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68세이며 퇴직 교사다. 1997년에 나는 생사를 배회하는 괴로움 속에서 다행히 대법을 만났다. 사부님께서 나를 고해에서 구해주셨고, 일상적인 사회의 큰 흐름에 따라 추락하고 있던 나는 불법의 세례(洗禮)를 받고, 일할 때 먼저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고난 속의 시련
내가 세 살 때 중국공산당(중공)이 ‘대약진운동’을 벌였다.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산대에서 강철을 정련하는 동안 나와 두 살, 네 살이 많은 두 오빠를 집에 가두었다. 나는 날마다 오랫동안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놀아 엉덩이에 탈항이 생겼다. 변을 볼 때마다 피가 많이 흘렀으며 매번 어머니가 손으로 탈출한 부분을 눌러 넣어야 했다. 그때는 집이 가난해서 치료는커녕 밥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어머니가 우물가에서 씨레기를 씻을 때 나는 한쪽에 앉아서 기다렸는데 열무가 달린 것을 보면 어머니는 얼른 잘라서 나에게 먹였던 것이 기억난다. 좀 더 자랐을 때는 친구들과 생산대가 말리는 고구마 덩굴 더미에 가서 작은 고구마를 찾아 먹었다. 두 오빠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처마 밑에 앉아서 햇볕을 쬐곤 했는데 배가 고파서 장난을 칠 힘조차 없었다. 둘째 오빠는 말을 잘 들어서 배가 좀 고파도 울지 않았지만, 큰오빠는 배가 고프면 울었고, 어머니도 따라 울면서 눈물을 훔쳤다. 나중에 나는 ‘공산주의 유치원’에 갔는데, 거기서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그러나 두 오빠는 학교가 파한 후 늘 유치원 문 어귀에 기댄 채 내가 말린 음식이라도 좀 주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어느새 큰 오빠가 가버렸고 둘째 오빠도 가버렸다. 나는 아직 철이 없어서 오빠들의 마음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고 마당에서 혼자 놀기만 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눈물이 난다. 이것이 중공의 이른바 ‘위대한 사회주의’가 아이들에게 가져다준 행복한 생활이었다.
3년간의 대기근 이후 살림살이는 차츰 나아졌지만, 농촌에서는 생산대 단위로 단체로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식량 생산량이 매우 낮아서 집마다 식량이 부족했고 많은 가정에서 산나물로 보양했다. 나는 이런 가난한 세월 속에서 어린 시절, 소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신체적 소질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다. 의사는 내가 선천적으로 발육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내 몸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좋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이 더 많아졌다. 어릴 적 탈항은 치질(외치질)로 변했다. 매번 대변에서 많은 피가 나왔는데 매우 무서웠다. 어린 나이에 얼굴이 누르스름했고, 커서 일한 후에 또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후에 다시 다리가 아프고, 무릎까지 아팠으며 결혼 후 또 부인병에 걸렸다. 일 년 내내 손이 찬물에 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막염도 있었는데 눈이 가렵고, 안구가 빨개져서, 괴롭고 보기 싫었다. 서른아홉 살 되던 해에 또 신경성 이명이 나타났는데, 왼쪽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동료는 먼저 이명이 나타난 후에 귀가 먹었다. 우리 어머니와 언니도 귀가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50~ 60대에 나타났는데 나는 겨우 30대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 이 기간에 줄곧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아침에 깨어나면 마치 철모자를 머리에 씌운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우며 맑지 못해 짜증이 났다. 수업할 때, 첫 번째 수업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두 번째 수업은 때때로 일순간에 사유가 중단되어 머리가 텅 비면서 온몸에 땀이 났다. 때로는 눈앞이 순식간에 깜깜해지기도 했다. 수업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며,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으면 한바탕 훈계하고, 학생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비록 세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뺨을 때리고, 화를 냈다.
