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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법회] 언제나 날 보호해주시는 사부님

글/ 말레이시아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호르바루 수련생입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TV 인터뷰에서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단수 입장(立掌)을 하시자 사부님께서는 황금빛에 뒤덮이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부처님이시다!’

다음번에 서점에 갔을 때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과 ‘대원만법(大圓滿法)’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책을 샀습니다. 인간이 신으로 수련할 수 있고 덕(德)이 다른 물질로 전화(轉化)될 수 있다는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어떻게 덕이 전화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곧 사부님께서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른 딸을 꾸짖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딸의 머리 위에서 빛을 봤습니다. 계속 꾸짖자 그 빛은 딸의 온몸을 뒤덮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즉시 멈췄습니다. 바로 이것이 ‘덕’의 전화임을 이해했습니다. 사실 저는 딸에게 덕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련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이들을 꾸짖는 대신 조언해줬습니다.

진정한 수련을 알게 되다

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책에 있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연공도 했습니다. 열흘 후 손바닥의 혹이 사라지고 시력도 좋아졌습니다. 이웃은 저에게 24시간 일하는 것 같은데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연공하니 힘이 났고 파룬(法輪)이 몸속에서 도는 것도 느꼈습니다. 몸이 좋게 변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에 사바에 갔는데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습니다.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해 괴로워서 결국은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15살인 딸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협회에 갔는데 발이 무거워져 입구에서 멈췄습니다. 갈 때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것이 그곳에 가지 말라는 사부님의 암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주일 후 딸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들어가면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전법륜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파룬궁이 진정한 수련임을 깨달았습니다. 왜 전에는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 이후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에 친구 두 명을 데리고 9일 학습을 들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저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텔레비전에서 걸어 나오시는 것을 봤습니다. 사부님의 법신들이 방을 가득 채울 때까지 계속 TV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저는 매우 정진해 아침저녁 연공을 했고 병을 잊었습니다. 어느 날 그 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한 후 우리는 페낭으로 돌아갔습니다. 1년 후, 우리는 다시 조호르바루로 이사했고 수련이 느슨해졌습니다. 심성이 떨어졌고 속인처럼 행동하니 다시 건강에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가슴이 몹시 아파서 바닥에서 몸을 뒤척였습니다.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니 고통이 즉시 가라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계속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세 번째 시도 후에는 멈췄습니다. 제가 업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 생각을 하자 즉시 고통이 줄어들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에 가슴 통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가 얼른 연공하자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어떻게 해서 좋아졌는지 물었습니다. 연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자 남편은 놀랐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은 제 수련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식사하고 나면 가슴 통증이 재발했는데 연공하면 가라앉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발정념(發正念)을 배웠습니다. 고통이 저를 힘들게 할 때마다 발정념을 하면 바로 편안해졌습니다. 밍후이왕의 한 문장을 읽었는데 그 수련생이 어떻게 발정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악을 제거했는지 언급했고 저도 똑같이 했습니다. 이틀 후 병업이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가슴 통증에 대해 생각하자 다시 왔습니다. 저는 재빨리 발정념을 했고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그것은 가상이었습니다. 업력이 때로는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식 제고

저는 나중에 양복점을 열고 6년간 모든 고객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동네는 치안이 열악했고 주민들의 오토바이가 자주 도난당했습니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옆집 상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녁 8시까지 가게를 여는데 강도가 걱정되지도 않나요?” 그녀는 다섯 번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알리고 항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성미가 급한 한 여성이 우리 가게 위층에 살았는데 그녀는 남을 비난하기 좋아했고 이웃들은 항상 제게 와서 그녀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녀와 다투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비난을 멈췄습니다.

어느 날 한 아버지와 딸이 우리 가게에 왔습니다. 저는 딸의 눈빛이 흐릿한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위가 세상을 떠난 후 딸이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딸에게 말했습니다. “대법 책을 줄게요. 읽고 나면 나아질 거예요.” 그녀는 받아들였습니다.

한 달 후 그 아버지가 다시 왔습니다. 그는 딸이 회복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런 다음 제게 절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사부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반년 전, 술고래였던 그는 매일 밤 술에 만취해 소란을 피웠습니다. 아침에 제가 가게를 열면 그가 왔는데 올 때마다 저는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면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매일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하고 좋은 사람에게는 복이 온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마침내 제 말을 귀담아듣고 술을 끊었고 다시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한 남자에게 파룬궁과 연공의 이점을 말하니 동작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또 한 아주머니는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제게 건넸습니다. 저는 거절하며 그것은 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돈이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지켜주시다

한번은 3일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뒷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연공을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났을 때 제가 바닥에 누워있었습니다. 다친 곳이 없었는데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또 한번은 저녁을 준비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베였는데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가 제 손가락을 보호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도 사부님의 보호였습니다. 저는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팬데믹 봉쇄로 남편은 사업을 접고 집을 팔았습니다. 우리는 고향 페락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틀룩인탄 시장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9자진언(九字真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료를 가져갔습니다.

남편은 제가 매일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짢아했습니다. 그는 제 여동생과 딸, 이모에게도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바이러스가 어디에나 있으니 저에게 집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휴대폰으로 검색하다가 공장 근로자 50명이 격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공장 운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노동자들에게 9자진언을 외우라고 권했습니다.

2년 후, 저는 조호르바루로 돌아가 딸과 함께 지냈습니다. 저는 심성관을 넘는 일에서 자주 실패했습니다. 밍후이 기사를 읽기 시작한 후 잘 넘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루는 일하면서 밍후이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딸이 갑자기 라디오를 끄고 화를 내며 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침묵했고 방으로 들어가 발정념을 했습니다. 몇 분 후 딸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심성관을 넘어서 기뻤습니다.

딸과 사위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그들은 제가 감염될까 두려워 쿠알라룸푸르에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생이므로 괜찮으니 남아서 그들을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 사는 막내딸이 병에 걸렸습니다. 막내딸은 조호르바루에 왔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항상 화를 냈습니다. 저는 막내딸과 언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막내딸은 제가 왜 자기한테 화를 내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넌 기분이 좋지 않잖아. 기분이 나아지도록 돕고 싶을 뿐이야.” 막내딸은 울음을 터뜨리며 저를 안았습니다. 막내딸은 기분이 서서히 좋아졌고 쿠알라룸푸르로 다시 떠났습니다.

다음날 저는 고열이 나고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발정념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소업(消業)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침은 그쳤지만 한쪽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수련생이 전화로 전국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겠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두말할 것 없이 동의했습니다. 구세력이 빈틈을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구세력에 이용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른 연공을 했습니다. 하루 만에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진해 앞으로 수련의 길을 잘 걸으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2년 말레이시아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3년 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10/4565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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