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대법제자 란펑(藍鳳)
[밍후이왕] 저는 1997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그때 저는 인생의 곤경에 빠져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었습니다. 과로와 가족 갈등으로 원한이 쌓여 늘 싸웠고 온갖 병으로 몸이 망가진데다 유방암까지 앓게 됐습니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어도 인생을 간파하고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대법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 ‘진선인(真·善·忍)’이 곧 인간의 규범이며 생명의 등대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간절히 구하고 있으나 내세의 목적지를 알지 못하며 많은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전법륜’을 보면 그 안에 명확히 적혀 있어 더 이상 막막하지 않습니다. 아래에 지난 몇 년간 제 수련 경험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기적을 경험하다
수련하면서 저는 많은 신기한 일을 경험했는데 그중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있었습니다.
2005년 어느 날 아침 비가 내렸습니다. 전날 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려고 의자를 밟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머리를 라디에이터에 부딪혀 2~3cm 크기의 큰 구멍이 났습니다. 저는 기절해 쓰러졌습니다. 놀란 남편이 얼른 다가왔습니다.
이때 저는 왠선(元神)이 이탈하는 과정을 실감했습니다. 왠선이 몸 밖으로 나갈 때 먼저 발에서 감각이 없어지더니 위로 올라가 점차 손의 감각이 없어졌으며, 다시 위로 올라가자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 다음에 왠선이 몸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연공인인데 아직 사명이 있어 갈 수 없으니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제 왠선은 몸속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눈이 밝아지고 빛이 보였고 그 다음에 손에 감각이 있었고 다음에는 발에 감각이 있었으며 깨어났습니다.
저는 다들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괜찮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저를 일으키자 저는 침대에 앉아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는데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휴지로 머리에 묻은 피를 닦은 후 다롄(大連)에서 지린(吉林)성 고향으로 500km 되는 길을 총 11시간 운전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었고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올케의 여섯째 여동생이 시골에서 목이버섯을 심다가 실수로 나무를 밟고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4천 위안을 들여 치료했으나 뇌진탕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의 조카가 어느 날 눈 내리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실수로 눈밭에 쓰러져 기절했었습니다. 그 후 2~3년은 물건을 손으로 들 수 없었고 기억력도 상실했습니다. 지금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물건을 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도 이러한데 저는 이미 50세가 다 되어가지만 아무 처치도 하지 않았는데 후유증이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지금 몸이 가볍고 얼굴이 불그레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여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제 혈색이 좋고 허리가 곧으며 몸매가 좋다고 칭찬합니다.
한번은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고속도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도로에 얼음이 잘 보이지 않아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옆으로 길가 전봇대로 돌진했습니다. 저는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차가 전봇대를 피해 도로변 도랑으로 떨어지며 ‘펑’하고 시동이 꺼졌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우리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한 후 내려가서 함께 차를 밀어 올렸습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평소라면 여러 명이 힘써 밀어 올려야 합니다. 차를 밀어 올린 후 시동을 걸자 시동이 잘 걸렸습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차를 몰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이때 집까지 아직 100km쯤 남았는데 새벽 2시경에야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차를 몰고 일을 보러 가려고 나섰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타이어가 크게 찢어졌고 공기가 빠져 있었습니다. 어젯밤 길가 도랑에 빠질 때 ‘펑’하던 소리는 틀림없이 타이어가 돌에 부딪혀 터지는 소리였습니다. 타이어에 공기가 없는데 어떻게 먼 길을 왔을까요? 대법은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는 부품 판매를 하기에 때로 고객에게 물건을 보내야 합니다. 표 뭉치를 찾거나 명단에서 원하는 사람을 찾을 때 그냥 뒤지기만 하면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자루에 부품이 3천 개 들어 있는데 누가 1천 개를 원한다면 제가 자루를 쏟아 세어보기만 하면 딱 1천 개였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몇 번씩 오전 시간에 단체 법공부에 참여합니다. 처음에는 고객이 물건을 사러 올까 봐 걱정돼 오전 시간에 감히 가게를 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법공부를 하러 가면 그 시간에 저를 찾는 사람이 없었고 가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고객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사부님의 배치였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2. 이익심을 버리자 장사가 갈수록 잘되다
저는 만고에 만나기 힘든 대법을 얻고서 비로소 인생의 도리를 알게 됐고 바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 예전처럼 무슨 일을 당해도 마음이 들뜨지 않고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가짐이 평온해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상냥하게 대했습니다. 대법만이 저 같은 강한 사람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수련 후 저는 장사에 대한 집착이 적어져 순리를 따랐습니다. 이후에 형편이 좋지 않은 동생, 조카들에게 가게를 내주고 기존 거래처를 그들에게 인수해주고 저 혼자 또 새로운 노점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처음에는 단골손님이 없다 보니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10여 년 세월이 흐르자 동생이 넘겨받은 좋은 노점이 불경기로 인해 장사가 잘되지 않자 그들은 노점을 다른 걸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불경기 때부터 점점 장사가 잘됐습니다.
