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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를 체험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두 차례 수련 과정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다. 관을 넘거나 시련 중에서 만약 이 법리를 생각대로 적용한다면 난관을 더욱 빨리 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교란과 장애를 조성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가 조심하지 않아 발을 삐었는데 즉시 다리가 아팠다. 머릿속에서는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사람의 생각도 없었다. 예를 들면 ‘자료 받는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등 이런 생각도 없었다. 그때 첫 일념은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였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말했다. ‘다리가 좋아졌다, 좋아졌다, 좋아졌다.’ 이렇게 몇 마디 하자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리가 정말 멀쩡해졌다. 이것은 내가 가장 빨리 넘은 신체적 고비였다.

오늘 아침 알레르기 가상이 또 나타났다. 끊임없이 재채기하고 콧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나는 포륜(抱輪)을 시작했다. 당시 몸은 극도로 피로했고 온몸에 힘이 없어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사람의 관념이 나타났고 견지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바로 이때 나는 며칠 전 발생한 다리 통증이 일념으로 좋아진 일이 생각났다. 나는 즉시 ‘좋아졌다’라고 자신에게 알려줬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동시에 사람의 관념이 나왔다. 비록 알레르기 증상이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 주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더 자주 나타났고 만성적인 증상이라고 느꼈다. 습관과 눈으로 본 것이 확실하다는 관념으로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리가 삔 것은 급성 질환이고 알레르기 증상은 만성 질환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관념으로 사물을 판단한 게 아닌가? 신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실까? 또한 수련 중에서 법리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 때 나는 매번 일이관지(一以貫之: 한 가지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다)로 다른 문제에 적용할 수 있었으며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렇다면 다리가 삔 것과 알레르기 가상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는 수련의 매 관문에 응용할 수 있다고 이해하자 더욱 분명해졌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하고 싶으면 당신은 과감히 하기만 하면 된다!”[2]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가 자신의 후천적 관념 때문에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엄두를 내지 못하고 믿지 않는 것은 사람 중에서 형성된 완고한 관념이 방해하는 게 아닌가?! 대법은 크고 무소불능이다. 대법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심으로 법의 무한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생각이 신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관념과 불신이 있는지 발견했다. 나는 정념을 확고히 하고 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으며 더는 그런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 따라 생각하지 않았다.(처음에는 무기력하고 괴로움이 시작되자 습관적으로 그것에 따라 생각하고 몸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음) 내가 좋아졌다고 정념을 확고히 하는 순간에 기적이 나타났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포륜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포륜을 할수록 홀가분해졌다. 방금 심했던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졌고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회복됐다.

이전에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 이 법에 대해 나는 교통사고나 갑자기 나타난 위험에 관해 말씀하신 법이라고 편협하게 생각했다. 사실 법은 크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 법을 응용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이 일념이 나오려면 좋아진다는 것을 완전히 믿지 못하게 하는 모든 사람 마음과 잡념을 내려놔야 한다. 대부분은 눈으로 본 것이 확실하다는 이른바 가상과 사람 중에서 형성된 각종 인지와 관념 때문에 ‘좋아졌다’는 그 일념으로 바꾸기 어렵다.

나는 우리가 좋아졌다고 생각할 때 사실 자신에게 정념을 더해준 것이고 초범적인 상태가 됐다고 이해한다. 사람은 질병이 있으며 주기적으로 질병을 겪고 질병의 표현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큰 법을 수련하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해 점차 사람을 벗어나 신으로 향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사람 생각에서 신의 생각으로 바뀌는 것은 사상이 초범적으로 되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좋아졌다고 생각할 때 다른 공간에도 이런 좋아졌다는 물질이 형성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이런 물질을 끊임없이 강화할 때 이런 정념이 형성한 물질장도 강화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신의 생각으로 바뀔 때, 당신의 사상 상태가 그 층 법의 표준에 부합하기에 대법은 자연히 우리에게 위력과 기적을 보여준다. 우리는 신의 일념이 우주를 만든 것은 알지만, 사람의 생각에 시간의 길고 짧음, 불신이라는 관념, 사람의 습관 등등 요소에 방해를 받아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그 완고한 사람의 생각 때문에 수련 중의 난관이 조성돼 가상 중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만약 이런 사람의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로 극히 위험하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 그 층차까지 수련하지 못해 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번 수련과 이전의 개인 수련이 같지 않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주 대법을 수련하며 우리는 여러 천체의 주(主)와 왕이며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왔고 깊은 근기(根基)가 있으며, 게다가 사존께서 친히 우리를 제도하신다. 사부님께서는 우주 중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무한한 신통과 지혜를 부여하셨다. 우리는 모든 사람 마음과 관념을 내려놓고 한마음으로 중생을 구하면 된다. 육신의 이런 가상이 어찌 신우주의 미래 대각자를 구속할 수 있겠는가? 밍후이왕에도 이러한 많은 문장이 있다. 설령 신수련생이라도 감옥에서 박해받을 때 그가 생각이 바르면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린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초범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셨다. 단지 우리 자신이 신의 사유와 초범적인 상태가 습관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의 일부 상태는 습관화와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의 사유를 고수함에서 벗어나 신의 사유로 전환하려면 우리는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도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중생을 구하는 데 쏟아야 하며 더는 자신의 사람 관념에 방해받지 말고 소중한 시간을 지연하지 말아야 한다. 또 이른바 병업 가상의 소용돌이에 빠져 걸어 나오지 못해 중생을 구하는 데 전력을 다하지 못하면 안 된다. 정념을 확고히 하자. 사람과 신의 차이는 일념에 있다.

나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천기와 법보(法寶)라고 깨달았다. 우리는 이 법리를 응용해 수련의 난관에서 사람의 생각을 신의 생각으로 바꿔 크고 작은 난관을 넘자. 사람의 이치로 본래의 선천적 본성을 가로막지 말고 진정으로 사람에서 걸어 나와 신으로 향하자.

이상은 개인의 현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며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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