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싱가포르법회]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다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련한 지 28년이 됐습니다. 수련 전에 저는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두툼한 철학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인생에 많은 의문이 있었는데 그 답을 찾아 헤맸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몇 명이 영미 문학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한담을 나눈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 선생님께 인생은 무엇인지 물었고 그 선생님은 인생은 수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답은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됐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야 제가 찾고 있던 것이 대법이고 이번 생은 대법을 수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매체 항목에서 수련

저는 인터넷 매체 항목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협조인은 전문직 출신으로 기술도 좋았고 효율도 높았으며 유능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그에게 많은 문제를 물었는데 그는 모두 대답해 줬습니다. 나중에 그가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 항목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는 더는 그를 귀찮게 할 수 없었습니다. 두 명의 노수련생은 인내심을 갖고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저를 위해 애써 준 시간을 항목에서 두 배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임자인 노수련생의 가르침을 받아 저는 많은 이익을 얻었고 업무에 임할 때 태도가 엄숙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초기 인터넷 당직은 일손이 부족했고, 제가 당직을 하는 시간은 대부분 혼자였습니다. 업무량이 많고, 유지 보수가 매우 필요했으며 몇 시간 동안 긴장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당시 모두 사심 없이 일했는데, 다만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구도의 신념과 서로 간의 믿음뿐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회상하면 이 항목을 소중히 여기고, 과거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했던 수련생들을 소중히 여겨 사부님께서 열어주신 환경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저는 매체의 변화를 느꼈고, 공산당 문화가 많다는 것, 업무의 질보다 조회 수만 추구하고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곤혹스러웠고 관리 방면에 대한 원망심도 생겼으며 어쩔 방법이 없는 가운데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외적인 부족함만 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부정적인 상태, 배후에 있는 부패한 물질과 사람 마음을 제때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매스컴에 참여한 후 상당 기간 일을 최우선으로 했고,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집착하면서 수련이 따라가지 못해 정념이 부족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불만의 배후에는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 투쟁심, 질투심이 있었습니다.

서서히 저는 자세를 낮추고 저 자신을 불을 피워 밥을 짓는 어린 스님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일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누군가가 저에게 불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겉으로는 절제했지만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 후 저는 ‘열심히 하는 것도 잘못인가? 이것은 그들이 함께 뭉쳐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는 게 아닌가?’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평형을 잡을 수 없었고 쟁투심이 나왔습니다. 법공부를 한 후 저는 그것이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수련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은 명성과 이익에 대한 마음을 갖고 일할 때 나는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명성과 이익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이 한 일에 만족하지 않는 데는 원망, 불평,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마음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남들이 틀리더라도 내가 옳다고 할 수는 없고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치를 따지고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도 역시 사람의 도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가 법의 요구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한 것일까요? 제가 보니 수련생들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열심히 일하는 편이고 바삐 보내면서 정말 고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더 많은 일을 맡았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은 후 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년에 매체는 참가자들에게 교정, 문법, 신문 보도, 글짓기 방면의 시험을 볼 것을 요구했습니다. 교육 자료를 받았을 때 내용도 많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었기에 겁이 났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수준도 높이고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험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외울지, 시험은 어떤 형식으로 보는지, 시험문제가 어려울지 등등 정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하고 ‘만약 이런 것들이 파악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라면 왜 배우지 않겠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생활을 간소화하고 다른 일을 정리한 후 학습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금씩 읽는 중에 때로는 정말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잘못 봤다고 해도 단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매체 일을 하는 중에 실수가 생긴다면 그것은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일상적인 당직보다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진지하게 임해 마음을 바로잡았고 결과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각종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그것으로 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뉴스 환경 속에서 세상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수련자의 수련된 면을 분리한 후에는 항상 사람이 수련하는 것인데, 사람의 일면은 쉽게 각종 요소에 의해 움직이고 쉽게 자신을 위해 변호하게 되는데 누가 시종 틀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의 기본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비교적 편향되지 않을 거란 것을 법에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밍후이 보도 중 수련

저는 현지 활동을 밍후이왕에 보도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중에 순조롭지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게 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발생한 많은 기적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때로는 생각나지 않아 괴로웠고, 때로는 생각이 났으나 또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처리해야 했으며, 또는 다른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순간의 생각은 즉시 기록해야 했는데 사실 업무 상태에 들어간 후 방해받는 것이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보도하고 있는데 한 수련생이 여러 번 전화해 일에 관해 물었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이해하고 가능한 한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대답했습니다. 제가 바쁘다고 거듭 설명했으나 수련생의 전화는 오후까지 줄곧 걸려 왔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그 수련생이 또 전화를 걸어와 제 마음은 끓어오르고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제야 수련생은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리한 많은 자료를 저장하지 않아 날려버렸습니다.

