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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교류] 법 속에서 은연중에 감화되어 자신의 용량을 키우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을 시작하고 약 1년 후부터 밍후이 문장을 번역하는 데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번역 모델은 거의 구절에 따라서 영문으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교정팀에 들어갔지만 그다지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문장을 쓰는 데 자신이 없어서 될수록 피했습니다. 문장 교정을 배우는 과정에서 저는 좌절을 느꼈고,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집중이 안 되고 그저 교정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갓 시작하여 거의 매번 몹시 어렵게 한 편을 완성하면 교정하는 수련생은 모두 번역문을 매우 큰 폭으로 수정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교정하는 수련생이 제가 새로 쓴 문장을 또다시 써야 했는데, 그런 후에는 또 시간을 들여서 장문의 글로 제게 어느 부분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수련생이 저를 가르치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았고, 저는 여러 번 다시 번역팀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직접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또 그 수련생이 이미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들여서 훈련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포기하면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아서 억지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매번 번역할 때 늘 압력이 크다고 느껴져 그 원고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일단 써서 올려보내면 또 기분이 상쾌하고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포기하려고 생각한 것은 일종의 교란이고 저를 제고하지 못하게 하고 몰두하여 문장을 잘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일을 성심껏 완성한 후 온몸이 편안한 느낌은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일종의 격려이고, 한 점 한 점 제고하여 저의 용량을 확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나중에 문장 한 편에 대해 수련생이 아주 좋은 피드백을 주면서 아주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결국 교정팀에 남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막 시작했을 때는 조금 간단한 문장을 가져다가 번역하는 것이 비교적 좋다고 느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장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저의 일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속인의 성취감과 ‘숫자가 말해준다’라는 관념이 농간을 부린 것입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또 짤막한 문장에 대해 배척하는 심리가 생겼는데, 박해문장은 내용이나 사안이 다 비슷비슷한데 단지 시간과 지점, 인명이 다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박해문장은 사실에 대해, 예를 들어 시간, 장소, 과정의 정확도에 대한 요구가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번역하려면 압력이 비교적 큰 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많은 문장은 내용 범주가 유사합니다. 교류 문장은 세 가지 일을 행하고 고생하고 심성을 제고함을 벗어나지 않으며, 행사문장은 퍼레이드 행사를 하고 전시판을 펼치고 정좌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각 유형의 문장이 내용에서 어느 정도 비슷해도 번역자의 마음 상태, 정념,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상을 자세히 알리고 10년을 하루와 같이 행하고 더 많은 사람이 깨어나게 해야 하는데 이는 인내와 자비의 표현입니다. 마치, 션윈 단원들이 조금 전 공연의 프로그램과 다음 회차 프로그램이 같다고 해서, 다음 회차 관객들에게 녹화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문장을 번역하기 전에 반드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가 이 문장을 처리할 정념이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박해문장을 번역할 때 저는 자신을 이야기 속 수련생의 위치에 놓고 그 박해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지 감수했으며 박해자가 얼마나 악독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어떠한 문자와 어구를 쓰는 것이 더욱 유력하게 이 일을 폭로할 수 있는지 생각했고 독자가 박해자의 사악함과 수련생이 당한 고통을 더욱 똑똑히 이해하게 했습니다. 행사 보도를 번역할 때, 서로 다른 행사는 수련생들이 모두 사심 없이 시간과 정력, 물자를 헌신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 세부적인 절차와 사진 모두 소중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이 같은 사물이 나오면 싫어하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집착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한동안 긴 박해문장을 번역하는 것이 압력이 매우 크다고 느껴졌고 아주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몰두해야 하는데 앞뒤가 합리적이어야 하고 연관성이 있어야 했으며, 안에 있는 내용에서 주의해야 할 세부적인 것도 아주 많았습니다. 가끔 수많은 데이터도 정리해야 합니다. 그 시기에 마침 장편 문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귀찮아하고 스트레스를 받을까? 내가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끝마쳐야 할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며, 못해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지?” 저는 이것이 바로 교란이며, 제가 재차 용량을 키워야 할 시기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장문을 받았을 때 의식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귀찮아하는 느낌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법공부를 강화했습니다. 