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대법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린 이야기

글/ 중국 수련생 징신(静心)

[밍후이왕] 나는 50세 시골 여성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23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소중함을 알린 수련 경험을 교류하고, 사부님의 지속적인 보호에 감사드리려 한다.

남편의 자극으로 수련을 시작하다

나는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은 내가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집안이 비교적 부유했기에 농사일을 할 필요가 없었으며 어른들에게서 사랑받았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즐거웠고 또래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고대나 현대 관련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색하고 백일몽을 꾸는 습관이 있었다. 전통문화는 내게 인생관과 결혼관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내 마음속에서 남자는 집을 짓고 여자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 역할은 남편을 돕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품위 있고 친절하며,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실망스러웠다. 늘 심한 갈등이 일어났다. 남편은 나의 인색함과 변덕스러움을 싫어했고, 나는 남편의 게으름과 무책임함을 싫어했다. 깡패들과 술을 마시거나 도박하고 한밤중에 집에 들어올 때마다 갈등이 생겼다.

3년간의 결혼 생활은 쓰라림과 피로로 가득했다. 어느 날 나는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남편을 때렸다.

한번은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자 나는 그를 침대에서 쫓아냈다. 남편은 이불을 들고 거실 소파에서 자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도 못 하게 했다. 남편은 결국 닭장 속 사료 포대 위에서 잤다.

또 한번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돌아와 창문을 통해 침실로 몰래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모든 창문을 부쉈다. 남편은 깡패들과 자주 술을 마시고 닭 모이 주기를 게을리했는데, 나는 아기를 돌봐야 했기에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이 일로 작업 모자를 들고 남편의 머리를 세게 쳤다.

그 괴로운 시절에 나는 내가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는지 궁금했다. 거울에 비친 마르고 초췌한 내 모습을 보며, 당당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안타까웠다. 딸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딸이 두 살이던 1999년 3월 17일 아침, 식사하다가 남편에게 “당신의 큰누나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했죠. 나도 수련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남편은 경멸하듯 나를 보며 “안 돼!”라고 했다. 왜 안 되는지 묻자 남편은 “파룬따파는 ‘진선인(真·善·忍)’을 이야기한다고 들었어. 우리 누나는 정말 성격이 좋아! 그건 당신한테 맞지 않아”라고 했다. 나는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두고 봐요, 오늘 밤에 갈 거예요”라고 도전적으로 대꾸했다.

나는 내 주장을 증명하려고 시누이와 함께 집 근처 파룬따파 연공장에 갔다. 제2장 공법 파룬쫭파(法輪樁法)를 다 연마했고 가부좌로 하는 제5장 공법을 20분간 연마했다. 법공부는 더욱 즐거웠다.

파룬따파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그것이 더욱 좋았다. 마침내 마음을 닦고 심성을 키울 방법을 찾았음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찾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그의 자극 덕분에 대법에 들어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수련생의 집에서 리 사부님(대법 창시인)의 설법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너무도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이 넓게 열려 있는 것 같았고, 내 마음도 그랬다. 따뜻한 기운이 내 마음에 흘렀다. 삶이 너무 아름다워졌다!

내게는 이제 사부님이 계신다! 나는 마침내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남편과 나의 인연을 이해하다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러 갔다. 법공부를 할수록 심성(心性)이 제고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마음대로 하고 있었지만, 나는 더는 이혼을 생각하거나 난폭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갈등이 일어나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

그렇다. 나는 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예전에는 남편의 단점에만 집중하고 장점은 무시했다. 나는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고생하지 않으려 했고 남편의 행동을 보며 결코 그의 처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사실 남편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젊은이를 돌보며 사람을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더는 남편을 차갑게 대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는 점차 화목해졌다. 가끔 성질을 냈지만, 나중에 그에게 “수련생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했어요. 미안해요”라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부드러운 눈빛과 미소를 보였다. 남편은 나의 법공부를 지지해 주었고 내가 외출하면 딸을 돌봤다.

환난 속에서

내가 겨우 4개월 수련했을 때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련들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외쳤다. 나흘 뒤 무사히 돌아오자 남편이 “며칠 밤을 못 잤어. 1989년 ‘6·4’ 학살 때처럼 기관총을 맞을까 봐 정말 걱정했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박해받을 때마다 압박이 컸지만 절대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파룬따파가 선하고 의로우며, 나를 새사람 되게 했고 가족의 행복을 가져다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절대로 순조롭지 않다. 남편은 2002년 직장에서 다쳐서 대퇴골두 괴사를 앓았다. 그는 일할 능력을 잃었다.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시골 가족에게 남편의 실직은 집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남편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종종 의식을 잃었다. 나는 그에게 술을 끊으라고 했지만, 그는 술이 육체적인 고통을 덜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 번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족의 짐이 내 어깨에 떨어졌다. 체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내게는 큰 타격이었다. 대법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나는 자주 감기나 독감에 걸려 감기약을 달고 살았다. 나는 아기를 낳은 후 산후풍이 와서 종종 요통이 있었다.

나는 파룬따파를 배운 후 법공부를 통해 병에서 벗어나 생명의 이치를 배웠고, 생로병사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병은 전생의 업을 갚는 것이고, 고통은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다.

나는 큰 압박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남편과 딸을 돌보려면 일하러 나갈 수 없었기에 나는 돈을 빌려 큰 헛간을 짓고 매일 열심히 일했다. 나는 매일 자비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고 법에 따라 남편을 일깨우며 가족을 돌보고 딸을 키웠다.

어느 날 피곤한 다리를 끌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사람 대여섯 명이 남편을 부축해서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급히 집으로 갔더니 남편이 결혼식장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바지에 소변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떠나자 나는 그를 침대로 끌고 가서 옷을 갈아입혔다.

