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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봉신방(封神榜, 봉신연의)’에서 통천교주(通天教主)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통이 많았고, 공력은 당연히 비범하고 심성도 마땅히 그에 상응해 아주 높았을 것입니다. 그의 제자가 하나둘씩 와서 강자아(姜子牙) 쪽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불평했을 때, 통천교주도 처음에는 심성을 지키고 원시천존 쪽과의 약속을 엄수하면서 하늘의 뜻에 따라 행했으며, 제자에게 참여하지 말고 방해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 특히 신공표(申公豹)가 부추기자 통천교주는 결국 심성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원시천존 쪽의 거듭된 충고도 듣지 않고 결국 질투와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등 집착심에 이끌려 자기 사부의 말씀도 듣지 않는 데까지 발전해 최후에는 그의 사부가 거두어들였습니다.

얼마나 전형적인 교훈입니까.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직책이 변동된 후 책임자는 선의로 제게 변동이 됐다고 알려줬고, 저도 마침 직책을 옮기면 더욱 홀가분해지므로 당시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좋은 몇몇 동료가 위로하면서 동정을 표하자 저는 통천교주처럼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갈수록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법에 있지 않은 말을 수없이 하고 법에 있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통천교주가 제자들이 부추기자 견디지 못하고 끝내 심성을 지키지 못한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수련 과정에서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매사 늘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박해받아 사악의 소굴에 있을 때, 그 사악한 환경에서는 밖에서 잘하지 못했던 이 같은 일들이 절 괴롭혔습니다. 이런 시달림은 저에게 반성하라는 게 아니라 박해하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대단히 미묘하고 변증법적입니다. 그것은 대법제자의 신심을 꺾기 위해 온 것이고 그런 회한을 증폭시켜 대법제자가 열등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임을 똑똑히 구별해야 합니다! 대법을 의심하는 것을 겨냥해 온 것인데, 확실히 아주 미묘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 명석한 편이어서 이런 회한을 끊어냈습니다. 끊어내는 것은 덮어 감추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게 아니며 교훈을 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을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아직 법에 있고 모두 보완할 수 있으며 만회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발생했고 단지 고비를 잘 넘지 못했을 뿐입니다. 늘 그곳에 엎드려 한탄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나쁜 요소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잘못 역시 이성적으로 분석해 대하되, 마음은 오히려 아주 명석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돌아온 후 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 직장을 저는 아주 좋아했고 수입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업무 환경이 제게 아주 유리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능력도 잘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홍보 보고서는 전부 제가 작성했는데 신속하면서 완성도 높게 처리했습니다. 그때는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나 비용 문제가 없었고 한때 사람들 가운데서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 가운데서 아주 만족했습니다. 지금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해서 20년 넘게 일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가끔 국유기업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지냈던 안일했던 나날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각종 비교와 온갖 후회, 그리고 각종 잡다한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이 생각대로 발전하다가는 마음이 끝없이 불편해져 패배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꿈틀거리는 것은 수련인의 마음을 어지럽히려는 게 아닌가요? 다행히 견실한 수련기초와 대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있어서 매번 이런 생각이 괴롭히려 할 때마다 법에 대한 이해로 대항해 소멸했습니다. 이런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생각은 반드시 법에서 용해될 것이며, 대법제자에게 쓸모없는 각종 심적 괴롭힘에 대해서도 아주 이성적으로 깨달았는데, 그것이 시간을 끌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끌어들이고 의기소침해지며 잘 지내지 못하게 하려고 온 것입니다. 저는 원래 예전보다 더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이런 것은 저를 제고하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며 이런 천박한 것은 속인의 눈만 가릴 수 있습니다. 대법제자가 어찌 그것의 제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이미 제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은 제자에게 가장 유리한, 사람 가운데서 수련하는 길입니다.

매번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은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하다가 저에게 패배했습니다. 저는 속인은 무엇을 얻었고 대법제자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수많은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한다는 이유로 귀중한 육신을 잃었습니다. 칭화대학과 베이징대학 수련생 중 어떤 이는 귀중한 생명을 바쳤는데 그들이 사람의 부귀와 복을 잃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님의 무수한 점화가 떠올랐고, 지금 역시 먹고 마시는 게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 해 동안 다시 출근하지 않아도 먹고 마시는 게 부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예전처럼 물가에 상관없이 돈을 쓰고 물건을 사며, 가족에게 자주 재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뿐입니다. 이만큼 잃는다고 견딜 수 없다면 여전히 수련인에 부합할까요? 이 여러 해 동안의 수련 성과가 이런 것도 해결할 수 없단 말인가요? 잃은 원인에 관해서는 표면적인 원인인지, 수련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여기서 먼저 분석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모두 수많은 복잡한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대법의 법력은 끝없으며 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수련인이고 정법시기 수련인이면 몸에는 공기둥이 있으며, 심지어 사악에 의해 불법 수감된 후 온갖 기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런 내려올 기회가 없는 생명일 것이며 그들은 이 시각 대법제자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불쌍하고 몹시 고달프게 사는 것은 수련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일 텐데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하는 걸까요? 대법제자의 정상적인 상태는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자비로운 마음이 우러나와 모든 것을 웃으면서 대하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2년 10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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