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해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한 너무 많은 고민이 있어서 20여 년 수련 중에서 가장 침울한 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구름 걷히듯 이미 사라졌습니다.
우리 법공부 팀에는 3명의 수련생이 있습니다. 세 사람으로 이뤄진 ‘작은 사회’로, 이 작은 무대에서 한쪽이 조용하면 다른 쪽이 들고 일어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수련 환경에서 온갖 사람 마음이 부딪히는 가운데 각종 나쁜 마음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깨닫게 됐습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다른 층차의 법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아래에서 두 가지 측면의 인식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1. 정체(整體)에 대한 인식
지난해 갈등 속에서 우리 법공부 팀은 조화로운 정체가 아니며 서로 간에 촉진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을 진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저도 떠나고 싶었고 모두가 각자 평온하게 법공부를 잘해서 제고되어 올라온 후 다시 법공부를 함께 하고 교류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사부님의 단체 법공부에 대한 요구에 어긋나는 것이고 자신이 아무리 일리가 있더라도 그것은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생으로서 조사정법 하려면 단지 사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잘 원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을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되어 사부에게 당신을 도우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정법 중에서 대법으로 당신 사람의 생각을 원용시킬 수 있단 말인가?”[1]
저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원용해야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단체 법공부를 요구하시면 단체 법공부를 해야 합니다. 법리에서 깨달았으나 행하려니 몹시 어려웠습니다. 매주 함께 법공부를 한 후 시원하게 교류할 수 없었고 늘 누군가와 부딪힐까 봐 피하고 어떤 말을 잘하지 못해서 또 갈등과 다툼을 초래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질책받으며 모욕당하는 경우가 사람 마음에 충격을 줄 때, 마음속 고통, 억울함,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곤혹스러움은 늘 사람 마음을 억누르고 답답하게 하며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제게 닦아 없애야 하는 것이 매우 많았지만 어떻게 해야 이런 무거운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 법공부 팀을 떠나기로 거의 다짐했을 무렵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대원만법’ 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다른 수련생 집에 두고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이 정체를 벗어날 수 없고 이 수련 환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여기서 수련해내야 한다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점화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의 법이 떠오르고 한신(韓信)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한 “대인지심(大忍之心)”[2]을 생각해 보니 저는 마땅히 노력을 기울여 마음을 수련해야 옳은 것이었습니다.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법에 용해된 상태가 되는지, 어떻게 해야 세간에서 행하나 마음은 걸림이 없을지에 대해 몰랐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 곤혹스러움과 오랫동안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시고 대법에서 무엇이 관용이고 어떻게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상태 속으로 걸어가는지 제게 펼쳐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잘 수련하지 못하면 이 정체에서 나쁜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점을 깨닫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체에서 자신을 마땅히 잘 수련해야 하고 자신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이 정체의 조화로움을 위해 바른 작용을 일으켜야 합니다.
대법 수련자이고 미래 신우주 정각(正覺)의 대법제자이자 우주의 수호자로서 마땅히 모든 바른 요소를 위해 책임져야 하고 우주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하며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책임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대법 수련자로서 우주 창생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만약 자기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기 세계의 중생은 제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마다 하나의 우주를 대표하고 있다면, 다른 우주로 구성된 더욱 큰 이 천체에서 자신은 그중의 한 입자, 일부에 불과합니다. 만약 자기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거대한 천체 전반을 바로잡는 일과 사부님의 정법에 영향 주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하자 이 거대한 우주에서 저는 ‘왜 계속 개인적인 느낌에 집착하고 무슨 내려놓지 못할 개인의 득실과 영광, 그리고 치욕이 더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선을 돌려 안으로 보니 내려놓지 못한 것은 속인의 명리정(名·利·情)뿐이었습니다. 법리를 깨닫고 이 한 층의 법에 동화되려 할 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 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물질을 순식간에 제거해 주셨으며 순간적으로 세상이 맑고 넓게 느껴졌습니다.
