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여성 청년 대법제자다. 2004년 초등학생 때 부모님으로부터 대법을 얻었다. 99년 ‘7.20’ 이후 대법을 모독하는 뉴스를 보고 마음속에 의문을 가졌다. 어느 날, 벽에 붙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다섯 글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우러나 소리 내어 읽었더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대법 속에서 성장했고, 사부님께서 방향을 이끌어 주시어 영원히 나에게 희망을 주셨다.
초중고 시절: 정에 대한 방할, 마음을 닦아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타다
어릴 적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이유 없이 맞아 터지는 바람에 나는 참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법을 얻은 후 수련을 게을리했지만, 비염과 편도선 등 질병이 나았고 시험 성적도 반에서 일등이었다. 글씨도 반듯하고 대범하게 잘 써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고 마음도 많이 넓어졌다. 학교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 호신부를 지니고 평소에는 어른들과 같이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중학교 때 나는 공청단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선생님에게 마오쩌둥의 시편을 흑판에 쓰지 말라고 건의를 했다. 손으로 쓴 진상지폐를 학교에서 사용했는데 한번은 진상지폐를 땅에 떨어뜨려 친구가 주어 선생님에게 보고했다. 진상지폐의 글씨는 내가 손으로 쓴 것이다. 나는 긴장되었지만 발정념을 해 위험한 사태를 넘겼고 별일 없이 지나갔다.
중학교 때 나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두 노트에 적었고 마지막에는 ‘힘내라, 법을 잊지 말거라…… 정진해라, 사부님과 같이 집으로 가자……’ 등의 내용을 적었다. 애정소설에 빠져 정욕의 교란을 받아 중학교 졸업시험을 앞두고 고열이 내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몹시 걱정하셨고 나도 마음이 움직여 주사를 맞아보고 한약을 먹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니 열이 내렸다. 한동안 강의를 듣지 못했지만, 중학교 졸업시험은 성적이 좋아 순조롭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심성 고험도 많았다. 기숙사 룸메이트는 내가 당직 날에 늦게 왔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나의 침대 옆에 쓸어놓았고 또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주 괴로웠다. 성적이 떨어지고 선생님의 비평을 받고 집에 오면 부모님의 비웃음을 당했다. 나는 가끔 친구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몰래 핸드폰을 사용하다 부모님에게 들키면 심각한 질책을 받았다. 모든 일이 한꺼번에 겹쳐 마음속으로는 살아서 뭣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선생님 한 분이 자주 나를 격려해 주어 크게 감동했고 익명으로 대법 진상 편지를 길게 써서 선생님에게 보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숙사에서 가부좌하고 점심과 저녁에 ‘전법륜’을 보면서 마음의 외로움을 달랬다. 꿈속에서 늘 사부님과 같이 학교의 산책길을 걸었다. 마음속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다급했고 용기를 내어 대면해서 친한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렸다. 고등학교 때 나는 정에 흔들렸지만, 색을 거부하고 마음을 바로잡았다. 같은 또래와는 다른 깨달음과 생각으로, 내가 쓴 문장은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받았다.
대학입시에서 심성 고험은 더욱 컸다. 예를 들면 아래 침대에 자는 친구가 새벽에 큰 소리로 나를 욕하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내가 움직여 자신이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종소리가 울려 많은 사람이 교실에 들어올 때 유독 나에게만 벌을 서게 했고 나와 관계가 좋던 친구도 갑자기 나를 따돌렸다. 마음속으로는 아주 괴롭지만, 대법의 따뜻함이 있어 이러한 작은 고험은 지나간 후 더욱 착한 친구들이 나와 친구를 했고 나를 욕하던 친구도 화해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내가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해 주셨다. 대학입시 당일, 심성 고험은 계속됐다.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통화하는데 당직 선생님은 매우 흥분해서 나에게 야단쳤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른 친구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 ‘9자진언’을 계속해 읽었다. 그날 오후 시험은 내가 학년 일등을 했다.
대학 시절: 두 번의 곤경에서 벗어나고, 정념으로 사람 구하기 급하다
순조롭게 대학에 입학해 매년 장학금을 받았고 학생회, 연출 등 여러 활동에 참가했다. 주위 친구들은 모두 연애를 했고 나도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남자친구를 사귀었지만, 남녀관계를 거절해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갈라지고, 결국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또 반에서 우수 졸업생 투표에서 나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에게 밀려나 화나고 불평해 재투표를 요구했지만,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이 생각나 너무나도 창피해 선생님에게 연락해 그 친구는 우수하다고 했다. 오성을 제고하니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학술활동 정원을 순조롭게 획득했다. 또 2등과 큰 성적 차이를 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 대학의 연구생이 되었다. 대학교 도서관의 복도와 강의동의 구석진 곳에서 나는 밤낮으로 법공부를 했다.