그 순간 나는 실망스러운 모습에 남편이 미웠고 눈물이 흘렀다. 특히 데려다준 사람들이 촌장을 포함해 모두 마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기에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저와 남편은 어떤 업력 관계인가요?’라고 여쭈었다.

나는 그날 밤 명상할 때 환영을 보았다. 옛날 옷을 입은 소년과 소녀가 하늘에 떠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예닐곱 살이었고 소년은 네댓 살이었다. 소녀는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소년은 소녀의 소매를 잡고 좌절감에 가득 찬 채 “누나, 누나는 나를 잘 돌보지 않았어!”라고 했다.

내가 그 소녀이고 소년이 내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속으로 ‘동생, 내가 널 잘 돌봐주고 집으로 데려다줄게!’라고 했다.

환난 중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2016년 5월 10일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하고 있을 때 사복 경찰이 들이닥쳐 우리를 납치해서 구치소로 데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과거에 두 번 납치당했고 두 번 모두 구금 시설로 이송되어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이번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나는 법공부의 기초가 약해서 당시 법이 기억나지 않아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감방장이 나를 한 수련생 옆에서 자도록 해주었다. 그 수련생이 자기가 외우고 있는 모든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을 때, 그 감방장은 ‘내가 어떻게 두 사람을 함께 있도록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불법 구금 기간에 나는 사람 마음이 올라와, 곧 여름방학을 맞아 산둥성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딸을 걱정했다. 딸의 상심한 모습을 떠올리며 온갖 산만한 생각이 올라왔다. 집에 와서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슬플까? 2년 남은 대학 생활을 마칠 수 있을까? 내가 없으면 누가 딸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지? 딸과 남편의 재정 형편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남편의 건강 등등 생각이 많았다.

그날 밤 분명한 꿈을 꾸었다. 남쪽에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물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가 보였다. 조용한 환경이었고 미래 내 딸의 집이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사부님께서 내 딸을 돌보고 계시며 딸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알고 보니 딸은 이미 남쪽에서 일하고 있었다. 딸이 내게 스마트폰을 사주었는데, 홈 화면에는 내가 꿈에서 본 것과 같은 사진이 있었다!

불법 구금 기간에 수감자들에게 구타당하고 교도관이 부추겼지만, 나는 전향을 거부했다. 그들은 내 겉옷과 신발, 양말을 벗기고 나를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뜨렸다. 얼굴이 멍이 들고 부어올랐으며, 머리에 달걀 크기의 혹이 여러 개 났지만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를 샤워실로 끌고 가서 젖은 바닥에 눕힌 다음 머리 위에서 대야로 찬물을 계속 부었다. 북쪽의 3월은 추웠고 얇은 옷이 찬물에 흠뻑 젖었다. 한 수감자가 “그만하자, 기절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들은 내 입에 걸레를 물리고 감방으로 끌고 갔다. 나는 떨려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수감자가 창문을 열고 뺨을 때리며 “힘들지 않아? 파룬궁 포기 선언문을 쓰지 않으면 넌 얼어 죽는다!”

나는 창가 바닥에 앉았는데, 바깥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정말 따뜻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수감자들이 “○○(남편의 별명)는 자기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남편은 전보다 건강이 훨씬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꿈꾸던 것 이상으로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감옥에 있는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간수들 앞에서 “당신이 맞았다고 들었어. 고소할 거야”라고 했다. 나는 그의 정의감에 감동했다!

풀려나서 집에 돌아오자 딸이 “엄마 그거 알아요? 모든 것이 순조로웠어요! 어디를 가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내가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지?”라고 하자 딸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법 수련생의 집은 깨끗해야 한다. 2020년 팬데믹 기간 집이 너무 낡아서 조금 수리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딸의 월급이 2000위안(약 37만 원) 올랐다. 그러자 딸이 돈을 댈 테니 집을 수리하라고 했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딸이 월급 8000위안(약 150만 원)을 받는 것은 대법의 축복이 아닌가?

20여 년의 수련을 돌이켜보니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타며, 변덕스럽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사부님의 은총으로, 명랑하고 낙관적이며 강한 대법 수련생으로 바뀌었으며, 가정에 행복을 얻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을 믿자 시어머니의 몸 상태가 달라져

시댁 친척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대법의 혜택도 받았다. 시어머니는 79세로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맏딸이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건강해진 것을 목격한 시어머니는 마음 깊이 대법을 믿는다.

시어머니는 ‘9자진언(九字真言)’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매일 성실하고 경건하게 외워 나날이 건강이 좋아졌다. 목에 건 대법 호신부를 절대 벗지 않고 보물처럼 대한다.

원래 시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명절 기간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시어머니의 가장 심각한 병은 삼차 신경통으로 ‘세계 1위의 통증’으로 알려졌다. 통증이 오면 벽에 머리를 박고 자기 얼굴을 때렸다. 시어머니의 이 병은 널리 소문났다. 약을 많이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대법 호신부를 걸고 ‘9자진언’을 외운 이후 약 한 알 먹지 않고 모든 병이 나았다. 지금 얼굴이 장밋빛이고 몸이 가벼우며 집안일도 나 못지않게 잘한다.

시어머니는 매일 사부님의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며, 매달 1일과 15일에는 과일을 올린다. 시어머니는 종종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는 사부님의 도움으로 모든 병에서 나았다. 사부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라고 한다. 시어머니는 지금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있다!

20여 년의 수련 기간에 우리 가족은 대법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입었다. 사부님의 소중함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사부님께 절을 올린다! 온 세상이 대법의 힘과 아름다움을 느껴 진리를 깨닫고 구원받기를 바란다! 모든 중생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여주고 싶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원문발표: 2022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30/44516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1/30/445168.html
영문위치: https://en.minghui.org/html/articles/2023/1/26/20705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