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천목이 열려서 수련하는 어려움을 나는 깊이 느꼈다. 항상 다양한 광경을 보고 다른 공간의 신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경험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많은 경우 깨달음이 필요했다. 법에 있지 않고 심성이 바르지 않으면 잘못 이해할 수 있고 집착이 생기기 쉽다. 주변에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자심생마(自心生魔)하거나 반면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보고 접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짊어진 임무가 있기에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하고 또 안정적으로 똑바로 가야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조심 걸었고, 끊임없이 믿음과 불신 속에서 배회했으며, 부정과 긍정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많은 일은 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까 봐, 난법(亂法)할까 봐 걱정돼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일을 잘못할까 봐 늘 걱정했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목이 메도록 통곡하기도 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인 것 같았다.

​나는 대법에서 점점 더 잘 수련하고 싶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면서 또 처리하는 방법도 배워야 했는데, 이로 인해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참조가 없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아무도 그런 문제에 부딪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직시하고 처리해야 하는지 말해줄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조심조심하며 심지어 통곡하는 나날을 겪으며 왔다. 천목이 열린 다른 수련생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떻게 해야 참조도 없는 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는지 알려주길 바랐다. 심지어 사부님께 여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길을 잘 가려면 법에 의지하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했다. 나는 조용한 마음으로 법을 많이 배우면서 법에서 끊임없이 일깨움과 격려를 받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자신의 관념을 타파하면서 마침내 지나왔다. 나중에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고통 속에서 헤매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나와의 교류 후에 나의 체득을 다른 천목이 열린 수련생과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모두가 함께 서로 용기를 북돋우면 아마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법을 스승으로 삼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워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착실한 수련의 한 부분이다. 책을 드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으려면 수련해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잡념을 조금씩 닦아버리면 도달할 수 있다. 매일 조용히 법을 배우고 양보다는 질을 중시해야 한다. 천목이 열린 채 수련하면 일부 다른 공간의 사물을 자주 보거나 접하게 되는데 만약 법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으로 깨닫기 쉽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빗나간다. 따라서 반드시 매일 법을 배워야 한다. 법력으로만 이 길을 안정적으로 잘 지나갈 수 있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크게 실수하지 않고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법공부에 의지한 것이다!

​2. 수련인은 언제나 ‘심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더욱’ 심성을 중시해야

​많은 사람이 “누구누구는 천목이 열려서 수련했기에 망쳤어!”라고 말한다. 사실 이 견해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천목이 열려 수련해 망한 게 아니라 심성이 바르지 않아 망한 것이다. 나는 많은 일을 보고 경험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염두가 움직이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엄격히 보호하고 계시기에 보통 이런 경우에는 사부님 법신께서 점화해주신다. 하지만 잘못을 고집해 깨닫지 못하고 심성을 높여야 할 때 제고되지 않으면 다음 관문이 오면 넘기지 못한다. 고비가 하나하나 쌓이면 결국 안 된다. 그러므로 결국 심성 문제다.

​어떤 수련생은 본 것으로 자기 수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습관이 있다. 성스러운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자신이 잘 수련한 것처럼 여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을 게을리하고 심지어 속인과 혼동한다. 절대 이렇게 문제를 인식하지 말라. ‘심성’이야말로 수련인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주변의 한 수련생은 ‘제로화’ 운동에서 그녀를 박해하는 사악한 당에 서명하고도 서명한 것은 가명이기에 상관없다는 등 자신이 옳았다고 격동하며 말했다. 왜냐하면 법이 자신에게 다 알려줬다는 것이다. 자신이 빠르게 상승하며 광대한 우주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았고 너무 아름다웠다는 등등을 말했다. 이 수련생은 줄곧 천목에서 본 것을 참고로 했다. 아름답거나 신성한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자신이 줄곧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고, 한동안 지나도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서 이미 정법을 이탈한 것이다! 그래서 시련이 닥치면 진정한 수련인처럼 정념으로 대할 수 없었다.

