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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퇴골 괴사 환자의 축복 (2)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파룬따파의 효과 시리즈 (13)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불치병인 대퇴골 괴사는 치명적인 암으로 알려졌다. 대퇴골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어 골세포와 골수의 괴사를 유발하는 병으로 병이 진행되면서 대퇴골의 함몰을 유발하는 불치병이다. 대퇴골 괴사병의 말기 현상은 극심한 통증, 하지 근육 위축, 고관절 활동 제한, 단축 파행, 심지어 마비까지 나타난다. 현대의 의료수단으로는 완치 불가능하여 환자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러나 인연이 있는 대퇴골 괴사병 환자 중에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심신 수련법을 만난 후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 건강한 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또 일부 환자는 ‘9자진언(九字真言)’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으로 염해 병이 완쾌되는 기적을 만나기도 한다.

(전편에 이어)

대퇴골 괴사에 걸렸는데 왜 갑자기 좋아졌을까? 

나는 동북의 파룬궁 수련생이다. 2022년 10월, 내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을 때, 50대 중년 여성이 매우 기뻐하며 진상 자료를 받았다. 그녀는 “오, 파룬궁이군요, 알고 있어요. 파룬궁은 좋은 수련이에요.”라며 이어 “제 남편은 엄청나게 믿어요. 남편이 호신부를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왼쪽 재킷 주머니에, 때로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호신부를 챙겨요.”라고 덧붙였다.

이때 여성은 화제를 돌려 “봐요, 제 뒷모습을 보면 지팡이를 짚었던 사람처럼 보이나요?”라고 나에게 물어서 나는 “아니요, 보통 사람처럼 보여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2년 전에 대퇴골 괴사에 걸려 지팡이를 짚고 다녔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병이 다 나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중한 병이 갑자기 나을 수 있죠?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분명하게 말해 주지 못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무슨 좋은 일을 했을 거라고 말해요. 당신이 이 일에 대해 말해 줄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대법에 대해 진상을 안 이후로 어떻게 했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사실 나도 별로 한 것은 없는데 땅에 떨어진 진상자료를 보면 주워서 깨끗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놓아 많은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알 수 있도록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잘하셨어요. 당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 파룬궁 진상을 알게 한 것은 좋은 일을 한 것이니 큰 복을 받아 병이 다 나은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문득 깨달아 “그럼 당신의 덕담을 받아야겠네요.”라고 기뻐했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 간행물을 주면서 호신부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는 파룬따파의 축복과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떠났다.

연공 28일 만에 대퇴골 괴사를 이겨내 자유로이 걷다

나는 지린성 창춘시 눙안현 파룬궁 수련생 왕징샤라고 한다. 1985년 9월 22일 0시 20분에 출산하러 병원에 가는 도중에 손수레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이불도 모자도 쓰지 않고 작은 이불로 아이를 탯줄과 함께 감쌌다. 20분 후, 가족들은 차를 끌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유난히 추웠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온몸의 뼈가 아팠다. 한 달 내내 약을 먹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나중에 머리가 아프고 눈이 심하게 아팠다. 도시 전 지역의 크고 작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산후풍에 좋은 약, 류머티즘 약을 몇 년 동안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류머티즘 약을 장기간 먹어 뼈가 좋지 않았다. 한번은 실수로 침대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사타구니가 아파 병원에 가봤지만 별 탈은 없었다. 1996년에 CT를 찍고 나서야 양쪽 대퇴골이 괴사에 걸려 오른쪽이 심각하고 왼쪽도 결함이 있어 옆으로 눕지 못하고 똑바로 누워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약을 먹고 고약을 붙이면서 나는 7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땅에 내려갈 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심한 통증은 날 죽느니만 못하게 했다.

1997년 7월에 나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처음 연공을 시작했을 때, 설 수 없어서 억지로 버티고 서 있었다. 처음 포륜(抱輪)할 때, 나는 땅에 쓰러진 것을 기억한다. 내가 깨어났을 때, 온몸이 홀가분했다. 사타구니 통증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며칠 사이에 통증 부위가 허벅지와 무릎으로 옮겨지면서 사타구니 통증이 덜해졌다. 20일이 지나자 통증은 종아리와 발목으로 옮겨졌다.

그때 나는 식당을 차릴 만큼 돈이 많았고, 돈에 집착해 돈과 장부는 내가 모두 관리하고 상자에 넣어 자물쇠를 채웠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를 깨닫고 열쇠를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28일째 된 날, 나는 서랍에서 200위안(약 한화 4만 원)을 꺼내 아이에게 물건을 사주었다. 남편이 발견한 후, 나한테 욕설을 퍼붓다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때리려 했다. 남편이 때리려고 할 때, 식당에서 누군가 남편을 끌고 나갔고, 두 아이는 겁에 질려 엉엉 울었다. 그가 가자마자 나는 두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단지 몇 걸음을 걸었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아 아이들을 불렀다. “너희 둘 빨리 와서 봐, 엄마가 다 나았어, 다리와 발이 다 아프지 않아.”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두 아이를 껴안고 너무나 기뻐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대법이 정말 신기합니다!

지금도 다른 사람한테 들려줄 때마다 여전히 눈물이 나는데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25년 동안 나는 건강하고, 약 한 알 안 먹었고, 주사 한 대도 안 맞았다.

‘9자진언 ’을 진심으로 염하니 대퇴골 괴사가 완치되다

나는 랴오닝성의 파룬궁 수련생이다. 몇 년 전 고향에서 큰형이 시내 의과대학에서 대퇴골 괴사로 진단을 받아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큰형은 정신이 나가 “다리를 절단하면 내 다리 하나가 없어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막막해했다.

