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받고 살던 시골 며느리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아이전
[밍후이왕] 저는 올해 67세로 1999년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진선인(真·善·忍)’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저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여러 차례 불법 납치·가택수사·구류를 당했고, 아울러 2차례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습니다. 아래에 제 수련 과정 중에 있었던 일부 경험을 글로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여러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내다
시댁에는 남편 외에 3명의 딸자식이 있었습니다. 시집온 후 7명 가족의 집안일을 거의 저 혼자 떠맡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돈을 주고 옷을 사는 것이 아직 유행이 아니어서 온 가족이 입을 옷들을 모두 제 손으로 직접 바느질하여 만들었고, 세탁기도 없는 시대라 식구들의 옷은 전부 제 혼자 손빨래했으며 사용할 물도 우물에서 한 통씩 길러 와야 했습니다.
25킬로 되는 옥수숫가루 반죽으로 전병을 만드는 날이 오면,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그런데도 저를 대신해 전병 한 장 붙여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전병을 붙일 때마다 저는 일하다 지쳐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로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제가 전병을 먹으려 하면 시어머니는 오히려 잔소리하시면서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만든 밀가루 음식을 시댁 가족들은 다 먹었지만 저에게만 당근이나 고구마 말랭이를 먹게 했습니다. 임신하고 나서 제 배가 많이 불렀음에도 똑같았습니다. 밥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서도 일은 예전과 다름없이 해야 하는 저의 처지는 이웃들이 보기에도 참 딱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아들을 출생한 후 8일간 입원했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가져온 것은 달걀 8개 뿐이었습니다. 퇴원하고 나서 마을 이웃들이 저에게 많은 달걀을 보내왔지만 모두 시어머니가 가지고 가서 팔았습니다. 산후조리를 하는 한 달 동안 제가 먹은 것은 고작 달걀 26개였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에 저는 또 아기 기저귀도 빨아야 했습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한 탓에 제 체중은 35킬로로 줄어들었고 길을 걸으면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적게 한다며 시어머니는 또 저에게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몇 번이고 죽고 싶었으나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시어머니가 뼛속까지 미웠습니다.
아이가 생후 6개월 됐을 때, 시어머니는 두 칸짜리 허름한 집을 얻어 그릇 두 개와 젓가락 두 쌍, 작은 그릇 하나를 주시며 저희를 분가시켰습니다. 비가 오면 방으로 물이 새어 들어왔고, 가정 경제의 어려움으로 가족은 일 년 내내 식용유 한 근조차 먹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과 원망, 증오로 인해 저는 온몸에 병이 들었고, 신장염에 혈뇨 증상까지 생겨 걷기조차 힘들어 스스로 아이를 볼 수 없어 친정에 돌봐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시댁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부모님 쪽에서는 여전히 저와 남편을 불러다 일을 시켰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와 시누이 셋은 모두 밭일을 할 줄 몰랐으므로 늘 저희 부부에게 대신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일이 다 끝난 뒤에도 그들은 듣기 좋은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에 대한 저의 미움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1999년 2월 운 좋게 파룬따파를 만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1]
사부님의 이 법을 공부한 후 저는 문득 크게 깨달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틀림없이 내가 예전에 시어머니에게 잘 대하지 못하고 상처를 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업을 지었다면 갚아야 하며 이는 누구도 회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리가 일체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저는 더 이상 시어머니, 시누이들과 이것저것 세세하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진료비는 모두 제가 부담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자신의 돈을 모두 세 딸에게 주었고, 저 또한 화내지 않았습니다. 시댁의 물건도 거의 다 시누이들이 가져갔지만 저는 따지지도 않고 상관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부님께서 이미 저에게 가장 좋은 일체를 주셨다는 사부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저의 이런 일처리로 인해 온 가족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철저히 내려놓았고,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있을 때 세심히 보살펴드리면서 시어머니를 위해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수개월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임종할 때까지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시누이는 제가 시어머니에게 대법 서적을 읽어주었기에 시어머니가 대법의 큰 덕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의 남편은 20여 명의 마을 사람들 앞에서 제가 시어머니를 잘 대해 준 것은 모두 파룬궁을 배웠기 때문이라며, 저를 본보기로 모두들 어르신에게 효도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또 “제 어머니가 이전에 집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집사람이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제 어머니를 상관이나 했을까요? 집의 돈을 가져다 쓴다는 건 더 어림없었을 겁니다. 그러면 저만 가운데서 힘들었겠죠. 지금은 돈을 얼마나 써도 집사람이 따지지 않습니다. 리 대사님이 전하신 이 법은 정말 좋습니다. 착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니까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남편은 가는 곳마다 “리 대사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나 많이, 좋은 사람들을 가르쳐내시다니요.”라고 말했습니다.
