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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길을 밝혀준 ‘진선인(真·善·忍)’

글/ 중국 후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대법(파룬궁)을 얻어 매우 기뻤다. 수련한 후부터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다. 나는 병약하고 내성적이며 시시콜콜 따지고 교활한 사람에서, 마음이 넓고 남과 따지지 않으며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선량한 사람이 됐다.

나는 환경미화원이다. 수련하기 전에는 일할 때 늘 게으름을 피웠다. 도로 구간을 청소했는데 늘 청소하다가 잠깐 앉아 쉬고 싶었다. 한번 앉으면 움직이지 않았는데 자주 적발돼 월급이 깎였다. 그런데 파룬궁을 수련하고부터는 월급이 깎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러 번 상사의 칭찬을 받았다. 한번은 상사가 조사하러 나왔는데 당시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갔다. 그는 한 바퀴 돌아보고는 나만 청소를 하고 다른 직원들은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회의에서 올해 모범직원으로 날 뽑았다.

이후에 우리 팀은 두 사람이 한 장소를 맡았다. 한 동료는 아무도 그녀와 짝을 이루길 싫어해서 내가 나서서 그녀와 짝이 됐다. 도로 구간을 나눌 때 팀 직원들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가장 청소하기 어려운 구간을 줬다. 그 구간에는 야시장 바비큐가 있어서 쓰레기가 많았으며 비바람이 불면 나뭇잎과 나뭇가지도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수레에 담긴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우리 둘이 끌 수 없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강풍이 부는 날이었다. 강풍이 불어 쓰레기가 많아질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 동료들은 원래 그녀에게 어려운 구간을 시켜 조롱하려 했지만 우리는 갈수록 협력을 잘했다. 나중에 상부에서 우리가 청소한 구간을 모범 사례로 선정했다. 상사는 다른 직원들에게 우리에게서 배우라고 했으며 내 사진이 게시판에 몇 년간 걸려 있었다. 나는 수련인이기에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해야 한다. 나는 일하면서 고생과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심껏 했을 뿐이다.

한번은 상부에서 조직한 청소 대회에 참가했는데 며칠간 준비 작업을 했다. 대회 당일, 나는 한참을 기다리다가 시작 소리를 듣고 대회장에 출전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동작이 빨라서 스톱워치를 누르는 사람도 어리둥절하게 날 바라보다가 누르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청소를 거의 다 마쳤다. 그는 시간을 추정했는데 내 실제 청소 시간은 아니었다. 이후에 결과가 나왔을 때 1등과 1분 차이도 나지 않았다. 당시 속으로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 스톱워치를 누르는 사람도 미안하게 생각해 내게 다시 한번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됐다고 했다. 나는 2등상을 수상해 1천 위안을 받고 기술전문가 증서도 받았다. 1등 상금은 3천 위안으로 급여가 한 단계 올라가고 퇴직금도 많았다. 집에 돌아온 후 상황을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왜 국장을 찾아가지 않았어?” 나는 수련인으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명성이나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나도 해내야 한다고 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순위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성격이 느린 사람이기에 무슨 일을 하든 다 느렸다. 하지만 수련한 후 끝도 없이 힘이 솟아오르듯 활력이 넘쳤고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전체 팀에게 파룬궁 수련인은 좋다는 걸 목격하게 했다. 어느 날 작업할 때 물건을 한 봉지 주워 열어보니 100위안짜리 지폐가 여러 장 있었다. 당시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부서에 돈을 맡기려 했다. 결국 반장이 와서 나는 그에게 맡겼다.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을 상사에게 건네주세요.” 나중에 그는 연말에 팀 내 16명 직원에게 그 돈을 100여 위안씩 나눠줬다. 나는 반장에게 왜 상사에게 맡기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맡겼는데 그들이 횡령하지 않아서 직원 복지 비용으로 썼다고 했다. 이 일은 나중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기초를 다져 놓았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나는 요금징수 부서로 전근됐고 나중에 관리인이 됐다. 어떤 사람은 주민들의 청소비든 개인 사업자들의 청소비든 현금만 받고 영수증은 주지 않으며, 심지어 간부들이 소방 비용을 200위안으로 책정했는데도 500위안씩 받아 갔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고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나는 이렇게 요금을 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영수증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영수증을 발급해 준다. 나는 여태껏 공금을 챙기지 않았다.