수업을 마치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시름에 잠겨 화를 내며, 자신이 못난 것을 원망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다! 동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워도, 나는 잘 어울리지를 못했고, 끼어들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는 그녀들이 싫었고, 누구를 봐도 눈에 거슬렸다.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남편과 소란을 피웠으며, 늘 사소한 일로 화를 냈고, 때로는 가슴이 폭발할 것처럼 화가 나서, 집안의 물건을 다 내동댕이치고서야 화를 풀 수 있었다.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 아이들은 겨우 11~12세였다. 가끔 저녁에 이불속에 누워 몰래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아들아! 엄마가 너무 괴로워! 살 만큼 살았어, 빨리 자라라, 이 엄마는 그만 살고 싶구나. 죽어도 아이들을 버릴 수도 없고…… 계모의 학대를 받을까 봐 걱정되고, 이렇게 힘들게 살려니 언제 끝날까?’ 그 답답함과 고뇌로 매일 울고 싶었지만, 이웃의 비난을 받을까 봐 울 곳도 없어서, 집에 사람이 없는 틈에 혼자 침대에 엎드려 이불을 덮고 엉엉 울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기간에 복용한 한약, 양약, 아침저녁으로 하던 단련, 건강달리기, 무용도 쓸모가 없었다. 의사는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병이 나은 후 고향 사람과 이 일을 이야기할 때, 고향 사람이 말했다. “너의 그런 마음 상태는 매우 위험하니 다른 사람에게 너의 상태를 알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어.” 그녀에게는 50대 초반의 동료가 있었는데, 우울증으로 가족들이 한눈파는 사이에 목을 매달았다. 나는 당시 내 마음만 괴로웠을 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목을 매는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고해로부터 구해주셨다
1997년 10월 22일 저녁 식사 후에 나는 또 집에서 이유 없이 화를 냈다. 남편은 내가 병적인 것을 알고 같이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도중에 멀리서 남편의 동료인 한(韓) 선생님이 다급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남편은 그가 기공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몰라서 그를 불러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서둘러 걸어가면서 실험동에 가서 연공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당신도 단련하러 가봐?” 나는 약을 먹거나 단련해도 효과 없었는데 기 수련한다고 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기 싫다고 했더니, 남편은 어차피 산책하는 거니까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실험동으로 가서 안내에 따라 2층의 한 사무실로 갔다.
방안에는 십여 명이 앉아 있는데,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삼 사십 대, 오 육십 대가 모두 있었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친하지는 않았다. 우리 둘은 문 앞에 섰는데, 그들 모두가 매우 호의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들어와 앉으라고 했고, 마흔 살 남짓한 여선생님은 안방에 가서 방석 두 개를 꺼내 우리 둘을 앉게 했다. 이런 따뜻하고 친절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들어가 앉았다. 남편은 내가 이미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앉자 보도원은 나에게 가부좌 전의 대수인(大手印)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또 내가 빨리 배운다고 칭찬했다. 일곱 시가 되니 모두 가부좌하기 시작했다. 우아한 음악 속에서 모두 눈을 감고 온화하게 앉았다. 그러나 나는 다리 꼬는 것이 너무 높아서 반가부좌도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매우 즐겁고 머리가 텅 비어, 마치 모든 번뇌를 잊은 것 같았다. 45분 후, 모두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책이 없었다. 내 주변의 한 30대 여사는 친절하게 자신의 책을 나에게 양보하고 다른 사람과 책 한 권을 함께 봤다. 나는 매우 감동하여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 이렇게나 좋은지, 우선 다른 사람을 이처럼 배려한다면, 이 공은 반드시 좋을 것이다.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떤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고, 불(佛), 도(道), 신(道)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지만, ‘진선인(真·善·忍)’을 읽을 때 이 세 글자는 마치 내 몸의 층층 세포를 관통하는 것 같았고, 마음속에는 일종의 흥분과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9시 법학습이 끝났다. 모두 긴 복도를 걸으며 웃고 떠들었는데, 나는 그들과 익숙하지 않아 끼어들 수 없어서 뒤를 따라 걸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 머리가 어찌 이리도 편할까? 머리를 감싸고 있던 그 팽팽하고 무거운 것이 없어지고 대뇌가 또렷해졌는데 나는 2년이 넘도록 이런 느낌이 없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잠시 누웠는데 갑자기 귀가 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잘 들려, 안 울리네!’ 순간, 나는 마치 참을 수 없어 소리치고 싶었다. 병이 다 나았어! 파룬궁은 대단하다! 나도 모르게 아침 6시까지 잤다. ‘아, 잠도 좀 잔 것 같고 꿈도 안 꾼 것 같다. 머리가 맑고 몸이 가볍다. 마음속의 그 기쁨이여! 어렸을 때부터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이다!’
부지불식간에 병이 모두 나았고, 지금까지 25년 동안 약 한 알도 먹어 본 적이 없다. 몸이 가볍고 힘이 나며 성격도 명랑해져서 매일 웃고 떠들었다.
