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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법회]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다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법을 얻은 지 24년이 지났지만, 법을 얻은 초기에 느껴봤던 강한 힘을 지금 떠올려봐도 여전히 매우 감동적입니다.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영광입니다!

진법(真法)을 찾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진정한 수행 법문을 찾아 헤맸습니다. 16~17세 무렵,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때는 제 인생이 망가져 버릴까 봐 걱정했습니다. 누군가 불교 서적을 한 권 줬는데 저는 좀 깨달음을 얻어 별로 마음을 졸이지 않게 됐습니다. 18살 때 불교 신자가 됐지만 많은 사람이 모두 추구하고 있었고 진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저는 요가, 기공, 불가, 도가, 밀종을 줄곧 연구하고 탐색하면서 많은 것을 접했습니다.

1998년 초, 대중서점에서 ‘미국법회설법’이라는 책을 찾았습니다. 이 책은 제가 읽은 사부님의 첫 번째 설법입니다. 마음속의 많은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어주셨고 여러 근본적인 것을 알게 되어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정하게 수련하는 법문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직 어디에 가서 공을 배워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1998년 10월, 신문에 실린 광고 한 편을 보았는데 파룬궁 무료 9일 학습반에 관한 내용이어서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학습반에 들어간 날 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밝은 달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알 수 없는 감동이 일었고 내심으로 ‘나는 사부님을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을 얻은 후 심신에 환골탈태하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심각했던 불면증, 천식, 피부 문제, 쉽게 피곤해지는 증상이 매우 빠르고 눈에 띄게 개선되고 길을 걸을 때 몸이 매우 가벼웠습니다. 예전에는 성격이 나빴고 화가 나면 가라앉히기 어려웠습니다. 연공한 후에는 화가 나면 성냥개비 불처럼 매우 빨리 사그라들었습니다. 원한이 담담해져서 무슨 일이든지 기억하지 않고 한을 남기지 않았으며 매우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예전에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복제 소프트웨어를 자주 샀지만 수련 후에는 이런 취미를 모두 버렸습니다. 속으로 ‘불교 서적을 그렇게 오래 봤어도 무슨 변화가 없었는데 파룬궁은 이렇게 단기간 배웠는데 분명하고 뚜렷한 개선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경에서는 불법이 끝없다고 하지만 저는 30년 넘도록 불교 신자로 있으면서도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법을 얻고서야 이런 느낌이 생겼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저는 매우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법문을 인정하고 꼭 대법 수련을 견지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관 속에서 놀라 깨어나다

이렇게 여러 해 수련하면서 세 가지 일을 어떨 때는 정진하고 어떨 때는 느슨히 했습니다. 2018년 갑작스러운 병업관은 큰 망치처럼 저를 갑자기 깨어나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는 서로 도우며 우애가 좋았습니다. 2018년 여동생이 떠들썩하게 이혼한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아이 셋을 키울 생각을 하니 몸에 병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했습니다. 동생에게 대법 수련을 권하고 싶었는데 앞뒤를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매우 컸습니다. 일까지 더해져 매우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별안간 손발에 힘이 없고 몸 전체에 힘이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우 가까운 거리도 걷지 못했고 매우 느려서 언제든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샤워도 벽에 기대서 해야 했고 방에서 화장실까지 가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2주간 병가를 냈습니다.

수련생인 아내는 저의 연공과 발정념을 격려해줬습니다. 처음에는 몸에 균형을 잡지 못해 몸을 소파에 기대고 동공(動功)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발정념 시간을 늘렸습니다. 돌아가 출근한 후 사무실에서 점심 휴식 시간에 매번 12시 발정념 시간이 되면 작은 구석에서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습니다. 최소 반 시간이었고 가장 길게는 45분이었으며 효과는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몇 주 후, 체력을 서서히 회복했습니다.

이번 병업 가상은 저를 수련에서 진지해지도록 했고 그때는 감히 태만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래층에서 연공을 시작했고 법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 후 많은 집착을 내려놨는데 컴퓨터와 인터넷의 속인 뉴스도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가족 정도 매우 담담히 보았습니다.

