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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똑똑히 보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수련하면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난관이 올 때마다 나는 늘 집착심을 내려놓고 심성을 제고하는 등 수련인처럼 대할 수 없었다.

1. 집착심 찾기

나는 내가 질투심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아서 평소에 늘 주의한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자신에게 묻는다. ‘또 화난 거야? 질투심 아니야? 아니면 또 남을 깔보는 거야?’ 대부분 이처럼 얼렁뚱땅 넘어갔다.

몇 주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그때 자신에게 물었다. ‘어때? 괜찮아?’ 당시에는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극도의 상실감이 마음을 뒤덮었다. 갑자기 힘이 나지 않고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으며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억누를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치받쳐 올라왔다.

나는 다른 수련생을 찾아서 발산하고 싶었다. 수련생이 날 일깨웠다. “그건 질투심입니다. 그것을 똑똑히 구분해야 하며 그것에게 끌려가면 안 됩니다. 속인 마음이 너무 심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아를 실증하거나 명성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수련생의 일깨움으로 평정을 되찾은 나는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1]를 끊임없이 외웠다. 차츰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게 됐지만 속으로는 그 어렴풋한 원한이 아직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안으로 찾지 못했다.

이후 일주일간 나는 겉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매일 아침 깨어나면 그런 기분으로 괴로워하고 나쁜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참으며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척했다. 나는 이렇게 시간으로 그것을 희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마땅히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회피하면서 이미 그것을 많이 자라게 했기에 제고하려면 그것을 찾아서 없애야 했다.

주말 온라인 법공부를 할 때 그 나쁜 것이 이미 매우 강렬해져서 아예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울 수 없었다. 그새 외지 수련생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법을 다 배운 후 열어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모든 것은 수련해 집착을 제거한 후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수련상태에 의해 결정됩니다. 잘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 마음이나 관념으로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애석하게도 그때 나는 깨닫지 못해 자신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이해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럼 내게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것은 너무 잘못 수련해 제고할 방법이 없다는 게 아닌가요?” 당시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고 억울함과 울분이 극에 달했다.

나는 일어나서 수련생을 찾아가 교류하면서 내 불만과 억울함을 모두 털어놓으려 했다. 수련생은 다 들은 후 내게 사부님의 스위스 법회 설법을 읽어줬다.

“이 집착들은 마치 강대한 자물쇠처럼 당신들을 잠그고 있다. 당신은 전진하는 길에서 매 자물쇠마다 그것을 다 열어야 하는데, 열지 못하면 그것이 당신을 잠그고, 미혹시키고 있어 당신은 진상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반본귀진하려 하는 이 길에서 이 자물쇠들을 열지 못하면 당신은 건너갈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관(關)이다.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일체가 바로 당신의 장애이며, 수련 속에서 부딪히는 이 고비들 역시 사실은 당신 자신의 난(難)이다.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목적은 바로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자물쇠를 열어 당신들로 하여금 진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며 당신들의 사상으로 하여금 승화되게 하는 것이다.”[2]

수련생이 나에게 권했다. “무슨 근본적인 집착이 가로막는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아직도 원한심이 있는 게 아닌가요?” 내가 원한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정신이 드는 듯했으며 조금 전의 그 감정들이 갑자기 멈췄다. ‘그래, 원한심이야.’ 나는 그것을 단번에 보아냈는데 날 괴롭혔던 이 모든 것이 바로 그것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왜 괴로울까?’ 바로 그 일과 그 사람에 대해 깊은 원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항상 그는 날 좋다고 말하지 않을까? 왜 늘 날 신뢰하지 않을까? 왜 나는 대가를 치렀는데도 보답받지 못할까? 왜, 왜, 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가 타인보다 더 많이 대가를 치렀는데도 타인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모습이었다. 울분에 차서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며 게다가 그 일과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평론을 하려 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말하려 했고, 만약 기회가 된다면 보복해 그를 좀 곤란하게 만들 생각까지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정말 자신에게 놀랐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일반인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나는 수련인이면서도 이런 나쁜 생각을 남겨두고 빨리 제거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 나에게 또 어떤 나쁜 생각이 있는지 찾았다. 자신이 또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 중에서 극단을 걷고 있음을 발견했다. 큰일을 해 공을 세우길 좋아하고,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며, 악의로 다른 사람을 추측하기를 좋아하고, 쟁투심, 질투심, 원망심, 불공평에 대한 분개, 명예와 이익 추구, 과시심, 자아 실증, 정, 색욕심 등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찾아낸 모든 마음을 종이에 써서 총 29가지를 정리했다. ‘이렇게 안 좋은 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내가 편할 수 있었을까?’ 펜을 내려놓고 나는 한 시간 동안 발정념을 했다.