2. ‘불만’이라는 마음을 제거하다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다가 한 가지 마음은 막 발견됐지만, 이 마음이 곳곳에 다 있는 것은 물론 매우 깊이 누적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슨 사람 또는 무슨 일에 대한 불만’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갈등 속에서 이 불만이란 마음은 더욱 쉽게 생겨났습니다. 이 1년간의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서야 제게 이 마음이 곳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았습니다.
제 현재 층차에서의 인식은 이 불만이란 마음은 진정한 ‘진(真)’과 진정한 ‘선(善)’을 행하지 못하며 ‘인(忍)’은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으로 타인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고 타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심지어 업신여기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선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나쁜 요소를 해체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까요?
이 ‘불만’은 주로 ‘위아(爲我)’, ‘위사(爲私)’,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불만’은 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3]. 그러나 이 불만이 생기고 갈등을 빚을 때 첫 일념은 늘 ‘잘못된 것은 그이고 옳은 것은 나’입니다. 평소에 일하고 사람과 왕래할 때 많은 일이나 사람을 판단하면서 항상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못하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은 좋다고 착각하고’, ‘자만하며’, ‘잘난 체하고’, ‘자기 인식이 옳고 좋은’ 등 나쁜 사람의 마음이 동반됩니다. 사람과 사물을 법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관념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정체에서 지나치게 많은 불만을 표현하면 불안정한 요인이 생기거나 서로 간의 간극이 생기기 쉽습니다.
얼마 전, 프린터의 한 가지 색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를 보니 “먼저 사람을 닦고 다시 기계를 수리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나쁜 마음과 나쁜 물질이 프린터의 잉크가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지 한층 한 층씩 안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인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사상에 주의를 기울여봤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자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제 고민거리, 답답했던 마음은 모두 다른 수련생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제게 상처를 줬고 저를 억울하게 했으며 저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나쁜 것이 많은데 마음이 어떻게 밝을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 중생을 구하는 자료를 만들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나쁜 시커먼 물질을 내보냈습니다. 만약 제가 프린터와 자료와 중생과 함께 하나의 장을 이루었고 하나의 무형적인 정체를 이루었다면 이렇게 나쁜 물질이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프린터가 막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 마음이 막히지 않고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만든 자료가 중생을 구하는 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이 불만을 깨달은 후 끊임없이 발정념해 이런 나쁜 사상과 물질을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그런 후 이 생각의 갈피를 따라 평소에 타인에게 불만이 없었는지 찾아봤습니다. 그제야 층층이 형성된 관념 속에 불만이 매우 많이 누적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하는 태도, 행동, 일 처리 방식, 일하는 방식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가득한데 어떻게 진정으로 선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관용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정체 속에서 다른 사람과 즐겁게 잘 협력해 공동으로 한 가지 일을 잘 완수할 수 있을까요?
이 불만이란 마음은 자기 제고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정체의 화합과 승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발정념의 역량을 강화하고 횟수를 늘려 불만을 완전히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얼마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수련생에 대한 불만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갈등도 저와 매우 멀리 있는 듯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점도 보지 않게 됐고 속인 간의 시비를 느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법에 동화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동화되어 사람을 잘 대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불만’을 제거하는 과정은 ‘사(私)’와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맺는말
이 한 해 동안의 수련에서 어떤 기점에 서서 문제를 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수련에서 체득한 것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마음속으로 한 대법제자로서 대법 정체의 한 입자라면, 어떻게 무조건 법에 동화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잘 원용하는지 생각해야 비로소 자신을 끊임없이 수련해 바로잡고 법에 용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리를 펼쳐 보여주셨기에 우리가 다른 층차의 법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여전히 이 층의 법에 따라 위로 수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의 수련을 보고 계시고 자비롭게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사부님께서는 프린터를 배치해 제 답답한 마음의 원인을 일깨워 주셨듯이, 각종 사람과 사물로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점화해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온갖 사람 마음과 관념을 내려놓고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점차 미래 신우주 정각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 은혜에 공손히 절하며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들과 함께 격려하고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3-무엇이 조사정법(助師正法)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誰是誰非)’
원문발표: 2023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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