왜 이런 대조가 생겼을까요? 왜냐하면 장사할 때 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마음을 바로잡고 공정하게 거래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팔지 못한 고객이 저에게 물건을 돌려주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돈을 돌려줬습니다. 어떤 고객은 제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고객은 제 유통 경로를 따라 직접 공장에 연락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상황에 대해 저는 따지지 않고 항상 선한 마음으로 일마다 다른 사람을 잘 대해줬습니다. 한번은 장부 결산을 하다가 고객이 1500위안을 더 낸 것을 발견해 돈을 돌려줬더니 그는 오히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하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의 사람 됨됨이는 점차 고객의 신뢰를 얻어 모두 제 인품이 좋다고 해서 장사가 점점 잘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인이나 친구의 소개를 받고 찾아옵니다. 이리하여 이미 65세가 된 저는 더 이상 힘들게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물건을 팔 수 있게 됐습니다. 몇 년간 전염병이 심각했지만 제 수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저는 10만 위안(약 1900만 원)을 투자해 한 사람과 화학 원료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투자하고 그녀가 가게를 경영한 후 이윤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몇 년간 경영이 잘 안 되자 그녀는 3만 위안만 돌려주면서 남은 돈은 못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 번 요구했지만 그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회피했습니다. 지난해 그녀가 정말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남은 돈을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듣고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평온했고 그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한두 달 후 큰 거래처가 저를 찾아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마땅한 파트너를 찾지 못해 저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위에서 언급했던 7만 위안의 손실이 빠르게 회복됐고 이윤을 남기게 됐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잘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물건을 입고하지 않고 필요할 때 저에게서 가져가고 반품도 편리하도록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 여사님 같은 사람과 함께 사업하면 걱정도 덜고 돈도 벌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3. 심성이 기준에 도달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해주신다
수련자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자신이 일반인이 아니라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고요히 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 다음에 ‘이 일은 나에게서 어떤 마음을 버리라는 것인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수련하자 저는 계속 발전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일을 당하면 먼저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화가 치밀어 올랐고 가슴은 분노로 끓어 올랐습니다. 심성을 연마할 줄 모르고 사부님께서 주신 심성 제고의 기회를 매번 놓쳤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겪었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눈물만 흘리던 것이 이제는 심성이 높아졌고 남편도 대법을 수련하고 있어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1]라는 사부님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다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을 당하더라도, 예를 들어 사악이 우리를 박해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지, 또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이런 박해로 이어졌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이러면 놀라긴 해도 위험은 없이 평온히 걸어 지나올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13살, 11살 된 두 아이와 같이 거리에 나가 진상 스티커를 붙이다가 경찰에 납치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고 엄마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와 아이를 분리해 가두고 저를 수갑으로 쇠의자에 채웠습니다. 자정 무렵에 아이를 생각하자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사부님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려와 법 이미 얻었구나 훗날 하늘로 날아가면 끝없는 법 속에서 유유자적하리라”[2]. 외우고 외우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고 저도 모르게 수갑에서 손이 빠져나와 화장실에 갔습니다. 이곳은 2층이어서 배관을 타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안에 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수갑에 손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보고 다시 수갑을 채웠는데 제가 다시 수갑을 벗을까 봐 이번에는 바짝 조였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610(파룬궁 탄압기구)’ 요원이 불법적으로 저를 심문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절 때렸지만 저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없자 그들은 “우리는 당신과 아무런 원수진 일이 없으니 때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저를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나중에 집에서 사람을 부탁해 곧 풀려날 거라고 했습니다. 여름이라 다들 교대로 샤워하는데 저는 씻지 않고 기다리면서 집에 가서 씻으려 했습니다. 저는 곧 집에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시간만 나면 법을 외우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같이 수감된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어떤 집착을 갖고 있는지 찾았습니다. 깊이 숨겨진 색욕심이 박해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저축도 안 해주고 저를 보러도 안 오니까 애인이 생긴 게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수련하는데 이것저것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데 이런 마음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위치(位置)’를 외우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고 마음을 굳게 먹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결과를 바라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끝까지 수련할 것이고 다른 것은 전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사람을 보내 저를 집에 데려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박해가 너무 심하기에 구치소에서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감옥에 가서 써야 하는데 차라리 지금 쓰면 고생을 적게 하고 나가서 다시 수련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불법(佛法)은 엄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로 수련하는 이 엄숙한 일을 어떻게 그렇게 얼버무릴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내려놓자 저는 68일간 갇혀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심성이 기준에 도달하면 사부님께서는 뭐든 다 해주십니다.
나오기 전날 밤, 저는 구치소 옥상으로 달려가는 꿈을 꿨는데 바깥 하늘이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는 다른 수련생에게 오늘은 나갈 거라고 했습니다. 모두 반신반의하며 “만약 당신이 나간다면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집에 돌아간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도 격려가 되고 자신감을 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아침 8시가 넘자 방송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고향 파출소에서 저를 데리러 온 사람이 “당신은 반드시 연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집에 보낼 수 있습니다. 안 쓰면 돌아가더라도 다시 가둬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몸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늑대 굴을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격입니다. 제가 수련 포기 각서를 쓸 것 같으면 진작 썼을 것이지 왜 이렇게 많은 고생을 했을까요? 만약 제게 쓰라고 한다면 전 돌아가겠어요.” 난감해진 그들이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국장은 “당신에게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으니 그냥 데려오면 돼”라고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3] 이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놓을 수 있는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자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많은 일을 겪었는데 어떤 말로도 대법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소원을 풀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19/4513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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