2. 자신 닦기

다음 날 출근해서 나는 내 상태가 전날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런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이 사라졌다. 그 일과 사람을 다시 돌아보니 평범하고 담담해졌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와도 그것을 살펴볼 수 있었고 억제할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련이 곧 다시 찾아왔다.

회사의 인터넷 보안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당시 책임자는 나였기에 다들 날 찾았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문외한인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늘 자신이 아주 괜찮다고 생각했고,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으며 또 자신을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늘 자아를 실증하려 했으며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에 일격을 당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이때 나는 또 자신이 단지 피상적인 것만 좀 알고 있을 뿐이라는 핑계를 대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싶었다.

평소 상사는 내가 일어날 모든 문제에 대해 잘 대비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한 후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상사가 내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하는 일이 많으면 틀릴 수도 있다고 여겼을 뿐, 이 일도 내 제고를 위한 것임은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 결론은 큰돈을 들여 사람을 불러 해결하거나, 부품업체에 해결책이 있는지 문의할 방법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같은 문제에서 모두 큰돈을 들여 사람을 불러 해결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한 후 부품업체가 해결해줄 수 있는지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 틀림없이 내가 수련하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점심에 15분을 짜내 발정념을 하고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았다. 시스템에 허점이 있어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은 어디에 누락이 있는가? 시스템이 제때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것도 관건적인 문제인데, 자신도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않는가? 늘 지지부진해선 안 된다.

나는 발정념 횟수와 시간을 늘려 내가 며칠 전에 찾은 집착심과 자신의 공간장에 대해 발정념을 했고 저녁에는 다시 온라인에서 각지 설법을 공부했다. 낮에 부딪힌 일을 모두 자신과 대조해 문제가 있으면 그 즉시 정념으로 고쳤다.

조용할 때면 이 일에서 내가 또 무슨 집착이 있는지 찾았다. 협조하고 싶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싶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성취를 바라지 않고, 승부욕이 강하며, 자신을 과시하고, 인정과 찬양이란 허영을 추구했으며, 자신만 잘 되고 싶고, 남이 나보다 앞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남이 능력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없는 등등 마음을 한 무더기 찾아냈다. 나는 계속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깨끗하게 제거했다.

그 사이 부품업체도 원격 접속을 시도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낮에도 나는 몇 번이나 메일을 보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문의했지만 회답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들이 인증키를 실행해보라는 메일이 왔다. 이것을 보고 내 머릿속은 매우 평온했다. 나는 이것으로 틀림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다음 날 회사에 가 보니 과연 성공했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또 깨달았다. 일이 발생하면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찾고 능동적으로 수련해야 하는데, 늘 사부님께서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3. 맺음말

지난 몇 주간 겪은 이런 일들로 나는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수련하는 사람이 부딪히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다 좋은 일이며, 부딪히는 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만약 나와 무관하다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협조하는 수련생은 또 전화를 걸어 나에게 그들과 교류하라고 했다. 나도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런 나쁜 마음을 폭로해 앞으로 수련하는 길을 잘 걷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안다.

어느 날 모두 함께 정공을 했다. 한 시간이 곧 지나갔고 다리도 아프지 않아서 나는 계속 앉아 있기로 했다. 나는 항상 질투심 제거가 어렵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를 위해 기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가부좌 중에서 나는 깨달았다. ‘어떤 항목이나 팀에 유능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수련생 업무가 상사의 인정을 받으면 나는 정말 그들을 위해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은 항목이나 팀에 다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만 팀이 제고할 수 있고, 항목을 더욱 잘할 수 있으며,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데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점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열리고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교류문장을 쓰는 과정에서도 아직 많은 나쁜 마음이 반영됐다. 특히 자아를 실증하는 과시심은 내가 앞으로도 집중해 수련해버려야 할 부분이다.

이상은 저의 교류입니다. 만약 대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경지(境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2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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