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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교류] 밍후이 문장을 번역하며 착실히 수련하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 동안 밍후이 문장을 번역하며 체험한 것들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저는 직장인입니다. 밍후이에서 번역을 시작한 후 처음 몇 년간은 다른 항목의 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항목 일을 하고 나면 퇴근 후에 모든 정력을 다 투입해도 번역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번역과 다른 항목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풀타임과 파트타임에 관해 인사 관계자와 몇 차례나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속인 직장에서는 업무량이 적을 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협력이 어려워 관리하기 힘들어집니다.

저는 그 상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항목의 일에 참여하는 이유를 꼼꼼히 파헤쳐보았습니다. ‘번역할 것이 적어서 그런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번역하지 못한다. 번역할 것이 많은데 왜 다른 항목의 일을 하려 하는가?’ 깊이 생각해보니 역시 밍후이 문장 번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고, 급하게 공을 세워 이득을 보려는 당문화의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번역하는 일은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고 번역팀원들도 자주 교류하는 항목이 아닙니다. 또 번역한 문장이 도대체 효과가 있는지, 도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읽는지 모르기에, 저는 번역 항목이 정법에서 일으키는 역할과 의의를 확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항목의 일을 하지 않으면 중생을 구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정법의 길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착실하고 착실하게 해야 하고, 마음을 그것에 두고 해야 한다. 시간을 상관하지 말고,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하는바, 그러면 전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왕 하려면 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문 번역원이 되기로 하고 번역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번역할 일이 적을 때면 다른 항목의 일을 하기로 하고, 점차 밍후이 문장 번역에 집중했습니다. 결심을 내린 그 날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밍후이 문장 번역을 매일 견지한다는 규정을 자신에게 세웠습니다.

처음 몇 개월은 견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무의식적으로 오늘 세 가지 일을 얼마나 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밖에 나가서 법을 실증하는 다른 항목에 참여한 날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면, 밖에서 이미 진상을 알렸으니 번역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몇 년간 수련하면서, 될수록 어떤 사상에 통제되지 않고 어떤 염두에 따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 사상 염두의 출발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는 습관을 키웠습니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정법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숙제를 끝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까? 저는 대법의 한 입자로서, 모든 시간을 다그쳐 힘닿는 데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중생을 구하는 것이 바로 제 생명의 의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낮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션윈(神韻) 홍보 기간에 타지에 가서 인터넷을 할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밍후이 문장 번역을 견지했습니다. 번역은 제 책임이자 일상이며,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물론 잘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많은 양을 번역하는 것으로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감추려 하지는 않았고, 진상을 알리러 나가지 않는 핑계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관광지에 가서 연공하거나 진상을 알리는데,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션윈 홍보 기간에는 어김없이 나가서 포스터를 붙이고 문고리에 걸어놓습니다.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션윈을 널리 알리는 것은 번역할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중국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번역팀이 중문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 왜 기계적으로 번역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서양 편집자들의 건의를 진정으로 받아들여 구절마다 신경 써서 번역하고 수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서양인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밍후이 문장 번역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으며, 번역 일에 전념했을 때 의외로 착실하게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다

우리 업계에서 그리고 저의 직위에서 한두 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번역일을 좀 더 하고 싶어서 정시에 퇴근했더니 처음에는 사장과 동료들이 눈치를 주면서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통해 속인 중의 일은 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인들이 말하는 철 밥그릇이나 금 밥그릇이나 낡은 밥그릇이나 모두 우리가 그 업계를 구도하고 그 속에서 심성을 연마하며, 그곳의 중생을 구도하는 방식에 불과하므로 절대 이 밥그릇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도 일부 수련생들의 입을 통해 제게 점화해주셨습니다. 늘 제게 “당신은 근무시간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돼요. 당신은 퇴근 후에 더 의미 있는 일이 없나요? 당신은 퇴근 후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 이면에 인정받고, 존중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 즉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았습니다. 도도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으며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또는 사장이 화낼까 두려워서 초과근무를 하는 때는 없었습니다. 제가 마음가짐을 바로잡자 사장과 동료들이 더는 제가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발정념을 강화했습니다. 발정념을 많이 하면서, 속인의 일을 발정념보다 중요하게 보던 것을 점차 고쳤습니다. 발정념 시각이 다가올 때면 하던 일을 미리 내려놓고 조용히 발정념을 잘했습니다. 마음가짐이 안정되기만 하면 속인 중의 모든 것은 대법제자에게 길을 양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정념을 많이 했습니다. 발정념을 잘하니 일할 때 시간과 정력 소모도 크게 줄었고, 업무 능률도 크게 향상했기에 초과 근무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휴대전화의 통제에서 벗어나다