그 후 2019년 10월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 원래 말레이시아 법회에 서둘러 갈 생각에 마음이 급한데다가 업무적인 관계로 이미 하루 연기됐고 아내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점심시간이었고 운전을 빨리하다가 차에 부딪혔습니다. 사람은 아무 일 없었지만 머리에서 피가 많이 흘렀습니다. 구급차가 왔고 도중에 지혈됐습니다. 병원에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연공인이며 아무 일 없다. 병원에서 다음날까지 잠을 자지 말자’라고 생각해서 확고하게 퇴원했습니다. 그날 밤 병원을 나와서 다음 날 아침에 가서 연공했습니다. 다만 법회만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난관을 겪은 후, 수련의 엄숙함을 느꼈고 세상에서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전염병 속에서 온라인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다

2020년 초, 한 수련생이 저와 아내에게 함께 온라인 법공부를 하자고 알렸습니다. 뜻밖에도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전염병 가운데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신 토대였습니다.

우리는 밤 9시 반부터 온라인 법공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두세 사람에서부터 지금의 열 몇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서서히 성숙하는 수련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이런 기제를 형성했고 매일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앉아 수중의 다른 것은 모두 내려놓습니다. 하루라도 배우지 않으면 무언가 줄어든 느낌이 듭니다.

이 과정에서 수련생 간에 심성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읽고 어떤 사람은 느리게 읽습니다. 어떨 때는 글을 잘못 읽고 어떨 때는 자기가 어떻게 잘 읽는다는 과시심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수련생으로부터 여러 번이나 지적을 받아도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 지적받을 때 마음이 불편했지만 나중에 바뀌어 그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의 지적이 없었다면 그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수련생이 한동안 법공부에 나오지 않으면 바쁜 것인지 아니면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인지 걱정하게 됩니다.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 수련생을 매우 자비롭게 지적해야 하고 말투가 나쁘고 선한 마음이 부족하면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상황은 갈수록 좋아져 모두 점차 성숙했습니다. 모두가 비교적 또렷하고 좀 느리게 읽으면서 읽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법공부를 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중국의 신수련생, 베트남 수련생이 모두 들어옵니다.

우리는 2020년 5월부터 온라인 단체 연공을 했습니다. 연공은 새벽 4시 20분부터 시작해서 포륜(抱輪)을 1시간 하고 한 차례 발정념을 하며 7시 15분까지 지속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년 넘게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공 음악을 틀어주는 것을 담당했습니다.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쉬운 것 같아도 사실 처음에는 압력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서툴러 어떨 때는 무선 인터넷, 오디오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늦잠을 자고 알람이 울리지 않거나 피곤해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때때로 연공 중에 허튼 생각을 했고 업무에서 인간관계의 갈등이 대단했는데 컴퓨터에도 교란이 나타났습니다. 저도 결국 심성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성을 제고한 후 곧 달라졌습니다. 어떨 때는 수련생이 오늘은 왜 이렇게 잘 틀어주지 못했냐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원망도 좀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또 틀어줄 줄 모릅니다.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것은 자신이 위덕을 수립하는 기회이니 소중히 여겨야 하고 상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아내와 함께 출국하려면 임시로 인계받아 음악을 틀어 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보기에는 매우 간단한 일 같지만 직접 해봐야 그 과정에서의 압력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음악이 나오는 중에 갑자기 멈췄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우리는 긴장하며 테스트해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책임을 나누었고 자신에게 연공을 견지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저도 그 과정에서 혜택을 받아 몸의 에너지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1~2년간은 출근할 때 여전히 피곤함을 느껴 어디 가서 쉬거나 잠을 좀 자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3년째 되어가고 있는데 체력이 더욱 좋아졌고 활력이 충만해졌습니다.

봉쇄가 해제된 후, 우리도 인연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법을 배우는 데 편리하도록 매주 일요일 아침 공원에서 단체 연공을 합니다.

집마다 작은 연꽃을 가져다주다

저는 건축 품질 검사 일을 하고 있으므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공사 품질을 검사하며 여러 유형의 집주인과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적힌 작은 연꽃을 인연 있는 사람의 손으로 전달해줬습니다.

매일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는 것을 견지한 후 업무가 갈수록 순조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집주인이 이것저것에 불만이 있어서 저도 일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공사 품질이 갈수록 좋아져 업무도 수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인수인계 후, 저는 맨 마지막에 떠납니다. 집주인은 만족스러워했고 저는 하는 김에 작은 연꽃을 작은 축복의 선물로 주었습니다. 동시에 파룬궁을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많은 집주인이 기뻐하며 작은 연꽃이 예쁘다면서 거듭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 송이의 작은 연꽃은 성결하고도 진귀하며 사람을 구하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량의 작은 연꽃을 나눠줬습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진상자료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9일 학습반에 참가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들의 꾸밈과 장식, 무슨 책을 읽고 무엇을 믿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 후 다시 천천히 그곳에서부터 진상을 알립니다.