명실상부한 ‘우수 교사’
사부님께서는 모든 병을 다 치료해 주시면서, 나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 나는 오직 대법의 ‘진선인’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세인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파룬따파를 존중하여 복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 직장, 가정에서 더는 명리와 은원 때문에 다투지 않고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할 때 다른 사람을 우선 배려한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자신의 명리를 위해 싸우고 다투고, 암투하면서 필사적으로 일했다. 자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괴롭고 힘들게 살면서도 각성할 줄 몰랐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업무는 더 이상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고, 양심과 책임에 따라서 하고 있으며, 매일 즐겁다. 일을 모범적으로 잘해서 상사, 동료,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중공 사당의 다년간 파룬따파 박해에서도 상사, 동료들은 나를 차별하지 않았으며, 나는 평소대로 우수 교사로 선정되어 표창받았다. 나는 또 교내 공로교사, 구(區) 우수 교사, 구 우수 수업 지도교사로 선정되었다. 학생들의 교사 평가에서 나의 점수가 가장 높다. 이런 것은 모두 내가 대법을 수련하여 사부님 요구에 따라 해서 성취한 것이다.
재직 중 어떤 해에는 담임을 맡았고, 어떤 해에는 담임을 맡지 않았다. 내가 가르치는 학과는 규정에 따라 한 교사가 세 반을 가르친다. 때로는 한 학년이 7개 반으로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학교 관리자는 나에게 4개 반을 맡겼으며, 이 경우 나는 담임을 맡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담임을 맡든 맡지 않든 아이와 가정, 사회에 책임지는 자세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학생에게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엄하게 요구해야 한다. 수업 중에 품행 교육을 일관되게 하고,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 이념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며 학생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진실로 사람을 대할 것을 요구한다. 학우들 간에는 서로 겸양하고 서로 돕는다. 일에 부딪히면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학습에 있어서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대충 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존경해야 하며, 선생님의 노동과 근면한 교육을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부모의 보살핌과 아낌없는 베풂에 감사해야 하며,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여가에는 부모를 도와 힘이 닿는 대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스스로 가정과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능력이 떨어지는 담임교사를 묵묵히 돕다
어느 해, 나는 중학교 2학년을 가르쳤다. 어느 반 남자 담임, 장 선생님은 중1 때부터 따라 올라왔다. 장 선생님은 동료와 교제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성실하고 나쁘지는 않은 느낌’을 주지만 업무능력, 관리능력에서 비교적 떨어지고 책임감이 조금 부족하며 학생 관리에서 강압, 풍자, 빈정거리기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신망이 매우 낮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반에는 총명하고 장난이 심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중 3명이 꼬마 대장이다. 2명은 남학생이고 학교 부근 교외의 같은 마을 학생이다. 한 명은 한후이(韓輝)로서 아주 잘 생겼고 반에서 공부가 1등이며 호소력이 강하다. 또 한 명은 한정(韓正)인데, 특히 의리를 중시하고 조직력이 있으며 언행이 당당하다. 다른 한 명은 여학생이고 우리 학교 선생님의 딸이며 이름은 우핑(吳萍)이다. 그녀는 여자아이지만 남자 같은 성격으로 키도 말소리도 크며 사상이 단순하여 다른 사람이 뒤에서 건드리면 앞으로 돌진한다. 우핑의 어머니는 도덕적 수양에 문제가 좀 있다. 이따금 사무실에서 장 선생님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력한지 등을 말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녀 딸을 제대로 이끌 수도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렇게 세 명의 우두머리가 반의 한 무리 학생들을 이끌고 전문적으로 담임 선생님과 맞선다. 담임이 동쪽으로 가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서쪽으로 인도하여 반의 분위기가 바르지 않고, 수업의 질과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지각생, 휴식 시간에 체조하지 않는 학생, 당번을 하지 않는 학생, 숙제를 내지 않는 학생, 자습 시간에 떠드는 학생, 자리를 떠나는 학생 등으로 소란스럽다. 학급 회의할 때 담임이 강단에서 화를 내면 학생들은 아래에서 고개 숙여 웃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데, 담임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담임 선생님은 어쩔 방법이 없다!
이렇게 이 반 수업을 맡은 선생님은 의견이 매우 많아서 함께 뒤에서 불평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거나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수업을 마치면 바로 가버린다. 나는 늘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아이들 학습 성적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품성도 나빠질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전도를 망치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나 자신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하며, 장 선생님을 도와야 하고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도울까? 장 선생님께 직접 가서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하는지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의 정신 교육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후 나는 수업 내용이 많지 않을 때 시간을 내어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몇 마디를 했다. “학생 여러분, 나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당연히 모든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부모들은 다 사심 없이 가장 좋은 모든 것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부모님은 학생들의 생활, 학습, 장래의 전도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돈 벌기가 힘들지만, 기꺼이 벌고 있어요. 학생들은 자녀로서 부모님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해요! 부모의 고된 양육에 감사해야 하고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감사드리는 가장 좋은 방식은 품행과 학업이 모두 우수한 좋은 학생이 되어 앞으로 사회에 나가 자립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습은 어느 한 분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선생님에게 의견이 있더라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으로 대항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부모님이 알게 되면 무척 슬퍼할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 모든 사람은 장점과 결점이 있어요.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간여할 수 없으며, 우리는 자신을 잘 관리하고,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께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님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다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어떤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때는 고개를 숙여 매우 죄책감을 느꼈으며, 어떤 때는 친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내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교실을 나갈 때 교실 안은 아직 조용했다.