현재 인류는, 기본적으로 휴대전화에 통제되고 있어, 무엇을 해도 휴대전화와 떨어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휴대전화가 울리면 바로 가는데, 인류는 곧 휴대전화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많은 수련생도 마찬가지로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하고 교류할 때, 여러 수련생이 교류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번역할 때, 특히 중문 문장을 고쳐서 영문으로 번역해야 할 때, 방해받지 않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번역하다가 멈추고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고 단체 메시지를 보는 것은 번역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어느 날 밤 심득(心得) 체험 문장을 번역하다가, 중요하지 않은 전화를 받고 의미 없는 일을 이야기하였더니 그날 밤 내내 한 단락밖에 번역하지 못했고 실수가 수두룩했습니다. 매우 상심한 저는 번역의 효율성이 왜 그렇게 낮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휴대전화는 제자들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인데, 어찌 속인처럼 휴대전화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는가?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로서 어찌 통신수단에 휘둘리고 통제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주고받은 내용을 보니 많은 것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속인과의 전화는 명리심(名利心)과 참견하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는 마음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상은 별로 알리지 않고, 오히려 수구(修口)하지 못한 채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수련생과의 전화도 꼭 필요한 것은 몇 분이면 해결하는데도 일상을 말하고 쓸데없는 것을 말하면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때로는 교류하는 것 같지만, 말하다 보면 남의 말을 하게 되는바, 이런 것은 수련에 전혀 도움 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의 단체 문자도 바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외부와 연락하는 시간과 방법을 바로 조정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출근해서 휴식하는 시간에 연락하거나 처리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수구(修口) 그 단락의 법을 많이 외우고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발정념으로 제거했습니다.

매일 밤 휴대전화를 보지 않으니 처음에는 교란이 아주 심했습니다. 휴대전화가 계속 울려서 제 마음을 휘저어놓았습니다. 무언가 제 마음을 건드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휴대전화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제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법공부하고 제고한 후에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내려놓았고 수구(修口)할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 관해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적인 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련생과의 정상적인 연락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수련생들 간의 잡담이 없어졌고, 정법 수련과 아무 상관 없는 일에 관해 아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자연히 마음도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발정념할 때도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었는데, 이 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단순하게 조용한 시간에 번역을 많이 하고 잘하려고 했으나, 이 항목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하자 수련에서 크게 제고되었습니다.

중문 원문을 고쳐서 영문으로 번역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과정

번역팀은 한동안 번역하는 사람 및 서양인 편집자와 중문 원문을 고쳐서 영문으로 번역해야 하는지를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인식 과정을 말하고자 합니다.

