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무란(木蘭)
[밍후이왕] 나는 수련생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셨고, 작은고모와 큰어머니도 수련하셨으며, 둘째 고모는 수련했다 안 했다 하셨다. 나는 내가 대법에 대한 믿음이 깊다고 느꼈으나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가 시작된 후 박해가 두려워 수련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수련을 지지했다.
2005년쯤, 큰어머니는 갑자기 병업(심근경색)이 생긴 후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구세력에 의해 생명을 잃으셨다. 큰아버지와 사촌 언니는 그 때문에 대법에 안 좋은 인상이 생겼다. 나중에 사촌 언니와의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사촌 언니가 큰어머니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해 전, 큰어머니는 대법을 알리느라 바빠서 집안일을 소홀히 했고 큰아버지와 강제로 별거하셨다. 큰어머니는 사촌 언니에게 억지로 다리를 틀고 연공하게 했지만 사촌 언니는 하기 싫어했고 큰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셨다. 그래서 나중에 사촌 언니는 결혼하자마자 연공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대법을 믿지 않으며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여 년간, 작은고모와 부모님은 대법을 믿는 것을 견지하셨고 수련의 길을 걸으셨다.
아버지는 사악한 공산당에 의해 10번 가까이 불법적으로 붙잡혀가셨고 어머니도 연루돼 여러 번 잡혀갔다가 떠돌이 생활을 하셨다. 그런데 2016년, 부모님 사이에 풀지 못한 갈등이 생겨 온종일 싸우셨고 어머니의 몸이 매우 안 좋아지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약을 먹지 않고 의사도 찾지 않았으며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셨다. 결국 어머니는 병업(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셋째 이모는 처음부터 대법을 매우 지지하셨다. 우리 부모님을 도와 주변 사람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하는 것도 도우셨고 많은 대법제자의 일들도 도우셨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셋째 이모는 파룬궁을 욕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아버지를 욕했고 어머니가 위독하실 때 우리와 아주 가까이 사는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며 원망하셨다. 어머니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집에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어머니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거의 하루 만에 갑자기 돌아가셨음) 셋째 이모는 우리 아버지를 매우 원망했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속 마음에 두고 계신다.
어머니는 64세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아주 오랫동안 상심했다. 당시 나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 있었고 아직 수련은 하지 않았다.
작은고모는 중공의 박해에도 수련을 견지하셨지만 고모부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설득하지 못했으며 늘 가정 난과 마주쳤다. 하지만 고모는 몇 년간 계속 자료를 만드셨다. 2년 전, 고모는 박해를 당해 구치소에 갔고 나온 후 가족과의 갈등은 더 커졌으며 결국 집에서 쫓겨나셨다. 나중에 고모는 병업이 생겼고 구세력에 의해 생명을 빼앗겼다. 그래서 고모네 가족도 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법을 원망했다.
작은고모네 가족은 고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고모를 잘 보러오지 않았다. 우리 언니와 외조카(언니의 아들)가 고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문안을 갔었다. 언니는 내게 고모가 대상포진 비슷한 매우 아픈 병에 걸려 죽기 전에 매우 고통스럽고 비참했으나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외조카와 이야기할 때 대법에 대한 오해가 없느냐고 물으니 외조카는 이렇게 대답했다. “작은이모, 저는 고모할머니가 병원에 가지 않으신 것이 이해되지 않아요. 왜 파룬궁은 병원에 가지 못 하게 해요?” 나는 외조카에게 내 이해를 설명해줬고 대법은 병원을 가지 못 하게 하지 않으며 이것은 개인 인식의 차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나 그의 매듭이 해결됐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래도 우리 언니와 외조카는 대법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일련의 사건들로 우리 가족은 대법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됐다.
고모부와 사촌 언니는 우리 아버지가 고모를 수련시켰다면서 원망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그들과 전혀 왕래하지 않았다. 이전에 사촌 언니는 나와 친밀하게 지냈었는데 고모가 돌아가신 후 나와 연락도 끊었다.
큰아버지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버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우리 사촌 언니는 기독교를 믿었기에 연락도 매우 적었다. 둘째 고모는 수련했다 안 했다 하셨는데 지금은 반신불수가 됐다. 그래서 내 남편도 대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날 보러 캐나다에 오셨다. 그 후 나는 아버지의 이민 수속을 도왔고 아버지는 캐나다에 오시게 됐다. 아버지는 매우 자기중심적이라 내 남편과도 갈등이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남편은 아버지가 애초부터 이 집안에 관심이 없고 파룬궁을 이용해 자기 욕심만 채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 집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둘은 소통할 수 없었다. 최근 1년간 아버지는 이가 안 좋아 음식을 씹을 수 없었고 삼키기만 하셨다. 남편은 아버지가 심각한 당뇨병에 걸렸다면서 아버지 명의 하의 모든 재산을 내 명의로 옮기게 했다. 고모와 어머니처럼 아버지가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실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정식으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련 초기에는 남편이 심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수련을 견지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가정 난이 매우 컸다. 나는 내 수련을 통해 대법에 대한 남편의 생각을 고치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아버지처럼 고집스럽고 가정을 포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집을 나가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안으로 찾고 자신을 개변했다. 또 수련생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걸어 지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정관을 모두 넘겼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틀 전, 남편은 또 갑자기 집을 나갔다. 그는 우리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있다며 이 벽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몇몇 예시를 들면서, 그의 다리가 아픈데도 내가 무관심하게 밖에 나가 자기 할 일(대법 일)을 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는 내가 냉랭하고 정이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또 다른 일들도 그가 보기에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나타난 갈등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나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내 행동과 우리 아버지의 행동을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며 우리가 이 집안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집안을 위해 한 것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청소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나는 일반인 상태에 맞게 행동했고 아버지, 어머니, 고모처럼 그렇게 극단적이지도 않았다.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내 문제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은 알았다. 대법제자와 일반인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면 반드시 대법제자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잘못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우리 가족이 남편에게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끼쳐서 그를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아버지가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를 바꿀 힘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가 결혼한 사람은 우리 가족이 아니라 나이고, 우리 아버지는 더욱 아니라고 했다.