업무 중에도 집착심을 제거하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한번은 제 신분증명서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가슴에 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집주인은 기분 나빠하며 뭇사람들 앞에서 “당신은 누군가요? 왜 우리 집에 들어왔나요?”라고 꾸짖었습니다. 저는 공사 품질을 검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급히 설명하며 신분증명서를 꺼내 보여줬습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은 모두 제 직원이어서 좀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집주인과 이야기할 때 좀 실례했고 예의 바르게 저를 소개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체면을 중시하는 제 마음을 없애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집주인은 우리의 공사에 매우 만족했고 제게 미안하다며 그날 오해했다고 사과했습니다.

매일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일찍 퇴근하는 한 동료가 있습니다. 결국 그는 일찍이 끝내야 하는 일만 할 수 있었고 비교적 늦게 처리해야 할 업무는 다른 직원에게 미루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약간 동요가 일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가 있든지 없든지 저는 모두 마땅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을 잘해야 하며 따질 것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어느 날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아내가 암에 걸린 지 10년 후 사망했고, 본인은 심혈관 3곳이 막혀 의사가 수명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2년간 제 주변 동료 중 몸에 여러 상황이 나타난 사람이 있는데 한 동료는 신장암에 걸려 직무를 그만뒀습니다.

또 한 동료는 장 질환으로 직장을 떠났습니다. 다른 두 사람도 암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여러 동료가 감염됐으며 저는 감염되지 않은 네 명 중 한 명입니다. 동료 중에서 제 몸이 가장 건강해 보입니다. 저는 올해 이미 63세입니다. 속인은 고생 속에 잠겨서 60세가 넘으면 여러 질병이 찾아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대법 수련은 얼마나 행운인지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익에 대한 마음을 닦아 없애다

저는 어려서부터 집안이 가난해 검소한 생활 습관을 길렀습니다.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고 돈은 의미 있는 곳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4월 말, 말레이시아 봉쇄가 풀렸습니다. 저는 아내와 원래 새해에 말레이시아 고향으로 친척 방문하려고 계획했는데 아내의 형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리는 쿠알라룸푸르로 길을 바꾸어 문상하게 됐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 머무는 동안 제 한 동창이 싱가포르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이 동창은 저와 동갑인데 40세여 년 전 저와 함께 말레이시아 고향에서 나와 싱가포르에 가서 최선을 다해 일했던 친구입니다. 그의 집은 싱가포르와 가까운 말레이시아 조호르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동창의 장례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가 싱가포르가 생소하고 낯설 것이라고 생각해 곧장 싱가포르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도 가능한 한 빨리 갔습니다.

이 수련생은 즉시 장례와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등 일을 도왔습니다. 돈을 많이 썼으면서도 제게는 모두 친구이니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돈과 재물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 대법제자의 그런 사심 없는 경지에 감동했습니다. 정말 속인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동창의 아내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한 명은 곁에 없었고 한 명은 자폐증 환자였습니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저는 이 돈을 내기로 했습니다.

동창의 장례식이 끝난 후 저는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 아내와 합류해 표를 예매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는 긴 연휴여서 처음에는 기차표 요금이 너무 비싸서 예약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다시 예약하려고 가 보니 표가 전부 매진됐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고 버스비도 기차비보다 더 비쌌습니다. 도중에 또 길이 막혀 원래 8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14시간 걸렸습니다. 길에서 화장실을 가게 될까 봐 감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기차를 탔었다면 길이 막히지 않아 곧바로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돈은 아낄 수 없고 싼 것을 탐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더욱 싼 표를 사려다가 오히려 비싼 표를 사고 시간도 지연됐습니다. 적은 돈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이나 왔다 갔다 한 후 우리 부부는 동창 아내와 약속하고 이 기회에 진상을 알리려 했습니다. 동시에 동창의 아내를 도와서 할 수 있는 것은 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진상자료와 대법서적을 가져갔습니다. 동창의 아내는 우리가 장례비를 받으러 온 줄 알고 이제 막 병원비를 다 갚았으니 시간을 좀 더 미루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동창의 아내에게 돈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근황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창의 아내는 감동해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이상은 자신의 일부 수련 경험과 소소한 체득이며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의 기연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에서 진상 알리기 측면이 아직 부족한 만큼 앞으로 잘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제한된 수련 시간 동안 유감을 남기지 않도록 자신을 잘 수련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2023 싱가포르 법회 교류원고)

 

원문발표: 2023년 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9/45466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9/4546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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