이 상황을 알고 나는 ‘절체 절명의 삶’과 파룬궁에 대한 몇 가지 진상 자료를 가지고 큰형님 집으로 달려갔다. 큰형은 병원에서 검사한 경위를 울면서 나에게 “내 이 다리를 절단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지?”라며 하소연했다. 나는 “형,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때 차 사고 이후로 내 몸이 어땠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때 병원에서도 다시는 무거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보세요, 제가 지금 정상 사람과 다른 점이 있나요? 나에게는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고 위대한 대법이 있기 때문이에요.

파룬따파는 초자연적이고 사부님께서는 무소불능이에요. 파룬따파를 믿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반드시 기적이 나타날 거예요. 내가 오늘 가져온 몇 권의 책은 모두 진상 자료이며, 사람들이 사부님의 축복을 받으셨다고 믿는 사례이니 잘 읽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형은 “그래, 너는 그때 차 사고 이후로 무거운 일을 할 수 없어 파룬궁을 배운 이후로 정말 몸이 좋아졌지. 사부님께서는 참 대단하셔. 내가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할게.”라고 말했다.

얼마 후, 나는 큰형님을 만나러 고향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자 아주머니는 기뻐하며 “형은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어요. 지금은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대법은 참 신기하고, 사부님께서는 참 대단하시고, 사부님께 너무 감사드려요!”라고 말했다. 큰형님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에 겨워 “사부님께서 생명을 구해 주셔서 감사해! 나는 정말 복을 받아 다리를 절단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 예전에 네가 ‘삼퇴’ 하라고 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네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삼퇴’ 해줘. 파룬따파는 정말 좋은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 일가를 위해 삼퇴(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해주었다. 그들 온 가족이 진상을 알게 되어 기뻤다.

파문을 일으킨 대퇴골 괴사의 기적적인 완치 

'图3:二零一三年六月,于铭慧手里拿着营救父亲的明信片站在“真善忍国际美展”画作《孤儿泪》前。'
2013년 6월, 위밍후이(于铭慧)가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엽서를 손에 들고 ‘진선인국제미술전’ 중 전시된 ‘고아의 눈물’ 그림 앞에 서다.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서해림 철도농장 38동에는 젊은 부부와 외동딸이 살고 있었다. 딸의 이름은 위밍후이다. 그의 아버지는 ‘위중하이’이며, 헤이룽장성 무단장시의 도서관에서 미술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유화, 중국 수묵화, 조각과 서예, 특히 서예 방면에 높은 조예가 있는 예술적 기질을 가진 화가이다. 특히 글씨를 잘 써, 어느 서예가는 위중하이가 직장에 써준 붓글씨를 보고 “무단장에 이런 뛰어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어머니 왕메이훙은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지질조사소의 수석 엔지니어이다.

업무가 과중하여 과로로 병이 났고, 위중하이는 대퇴골 괴사병에 걸렸다. 직장 상사는 그를 톈진에 데리고 가서 진찰받았는데 뼈가 연탄 모양처럼 찍혔다. 나중에 위중하이는 작은 세숫대야 양의 석탄조차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중심 병원의 검사와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거의 없어 의사는 절단을 권고했다. 1994년 어느 날 하얼빈 류머티즘 병원에서 의사는 위중하이 앞에 있는 등과 양팔이 안으로 굽고, 손가락이 심하게 변형된 사람을 가리키며 “당신도 반년 후에 이렇게 되는데 이 병을 고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말, 위중하이는 파룬궁 창시자이신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장춘에서 개최한 파룬궁 학습반에 참석했다.

그해 가을, 위중하이는 장애가 없을 뿐만 아니라 1층에서 5층까지 쌀 100kg을 단숨에 운반할 수 있었다. 당시 도서관에서는 쌀 한 마대에 100kg을 나눠주었는데, 대학 신입생이 마대를 어깨에 메려고 비틀거렸는데, 결국 너무 무거워 자루가 땅에 떨어졌다. 전 직장에서 오직 한 명만 운반할 수 있었는데, 바로 위중하이로 그는 스스로 상사인 주임에게 “내가 그를 도와 쌀을 운반해 줄게요”라고 하자 주임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쌀을 운반한다고요?”라고 물었다.

결국 위중하이는 단숨에 세 포대를 연속으로 운반했다! 그러자 직장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과거에 위중하이는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을 처방하고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했으며, 작은 세숫대야 양의 석탄조차도 들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던 그 사람이 100kg의 쌀을 짊어지다니! 그것도 1층에서 5층까지! 게다가 세 포대나 연속으로!

직장보험 지정병원의 의사는 위중하이를 오랫동안 못 보자 그의 동료들을 보면 “사람이 (사망) 떠났나요?”라고 물어 애꿎은 동료들은 “간 것이 아니고 도망쳤네요”라며 농담으로 답했다. 위중하이의 변화를 보고 그의 친척과 동료들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파룬따파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보냈다. 그러나 이런날은 1999년 7월에 급변했다. 위중하이 부부는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앙을 고수해 불법 수감, 판결받고 고문에 시달렸다. 2010년 밍후이는 영국 케임브리지 예술대학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했다. 2011년부터 영국에서 각종 방법을 동원해 부모를 적극적으로 구출하기 시작했다.

2016년, 위중하이는 마침내 무단장 감옥에서 살아나왔고, 왕메이훙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박해받고 있다. 밍후이는 여전히 엄마, 아빠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란강이든 템스강이든 그들은 모두 ‘진선인(真·善·忍)’ 속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계속)

 

원문발표: 2022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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