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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더러운 광경이 미혹된 사람을 일깨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새벽 2시가 넘어 잠에서 깼으나 연공 시간이 아직 멀었기에 다시 잠이 들었다. 그사이 나는 몹시 나쁜 꿈을 꿨는데, 마치 온통 대변과 소변인 어느 곳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도구를 들고 안에 있는 대소변을 젓고 있었으며, 내 몸에도 대소변이 잔뜩 묻은 것처럼 몹시 더러웠다.

깨어나자 마음이 더럽고 온몸이 괴로웠다. 첫 일념에서 내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이유일까? 사실 나는 요즘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최근에 나는 밍후이 라디오에서 “(공산)당문화를 제거하자”와 “병업 가상을 제거하자”라는 테마 문장을 연속해서 들었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 수련생들의 문장을 통해 나의 인식과 수련생과의 차이를 대조하여 나 자신의 사상, 관념, 표현상에서 각종 당문화(黨文話, 공산당 식 글과 말)의 표현과 그 해악을 찾았으며, 결심하여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었다. 또한 병업가상의 마난 속에서 수련생들의 사부님과 대법을 향한 반석같이 굳은 바른 믿음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수련에서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서도 도움이 됐다. 앞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 중에서 어떻게 착실하게 수련할 것인지에 대해 명백해졌고, 법을 외우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그런데 어디에 문제가 있어 이런 꿈을 꿨을까? 나는 안으로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속인에게 집착하여 위험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외손자가 둘 있는데, 첫째가 열 살, 둘째가 만 세 살이 안 되었을 때 딸 가족은 외지의 도시로 이사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줄곧 어린 외손자를 데리고 있다가 작년 말에 어깨가 부러져서 사돈이 돌보고 있다. 올해 8월 말, 딸은 시댁에 일이 생겨 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나에게 9월 초에 자기 집으로 와서 아이를 돌봐 달라고 했다. 나는 듣고 매우 기뻤다.

9월 초가 되자 딸은 또 11월 방학이 되면 사위를 보내 나를 모시러 가겠다며 날짜를 연기했다. 어제 딸과 통화해서 언제 나를 데리러 오느냐고 물었더니 지금이라도 갈 수 있지만, 자기 일을 조정해야 날짜를 정할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약간은 서운하고 실망했지만, 입으로는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서운함과 실망감이 있을까? 딸의 집에는 정말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 왜 내가 가는 시간을 미루고 또 미룰까?

한 가지는 작은 외손자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많이 데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나도 모르게 작은 외손자를 매우 편애했으며, 큰 외손자로부터 여러 번 항의를 받을 정도였다. 우리 집으로 돌아온 지 요 몇 달 동안 나는 틈틈이 어린 외손자의 동영상을 보며 며칠 못 보면 보고 싶었다. 딸이 내게 9월 초에 오라고 한 후부터 갈 날을 기다리면서 먹을 것, 쓸 것, 싱싱한 것, 마른 것, 어른이 필요한 것, 아이가 필요한 것 등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자꾸 뒤로 미뤄지자, 나는 끊임없이 언제 뭘 준비할 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가끔 이런 일을 생각하다가, 어떤 때는 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왜 딸아이 집에 가는 것이 그렇게도 절박할까? 하나는 작은 외손자를 보고 그리움을 달래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중국공산당(중공)이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해서인데, 현지 지역사회(社區, 주민자치센터에 상당) 관계자가 남편에게 수차례 전화해서 정법위원회 사람들이 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했고, 남편은 매번 그들에게 내가 외지의 딸집에서 외손자를 돌보며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줄곧 정념을 내보내어 구세력의 모든 안배를 부정하고 있었다. 나의 수련은 너희 구세력과 무관하다. 구세력이 중생을 이용하여 대법에 죄를 저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나는 사부께서 안배하신 길만 갈 뿐이다. 누구도 나를 안배할 자격이 없고, 누구도 나를 고험할 자격이 없다. 나는 정념이 충만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속셈이 있었다. 어쨌든 곧 딸아이 집에 갈 것이며 내가 가면 그들은 나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빨리 가서 20대(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것이 내가 딸집에 가고 싶은 진정한 이유였다. 다시 말해 중공의 교란을 피할 생각이었다.

안으로 찾는 중에, 오늘 밤 꿈은 마치 정면으로 일침을 가하듯이 홀연히 나를 일깨웠다. 딸과 외손자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층차의 이치는 거꾸로 된다. 당신이 집착하는 그 인간 세상의 정, 맛있는 것, 쓰기 좋은 것, 보기 좋은 것은 다른 공간에서는 곧 똥오줌이다.

사부님께서 제자가 너무 깊이 빠진 것도 모른 채 질질 끌며 놓지 않는 것을 보시고 이 꿈을 통해 “사람”에 대한 집착이 똥구덩이의 더러운 물건에 대한 집착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수련자이고, 황폐해지는 것은 사명과 서약, 사람을 구하는 기연이다.

왜 나는 도피하고 싶을까? 어째서 아직도 더러운 물건 속에서 휘젓고 있을까? 심층적으로는 자신이 재차 박해받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있고, 또 하나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대법제자의 책임은 바로 사부님께서 정법하시는 것을 돕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관계자와 정법위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집착을 깨닫지 못하여 빚어진 모순의 고조이다. 만약 정말 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면 된다. 평소에 그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딸의 집에 갈 것인가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지, 속인을 에워싸고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원문발표: 2022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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