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한샤오(韓笑)
[밍후이왕]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전화로 진상을 알릴 때 탈당을 권하거나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바로 전화를 끊는 경우가 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경험을 통해 나는 이 방면에서 약간의 깨달음이 있다. 자신의 부족한 경험으로 더 좋은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글을 적는다.
1. ‘이기적’에서 ‘이타적’으로 변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부족한 경우는, 흔히 당신이 조급해하면서 머릿속에서 어떤 일을 빨리하려 하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기에 다른 집착이 나타나서 조성된 것이다. 사실 많은 일을 당신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하고 온화하게 이야기하며 이지적으로 대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지혜가 샘물처럼 흘러나올 뿐만 아니라, 구절마다 요점을 말하며 구절마다 진리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집착하고 조급해하면서 매우 강렬한 무슨 마음이 있기만 하면 지혜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그때 당신은 또 사람 여기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되도록 정념으로, 되도록 수련인의 상태로 하면 효과가 매우 좋을 것이다.”[1]
사부님 말씀과 대조해 보면 나는 탈퇴 인원을 중시하며 일에 대한 집착심, 조급한 마음, 과시심, 쟁투심,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등 집착이 있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상대방을 위해 생각할 수 없었기에 늘 지혜가 부족했다.
톈안먼에 가서 대법을 위해 호소하다가 파출소로 잡혀갔을 때 경찰이 “당신들은 왜 자꾸 톈안먼에 오려고 합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몸이 좋아졌고 사람 됨됨이를 알게 됐습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됐고 성격도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은 “이런 것을 말해 뭘 합니까? 정부에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모릅니까!”라고 호통쳤다. 구치소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아 같은 대답을 했지만 내 대답은 여전히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RTC 플랫폼에서 전화할 때 한 캐나다 수련생을 알게 됐는데 그녀도 톈안먼에 가서 법을 실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경찰을 찾아왔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경찰은 자신들을 왜 찾느냐며 몹시 의아해했다. 그녀는 말했다. “여러분은 시민의 경찰 아닌가요? 여러분은 정부에 보고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애초에 사람들이 예수님이 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정부가 파룬궁이 불가(佛家) 수련 법문이고 사람들에게 덕을 중시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며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을 안다면 탄압하지 않았을 거예요. 여러분은 상황을 정부에 보고할 책임이 있기에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경찰은 듣고 깨달은 듯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련생의 대답과 비교해 보면 수련 후 심신의 혜택을 받은 것을 경찰에게 계속 이야기한 것은 자신을 위하는 각도였고, 이 수련생의 대답은 경찰에게 상황을 정부에 보고할 책임이 있다고 알리는 것으로 남을 위하는 각도였다. 경찰과 정부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부처수련이고 사람들에게 덕을 중시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며 정치와 무관하기에 탄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는데 구구절절 요점을 말했다. 이것이 지혜로 진상을 알린 게 아닌가?
이 사례는 날 감동시켰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생사를 내려놓고 톈안먼에 가서 법을 실증한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했고, 경찰에게 정의롭고 당당하게 대법을 알렸는데 여기에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내 상태는 이기적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찰을 악으로 간주했기에 그들과 항쟁하면 할수록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 당시 정경이 눈에 선했고 이 수련생의 경험은 날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타적인 각도로 생각하고 개인의 관념이 없이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면 상대방에게 진상을 더 잘 알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기적인 각도에서 이타적인 각도로 바꿀 수 있는가? 내가 현 단계에서 이해한 것은 학교 수업으로 비유하면 ‘선생님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에서 ‘그가 무엇을 들으려 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진상을 알릴 때 ‘주관’에서 ‘객관’으로의 내적 전환을 중시해야 하는데 이것도 ‘이기적’에서 ‘이타적’으로의 수련 과정이다.
2. ‘어려움’이 ‘쉬움’으로 바뀌다
진상 알리기를 막 시작했을 때는 마치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아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탈당하면 독을 없애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중공은 역대 운동으로 8천만을 죽였습니다”,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은 하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등을 말하면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하고 진상을 믿지 않으며,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고 당을 반대한다고 오해해 늘 전화를 끊거나 욕을 하거나 신고했다.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화제에 접어든 그 시점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갑자기 “당신은 당원인가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민감해지면서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있다. 만약 반대로 “당신은 당원이 아니지요?”라고 물으면 그렇게 민감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먼저 “당신은 중학교 때 단원에 가입했지요?” 혹은 “그럼 당신은 직장에서 입당하지 않았지요?”라고 묻는다. 이러면 자연적으로 계속해 삼퇴에 관해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첫마디를 “호랑이해라 인심이 흉흉했어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바로 끊는다. 단어 사용이 부정적임을 깨닫고 다음 전화에서 말을 바꿨다. “호랑이해의 흉흉함이 다 지나갔으니 토끼해는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면 전화를 끊는 경우가 적었다.