원고를 정리하기 전이나 사전 인터뷰를 할 때는 대충 시간을 짜서 컨디션을 조절하지만 몇 번은 방해받아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에 협조해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대한 참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막판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반성하면서 저는 ‘그래, 만약 항상 순조롭다면 그렇게 고생스럽지 않지, 이것은 나에게 또 고생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체 교육을 받을 때 한 작가가 글짓기에 성공하려면 읽고, 쓰고, 참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글쓰기가 힘들고, 창작이 어렵고, 다시 쓰기도 힘들고, 편집자, 출판사, 평론가의 방식들도 모두 한계가 있어서 속인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과 다른 의견이 있었는데 서로 각자의 의견을 고집했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모르면서 안다고 하고, 남이 잘못한 것을 제가 한 것이라고 원망하는 것은 세력으로 남을 누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전에 두 명의 수련생이 제 귀에 그 수련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이 생각에 따르면 상대방이 틀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돌아보니 능력이 부족하고, 이치를 따지려 하며, 자아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선량한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남에게 이치가 없다고 느낄 때가 바로 수련자의 참음을 볼 수 있을 때입니다. 제가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잘 협조하려 하자 사부님께서는 상대 수련생의 빛나는 면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때로는 문장이 발표되고 수련생들의 칭찬도 들려옵니다. 물론 격려가 되지만 과시심과 환희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좌절 속에서 자아를 실증하려는 숨겨진 마음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늘 체험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많은 일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속으로 만약 ‘4.25’ 사건의 목격자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 한 노수련생이 제 뒤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물으니 노수련생은 “제가 현장에 있었어요. 뭘 알고 싶으시죠?”라고 물었습니다. 또 한번은 마음속으로 자신감이 없었는데 두 명의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1999년 이전의 감동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줬는데 그것은 바로 제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2022년은 대법이 널리 전해진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노수련생 세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 했을 때 당시 보도 내용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하지 않았었습니다.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저는 그들이 법을 접한 시기가 모두 1995년 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법을 전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원고를 다 쓰고 그들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간 좋은 세월은 옛 사진과 함께 해야 더욱 좋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늘 사부님의 자비로우심에 감동하고 수련 이야기를 나누는 수련생들의 법을 실증하려는 마음에 감동하기도 합니다. 그 금빛 같은 마음은 에너지를 발산해 저를 정진하게 격려해 줍니다.

가정환경에서 수련

가정환경은 가장 쉽게 자신을 느슨해지게 하고 부족함을 폭로하기에 좋은 수련 장소이기도 합니다. 일거수일투족, 일언일행은 선(善)을 행하는가, 하지 않은가, 사소한 일에 구애받는가, 타인을 위하는가 등을 나타내고 갈등을 피하려 해도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남편에게 컴퓨터 방면에 대해 문의했는데 남편이 영어로 대답해 저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런 것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소통하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상처받았다는 생각이었는데 바로 제가 예전에 했던 말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남편은 한 가지 사실을 말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항상 불평이 있었고 이기적이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또 한번은 작은 갈등이 생겼는데 저는 속으로 꼭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을 때 사부님께서는 ‘진풍(真瘋)’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진풍’하는 사람은 그곳에서 괴로움을 견디고 있다는 그 층의 함의를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한동안 남편은 저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으나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 나이에는 잔소리를 좀 하는 게 정상이라 생각하고 가까운 사람이라 말이 많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만이 재차 나오자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말참견을 하며 말을 가로채기 급했습니다. 그 뒤에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감정을 발산하고 따뜻함을 찾는 것에는 두터운 정이 있습니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적지 않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아직도 사소한 일로 여기다니 정말 창피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몰라 저는 자책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한동안 몸에도 증상이 나타났는데 저는 단번에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았고 말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수련생이 한 교류 문장에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갈등 중에서 무조건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 후에야, 가슴을 도려내듯 자신을 닦고 몇 년을 견지해서야 점차 자신의 생명 깊은 곳의 습성, 천성, 관념 중의 구우주의 이기적이고 더러운 불순물을 보았다.” 이 단락은 저를 깊이 공감하게 했고 또한 사사로운 관념을 파고들어 전통에 어긋나는 습관을 고치도록 격려해 줬습니다.

방금 한 말이 또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많은데 그 속에 이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자신을 단련하면서 바로잡았습니다. 가정에서는 자질구레한 일, 끝없는 집안일, 그리고 안팎으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속에 빠져 있으면 쉽게 억울함, 원망심, 조바심 등이 드러납니다. 유일한 방법은 갈등이 생겼을 때 안으로 찾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만 생각할 때는 남들이 항상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남을 진정으로 생각할 때는 좋은 쪽으로 환경이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후기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고려해 오랫동안 글쓰기를 꺼렸기에 이번 교류 기회를 거의 포기할 뻔했습니다. 제가 원고를 쓰는 과정이 수련하는 과정이고, 과거를 정리해 부족함을 찾아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이며, 또한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란 걸 분명히 알게 되자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든지, 사부가 사실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형세가 변하고 있지만, 대법제자는 수련에서 형세에 따라 변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어떠한 상황에서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모두 대법제자답게,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1]

지금 형세는 매우 빠르게 변합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당부를 명심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 수련의 길을 잘 걸어 나가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023년 싱가포르 법회 교류 원고)

 

원문발표: 2023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11/45467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11/45467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