이전에 어떤 선생님이 화가 나서 교실을 나가셨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교실에서 바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감동했나 싶었다. 동시에 나는 대법에서 닦아낸 선(善)의 역량을 느꼈다. 아이들과 나도 점점 친근해져, 멀리서 나를 보고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후, 때때로 나는 그 아이들의 대장을 찾아서 상황을 알아보고, 동시에 몇 가지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
그 후 이 반의 수업 규율, 학업 성적, 학급 분위기에 큰 변화가 생겼고, 학생들은 모두 나에게 감사했고 나와 친하다. 매년 설을 쇨 때 여러 명씩 와서 세배하며 그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여전히 왔다. 와서 나에게 고등학교에 관해 이야기하고, 학우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남자아이, 여자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놀다 보면 반나절이다. 그동안 한정은 나를 의모(義母)로 섬기려 했다. 한후이는 명문대에 합격한 후 특별히 사진 한 장을 찍어 기념으로 내게 줬다. 어떤 학생은 지금까지 설이나 스승의 날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동료의 업무 향상을 확실하게 돕다
업무상 누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든지 다 도왔다. 우수 수업 개설은 교사 직급 승진을 위한 유리한 조건이므로 청, 장년 교사들은 모두 우수 수업에 선정되려고 다투어 참여했다. 매년 시, 구의 각 과목 교육 연구원들이 이 활동을 하므로 참여하는 선생님은 과목마다 다 있다. 학교 교무처도 통제가 안 되니까 참가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스스로 했다.
한번은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과의 젊은 여교사 샤오쉬(小徐)가 내 앞으로 와서는 한쪽 팔은 내 등에 올리고 다른 한쪽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친절하고 쑥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 선생님, 우수 수업 선정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절 좀 도와주세요.”
나는 이 일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자신의 업무량이 이미 매우 많아서 마치 무슨 덩어리에 막혀버린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께 가장 기쁘고 위안되는 것은 모든 대법제자들이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돕기로 약속했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교안(教案)을 쓰고, 고치는 것을 돕고, 여러 차례의 모의 강의, 수업 평가 등을 해야 했다. 매번 모의 강의에서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지,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언어와 자세도 조언해 줬다. 이렇게 하면 한 번에 내 수업의 2시간을 차지하게 된다. 모의 수업을 두 번 했으며 수업은 기본적으로 괜찮았고,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방해받지 않고 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쉬 선생이 다시 와서 내게 말했다. “리 선생님, 제 수업은 내일 할 거예요. 추첨을 잘 못 뽑아 오전 마지막 시간입니다. 주소가 우리 근처 어느 초등학교인데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 가야 해요. (지금은 왜 자기 학생을 데리고 가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저 혼자 학생을 데리고 길을 건너야 해서 좀 안전하지 않고 게다가 도착한 후에 교실을 찾아야 하며, 또 학생의 자리를 안배해야 합니다. 저는 마음이 조급하고 혼란스러워요. 지금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지려고 해요. 선생님이 저를 도와 학생 인솔을 도와주세요. 저는 앞에서 인솔하고, 선생님은 학생 뒤를 따라오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녀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쉬선생은 기뻐하며 나를 안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리 선생님만이 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일이 크지 않은 것 같지만, 나로서는 이 일을 승낙하려면 감당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여교사이고 가정주부이므로 규정상 오전 마지막 수업 없는 사람은 30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모두 서둘러 집으로 가는데, 누가 남의 일을 돌볼 수 있겠는가? 나도 일찍 집에 가서 밥을 해야 아들이 집에 도착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식사 후 좀 더 쉴 수 있다. 그때는 모두 외동 자녀였는데 누가 아이에게 좋은 가정환경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쉬 선생에게 이 일을 승낙하려면 시간, 노력을 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성실해야 하며 절실하고 숨김없이 자신의 견해를 말해야 한다. 진심으로 이 수업을 잘하기 위하여 말하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겉치레를 하는 것이다. 나중에 한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너희 과 선생님들은 모두 네가 충실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업무상의 일을 늘 좀 남기는 것과는 같지 않다.”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노력하여 ‘진선인(真·善·忍)’을 기준으로 자신을 잘 닦고 대법을 실증하여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2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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