강을 읽으라고 하셨다. 남편이 먼저 읽으려 했는데 책을 잘못 가져왔다. 나는 내 책을 남편에게 건네주면서 몇 마디 원망했더니 남편은 나와 싸웠다. 교실에서 나와 창밖에서 쳐다보았는데 한 수련생이 남편을 나무라는 것을 보았고 남편이 그녀를 때리려 했다. 나는 급히 교실에 들어가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깨어난 후 나는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던지 생각했는데 반나절 생각해서야 ‘왕셴보(王顯波)’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내가 과시하고 있나?’[역주: 중국어로 과시는 ‘顯示’다.] 사부님께서 있다고 하시면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원래 환희심도 과시심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마터면 이 과시심을 빠뜨릴뻔했다. 현재 내 층차에서 고비를 넘고 제고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좀 깨달았다고 과시하는 마음이 확실히 존재했다. 나는 환희심이 있었고 자신을 실증했으며, 당연한 귀결을 자기의 공적처럼 여겼는데 사존께서 나에게 과시심도 닦으라고 일깨워주신 것이다.
사부님의 보호로 저는 역경 속에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마침내 그 힘든 노정을 돌파했습니다! 이렇게 큰 법이 있고 이렇게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기에 저는 합격한 제자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줄곧 나와 함께 해주신 수련생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3년 4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4/7/450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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