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롄샹(蓮香)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여성 대법제자로서 올해로 78세다. 20여 년 수련의 길에서 줄곧 사부님의 가르침 대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또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확고하게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밍후이 라디오(이하 라디오)를 들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2010년부터 음성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배운 후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듣고 있으며 내용이 점점 더 풍부해져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1. 다운로드 방법을 배우다
말하자면 얘기가 길다. 박해 초기, 사악이 미친 듯이 날뛰는 시기에 박해를 피하려고 나와 남편(수련생)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외진 지역으로 갔다. 이미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수련환경을 안배해주셔서 우리는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면서 이후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가는데 좋은 기초를 다졌다. 우리는 시간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생각밖에 2008년에 고향으로 돌아간 후 남편은 장기간의 박해로 몸이 허약해져 2009년 봄에 병업(病業) 형식으로 구세력에게 박해당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어려운 수련 과정을 겪게 됐지만 대법의 인도하에, 사부님의 보호하에서 난관을 넘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외지에 있고 생활 조건도 좋은 편이어서 나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같이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수련을 위해 혼자 생활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때부터 나는 혼자서 생활하고 수련하는 노정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대법에 대한 확고한 마음, 사명감과 책임감이 아주 컸고 진상을 알리는 자료를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진상을 아는 친척의 도움으로 나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구입해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나는 밍후이왕에 접속해 진상 전단지와 주간 등을 다운로드해 인쇄할 수 있었다. 밍후이왕에 접속해서야 밍후이 라디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라디오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다운로드한 내용을 메모리카드에 담은 후 스피커에 넣으면 바로 들을 수 있었다. 라디오를 듣는 것은 내 생활과 수련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고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처음에 다운로드한 것은 라디오 진상 원고였고 그 후로 2010년, 2011년 워싱턴DC법회 원고, 2015년 뉴욕법회 원고를 다운로드했다. 나는 이 녹음들을 몇 년간 반복적으로 들었고 지금도 보존하고 있다.
이후에 외지 수련생이 전달해온 스피커에는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해체 당문화’, ‘만담 당문화’, ‘밀레르빠 수련 이야기’ 등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 좋았다. 나는 몇 년간 꾸준히 들었는데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들었고 또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소재로 사용해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2. 진상 라디오로 진상을 알리다
나는 가장 처음에 다운로드한 진상 라디오 원고를 여러 번 들었다. 그 당시 나는 원문을 다운로드하면 되는 것을 모르고 들으면서 기록했고 연속해 들으면서 기록했다. 그리고 기록한 내용을 정리한 후 익숙하게 기억해 진상을 알릴 때 사용했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스피커로 직접 들려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상 라디오 내용만 메모리카드에 넣은 다음 스피커에 다시 넣었다. 숫자에 따라 내용을 기억하고 스피커를 틀어줄 때 사람에 따라 다른 내용을 틀어줬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친척에게 진상을 알렸고, 동창 집에 가서 진상을 틀어주고 모임에서 학생에게 틀어주자 아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한번, 나는 예전의 제자들과 모임을 한 적 있다. 그들은 함께 나를 보러왔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먼저 라디오를 듣자고 했다. 모두 조용히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하면 평안을 얻는다’와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 새겨진 고대의 돌]’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그들에게 “가입한 공산당 조직을 탈퇴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어. 선생님은 너희들이 모두 평안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길 바란다”라고 하자 키가 큰 남학생이 일어서서 “우리는 선생님 말씀을 믿고 모두 탈퇴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17~18명이 탈퇴했고 늦게 온 학생에게도 또 라디오를 들려주자 그들도 탈퇴했다.
2016년 4월, 현(縣) ‘610(파룬궁 박해 기구)’에서 두 사람은 우리집에 와서 소위 ‘답례 방문’을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610,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사람들에게’라는 라디오 내용을 들려주자 그중 한 사람이 “아주머니, 듣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하나만 더 들으세요. 아주 중요한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다음 내용은 공안, 검찰, 법원 관리를 겨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다 들은 다음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면서 평안을 얻으라고 했다. 그들은 아직 용기가 없는 것 같았고 웃으면서 나중에 말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 표정에서 그들이 감동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밍후이 라디오 내용은 점점 더 풍부해지고 나는 어느 항목이든 다 듣고 싶다. 매년 중국법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 응모작, ‘사부님 은혜를 회상하다’, 정법 수련과 교류, 해외법회 등도 다 듣고 싶다. 나는 모두 들으며 어떤 내용은 여러 번 들었지만 여전히 듣고 싶었다. 들을 때마다 격려와 고무, 정진의 동력이 생긴다. 나는 늘 감동받고 눈물을 흘린다. ‘사부님 은혜를 회상하다’를 들었을 때는 수련생들의 행복한 추억에서 나도 그 상황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늘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사존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은혜를 떠올렸다. 수련생들이 정념정행으로 난을 넘긴 감동적인 사례에서 고무받아 제때 자신에게 존재하는 부족함을 찾아내 법 중에서 바로잡았다.
