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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배후는 사심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오 발정념을 하고 외출해 진상을 알릴 계획을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머릿속에서 ‘나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돌아와야 할까? 가는 길에 감시카메라를 어떻게 피할까?’라는 각종 불안정한 생각이 뒤엉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뭐 하는 거야? 나는 우주에서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어!” 이런 불안정한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세히 생각해보니 각종 생각의 배후는 결국 ‘두려운’ 마음이 아닌가? 더 생각해보니 ‘두려움’의 배후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각종 마음이 아닌가? 고발당할까 두렵고, 잡힐까 봐 두렵고, 감옥이나 세뇌반에 들어가서 고문당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더 생각해보니 사실 바로 자아를 보호하려는 ‘사심’이었다!

이렇게 한번 안을 향해 찾으면서 순간 모든 ‘두려운’ 마음의 근원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이 법을 빗나갈 수 있고 생명이 고층차에서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들에게 이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이다.”[1]

예전에 나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사심’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이 한 층의 법리도 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사(私)’는 구우주의 생명이 법을 빗나간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법에 동화하는 것은 부동한 경지의 ‘사’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부동한 경지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2]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이렇듯 수년간 수련을 하고서 이제야 한 생명이 “무사무아(無私無我)”[2]로 수련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신우주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표준이다!

‘내(我)’가 있기에 ‘사(私)’가 있다. 사부님께서 정법하고 계시는데, 우리 모든 생명은 방대한 천체우주 속에서 모두 미세한 먼지 속의 미세한 먼지이다. 이미 훼멸로 나아간 천체를 구도하고 바로잡으시려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념이 아니라면 우리는 진즉 다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디에 이 작고 작은 ‘내’가 있겠는가?

부동한 천체, 부동한 층차에는 생명에 대해 부동한 경지의 표준이 있다. 우리가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 ‘사’는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구우주 천체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일부분이다. 우리가 일함에 있어서 기점이 위타(爲他)에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점차 무사무아에 도달하는 이 과정에서 두려운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마음속에는 오직 ‘사부님께서 요구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을 원용하여 최대한 사람을 많이 구하자!’라는 일념만 갖고, 이 외에 다른 모든 생각을 내려놓자! 작은 하나의 생각이라도 그것은 부동한 경지에서의 ‘사’일 수 있으니 모두 수련해 제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두려움을 내려놓는 과정 역시 우리가 구우주 위사(爲私)의 경지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다. 법에 동화되는 것은 무사무아인 신우주의 부동한 층차 표준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22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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