​누구의 배치가 수련생에게 이런 느낌을 줬을까? 이런 것에 모두 의문을 품어야 한다. 법에 따라 수련해야지 개인적인 느낌으로 수련하면 안 된다.

​나는 처음에 두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기에 줄곧 내가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제거된 후에야 철저히 깨달았다. 결국 몇 년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매우 엄숙한 교훈이다. 모두가 중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3. 천목이 열려서 수련함은 사명이지 층차의 높고 낮음과는 무관

​내가 착실히 수련하는 수련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어떤 수련생은 내가 천목이 열려 수련하고 또한 신기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기에 반드시 잘 수련했을 것이고 온 층차도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들의 말을 듣고 나는 누군가가 작은 채찍으로 내 마음을 때리는 것처럼 괴로웠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사부님의 정법을 돕겠다고 엄숙히 맹세했었다. 그들은 천목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수련해야만 자신의 서약을 완성할 수 있고, 나는 천목이 열린 채 수련해야만 서약을 완성할 수 있다. 단지 이럴 뿐이다. 이런 수련생들은 금처럼 착실히 수련하고 묵묵히 일하며 심성 면에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한다. 소양을 갖추고 착실히 수련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묵묵히 수련할 수 있다.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착실히 수련하는 상태다.

​4. 삼계의 법리는 모두 반리(反理)이므로 반리에서 바르게 깨달아야

​주변 몇몇 수련생은 자신이 역사에 누구였는지 알기에 자신이 대단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이런 것을 들을 때마다 정말 괴롭다. 삼계의 법리는 모두 반리(反理)이니 반리에서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삼계에 온 후 어떻게 하겠다고 발원했다! 어떤 사람은 명성에 대한 집착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고 발원했다. 어떤 사람은 이익에 집착하기에 천하에서 가장 부유해지겠다고 발원했다! 삼계의 신관(神官)은 우리의 소원에 따라 우리의 환생을 안배한다! 그래서 자신이 역사 속에서 어떤 유명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부분에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으로 이해했다. 사람 중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으로 수련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자신의 집착을 강화했다!(물론 절대다수는 정법을 협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일부 사람은 집착을 품고 환생했다.)

5. 반드시 수구(修口)해야

​특히 남의 일을 말할 때, 법에서의 일은 말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수련생들은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아마도 수련생의 일부 상황, 심지어 어디에서 왔는지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층차에서 본 약간의 정보일 뿐이다.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 천목이 열린 채 수련하는 수련생들도 전체를 다 볼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사부님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이 말했다. 사람을 가늠하는 표준은 제자의 心性(씬씽)을 보아야 한다고. 아울러 나는 절대 어떠한 개오(開悟)하지 못하고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 내 제자의 진실한 수련상황을 똑똑히 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주 낮은 층차에서 그의 그 한 층차에서 나타난 것을 보았을 뿐이며 그는 더 높은 것은 볼 수 없다.”[1]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조금만 부주의하면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피해 줄 수 있으니, 말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에 관해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그 밖에 천목이 닫혀서 수련하면서도 신기한 것들을 듣고 싶어 하는 수련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천목이 닫혀서 수련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이 본 장면을 모두가 듣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천목이 열린 수련생의 상태가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신기한 일들을 보고 경험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 것은 확실히 모두의 수련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수련인으로서 언제까지나 ‘심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공능이나 신통력으로 수련자의 수련을 가늠할 수 없다. 수련생들이 본 것을 어떻다고 생각하면 더욱 안 된다. 이 점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뿐만 아니라 닫힌 수련생들도 시험하고 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신기하고 신선한 일을 마주했을 때 어떤 마음 때문에 이끌렸는지 빨리 살펴봐야 한다. 왜 마음이 움직였을까? 이것이 긍정적인 일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일인가? 심성을 높이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수련이고 빗나감을 줄일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가늠하는 표준을 다시 논함’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3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3/1/45726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3/1/45726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