얼마나 되는 횟수를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정적인 느낌이 점차 약해졌습니다. 한번은 협조인 수련생이 제게 장편을 번역하는 것이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충분하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했고 당시 마음이 담담했습니다. 나중에 문장 한 편이 편집부로부터 괜찮은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런 완전한 종합성 보도는 필요한 것이고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약 20페이지 분량의 문장을 받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첫 번째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와,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길지? 좀 보자.’ 저는 제 마음이 문장 길이에 따라 더는 크게 기복이 생기지 않아서 흡족했습니다. 그 문장은 삭제와 재정리를 마친 후에도 수련생들의 괜찮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몇 달 전 딱딱한 물체를 씹어서 치아가 무척 아팠는데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통증을 참고 의사를 찾지 않았습니다. 치아 뿌리가 너무 짧아서 치아가 흔들리고 잇몸이 염증이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그것이 아픔을 주는 것은 소업이고 하늘만큼 좋은 일이고 수련하니까 비로소 부딪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생각밖에 극심한 통증은 몇 주간 지속했고 저는 다른 쪽 치아로 음식을 씹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런데도 붓지 않았고 통증이 심한 때는 거의 주말이나 취침이라, 출근하고 대법 항목을 하는 것에 영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병업관을 넘었고 사부님께서 절대다수의 업력을 제거해주시기에 업무에 영향 주지 않고 대법 항목을 하는 것에 영향이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통증을 참는 것이 지겨워서, 출근 뒤 한가한 시간에 치과에 전화로 예약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수련생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오늘 마침 제가 번역할 문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주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오후에 아무 일이 없으니 마침 치과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련생의 메일을 끝까지 봤더니, 만약 가능하면 다른 번역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짬이 나면 치과에 가보려 하는데, 그럼 마땅히 문장 한 편을 번역할 짬이 있는 것이다.”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문장을 번역했고 치과의사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병업에 대한 인식이 적지 않게 제고되었습니다. 저는 수련하기 전에 설 연휴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치통이었고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또 어디에 가서 치과의사를 찾아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때 호텔에서 너무나 아파 엉엉 울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힘들게 통증을 멈추는 약을 샀는데 그 당시 약제사는 치통으로 얼굴이 그렇게 크게 부은 것은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생각밖에 통증을 멈춘다는 약을 많이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휴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치과에 가서 이를 뽑았습니다. 그러한 극도의 통증은 제게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겨서, 저는 그 후로 대법을 수련하면서도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사유가 바로 속인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치통은 자연히 나아지는 게 아니고 병도 아니라면서 주저하지 않고 치과에 가서 그것을 처리했습니다. 그 후로 치통은 지금까지 제가 넘지 못하는 관이었는데, 제가 계속 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넘어야 했습니다. 임플란트한 치아 숫자도 계속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과정 중 자신이 마주친 마난(魔難)에서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지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수련과정 중에서 이 법에 따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그는 전혀 믿지 않으며 아직도 속인 중의 것이 실익이라고 한다. 그가 고유의 관념을 품고 놓지 않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믿을 수 없게 했다.”[1]

이번의 치통을 저는 몇 달간 참았고 그것이 완전히 아프지 않을 때까지 참았으며, 제가 억지로 아픈 치아를 물지 않을 때까지 참았습니다. 저는 아픔을 두려워하는 심성관을 넘지 못하고 치과에 갔습니다. 검사할 때 의사는 치아가 중간에서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을 보더니,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으로 어쩌면 이렇게 잘 참을 수 있느냐며, 핀셋으로 두 쪽 난 치아를 집어서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통증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지 못했지만, 예전처럼 무의식적으로 속인처럼 치통 이 일을 대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또 많은 일과 많은 마음에 교란받고 있지만, 끊임없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고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 사부님께서 이런 집착을 내려놓게 해주실 것이라는 신심이 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리며, 또한 헌신하고 계시는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상의 수련교류에서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2022년 밍후이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10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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