나는 두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집을 나가도 괜찮겠어? 엄마가 수련해서 아빠를 떠나게 했다고 원망할 거니?” 아이들은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은 대법에 대한 믿음이 좋다. 6살 난 딸은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엄마, 저는 아빠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빠가 나가도 괜찮아요.” 나는 듣고 아이들은 적어도 이해해준다는 사실에 위안이 됐다. 그러나 나는 실의에 빠졌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시험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나는 자신에게 유감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그가 이렇게 떠나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있지 말고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가 집을 나가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 길이 맞는 것인가? 맞지 않다! 비록 나는 자유롭다고 느낄 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아이들에게 션윈 공연을 보여주지 못 하게 했는데 그가 나간다면 나는 아이들과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것은 맞지 않다. 나는 수련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을 갈라놓을 수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없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편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를 내보낸다면 그를 철저히 망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엉망진창’인 우리 가족을 더 망치는 게 아닌가? 이것은 애초 내가 수련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나는 윗세대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대법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을 구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문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나는 수련 초기부터 이 갈등을 3년째 겪어 왔다.
수련생들은 나보고 남편에게 더 관심을 가지라고 일깨워줬다. 나는 늘 내가 이미 관심을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덕이 있으면 품성이 자연히 높다: 남편을 잘 모시는 여성의 덕목’이라는 글에서 이런 내용을 보게 됐다. ‘남편에게 병이 있으면 온종일 마음을 써야 한다. 곳곳에 가서 좋은 약을 알아보고 신에게 빌러 다녀야 한다. 온갖 정성으로 치료하고 장수하길 빌어야 한다. 어리석은 부인들처럼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 내용을 읽고 나는 남편이 자신이 다리를 다쳤을 때 내가 밖에 나가 다른 일을 했다며 원망했던 말이 생각나 마음이 찔렸다. 나는 전통적인 여성들과 내 격차를 보았다. 나는 자신이 냉랭하고 인정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그 글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부인들처럼 남편에게 병이 생겨도 무관심했는데 어떻게 남편 마음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나는 마음이 아팠고 내가 너무 형편없어 보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통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늘로 통하리니”[1]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나는 현대관념으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했고 그것이 바로 넘지 못하는 벽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우리 갈등의 근본 원인을 찾아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서가 아니라 내가 남편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원래 매우 행복했는데 그것은 내가 남편을 매우 존중한 덕분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지지했으며 그의 어떤 것이든 모두 좋았다. 이런 결혼 생활은 반드시 행복하다. 왜냐하면 기점이 바르고 안정적이며 전통에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수련한 후부터 그가 심하게 방해하자 그를 존중하지 않게 됐다. 난 비록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배척했고 속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식으로 그의 언행을 판단했고 내가 맞고 그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 희생과 변화의 배후에는 매우 큰 이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당신을 바꿀 거야!’ 지금 나는 이 일념에 쟁투심이 있고 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생각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다. 나는 누구도 바꿀 수 없고 나 자신만 바꿀 수 있다. 이 현대관념의 장애를 찾아내자 내 마음은 편안해졌고 내 문제를 알게 됐다. 나는 다시는 이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됐다.
저녁에 나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고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덕목을 말한 그 글을 남편에게 읽어주고 내 잘못을 찾은 과정을 말해줬다. 나는 그가 매우 열심히 듣는 모습을 봤다. 나는 다 이야기한 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해줬다. 그는 마지막에 집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매우 감개무량했다. 나는 현대 남녀평등의 관념으로 남편을 대해 거대한 갈등을 키웠다. 나는 아내가 있어야 할 친절함, 겸손과 남편에 대한 존중이 없었기에 당연히 남편을 매우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내 마음가짐이 좋지 않았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그는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변이된 관념을 찾게 되자 내 마음은 매우 편안했고 안정됐다.
나는 나의 친정 가족들이 생전에 수련했던 상황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다. 중국인들은 공산당 문화 속에서 관념이 변이됐다. 현대관념으로 대법을 이해해 갈등에서 걸어 지나갈 수 없었으며 대법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층차에 제한이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5-다시 만들다’
원문발표: 2022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28/4522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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