젊었을 때 대학에서 영어 번역 과목을 배울 때 ‘원문에 충실해야 하고(信), 표현력(전달력)이 있어야 하며(達), 우아해야 한다(雅).’는 번역 원칙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시작한 후 처음 몇 년간은 이런 생각으로 번역해왔습니다. 비록 원문의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억지로 원문 그대로 번역했으며, ‘이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글쓴이는 이렇게 썼다. 독자들이 즐겨 보든 보지 않든 어차피 사람마다 자기 취향이 있으니, 모든 사람이 이 문장을 즐겨 볼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양 수련생들이 단락과 문구를 대대적으로 수정했을 때 글쓴이의 말과 원래의 뜻을 고쳤다고 생각하고는 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중국 수련생이 쓴 문장을 번역했는데,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억지로라도 번역해낼 수 없는 정도여서 아예 구글 번역기로 번역해서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편집자는 그 부분을 콕 집어서는 문장 한편을 새롭게 썼다며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글쓴이가 그렇게 썼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못마땅한 생각에, 해외에서 자란 아이를 불러 그 문장을 보여주면서 한 글자씩 원문대로 통역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계속 “이상하다.”라고 했습니다. 구글 번역기는 수련생이 말하려는 것과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이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번역했습니다. 제가 서양 수련생이 수정한 글을 읽어주자 아이는 “아, 그렇구나. 정말 대단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일로, 속인이 번역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번역하는 원고는 문학 명작이나 고전이 아니기에 문장을 다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외에 번역하는 목적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언어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목적은 박해 진상을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법으로 수련생들과 이성적으로 교류하는 것입니다. 독자(讀者)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우리는 크게는 어떻게 하면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작게는 어떻게 하면 구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번역하는 목적이 ‘타인을 위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을 때, 글을 쓴 수련생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고, 글쓴이가 말하려는 뜻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후, ‘원문에 따라 번역’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한 문장을 번역했는데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양 구독자가 읽고서 글쓴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고생스럽게 번역해서 어떤 작용을 일으킨 것입니까? 번역이란 단지 중문을 영문으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구글 자동 번역기를 이용하면 됩니다. 번역할 때는 두 언어의 문화적 격차를 좁히기 위해, 때로는 어구를 추가하거나 줄여서 원문이 표현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날부터 저는 원문의 뜻을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곳을 매끄럽게 고쳐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복된 문장을 합치고, 일부 단락을 새로 조합하거나 불필요한 세부 사항을 삭제하여 내용을 더욱 명확하고 또렷하게 만듦으로써, 수련생의 경험이 담긴 문장을 더 많은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 역시 밍후이왕에 투고한 수련생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당문화도 많이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서양 수련생이 수정한 문장의 경우, 원문의 공허한 구호와 결의를 삭제하거나, ‘나는 그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느꼈다.’처럼 애매한 추측성 문구를 삭제하고 사실을 가지고 말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 내 박해에 관한 문장을 번역하면서 겸손을 배우다

최근 1년 동안, 중국 내 박해에 관한 기사를 번역하면서, 겸손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박해에 관한 기사를 번역하기 전에는 이런 글을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 이런 글을 번역할 때는 종종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바, 기사에는 항상 길고 긴 일련의 지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명에 관해 검색해보고서야 성시(城市), 부속 성시(附屬城市), 현(縣), 진(鎮), 향(鄉), 큰 촌(村), 작은 촌, 더 작은 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 이름에는 다니(大妮), 얼샤오(二小) 등이 자주 나왔습니다. 저는 기사를 쓴 수련생을 원망하며 ‘어느 시, 어느 현, 어느 진, 어느 향, 어느 촌이라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사람 이름을 정확하게 모르면 성(姓)을 쓰면 안 되나? 다니(大妮), 얼샤오(二小), 싼샤오(三小)가 뭐야? 왜 이렇게 멍청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닫혀서 수련하는 제자입니다. 어느 날 또 속으로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오른쪽 위에, 단발머리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소박한 시골 중년 여 수련생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어수룩한 모습으로 저를 보고 웃으며 “당신 말이 맞아요. 저는 원래 글자를 많이 몰라서 무식해요.”라고 했습니다. 그 장면은 매우 빨리 사라졌습니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문득, 중국 수련생들이 얼마나 힘든 경로를 거쳐서 그 박해 관련 기사들을 입수하여 명혜망에 전해질 수 있게 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밍후이 문장 번역, 특히 중문 번역에 참여하는 수련생들이 왜 조용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중국 내 수많은 수련생의 생명안전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잠재의식 속에서, 제가 대학교육을 받았기에 다른 사람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당이 주입한, 자신이 위대하고 광명정대하다고 생각하는 변이된 사유가 아닙니까? 저는 그런 사유 방식을 여전히 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는 그것이 우리 수련생을 나쁘게 평가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의 제자가 아닙니까? 제거되고 없어져야 할 변이된 관념이 무슨 자격으로 사부님의 제자를 평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점을 깨달은 후부터는 주의 깊게 분별하고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좋지 못한 생각을 떨쳐버렸고, 입으로나 마음으로나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으며, 겸손한 생명이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정받은 문장에서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깨닫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1]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제게 경솔하게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으나,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제가 번역할 때 반영되었습니다.