세인을 구하다
세인들에게 가해진 중공사당의 거짓말과 독해를 타파하기 위해, 저는 종종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같은 수련생인 친언니도 늘 저와 함께 배포하러 갔습니다. 낮에는 일을 했기에 우리는 밤에 나가 배포했는데, 개인당 200부가 넘는 진상 소책자를 지니고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배포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고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 마을 입구에는 개 몇 마리를 묶어 놓았는데, 처음 방문 시에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개들이 마구 짖어댔습니다. 저는 그 개들에게 “짖지 말아다오. 너희들을 구하러 온 것이란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꼭 기억하렴. 그럼 좋은 곳으로 갈 거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개들은 짖기를 멈췄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이 마을에 들렸을 때 개들은 짖지도 물지도 않으면서 저희를 향해 꼬리를 흔들기만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 집 마당 문틈으로 소책자를 집어넣을 때 가끔 마당에 있던 개들이 달려오며 몇 번씩 짖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개들에게 “너희를 구하러 온 거니까 짖지 말아다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렴.”라고 말해주는데, 그러면 개들은 짖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을에는 풀어서 키우는 개들이 있었는데, 이 개들은 저희가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을 잘 알고 있기나 하듯이 꼬리를 흔들며, 게다가 아무 소리 없이 저희 뒤를 따라오곤 했는데 마치 저희에게 길동무가 되어 저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해, 저는 밀밭에서 잡초를 뽑다가 발이 무언가에 물렸는지 가려워 견딜 수 없어 손으로 피부를 막 긁었는데 피고름이 나면서 발 전체가 시퍼렇게 변하더니 짓무르기까지 했습니다. 속인들은 이를 보고 모두 겁이 나 저에게 빨리 가서 치료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는 사부님께서 생생세세에 쌓아온 저의 병업(病業)을 밖으로 밀어내주시는 것임을 잘 알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수개월 지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또 언니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는데 도중에 큰비가 내렸습니다. 진상 소책자를 모두 밀봉된 비닐봉투에 넣었기에 비가 와도 지장 받지 않고 계속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의 물은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소를 키우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빗물이 마당에 있던 소똥을 쓸어내는 바람에 길가의 빗물과 뒤섞여 심한 소똥 냄새가 났습니다.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빗물 속을 성큼성큼 건너 지나갔습니다. 그날 저희는 새벽 세 시가 돼서야 진상자료를 전부 다 배포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제 몸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방바닥은 한가득 적셔졌습니다. 그리고 피고름이 흘렀던 발은 빗물에 불어 허옇게 되었고 다음 날이 되니 가려움증도 그치면서 고름이 나던 부위도 아물기 시작했습니다. 사나흘째 되던 날 저의 발은 완전히 나았습니다.
2015년 4월 25일, 저는 한 승합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자료를 건넸는데, 그 안에 앉아있던 사람 중에 세 명이 경찰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현장에서 그들에 의해 파출소로 납치돼 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자료의 출처와 집 주소 등을 물었는데 저는 아무런 협조도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진상을 알려주면서 ‘파룬따파하오’를 말하고 ‘홍음(洪吟)’을 외웠습니다. 그들은 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저의 정보를 알아냈으며 제 주소 관할지 진(鎮) 파출소에 알렸습니다.
