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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법회] 진정한 수련의 길을 걷다

글/ 아르헨티나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저는 2013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습니다.

제가 오늘 발표할 내용은 장대한 업적이나 거대한 성과가 아닌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집착, 관념, 사람 마음으로 겪은 괴로움과 우여곡절입니다. 이것을 발표해 진정하게 수련의 길을 걷고 비록 그런 길이 멀지라도 스스로 굳건히 그 길을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싶습니다.

질투심을 인식하고 제거하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전봇대에 붙은 글을 읽어줬습니다. “질투에서 시기심을 철저히 제거하라.” 이 글귀를 들은 나는 처음에 멈칫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자신이 질투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일은 없는 것으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질투심에 대해 강의하셨고 우리에게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1]고 하셨습니다.

나는 질투심과 전봇대의 그 한마디를 되새겨봤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조용히 안으로 찾아보니, 모든 집착은 최후에 질투심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질투심이 사람의 전부 혹은 대부분의 집착심의 근원이라면, 질투심은 우리 사람의 한 면을 대표하고 우리가 수련 제고를 위해 내려놔야 하는 ‘자아’입니다.

전봇대에 적힌 글을 읽은 며칠 뒤, 나는 남편을 향한 질투심이 폭발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 불공평함, 무시하는 마음, 맞고 틀리고에 집착하는 마음, 도도함 등 나의 모든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예전에 없었던 그런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염두들이 튕겨 나왔는데, 이것이 진정한 자신의 사유가 아님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제거하지도 못했습니다. 귓가에는 한마디 말이 들렸습니다. “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 수련을 계속하는 거냐?” 나는 자신에게 법공부를 그만두라고 하며 수련을 취미로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고, 법회에 참가하는 것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나의 집착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법회 개최 일자가 겨우 3주 남아, 나는 3주 안에 안으로 찾아 수련의 길로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내 마음은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쪽은 나의 사람의 일면이고, 다른 한쪽은 나의 명백한 일면인데, 나의 사람의 일면으로 보면 그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더 깊게 이해하고 집착을 제거하고 심성이 제고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나는 자신이 큰 폭풍우를 맞이하고 있다고 느끼며 마음속은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아직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 모르지만, 제일 간단하고 제일 중요한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법공부가 부족한 것은 내가 현재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마음속에 법이 없고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하고 안으로 찾아 집착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시 단체 법공부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매일 자신의 사상업과 싸우며 힘들었지만, 반드시 내가 걸어 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내 생활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1년 6개월 차이를 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 시간과 일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시간을 다루지 못했고 아이들은 너무 어려 어른의 보살핌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법공부를 견지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견지할 수 없었고 자신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남편과의 모순도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모순과 충돌하면서 원망하는 마음과 불공평한 정서가 일어나 내 심성은 속인과 같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수련 환경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이용해 나의 심성을 제고해야 마땅했지만, 나는 고난과 모순을 자신이 수련 제고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거부했습니다. 법공부를 하고는 있었지만, 점점 적게 하고 집중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나는 자신의 상황이 법공부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스스로는 제고하고 싶었지만, 이 모든 상황은 나를 늪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사상업은 나를 대법제자가 꼭 해야 하는 세 가지 일로부터 이탈하게 했으며, 머릿속에 있는 소극적인 생각은 법공부할 자격이 없다고 속삭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면에서 나는 속인과 같았습니다. 나는 모순과 충돌하고 어려움을 마주하기 싫었고 속인 중의 자아를 버리기 싫었습니다. 나는 자신의 생각, 느낌과 감수에 집착하고 중생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사심은 신념을 덮어 버렸습니다.

두 가지 집착이 나를 교란했습니다. 정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정을 닦다

나는 줄곧 정서가 불안정했습니다. 자신의 느낌과 감수에 따라갈 뿐만 아니라 이러한 느낌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심득 체험을 쓰는 과정에서도 내가 정념이 부족할 때 정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사상과 언행이 편파적이고 논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못할 때… 모두 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이 부정확한 상태에 있을 때 구세력은 이것을 이용해 우리를 교란합니다.