저는 매번 서양인 수련생이 수정한 글을 꼼꼼히 읽었으나, 여전히 어떤 잘못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부주의’로 인한 실수, 예를 들어 형식을 잊어버렸거나 철자를 잘못 쓴 경우, 좀처럼 마음에 두지 않고 ‘아, 이건 내가 아는데 너무 소홀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용어와 구절 수정에는 특별히 신경을 썼고, 매번 왜 그렇게 고쳤는지 반복해서 되새겨보았습니다.

어느 날 법을 외우고 있을 때, 저의 그런 잘못된 태도는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 표현이란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실 기술의 향상만 중시하고 심성의 변화를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을 중시하고 기술에 의존하며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는 태도를 중시하지 않고 심성을 중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공산사령(共產邪靈)의 무신론이 체현된 것이 아닙니까? 수련인으로서 먼저 심성을 제고해야 하고 경지가 승화해야만 대법이 지혜를 주어 번역 기술도 향상합니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2] 그러므로 심성 제고와 기술 향상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반복적인 일은 정진을 유지하는 동력이다

저는 매일 가능한 한 출근 전후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공원에 가서 연공하고 법을 전하기에 적어도 13시간을 밖에서 보내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매일 아침은 과자를 먹고 점심은 거의 먹지 않으며, 저녁에 집에 와서도 밥을 거의 하지 않고 주말에 먹다 남은 것을 먹습니다. 매년 대규모 행사 보도, 파룬따파의 날 원고 모집, 각지 법회, 명절 축사 등으로 한가할 때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보도 임무를 맡았을 때는 부담이 컸습니다.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다 보면 때로는 아주 힘들고 피곤하기에, 매일 번역하니 보도 임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팀의 다른 수련생들이 나보다 시간이 많아 더 유연하게 번역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번역 속도와 번역에 들이는 노력의 정도를 스스로 결정하여 번역문을 제출함으로써 마감에 대한 압박감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한다는 생각 배후에는 얼마나 많은 이기적인 마음이 숨어있겠습니까? 저는 밍후이 문장 번역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언제 번역할 수 있는지, 번역 속도는 과연 저의 시간과 수련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무조건 항목의 요구에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번역 일을 하는 과정 중, 병업가상에서 벗어나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몇 년 동안 수련생들이 병업(病業) 가상(假相)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모든 항목에 사람이 부족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련생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면 손실이 아주 큽니다. 몇 년 전의 체험으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 오른쪽 종아리가 모기에 물려 혹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혹은 3일 만에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에서 양쪽 무릎부터 발끝까지 심한 부종으로 빠르게 발전했고, 다리는 찐빵처럼 부은 나머지 피부가 투명하게 되었습니다. 사흘째 날 아침, 잠에서 깼더니 코끼리 다리가 되어,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저는 자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병가를 내야 하나?” “너는 대법제자야. 사부님께서 네게 병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사부님을 믿을 거야, 아니면 너 자신의 느낌을 믿을 거야?”

“난 이제 어떡하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지금은 일어나서 연공할 시간이 되었어. 침대에서 내려와 연공해.”

“다리가 부어서 앉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연공해?” “사부님께서 네가 연공하지 못하게 배치하시겠어? 그렇게 하시지 않을 거야. 사부님의 배치가 아니더라도 너는 연공인이 해야 할 일을 해.”

그때만 해도 일어나 앉거나 일어서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부님 말씀만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지자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加持)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칼이 다리와 발을 베는 것처럼 통증이 심했지만, 참고 1시간 30분 동안 동공을 끝까지 연마했습니다.

연공을 마치자 바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을 찢는 것 같았던 통증이 1초 만에 사라졌습니다. 믿기지 않아 발로 차보아도 부은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법상 앞으로 달려가 사부님께 머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실질적인 고통은 사부님께서 제자 대신 감당하셨고, 다리가 여전히 부어있는 것은 제가 넘어야 할 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는 반드시 이 관을 넘어 사부님의 체면을 상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저는 그날 평소대로 출근하고 집안일도 하는 등 할 일은 다 했습니다. 또한, 발정념하고 사부님의 ‘홍음’ 중의 시사를 계속 외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해서 그런 난이 왔는지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날 저녁, 두 다리가 여전히 심하게 부어있었기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열심히 연공하고 발정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팀장이 긴급히 번역해야 할 퍼레이드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그동안 수련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일이든 자신의 사명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쉽게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늦게까지 번역을 마쳤습니다.

