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란쯔(蘭子)
[밍후이왕] 나는 몇 번의 심성관을 넘기고 수련의 엄숙함을 깊이 깨달았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2021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외지에서 돌아와 A수련생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당시 한 일반인 친구도 같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B수련생이 들어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 할 말이 많았다. B는 끊임없이 며느리의 흉을 보면서 입만 열면 며느리의 잘못을 이야기했다. 나도 그녀를 적극 거들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B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저녁 7시쯤이었는데 나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A와 그 일반인 친구는 날 데려다주기 위해 같이 아파트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때 손녀를 안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대문을 나서면서 기침이 났는데 갑자기 폐에 뭐가 걸린 것처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어서 숨이 막히고 다리가 풀리면서 곧 정신을 잃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 손녀는 내 품속에서 숨이 넘어갈 듯이 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사부님께 소리쳐 빌었다. “사부님 구해주세요! 사부님 구해주세요!” 그때 A는 한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A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까 같이 걷고 있는데 당신이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당신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보니 정신을 잃으셨더라고요. 당신이 손을 놓아서 아이도 바닥에 떨어졌어요. 저희가 아이를 안으려 했는데 아이는 울면서 할머니만 찾았어요. 그래서 아이를 당신 곁에 있게 했어요. 그리고 계속 당신 이름을 부르면서 사부님께도 빌었어요.” 나는 설명을 듣고 사부님께서 날 보호해주신 것을 알았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들에게 날 일으켜달라고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다. 그때 C수련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알고 보니 A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날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설명 과정에 문제가 생겨 C는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A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C에게 다시 차를 갖고 오게 했다. 그들은 날 부축해 차에 태웠고 손녀는 내 곁에 꼭 붙어있었다. 힘이 없어서 간신히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방금 있었던 일에 충격을 받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괜찮아 아가야,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단다.” 그리고 끊임없이 9자진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다.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교류와 법공부, 발정념을 했다. C가 말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쓰러졌는데 또 이렇게 빨리 낫다니. 너무 멀리서 찾지 말고 오늘 법을 벗어난 문제가 있었는지 찾아보세요.”
수련생의 이 한 마디는 날 일깨웠다. 나는 곧바로 수구(修口)하지 못하고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B가 며느리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나는 자신을 수련생으로 여기지 못했고 법에서 교류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심성관을 넘기도록 도와줘야 했었는데 일반인처럼 그녀를 거들어 그녀의 집착심을 키웠다. 이것은 다른 수련생에게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20여 년간 수련한 제자로서 매우 부끄러웠고 대법의 제도와 사부님의 보호에 면목이 없었다. 이 일로부터 나도 수련의 엄숙함을 깊이 깨달았다. 정말 사부님 말씀과 같다. “사악은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는바, 당신들의 일념 일행 모두 사악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1]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외지에서 근무한다. 2년 전 며느리가 아이를 낳고 몸이 안 좋아서 손녀는 자연스럽게 내가 돌보게 됐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떠나 아들 집에서 아이를 봐줬다.
처음에 아이를 볼 때 늘 생각했다. ‘아이를 보느라 나는 고향의 단체 법공부 환경까지 잃었어. 내가 이렇게나 많이 희생했는데 아들은 그래도 내게 불만이 많구나. 그리고 난 아껴 먹고 아껴 쓰지만 너희 부부는 돈을 펑펑 쓰지. 난 아이를 돌보느라 밥을 제때 하지도, 먹지도 못하지만 너희 부부는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갈수록 화가 났고 원망이 커졌다. 그러자 아들도 점점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서 대들었다. 심지어 한번은 이렇게 소리친 적도 있었다. “여기 있고 싶지 않으면 가세요!” 나는 정말로 눈물을 머금고 집을 나갔다. 나간 후 생각했다. ‘집에 돌아갈까, 아니면 여관에 갈까?’ 하지만 이성이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에게 나는 수련생이며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면 오해를 살 수 있고 대법에 먹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좀 머물다가 다시 아들 집으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나는 아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안으로 찾지 않았고 자신을 제고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넘기지 못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원망이 들끓었으며 화가 끊임없이 치솟았다. 날이 갈수록 원망, 억울함,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뒤집혀 나왔다. 나는 그렇게 연공만 하고 심성은 수련하지 않는 속인이 되었음에도 늘 고향의 단체 수련 환경을 그리워했다. 그런 바르지 않은 상태는 1년간 지속됐다. 나는 고향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자신을 모가 나지 않도록 잘 연마해야 해요.”
작년에 나는 고향에 한 번 돌아갔다. 수련생들이 날 보러 왔는데 모두들 내가 마르고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좋아 보일 리가 있겠는가? 아들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자신의 수련 상태를 반성했다. 하루는 한 수련생이 날 데리고 다른 수련생을 만나러 갔는데 나는 그녀에게 내 수련 상태를 이야기해줬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전하신 법이 너무나 커서 어디에서든 수련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으니 돌봐주는 것은 내 책임이며 아들 집이 바로 내 수련 환경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자신을 수련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원망 등 사람 마음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부정하고 없애버리면서 점차 그곳을 수련 환경으로 생각했다. 또 아들이 두 누나와 작은 갈등이 있어도 그들 사이의 인연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끼어들지 않았다.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 그리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드디어 잘못된 수련 상태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바로잡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3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3/6/45741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3/6/4574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