진 파출소 경찰은 저의 집에 불법 가택 수사하러 갔는데 열쇠가 없으니 담을 뛰어넘어 집에 들어갔습니다. 경찰들이 전화로 주고받은 이런 말을 저는 다 들었습니다. 저는 수련생한테서 천 여부의 진상자료를 받아온 지 얼마 안 됐고, 배포한 것이 아직 200부도 안 됐는데 이를 어떡하냐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이 진상 자료들은 어렵게 구한 것인데, 어찌 경찰들이 압수해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의 집에 가리개를 씌워 사악들이 진상자료가 어디 있는지 볼 수 없게 해주실 것을 사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결국 경찰들은 저의 집을 싹 다 뒤졌지만,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둔 40여 권의 진상 소책자를 압수해 간 것 외에 여러 곳에 나눠 감춰두었던 진상 책자들은 한 권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경찰차 안에서 저는 두 명의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 중 한 명은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공산당·공청단·소선대 3대 조직에서 탈퇴) 성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일 저녁, 경찰은 15일간 불법 구류시키기 위해 저를 시(市) 구류소(拘留所)로 보냈습니다. 구류소에 도착하여, 이곳에는 반드시 내가 구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구류소는 관리가 비교적 느슨했는데, 각 수감실의 사람들이 서로 각 방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제 수감실로 찾아왔고, 저는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의 진상을 알렸으며, 중공사당(中共邪黨)의 본질과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렸습니다. 결국 8명이 삼퇴를 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파룬따파하오’를 높이 외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재소자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녀들도 매우 진지하게 들으면서 인간의 본성 중 선(善)한 일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들은 저에게 아주 잘 대해 줬고,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꼭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배식할 때 파룬궁 수련생에게는 반찬을 주지 않으므로, 그녀들은 기어코 자신들의 반찬을 저에게 나눠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진상을 알렸고 연공도 하면서 ‘홍음’을 외웠는데, 어느새 5월 8일이 되었습니다. 몇 사람이 제 방으로 찾아와 내일은 저의 수감 마감일이자 그녀들의 수감 마감일이기도 하다면서, 그런데 내일은 일요일이라 사람을 풀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지 묻자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건 이곳의 규정이래요. 저는 여기에 여러 번 들어왔어요. 일요일이 끼면 누구든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한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녀들은 모두 화가 치밀어 올라 사당(邪黨)을 욕하고 경찰을 욕했습니다. 저는 그녀들에게 “여러분도 화내지 마세요. 그리고 나간 후에는 더 이상 싸우지 말고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항상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한다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이 우리를 풀어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꼭 그들의 말처럼 되는 것도 아닐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두 명의 경찰이 오더니 “모두 나와 줄을 서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기가 된 그녀들은 자신들이 이제 곧 석방될 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들은 삼퇴를 했기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들은 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우셨음을 알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줄을 다 선 후, 경찰이 저를 호명하며 “당신은 만기가 됐으니 나가세요”라고 했습니다.
구류소에서 나온 후, 저는 우선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왔다고 알렸습니다. 아들은 믿기지 않아 하며 금방 파출소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더러 파출소에 와서 1500위안을 납부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내일 파출소 경찰이 구류소에 가서 저를 데려올 것인데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구류소에서 풀려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건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그럼 누가 결정하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우리 사부님께서 정하시는 거란다”라고 알려줬습니다. 이에 아들도 “정말 다행이네요. 하루빨리 나오신 덕에 1500위안이란 돈도 절약했네요”라고 기뻐했습니다.
복 받은 부자(父子)
수련 후 저의 몸과 마음에 생긴 변화를 직접 목격한 남편은 대법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박해가 처음 막 시작된 몇 년 동안, 그는 종종 저를 오토바이에 태워 인근의 세 개 향(鄕)과 진(鎭)을 넘나들며 진상자료를 배포하도록 저를 도왔습니다.