연구생 시절, 학업에 지장이 생겨 여러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좋은 결과는 없었다. 노력했으니 순리대로 가자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현재 상황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에 전념했다.
나는 자신이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내가 역사 속에서 맡은 남성 역할을 점화해 주셔, 감성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관념으로 형성된 가짜 나였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보니 일이 꼬이게 된 이유는 자신이 게으르고 경솔하며 망설임이 많아 일이 순조롭지 못하게 된 것이며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친구가 무의식중에 한 한마디가 전환의 기회가 되어 생각 밖으로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두 번이나 활짝 핀 우담바라 꽃을 봤다.
그때 나는 기혼 남성과 만났다. 그는 나를 자주 도와줬고 나는 그의 음탕한 행동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그의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예를 들면 그는 여자들과 가까이하고 신용을 지키지 않으며 미친 듯이 자신을 욕하고 물건을 던지고 나를 때리며, 심지어 대법을 욕했다. 나는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고 내 머리에는 온통 ‘정욕, 투쟁, 원망, 질투’로 가득 찼다. 논쟁 중에서 수구를 하지 않아 서로가 거액의 금전 손실을 봤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태심리’의 충격 중에서 나는 그와 그의 아내, 그의 이성 친구 등 사람들의 각도에서 생각해 봤다. 그가 나의 숨겨진 마성을 폭로해 준 것에 고맙고 이 나이에 겪기 힘든 일을 접하게 한 것에 고마웠다. 이번 일로 나는 자신의 크게 변이된 친구 관념과 혼인 관념을 해체했다. 자신을 바로잡으니 그의 언행도 바로잡혔다. 그는 나에게 “공산당은 진짜 멸망해야 한다! 나를 이렇게 망가뜨렸고 나는 당신의 말을 믿는다.” 라는 말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도 탈당하게 했고 가족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념하게 했다.
내가 이 사람과 얽히게 된 것을 보았을 때 구세력이 빈틈을 타 복이 거의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나는 홧김에 집과 가까운 아주 좋은 일자리를 거절했다.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시험을 봤지만, 실패가 많아 마음속으로 아주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한 수련생을 알게 되었고 그 수련생의 근면하고 태만하지 않은 모습과 낙관적인 심리는 큰 영향을 줬다. 그 뒤로 나는 매일 법을 외우고 마음도 결과에 따라 흔들리지 않으며 나에게 면접 기회를 준 기업에 대해 정념으로 배후에서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교란하는 나쁜 물질을 제거했다.
마음 먹고 꽃을 심어도 꽃이 피지 않을 수 있고, 무심코 꽂아 놓은 버들가지가 자라 그늘을 이루기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찾았다. 그때 거절했던 일자리와 똑같은 것이지만 집과 거리가 멀었다. 가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다. 직장에서 나는 기회를 마련해 인연이 되는 사람을 구도했다. 어느 한번, 나는 마음을 써서 무신론과 진화론 그리고 사당론(邪黨論)의 강연을 했다. 동료가 보고 내용이 아주 좋으며 근거가 있고 도리가 있다고 하였고 원고 그대로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두 번의 곤경 중에서 나는 체면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진상의 중요성을 알고 진상을 시작해 여러 사람의 앞에서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어 여러 명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를 했다. 나는 삼퇴를 하지 않는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편견을 내려놓고 나를 비웃은 친척들도 구도했다.
어느 한 선생님은 손을 들고 하늘에 맹세하며, 삼퇴를 하는 것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 대학교수는 역병 기간에 나에게 전화를 해 이렇게 말했다. “삼퇴 한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평안을 지켜야 한다.” 이 선생님은 탈당한 지 2년이 되었다. 나는 자비의 내포를 깨달았고 느낄 수 있었다. 또 동창 한 명은 몇 년간 나와 연락하고 있는데 그에게 삼퇴를 얘기하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네가 한 말은 나는 모두 믿는다. 하늘 아래 맹세한다. 나 모모는 지금부터 중국공산당 공청단에서 탈퇴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몇 년간 제일 탄복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다. 바로 리훙쯔(李洪志) 대사(大師)님이시다.”
맺는말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나를 괴롭힐 때 나는 화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슬픔과 그리움이 있었다. 이것은 나의 제일 큰 마성이고 정에서 많은 마난을 겪게 했다. 내가 결심을 하고 이 뿌리를 뽑을 때 공간장에서 봉인된 스페이드 하트를 봤다. 이러한 감각은 구세력의 기제(機制)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에 정진하면서 지난 과거의 수련과 중생구도를 생각하면 유감이다. 또 연화색(蓮花色)은 난륜기녀였지만 선근(善根)과 선연(善緣)이 때가 되어 근면하게 수련해 석가모니의 신통제일 여제자로 되었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갔고 불법은 끝이 없다. 놀이에 빠지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며 물을 거슬러 배를 젓자!
원문발표: 2023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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