나는 몇 층의 ‘정’ 물질을 제거했지만, 아직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1]

정에 집착해 나는 상황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매 중생은 자신의 길이 있고 자신의 선택이 있음을 잊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더욱 좋은 환경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족을 돌봤으며, 이것은 우리의 인연이라고 인식하고 내가 전생에 그들에게 진 빚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형제자매의 생활과 그들이 결정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잘난 척하려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마땅히 사람은 가족에 대해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법에 있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도 파룬따파 수련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끄러움이 적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모순의 충돌과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시시각각 남편이 동수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결혼과 생활에서 더욱 화목하고 충돌이 적기를 바라면, 더 많은 고난과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고 구세력은 작은 일도 더욱 크게 더욱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은 나의 주의식을 약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식을 분별하거나 식별하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나는 남편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랐고, 겉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의 실패와 결점을 모두 남편의 탓으로 봤습니다. 남편이 나를 도와 제고하기를 바랐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나와 아이 사이에 정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자기 기만에 불과했습니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하고 규칙을 가르칠 때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남편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는 울기도 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만족시키려 할 때 일은 더욱 꼬였고 아이들은 더욱 나에게 의지했고, 그들도 행복하지 않았고 울고 소리 지르고 잠들지 못했고 그들 연령대 아이들의 독립성이 없었습니다.

참음을 수련하다

두 번째로 나의 수련에 영향 주는 것은 나의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나는 수련 중에서 진정으로 인내하고 관용하지 못해 이 물질들이 산을 이루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는 것으로”[2]를 알려주셨습니다.

몇 년간 나는 ‘버리기’를 소홀히 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했고 내가 하기 쉬운 것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연화 수인을 한번 하고는 하기 불편하다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만두었습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온화하고 순한 성격을 지녀서인지, 그동안 내가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만큼 큰 마난에 직면해 수련을 포기하려는 상황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대법에 썼고 무엇을 하고 싶으면 자신이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직장 일정을 조율하고 언니와 같이 있어 생활은 아주 편했습니다. 나는 아주 노력하는 듯했지만, 그 노력의 시점은 위사(为私)이며 아주 낮은 층차의 노력이었습니다.

일에 변수가 생길 때 수련 제고를 위해 나는 진정으로 버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조금만 힘들면 도망치려 하는데, 이것은 내가 참지 못함을 말합니다.

제고 과정에서 나는 고험에 부딪쳤고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충돌이 생겼고 여러 가지 핑계와 각종 이유와 사람 마음이 생겼지만, 나는 무조건 법에 따라 해야 했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내가 참음(忍)을 수련하기 위해 한신이 돼야 했습니다.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하는 것일지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고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의 아픔이 느껴졌고, 자신이 연마하고 있고 속인 층차의 나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변하려 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자신의 층차에서 명백해졌습니다. 제고를 하려면 고생을 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거만하게 자신을 높이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겸손함을 키워야 합니다.

참음을 수련함에 있어 나는 아직 거리가 멀어 여전히 먼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의식을 강화하다

소극적이고 우울하며 자신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상태는 나의 주의식을 약하게 했습니다. 나는 검은 물질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병은 없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정으로 병을 얻는 것은 정신이 7할이고 병이 3할이다. 흔히 사람의 정신이 먼저 무너져서, 먼저 안 되고, 부담이 아주 중하여 병세를 급격히 변화하게 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1]

어떤 상황 혹은 충돌에 마주쳤을 때 이런 상태가 나타나고 심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 2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는 속인의 길을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해 자신을 수련인으로 바로 잡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진정하게 안으로 찾아 닦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각심은 나의 주의식을 강화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여러 생각이 머리에 올라왔고 거부하고 싶고 화나는 정서가 넘쳤지만, 법공부를 계속해 이런 부정적인 물질은 차츰차츰 약해졌습니다.

또 하나는 나는 현지 대법 소조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수련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을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내가 모순 중에서 수련한다는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했습니다. 어렵거나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는 듯 보이지만, 왜 모순 중에서 공을 얻는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며 모순을 피하거나 도망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마난을 겪고 고통을 참아 업력을 전환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관을 넘을 때 법의 표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단계에서 관을 넘어야 하는 고험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모순 충돌은 우리 수련 길 중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순과 곤란이 있어 우리는 법에서 자신을 제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청성해야 합니다. 구세력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으며 수련인의 대열에서 우리를 떨어뜨리려 합니다. 나는 그것들이 안으로부터 우리를 훼멸하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견정하게 그것들을 배척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그 상태에서 벗어났고 나를 통제하려 하는 물질과 교란을 뚫고 나왔는지 교류하려 합니다. 나는 법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나의 상태를 개변하는 것은 단순히 안으로 찾고 집착을 버리고 속인의 관념을 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법에 원용하며 이러한 소극적인 상태를 돌파했습니다. 나는 적극적이고 청성하게 자신의 사상으로 교란하는 것을 강력하게 배척했습니다.