그날 이후 몇 달 동안 팀장이 매일 긴급히 번역해야 할 기사와 각종 문장을 배정해줘서 매일 바쁘게 보냈습니다. 출근해서는 근무시간 내에 신속하게 일을 마치고 제시간에 퇴근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일을 끝낸 후 번역을 했습니다. 발정념한 후에 번역을 지체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부좌했고, 밤에는 공원에 나가서 연공했습니다. 그동안 두 다리는 여전히 찐빵처럼 부어서 가부좌를 풀기도 어려워 결가부좌를 하기 전에 먼저 다리를 눌러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천으로 묶은 다음 다른 한쪽 다리를 올려야 했습니다. 다리를 묶어서 결가부좌를 하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으며,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결가부좌를 한 후에는 다리가 터질 듯한 극심한 고통이 왔기에 매초가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아예 침대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사부님의 법상 앞 방석 위에서 잠깐 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의 붓기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난은 바쁘게 번역하는 중에서 어느새 지나갔습니다.

문장이 길어지므로 이 과정에 관해서는 앞으로 수련생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제가 병업 가상을 넘은 체험을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1. 확실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합니다. 이 점을 해내려면 확고한 법공부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법공부는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며, 마음에 와닿게 해야 합니다. 법공부할 때 무심코 읽는 것은 아닌지 간단하게 점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법공부할 때 갑자기 중단된다면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많은 수련생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법공부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그 전에 한 가지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천둥이 쳐도 변함없이 법을 외우고 매일 30분짜리 발정념을 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을 참기 힘들어하고 병업 가상을 벗어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며, 이러한 상태가 반복되는 등 정념이 강하지 못한 제가 사부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여 병업 가상을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수련은 엄숙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난을 인정하고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곧 우주의 이 특성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며, 속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 하고 당신이 수련해 올라오려 한다면, 당신은 이 표준에 따라서 해야 한다.”[2]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반드시 해야 한다(就得).” 이 두 글자가 인상이 아주 깊었습니다. 우리는 난이 있기에 안으로 찾으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안으로 찾았기에 난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평소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난이 왔을 때 벼락치기로는 넘기기 어렵습니다.

3. 발정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길을 걷고 밥을 먹을 때나 집안일을 할 때도 발정념하거나 ‘홍음’을 외울 수 있습니다. 외울 때 한 글자 한 글자가 눈앞에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4. 연공을 많이 해서 본체(本體)를 전화(轉化)해야 합니다. 연공할 때는 ‘선선허이(身神合一)’에 도달해야 하고, 사상업력과 교란이 자신을 통제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5. 절대 속인의 관념으로 신체의 느낌을 어떤 ‘병’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상업력과 외부의 교란은 자신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신을 돌봐야 할 ‘환자’로 여기지 말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6.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점은 자신의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개인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사명을 더욱더 중요한 위치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그 몇 달 동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출근했고, 매일 아침 공원에 가서 연공하고 법을 전했으며, 또한 집안일도 빠짐없이 했고, 밍후이 문장 번역을 매일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매일 기사 번역을 한 것이 위험한 병업 가상을 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게 번역할 문장을 배정해준 수련생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말 같은 항목의 수련생들과는 인연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서로를 일깨워주고 이끌어주며,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을 함께 나아가자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부님께서 주신 이 기회와 주변 수련생들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 그 몇 달 동안 너무 힘들고 지칠 때, 너무 엎드리고 싶고 눕고 싶을 때, 매일 긴급 기사라는 작은 빨간 방울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다급하게 “괜찮아요. 엎드리지 말고 눕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빨리해요. 사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정법노정을 따라가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 작은 방울들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일깨워주고 정념을 강화해주었기에, 저는 위험은 있었으나 병업 가상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밍후이 문장 번역을 하는 이 몇 년 동안, 겸손을 배웠고 팀장이 요구하는 것을 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원문의 매 글자를 겸손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고 서양 교정원들의 수정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밍후이 문장 번역에 참여함으로써 무엇이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2]라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생 여러분, 관건이 되는 이 역사적 시각에 우리 모두 말로만 수련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고, 우리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진상을 더 많이 알리며 정진하는 대법제자가 되도록 서로 일깨워줍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2.동작도해’

(2022년 밍후이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10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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