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일본법회] 매체 항목 중에서 버리는 아름다움을 체험하다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20년 3월부터 수련해온 90년대에 태어난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수련한지는 이미 2년 반이 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신기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좀 큰일은 제가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희귀 소아암에 걸렸던 일입니다. 암이 4기로 진행돼 이미 전이된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의외로 자연적으로 치유됐습니다. 그래서 특수케이스로 국가 의학 프로젝트 연구대상으로 지정됐고 그 후 10년간 항상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사부님께서 그때부터 저를 보호해주셨고 제 몸의 업력을 정화해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신기한 일을 많이 경험했으나 너무 어렸기에 그 경험이 남다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중2 때인 어느 날, 하교할 때 갑자기 다른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14살이었고 오랫동안 그런 신기한 일을 경험하지 못했었습니다. 자아의식이 형성되는 시기라 그런지 그 일이 기억납니다. 그 느낌은 인위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머릿속에서 그런 신기한 일들을 계속 기억하려 해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종교 중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런 신성한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연이 닿지 않아 도를 구할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막연한 학교생활이나 사회환경 속에서 어른들의 지식과 가치관을 계속 주입하면 그런 신성함을 잃게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런 흐름에 따르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제 삶의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런 태도로 다양한 책을 읽었고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인생의 참뜻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2020년 3월, 제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때 처음으로 파룬궁을 접하게 됐습니다. 인터넷에서 파룬궁 책을 몇 장 읽었을 뿐인데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연공장에 전화했고 주말에 가서 연공 동작을 배웠습니다.

제3장 공법을 연마할 때 책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아랫배 부위에 파룬이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5가지 공법을 다 마쳤을 때 저는 시야가 맑아졌고 몸도 가벼워졌으며 대법 사부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처음 터졌을 때였습니다. 연공장에 간 다음 주에 일본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모두 가능한 한 집에 머물렀고 연공도 잠시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집에서 법공부를 하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저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수련에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부터 연공장에서 다시 연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대법 관련 매체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련하기 전에 따지웬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고 대학의 국제정치학 수업에서 교수님은 세계 각지의 공자학원에 관련된 따지웬 기사를 예로 들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깊은 침투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파룬궁을 몰랐고 따지웬이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폭로하는 독단적이고 대담한 매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저는 따지웬은 진상을 알리는 매체라는 걸 알고 참가하려 했습니다. 그 후 1년 반 동안에 저는 관련된 영상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지난해 12월에 일본 따지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따지웬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유튜브에 15분 분량의 뉴스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프로그램 제작은 저녁 뉴스에서 내용을 선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 날 아침에 영상 원고를 편집하고 교정했으며, 점심시간이 지나면 앵커와 함께 읽고 각본을 완성했고, 오후에는 촬영과 동시에 영상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영상 점검은 제가 담당했습니다. 동영상을 하나 제작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데 한 주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긴급 속보가 있을 때는 이런 절차대로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당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2020년 이후 유튜브는 따지웬 외부 사이트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플랫폼이 됐고 저는 간판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같은 팀 수련생들과 협력하면서 심성 시련을 겪었습니다.

팀원 중에는 저처럼 풀타임으로 일하는 수련생도 있고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참여하는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은 자신의 일반인 가족이 수련 환경에 익숙해지길 바라서 가족을 참여시켰습니다. 뉴스 제작은 빠르고 효율적인 동시에 품질도 정교해야 하는데 원격으로 근무하는 수련생들은 이러한 고도의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일을 분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수련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수련생의 간곡한 부탁이나 성의 있는 요청으로 참여한 수련생은 연락에 소홀했고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비록 여유시간에 와서 바쁘게 일하면서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일에 쫓기는 상황에서 이런 수련생들과 협력하는 것이 저는 좀 싫었습니다.

저는 매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지만 항목 자체가 수련이 아니기에 항목 중에서 자신의 가족이 수련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런 정을 개입시켜서는 안 되고 수련은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대로 깨달은 줄 알았지만 또한 그런 수련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그런 생각은 제가 남을 미워하는 데 정당한 이유를 찾는 것이란 걸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갖가지 집착에 이끌린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안일한 마음이 있었기에 개개인의 상황을 잘 처리한다는 건 번거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해야 했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수련생과 교류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항목은 마감 시간 등에 대한 요구가 높으니 ○○를 다른 프로젝트에 참가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는 나름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한 것이지만 그 수련생은 저에게 “당신은 자비심을 가져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제 안일한 마음을 지적하는 그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저와 나이가 비슷한데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수련했기에 수련생들의 가족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자비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즉석에서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목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자비심이 아닌가요? 수련생의 가족관계는 정이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꼬인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으나 매일 법을 공부하면서 점차 그런 상태에 빠진 근본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10대 때부터 형성된 ‘흐름에 따라 흘러가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제 길을 찾자’라는 독선적인 관념이 제가 수련생들과 잘 협력하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假理)를 위해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람은 줄곧 자신으로 하여금 더 사고하지 않고 오히려 일체를 아끼지 않고 대가를 치러도 동요하지 않게 하는, 이런 염두(念頭)를 자신의 사상이라고 생각하여 진리를 보아도 다 배척한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真)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1]

저에게는 10대 때 형성된 독선적인 관념이 이미 자연스러운 것이 됐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아는 사람 중에 수련생이 없었습니다. 혼자 수련하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속인사회의 큰 염색 항아리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관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정진했을 때 저는 깨닫게 됐습니다.

법을 접하게 된 과정과 수련을 시작한 후의 모든 것은 배치가 된 것이지 자신에 의해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에게는 오직 대법을 인식할 수 있는지와 인식한 기초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의 배치를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깨달은 부분적 법리에 의해 자신을 지키느냐, 아니면 진정으로 사부님의 배치를 믿느냐 하는 일념의 차이는 근본적인 문제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하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제 수련 중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제작진으로 일하는 같은 팀 수련생과 항목에 대해 간단히 교류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제작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어 남들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도 어려서부터 수련하는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수련생의 가족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바쁜 환경에서 그들이 남아서 항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 보여서 저도 그에게 이렇게 나가다간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를 다른 항목으로 옮기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하는 측면에서는 제 말이 맞지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와 지금까지의 수련 경험을 교류했습니다. 그는 어린 대법제자 시절의 수련과 성장한 후의 수련과의 차이, 그리고 정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의 고통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저 자신의 수련체험과 전혀 다른 모습에 감동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협소하고 결여된 자비심에 마음이 아팠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류 후 그 수련생은 바로 사무실을 나섰고 몇 분 후에 저도 나왔습니다. 그때 그동안 짊어졌던 긴장감이 풀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2]

저는 눈물을 참으면서 집착심을 내려놓을 때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머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주 고요했습니다. 그 뒤로도 똑같이 조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았고 차분하게 대처하기만 하면 지혜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청성(淸醒)’

(2022년 일본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10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0/11/45060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0/11/4506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