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양판(揚帆)
[밍후이왕] 나는 스스로 자신이 겸손하고 조용한 사람이어서 과시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나의 과시심을 발견했는가?
한 가족 수련생은 해외 수련생이 전하는 주어들은 소식을 즐겨 듣고 남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주워들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과시심에서 초래되는데, 이 일을 나에게 보여 준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고,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이다. 난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는지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찾지 못했다고 없는 것은 아니기에 과시심에 대한 사부님의 법을 외우기로 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아무리 해도 한 구절은 외워지지 않았다. 너무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이런 구절이었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1] 그 중의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1]를 보니 내가 과시심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는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
법리는 알게 됐지만, 자신의 과시심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언행에 더 신경을 써서 과시심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 집착심을 닦아버리려는 소원이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한 가지 일을 통해 자비롭게 나를 점화해 주셨다.
어느 날, 딸이 옷 한 벌을 사 입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카키색 코트인데 평범한 디자인이어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딸은 내가 옷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을 알고, 이 옷은 자신의 모든 옷과 잘 어울리는 “만능 옷”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옷을 살 때, 모두 참신한 디자인을 선택하여 독특한 스타일의 옷을 입으려고 한다.” 말을 하다가 멈추고 딸에게 물었다. “이건 과시심이 아니야? 항상 남다른 걸 사고 싶어 하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딸은 그렇다고 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남다른 상의를 샀기에 시간을 소모하며 상의와 어울리는 바지, 신발 등을 사야 했고, 결국 더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자신의 과시심을 위해 돈을 썼다.”
나는 50이 가까운 나이에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옷을 살 때 이런 심리가 과시심의 표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딸이 아니었다면 나도 주의 깊게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과시심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나의 관념이다. 옷을 살 때 ‘남달라야 한다.’라는 관념이 이미 형성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관념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나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소녀들은 열 살쯤 되면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작은 편이어서 현지에서 몸에 맞는 옷을 사기 힘들었다. 그 시기에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많은 패션 잡지를 샀으며, 몇 년 동안 ‘○○패션쇼’ 잡지를 주문했다. 너무 많이 봐서 웬만한 옷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잡지에서 디자인이 남다른 옷과 바지, 치마 등을 찾아낸 다음, 개인 옷 가게를 찾아가서 사장님에게 잡지의 디자인과 같은 옷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런 옷을 입으면 남들이 보고 “이 옷은 정말 예쁘다!”라고 칭찬하였고, 거리에 나가면 남들이 ‘돌아볼 확률’도 높았다. 사실 모두 과시심의 농간인데, 이 옷이 예쁘다거나 예쁘지 않다고 느낄 때, 색심도 움직인 것이다.
자신에게서 이처럼 많은 사람 마음을 보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3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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