어떻게 진상을 알리는 ‘어려움’을 ‘쉬움’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화를 많이 걸고 원고를 더 익히는 것 외에,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어려운 문제를 분석해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갈수록 쉬워질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 ‘분신자살 조작사건’을 말할 때 의문점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하면 상대방은 믿지 않는다. ‘분신자살 조작사건’을 잘 설명하기 위해 나는 매일 전화로 연습하고 반복적으로 테스트한 후 비교적 설득력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1. 경찰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믿지 않는다. 1분 남짓한 시간에 20개 소화기를 가져오는데 소화기를 메고 순찰하는 경찰이 어디 있는가? 2. 의사에게 보여주면 믿지 않는다. 화상 환자를 거즈로 감싸는 것은 의학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3. 카메라맨에게 보여주면 믿지 않는다. 분신 장면을 너무 전문적으로 찍었는데 갑자기 발생한 일인데 이렇게 전문적으로 찍을 시간이 어디 있었는가? 경찰, 의사, 카메라맨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중생에게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이런 구체적인 인물들을 언급하면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3. ‘주관’에서 ‘객관’으로 바뀌다
편집 교육을 받을 때 편집장은 항상 진상을 알리는 문장은 객관적인 보도여야 설득력이 있다며, 주관적인 보도는 안 된다고 세 번이나 강조했다.
어떤 사람은 늘 주관적이어서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중공은 마귀이고 죄악이 하늘을 찌르기에 하늘은 중공을 멸하려 합니다. 빨리 삼퇴하세요”라고 말한다. 문장을 편집할 때 ‘중공은 마귀다’라는 결론은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먼저 중공이 어떤 사악한 일을 했는지, 사실을 예로 들어 분석하고 당사자,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야지 편집자는 주관적으로 발언할 수 없다. 편집자의 책임은 누구를 선택하고 어떤 발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래야 보도의 진실성을 나타낼 수 있다.
중공의 사악함과 살인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잘 아는 시대로부터 파고들어 70~80년대 사람이라면 그들과 함께 추억한다. “당신은 89년 6.4 학생운동(천안문 사태)을 기억하지요. 대학생들이 부패 척결에 나선 게 잘못인가요? 덩샤오핑은 오히려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렸고 ‘20만을 죽이면 20년의 안정을 바꿔올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들을 총살했어요.” 그리고 “학생은 나라의 기둥이고 당은 어머니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총을 쏠 수 있나요? 말해보세요, 공산당이 무섭지 않나요?”라며 상대방을 사고하게 인도한다. 중공의 역대 운동에서 8천만 중국인을 죽였다는 것과 분신자살 사건이 가짜라는 것을 말하고 생체장기 적출에 대해 말한 다음 다시 그에게 묻는다. “이래도 공산당이 좋다고 할 수 있나요?” 사실 진상은 상대방의 양심을 건드려 선택하게 할 수 있다. “원래 중공이 이렇게 나빠서 천벌을 내리려 하는군요. 중공에서 탈퇴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천멸중공(天滅中共)’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주관적인 추측의 의미가 있다. 만약 “해외 큰 퍼레이드에서 많은 현수막과 표어에 ‘천멸중공’ , ‘공산당이 없어야만 신중국이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것은 전 세계의 민심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말하면 비교적 객관적이어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쉽다.
그 외에 반문을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사고하게 하고, 주관을 피하게 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장쩌민이 죽었는데 왜 많은 사람이 기뻐하는지 아시나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모두 기뻐한다’라는 화제로 장쩌민의 부정부패를 말할 수 있다. “공산당이 이렇게 부패한데 공산당이 좋다고 할 수 있어요?”라고 반문해 상대방이 공산당이 괜찮은지 사고하게 한다. “중국공산당도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구소련처럼 하루아침에 해체되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해 주관적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한다. “장시(江西)성 즈위안(致遠)고등학교 학생 후신위(胡鑫宇)가 갑자기 실종된 거 아시죠? 근데 100여 일 후에 경찰은 자살했다고 하는데 믿어지세요?”라고 말해 자신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상대방이 대답하게 한다.