나는 한 번에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매번 잘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견정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자 나를 교란하는 물질들은 조금씩 조금씩 약해져 갔습니다. 법으로 견고한 보호막을 형성해 소극적인 생명 혹은 물질이 내 공간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의 심득체험이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련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법의 한 입자가 되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나는 대법의 한 입자가 되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해 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환경에서 형성된 대법제자의 높은 경지의 행위는,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차이를 찾을 수 있게 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들의 행위를 용련(熔煉)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을 더욱 빨리 제고하게 할 수 있다.”[3]

순정한 환경에서 수련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가 법에서 끊임없이 수련에 힘써 제고하고 더욱 정진하게 합니다. 수련생이 자신의 체득을 말할 때 모두 많은 감동과 수확이 있습니다. 수련생 하나하나의 입자가 서로 지지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이 하는 비평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고 다른 수련생의 문제를 말해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를 지적해 줄 때 우리는 사심과 체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놔야 합니다. 이해 혹은 비평을 들은 사람은 이것은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접수하고 자신을 제고하는 기회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수련생들이 여러 가지 고험에 견디고 부지런히 집착을 제거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중요한 순간에는 대법 정체의 힘과 대법의 위력이 나타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심득 교류회에서 사부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한번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집착을 보여주고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교류 중에서도 나는 우리가 어떻게 잘못된 점을 고치고 극단적인 면을 바로 잡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대형 심득교류 법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심성의 마찰에서 비평과 모순과 충돌은 불가피하고 우리의 제고를 위해 배치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용량이 아주 크고 법에 원용될 때 이런 심성 마찰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길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2006년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4]

수련생의 교류를 듣고 나는 새로운 감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수련생들이 겪는 과정을 이해하고, 수련생의 집착과 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감수가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한 수련생이 자신이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고 자신의 사유가 아닌 것을 배척한 교류문장을 듣고 나는 크게 계발을 받았습니다. 수련생이 진상을 하고 더욱 수련에 정진하는 교류문장을 듣고 나도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전단을 챙기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리고 상황마다 하나의 기연으로 소중히 여기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늘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듯 편안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은 수련생 한 명이 내가 속인의 화제의 문자를 많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법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조언을 해줬습니다. 나는 그녀가 좋은 마음으로 얘기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틀렸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흔들렸고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나는 그 수련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정진하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고 나의 집착만 집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녀의 말에 경청해야 하고 그녀가 한 말을 납득할 수 없어도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수련생이 알려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고 안으로 찾아보면, 체면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당시 나에게 알려준 일이 맞지 않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에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기쁘지 않을 때 자신의 명과 체면으로 화내지 않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수만 중요시하지 않고 잘 넘기면 더 견강해지고 덜 이기적으로 됩니다.

우리가 정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항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순정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 외에 대면 진상 활동, 연공장, 매체 항목 등은 수련자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사부님은 우리가 항목에 참여하는 기회를 주셨고 그 속에서 법으로 단련하게 했습니다. 다른 수련생과 같이 일하면서 우리는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집착과 제고해야 되는 부분도 드러났습니다. 항목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 협조를 잘 하고 자아를 내려 좋고 겸손을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질투, 오만, 거만함 등 집착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정체로 문제를 보는 법을 배웠고 이것은 모두 수련을 촉진하고 더욱 정진하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항목 혹은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잘 하는 일을 배치받지 못했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이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새로운 항목으로 배치받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매체 항목에서 일하는데, 통역으로 배치될 줄 알았습니다. 내가 통역에 제일 경험이 많아 제일 쉬웠지만, 뜻밖에도 나는 편집으로 배치가 되었고 사용하는 언어도 내 모국어가 아닙니다.

사부님의 배치는 제일 좋은 것입니다. 내가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면 아무 것도 잘하지 못하고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러한 집착심을 모두 내려놓고 아주 청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5]

이 마지막 순간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대한 도움을 주셨고 오랜 시간 제거할 수 없는 집착을 제거해 주셨고 심성을 제고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느끼며 이 기회를 소중히 대하겠습니다.

이 심득 체험은 한차례 전쟁과 같아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나를 격려해 주고 지지해 준 수련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없다면 나는 심득 체험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번의 혹독한 시련을 걸어 나와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해 주신 길에서 계속해 전진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층차에서 이해한 것이며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무루(無漏)’
[3]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환경(環境)’
[4] 리훙쯔 사부님 저작:‘각지설법10-맨해튼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권2-도(道)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道) 속에 있다’

(2022년 아르헨티나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교류문장)

 

원문발표: 2022년 1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2/20/45329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2/20/4532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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