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마치고 사거리 모퉁이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갔다.
50대 같은 여성이 노점에서 옷을 팔고 있었는데 5명이 노점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닥에 옷이 놓여 있고 옆의 팻말에 5위안(한화 약 9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호기심에 한 벌이 5위안이냐고 묻자 노점상은 그렇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싸요?” 하고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저는 타오바오(淘寶)에 입점해 옷 장사를 하는데 전염병 때문에 장사가 잘 안돼서 접으려고 해요. 재고를 많이 할인해서 팔 수 있는 만큼 팔려고 해요.” 한 장을 집어서 몸에 대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5위안만 주면 한 벌을 살 수 있다니 망설임 없이 샀다. 속으로 뿌듯해하며 집에 돌아와 입어봤더니 괜찮았다.
기분이 좋았고, 수련생인 남편에게 “울 니트인데 5위안 주고 샀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이 싸게 사서 잘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세상에 공짜는 없어.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라고 했다. 내가 “운이 좋은 거죠.”라고 하자 그는 “생각해봐. 그렇게 싸면 인건비며 털실값도 안 나올 텐데, 원가보다도 낮으면 타당해? 만약 훔친 걸 판 거면 당신이 훔친 걸 처분하게 도와준 거지.”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 사람이 장사를 그만두려고 재고를 할인해서 판 거예요. 그리고 훔쳤으면 그 사람이 범죄자지 저는 아니지요. 법률상 저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요. 저는 돈을 주고 물건을 샀고, 깎아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장사가 그렇지요. 팔려는 사람이 있고 제가 샀으면 거래가 성사된 거예요. 별생각 없었어요.” 그는 말했다.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해!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례 같네. 1위안으로 경품 추첨을 해서 아동용 자전거를 뽑은 사례 말이야. 당신은 그런 느낌이 없어?” 그 말에 속으로 불쾌하긴 했지만,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이 일의 경위를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울 니트가 30위안이었으면 샀을까?” 답은 “아니, 안 사지.”였다. “공짜로 주는 거였으면?” 갖지 않았을 것이다. 공짜로 가지면 덕을 잃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답안은 “무조건 가지지 않는다.”였다. 지금은 왜 샀을까? 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익심이 아닌가? 나는 또 생각했다. 현장에 있는 속인은 모두 좋다며, 이렇게 싸면 공짜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었다. 그럼 속인과 같은 게 아닌가?
계속 안으로 찾았다. 이것은 탐욕이다.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탐욕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고 당연히 이것을 닦은 적이 없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 “탐은 욕물이다.”라고 나오는 것을 봤다. 이런 탐욕스러운 생각이 나오기 전에 이미 욕망이 있는 것이다. 탐욕은 현재 가진 상황에서 더 가지려 해서 탐욕이라고 한다. 속인이 말하는 욕심은 끝이 없다. 이 일은 내 욕망을 폭로했을 뿐 아니라 탐욕심도 폭로했다.
안으로 찾으니, 사부님께서 법에서 나를 점화해 주셨다. “무릇 속인사회 중에서 당신에게 좋은 점을 얻게 하는 것은 모두 마(魔)이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좋은 것을 얻어 이 난을 넘지 못하면 당신은 곧 제고해 올라오지 못한다.”[1] 이것은 마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분명해졌다.
또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줄곧 하나의 관념이 있었다. 일할 때 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될수록 시간을 적게 들이고 많은 시간을 아껴서 법공부를 하려고 한다. 어딜 갈 때는 최단거리가 있으면 거기로 가지 돌아가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는 가장 적합한 제품을 제일 싸게 사려고 한다. 사실 어떤 구체적인 일에 있어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깊은 이익심이 숨어 있고, 또 자기 욕망을 채우면서 사람 마음을 들키지 않게 하려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들이 다 그것의 근원이 있다.”[1]
다시 안으로,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이 관념의 근원은 바로 과학에서 온 것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 형성된 사유 방식이었다. 가장 적합하고 합리적인 방안으로 생산, 사회, 실험 등 실제 작업에서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최적’이라고 하며 아주 좋다고 여기고, 공부나 업무에서 자주 이 최적의 방법을 썼다. 실용적이라는, 점차 이런 관념이 형성됐는데, 수련을 시작했어도 많은 일을 모두 이 사유 방식으로 처리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내게 이런 관념이 존재하는지 분별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 내 사유가 이랬기 때문이다.
이번에 단 5위안으로 울 니트를 샀을 때 남편이 일깨워준 덕분에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고 이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5위안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산 일에 집착과 욕망, 관념이 반영됐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아마 아직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은 나의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2년 1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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