3. ‘밍후이왕 작은 이야기’를 들은 약간의 체험
‘밍후이왕 작은 이야기(明慧網故事點滴)’를 나는 여러 번 들었는데도 들을 때마다 감동한다. 4번째 이야기에서 말한 “2009년 9월 무렵, 우리는 밍후이왕에서 ‘장쩌민의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 등 두 편의 문장을 다운로드해 수백만 부를 인쇄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배포하고 전 성(省), 온 거리에 붙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에 들어섰다”를 들었을 때, 나는 그해 우리 지역에서 자료를 배포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느 날 낮 11시 넘어서 한 젊은 수련생이 남편을 찾아왔다. 외지에서 진상 전단지를 큰 가방 두 개에 넣어 보내왔는데 우리집에다 놔둘 수 있는지 물었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 우리집만 부부가 수련하고 있었고 다른 수련생들은 가정환경에 장애가 있었다. 남편은 동의했다. 수련생은 즉시 오토바이로 가방들을 싣고 왔다. 가방 하나를 들어도 엄청 무거웠다. 우리는 즉시 남쪽 방에 놔뒀다. 우리집은 협소한 편이라 남쪽 작은 방은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는 상황에서 진상자료를 많이 놔두는 것은 우리에게도 압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확고했다. 어찌 됐든 쉽게 얻을 수 없는 진상자료를 잘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때 일부분을 정리해 수련생에게 분배했다. 하지만 가방의 전단지 수량도 많았기에 일시적으로 전부 분배할 수는 없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대비하기 위해 나와 남편은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에 자료들을 작은 방에 있는 물탱크(원래는 샤워할 때 사용함)에 저장했다.
우리는 저녁에 자료를 정리하고 낮에 배포했다. 한번은 큰 시장 입구에 큰 화물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차 옆에서 나와 관계가 좋았던 노인을 만나게 됐다. 나는 그에게 ‘장쩌민의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을 주자 그는 아주 놀라면서 슬그머니 접어서 옷 주머니에 넣었다. 두렵고 친절한 말투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다. 내가 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진상자료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후에 두 수련생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우리는 지퍼가 달린 작은 지갑을 사서 자료를 넣어 배포했다. 전날 저녁에 정리하고 이튿날 저녁에 차로 향(鄕), 진(鎭), 농촌에 가서 배포했다. 한 사람이 차를 운전하고 두 사람이 배포했다. 세인들은 지퍼가 달린 지갑을 보면 주워서 다 보게 된다. 이렇게 한 번에 몇 개 향, 진을 배포할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큰 가방에 있던 자료를 다 배포해 한시름 놓았다.
지금 와서 그 당시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경험을 회상해보면 여전히 깊은 감명이 있다. 또한 그때부터 우리 지역은 광범위하게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교류문장 중 ‘밍후이주간’에는 게재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내용이 좋아서 나는 원문을 찾아 다운로드해 라디오를 들을 수 없는 수련생에게 열람하도록 나눠줬다.
2000년 7월 18일 밍후이 편집부는 전체 대법제자에게 심도 있고 역사적인 진상이 담긴 문장을 발표했는데 제목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이었다. 이 중요한 문장을 당시 엄혹한 박해 형세에서 우리는 열람할 수 없었고 지금에서야 밍후이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됐다. 나는 이 문장을 찾아 인쇄해 ‘밍후이왕 작은 이야기’와 같이 수련생에게 나눠줘 유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을 가끔 농촌 수련생들에게 주면 환영받는다. ‘점오 상태에서 본 오랜 병업’ 이 문장도 줬는데 이후에 그들도 아주 좋다고 했다. 또 스스로 10부를 인쇄해 현지 수련생에게 나눠줬다. 나는 듣고 나서 아주 기뻤고 앞으로 좋은 교류문장이 있으면 그들에게 더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맺음말
13년간 나는 혼자 생활하면서 밍후이 라디오 청취가 생활 중의 일부분이 됐는데, 교란이 없고 장애도 없었다. 나는 여유 시간을 이용해 방을 정리할 때 듣고, 빨래나 밥 지을 때 듣고, 또 밥 먹을 때도 듣는다. 이 시간 때가 가장 좋다. 하루 세끼 중에서 아침, 점심에 라디오를 듣고 저녁에 션윈(神韻) 오케스트라 음악회를 본다. 10년간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많은 이로움을 얻게 됐다.
동시에 나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수련생에게 작은 카드를 제공한다. 특히 매년 중국법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등 라디오를 몇 년간 제때 제공했다. 라디오를 들은 수련생은 수확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수준의 한계로 라디오를 들은 느낌과 체험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계속해 밍후이 라디오를 들을 것이며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더욱 노력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갈 것이다.
개인의 체험이니 부족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허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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