4.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다른 점은 잠시 보류한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늘 여러 신분의 사람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정말 중요한 점은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다른 의견은 잠시 보류하는 것이다. 설령 상대방이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더라도 반박하고 교육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좋은 점은 개별적인 문제에서 논쟁에 휘말려 언쟁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화를 계속 진행해 상호작용해야만 비로소 거리를 좁힐 수 있고 기회를 만들어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경험 많은 조타수가 암초를 피해 항로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자아를 버리고 타인을 위하는 기점에 서는 것이기도 하다. 아래에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1) 이치를 따지고 고집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당신은 생각이 있고 자신의 관점을 갖고 있네요. 저는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존중해요”라고 긍정해주고 상의하는 말투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관념을 강요하지 않으며 “제가 하는 말이 일리가 있는지 토론해 봅시다”라고 말한다.
2) 나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은 깡패라고 하면 그것도 긍정해줄 수 있다. “당신은 정의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며 불평불만 하시는군요. 당신과 중공을 비하면 중공은 8천만을 죽였는데 공산당이야말로 진정한 깡패입니다”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인정을 받아 깜짝 놀라며 “당신은 형제네요, 탈퇴할게요”라고 말한다.
3) 욕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솔직한 성격으로 스스로 도리에 어긋남을 곧 알게 된다. 나는 “이해해요. 당신은 무신론을 믿잖아요.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얘기하세요. 저는 당신이 이성적인 사람이고 자신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을 매우 존중합니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알리려는 진상을 말한다.
4) 당과 나라를 구분하지 못하고 애국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보다 더 애국한다는 뜻을 미리 밝히면 의혹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염황(炎皇: 중국의 시조인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지요. 저는 중국을 사랑하고 중화문화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사랑하지 않아요. 공산당은 중국의 것이 아니고 그것의 선조는 마르크스이며, 마르크스는 사탄교를 믿기 때문이지요.”
5. 반복적으로 단련해 자아를 돌파하다
매번 션윈을 볼 때마다 감동하는데 션윈 출연자들의 뛰어난 연기에다 그들의 수련 상태가 더해져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사람을 구하는 힘도 아주 크기 때문이다. 성공의 이면에는 션윈 출연자들의 평소 고된 훈련이 담겨 있다. 속인들은 “무대 위 1분은 무대 아래 10년의 노력의 결과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데도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 사람마다 다른 속마음을 갖고 있는데 진상을 알리는 원고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겨냥할 수 없다. 매일 고민하고 수정해야 하며, 어떤 용어와 말투가 자신의 스타일에 적합한지 끊임없이 테스트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원고는 수련생들의 좋은 경험들을 자신의 언어와 체험으로 바꾸어 자신의 방식에 융합시킨 것이지 기계적으로 베낀 것이 아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부정적인 것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 상대방의 반감을 사지 않아 공산당의 사악함을 깊이 있게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이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전화한 시간이 길어지면 때로는 고유한 패턴을 형성하는데 속인 중의 습관처럼 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정성을 다해 노력하면 왜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는지, 왜 듣고 싶지 않아 했는지, 어떻게 돌파하는지 매일 헤아려보면 달라진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2]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소망이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실 것이다. 전화하는 많은 수련생이 이런 신기한 경험이 있지만 전제는 우리에게 이런 소망과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교류하면서 “오늘 전화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전화를 끊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라거나 “상대방의 태도가 너무 좋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사실 모든 수련생마다 이런 상황을 만나는 건 아니다. 이전에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은 늘 듣다가 전화를 끊곤 했는데, 나는 다 말하지 못한 것이 매우 유감스러웠다. 한 수련생이 일깨워줬다. “당신의 전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량하지만 상대방의 반응도 고려하면 좋겠어요.” 나는 듣고 뜨끔해져서 끊임없이 재생해 들으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왜 그가 끝까지 듣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결국 자신이 준비한 원고를 상대방에게 ‘주입’하는 데만 급급했고 상대방의 느낌과 반응을 무시한 것을 발견했다. 비록 상대방이 삼퇴를 해도 중공의 사악함과 대법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구원됐다고 할 수 없다.
진상을 알리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자신이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이지 않은지 찾아보고 관념을 내려놔야 한다. ‘내가 뭘 말할 것인가?’에서 ‘그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로 바꾸고 멈춰서 그가 받는 느낌을 살펴보고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치가 있는지 함께 토의해봐요.”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당신은 무신론을 믿잖아요. 저는 자신의 관점이 있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을 매우 존경해요”라는 등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이해해주고 ‘이타’의 기점으로 상호 작용해야 한다. 상대방이 잠시 의사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대법의 아름다움을 상대방에게 남기는 것도 실제로 자아를 내려놓고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수련 과정이다. 노력하면 성공하기 마련이라고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하고 수련으로 자신을 바로잡으면 전화 거는 효과가 점점 좋아질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3년 3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3/22/4575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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