제가 대법수련 및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견지함으로 인해, 남편도 중공사당 관리들의 박해를 적잖게 받았습니다. 어느 해, 저는 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에 갔는데 이 일로 남편도 연루되어, 진 파출소 소장과 종합치안판공실 주임에 의해 촌 위원회로 붙잡혀가 심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남편은 그들의 발에 차여 하반신이 다쳐 쓰러졌고,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며 소변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악당들이 매일 남편을 괴롭혔기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성에 있는 친척 집으로 피신하기도 했으며 설날이 되어도 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대법을 믿으며, 저의 수련 및 사람 구하는 일을 지지했습니다. 친척과 지인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면 남편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2004년, 남편은 바깥 대문 지붕 위에서 잡동사니를 치우다 부주의로 벽돌 더미를 밟는 바람에 벽돌 한 장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본능적으로 처마를 잡았는데 손목이 긁혀 붉은 자국을 냈지만 출혈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떨어질 때, 원래는 머리가 아래로 향한 기억이 있었지만, 어쩐지 떨어지고 나서 보니 자신이 땅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있었고 게다가 아무 부상도 입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벽돌까지 떨어지면서 깨지고 부서진 마당에 그는 벽돌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 당신 대문 지붕 위에서 일하지 않았나요? 왜 대문 밖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물었고, 남편은 “나 지붕 위에서 떨어졌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믿기지 않아 문밖에 나가 깨지고 부서진 벽돌과 그가 떨어졌던 흔적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남편을 보호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남편은 또 실수로 인해 지붕과 나무 위에서 여러 번 떨어졌지만 모두 다치지 않았습니다.
201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큰비가 내렸는데, 아들이 전동차(電動車)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대형 삼륜차 한 대가 들이받는 바람에 몇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삼륜차는 이미 뺑소니쳐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아들은 전동차의 앞부분이 충격으로 파손되었지만 차 전원이 여전히 들어오는 것을 보고, 차를 밀고 수리 가게를 찾아가 수리받은 후 별 일없이 다시 전동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2019년 어느 날, 아들은 회사 사장의 차를 타고 일 보러 갔다가 대형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들 일행이 탔던 차는 박살이 났지만 아들을 비롯해 차에 함께 탔던 사장과 사모는 모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정법을 수련(煉)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연공(煉功)하면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는다.”[1]
제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또한 그들 부자가 대법을 믿고 지지하기에, 사부님께서 몇 번이고 그들을 보호해주셨던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구하기만 하면 나가서 배포했기에 사당 관리들의 감시를 자주 받았습니다. 2021년 5월 어느 날 밤, 저는 한 무리 파출소 경찰들에게 붙잡혔는데, 그들은 저를 구치소로 보내려는 의도로, 저를 음해하는 몇 가지 자료를 날조하여 작성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오로지 ‘누구도 결정권이 없다. 오직 나의 사부님께서 만이 정하신다’라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으면서, 경찰들은 누구도 한밤중에 당직을 서면서 저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제가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해 우선 저를 집에 돌려보내고 다음 날 다시 붙잡으러 오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저는 전동차를 타고 10여 킬로 떨어진 시장에 마늘쫑을 팔러 갔습니다. 아침 8~ 9시가 되어 7~ 8명의 파출소 경찰들이 저의 집에 찾아왔는데 당연히 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날 남편도 집에 없었습니다.
경찰들을 발견한 이웃은 무슨 영문인지 알아채고 저의 남편을 찾아 상황을 알렸습니다. 남편은 즉시 자전거를 타고 저를 찾아왔고, 저는 마침 마늘쫑을 다 팔고 나서 집에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남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집에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저는 바로 인근에 있는 수련생을 찾아가 그의 집에 임시로 머물렀습니다. 이후, 저는 여러 곳을 거쳐 도시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80세 노부부 수련생의 집에서 일하던 보모가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되어 수련생의 소개로 저는 그 노부부 집에 가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한편으로 노년 수련생의 일상을 돌보며, 한편으로 진상자료를 인쇄하면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20여 년의 정법 수련을 통해 오로지 우리가 시종일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하고도 바른 믿음을 유지하며, 또한 언제나 마음속에 중생을 품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2]의 기적이 펼쳐질 것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아직도 일을 하려는 마음,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 등과 같은 채 닦지 못한 사람 마음과 집착심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정법 수련의 시간에, 저는 실수(實修)하는 중에서 이러한 좋지 못한 마음을 제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각 층차에서의 자신에 대한 법의 요구에 도달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께 큰절 올려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홍음2-사도은(師徒恩)’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중국법회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18/4515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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