내가 관리인이 됐을 때도 이랬다. 이전 관리인은 개당 26위안인 수레 부속을 사고 50위안짜리 영수증을 끊었고 다른 부품을 살 때도 모두 실제와 맞지 않는 영수증을 끊었다. 상사는 장부를 상세히 보지 않았고 어쨌든 가져오기만 하면 서명해줬는데 그녀가 때때로 상사에게 먹을 것을 사다 줬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진선인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 돼야 했다. 나는 가격만큼 청구했다. 게다가 때로는 돈을 보태 직원들에게 타이어와 부품을 배달해준다. 더운 날에는 물과 음료수를 사서 그들에게 마시라고 주는데 여태껏 결산하지 않았다. 부품을 파는 사장들은 영수증을 끊고 싶은 만큼 끊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어요. 가격만큼 적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매우 편안하다. 지금 누가 돈을 원치 않는가? 파룬궁 수련인만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두 나 같은 이런 수련인이 된다면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버지는 세 살 때부터 부모가 없어서 누나가 대신 키웠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를 소개받아 알게 됐고 아버지는 데릴사위가 됐다. 내 형제자매는 네 명으로 모두 외할머니가 키우셨다. 외할머니는 우리 네 남매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우리를 돌보셨다. 이후에 외할머니와 함께 일한 동료들은 모두 퇴직금을 받았지만 외할머니는 받지 못하셨다. 외할머니는 자식이 다섯이었는데 한 분은 외지에 있어서 외할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리지 않았고, 다른 한 분은 함께 있었으나 역시 생활비를 드리지 않았다. 남은 세 분은 한 명당 매월 5위안만 드렸는데 합하면 외할머니의 매달 생활비는 15위안(약 3천 원)뿐이었다. 우리 남매를 모두 외할머니가 키우셨을뿐더러 외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셨기에 우리집에서 외할머니를 부양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개월간 우리집에서 지내시려고 했지만 오신 지 며칠 안 되어 아버지는 억지로 우리에게 외할머니를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늘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잘 대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도 외할머니를 공경하지 않는데 나도 자라면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을 거야.’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정말 아버지를 잘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8년 부모님이 대형트럭에 치이셨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이틀을 깨어나지 못하시고 어머니는 다행히 깨어나셨다. 당시 나는 법을 얻은 지 2년이 됐는데 사부님만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빌었다. 막 이렇게 생각하자 아버지가 깨어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대법에 구원을 받으셨고 지금 두 분은 80여 세가 됐지만 건강하시다. 정말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려야 한다. 파룬궁은 아버지를 원망하던 날 아버지를 관심하고 보살피도록 만들었다. 부모님의 사시사철 옷과 냉난방 필수품은 내가 다 챙긴다. 지금 부모님은 연세가 많아지셔서 이발과 손톱 깎기, 면도, 빨래 등도 도와야 한다. 눈이 오면 장을 보고 요리를 해드린다. 딸이 때로 맛있는 것을 주면 나는 모두 부모님께 드렸고, 딸이 양말을 줘도 부모님께 먼저 양보했다. 좋은 것이 좀 있기만 하면 가장 먼저 부모님이 생각났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 덕분에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확실히 대법의 혜택을 받으셨다.

남편은 99년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할 때 아는 사람을 만나면 파룬궁이 좋다고 전했고 누군가가 붙잡아가겠다고 협박해도 이렇게 말했다. “난 두렵지 않아요. 아내가 연마해서 병이 전부 나았어요.”

남편은 왜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는가? 내가 연공하기 전에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머티즘, 위장병, 편두통이 있었고, 특히 유산 후에는 급성 맹장염으로 요통이 생겼다. 당시 첫날밤은 통증 때문에 자지 못했고 이튿날 수술 후 너무 졸려서 깊이 잤는데 날씨가 추운데 이불을 잘 덮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아팠고 팔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의사가 링거용 유리병 2개를 가져와 더운물을 채워 어깨 양쪽을 찜질해서야 통증이 완화했다. 퇴원 후 허리가 늘 아팠다. 아프기 시작하면 남편에게 주무르게 했다. 그가 때로 귀찮아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허리를 밟게 했다. 병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항을 뜨면 잠깐 통증이 덜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프기 시작하는데 늘 완치되지 않았다. 또 내 류머티즘은 어릴 때 자주 물에 잠겼던 습한 단층집에서 살아서 생긴 것이다. 때로는 다리에 쥐가 나서 한밤중에도 깼는데 오랜 시간을 지나서야 나아졌다. 파룬궁을 연마하고부터는 이런 통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또한 나는 이전처럼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로 남편과 다투지 않았다. 나는 진선인의 요구에 따랐다. 더는 남편과 따지지 않고 그를 포용하며 그에게 양보했다. 서서히 내 몸도 좋아지고 정신도 좋아졌다. 남편도 내 변화를 눈으로 봤기에 이런 공포적인 환경에서 내가 좋고 대법이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 두 가지

첫 번째는 어느 날 내가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있을 때였다. 내가 읽은 부분이 마침 금연과 관련된 부분이라 남편은 이 내용을 듣고 3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두 번째는 더욱 신기하다. 2016년 어느 새벽 4시, 내가 거실에서 연공하고 있는데 그가 일어나 용변을 봤고 5시에 내가 가부좌하고 있는데 그가 또 나왔다. 나는 생각했다. ‘왜 또 나왔지?’ 눈을 떠 보니 그는 냉장고와 탁자 중간에서 비틀거리고 있었고 나는 즉시 일어나 그를 잡아당겨 넘어지지 않게 했다. 당시 나는 그의 머리를 받치고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그의 한쪽 손발이 뇌졸중에 걸린 것처럼 수축됐다.(남편은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었음) 나는 우리집 층수가 높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남편을 어떻게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속으로 사부님께 남편을 구해주시길 청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남편의 손발이 정상이 되어 한숨 돌렸고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대략 10분쯤 지나자 남편이 깨어났다. 방금 발생한 일을 그에게 알려주자 그는 사부님께 매우 감사해했다. 그 후 그는 내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고 게다가 좋다고 말했다. 지금도 갈수록 건강하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쓴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국가와 국민에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을 가르치고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성을 향상시키며 마음을 깨끗하게 만든다. 삶의 길을 가리키는 이런 등불이 있어야 인생이 더는 막막하지 않고 의미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선량함을 택해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얻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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