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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법회] 진정한 수련으로 돌아오다

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기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스물네 살 때인 9년 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 1년 후, 남자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3년의 세월을 들여 다시 분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저는 “내가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수련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수련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저를 인식시켰고,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수련의 길로 돌아오게 했는지 간략하게 공유하려 합니다.

1. 명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매체 참여를 결정하기에 앞서 2021년부터는 제가 참여하는 대법 항목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의 업무 흐름은 이전에 여러 가지 다른 업무를 감당하기 힘든 것에서 매주 기본적으로 할 일이 없는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왜 여러 가지 일에 대처할 능력이 있을 때 오히려 단일 업무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 답답했습니다. 죄책감이 저절로 생겨나면서 자신에게 나아갈 방향과 항목에 있어야 하는 의미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제3강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는 “그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고명(高明)하며 그가 대단하다고 여긴다. 그는, 그에게 이 공을 준 것이 그로 하여금 기공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게 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에게 수련하라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항목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대법제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것, 예를 들어 항목에서의 역할과 물질, 자금 등은 모두 제 수련을 위한 것이지, 제가 성공하고 유명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으나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항목을 떠나 매체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지원 과정에서, 더는 법률부서가 없다면서 저에게 두 개의 다른 직위를 제공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비록 모르는 일을 해야 하지만, 아주 쉽게 할 수 있어.” 저는 왜 더 도전적인 자리에 배치되지 않았는지, 왜 저의 경력과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수련자로서 우리의 길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안배한 것이 아니라 업력과 관련됨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전공한 전문직에 종사하겠다는 생각을 접는 과정에서 저는 일과 지위를 추구하는 집착을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기에 명리를 추구하는 이 관념은 이미 고질이 되어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비록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변호사의 꿈을 접고 여러 가지 다른 항목에 종사했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지위를 추구하려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 마음으로 대법의 일을 하지 말라. 대법제자의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당신들이 자신이 어떻게 명백하다고 느끼든지를 막론하고, 사실 모두 당초 구하는 마음이 있어 당신들의 심지(心智)를 미혹시켰다. 비록 오늘까지 걸어왔지만, 오히려 줄곧 뭇 신들의 비웃음 대상이다. 대법에 가까이 다가왔지만 오히려 들어오지 못함은 슬픈 것이다.”[2]

왜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저는 항상 공능과 질병 치료 등을 추구하기 위해 대법에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법륜’ 중 “구하고자 하는 문제”[1] 이 구절은 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관념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모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라고 착각했기에 수련 과정에서 자기를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줄곧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구하면서, 대법 항목을 위해 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 이것은 사람의 관념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대법 항목에서 일하는 것은 결코 사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데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자신의 이기적이고 대법에서 얻으려고 시도한 마음 때문에 슬픔을 느꼈습니다.

2. 오만과 쟁투심을 버리다

매체에 들어온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양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저는 그 직위를 맡은 후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당신은 동양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습니다. 제가 주어진 임무에서 여러 가지 실수로 인해 직무에서 제거된 후, 저에게 동양인도 아니고 동양 문화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제가 상처받고 좌절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는 “어떤 문화인가요? 우리는 모두 같은 법을 수련하고 있는데, 설마 동양식과 서양식의 안으로 찾기가 있단 말인가요? 우리는 수련에서 같은 이치를 따라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처음 단체 회의에 참석했을 때, 모두 서로 중국어로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 후 저에게 더는 단체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유일한 비동양계 사람인 저는 모든 사람이 저를 위해 영어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부정적인 사고를 일으켜 장벽을 만들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전에 저를 일깨워줬던 그 사람이 갑자기 다르게 대하며 남들과 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을 포함하여, 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음을 몇 번이고 알아차렸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마음이 아팠고, 그녀가 이렇게 할 줄 생각지도 못했고,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 때문에, 저는 결국 유일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 공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편견이 있을 때, 저의 첫 반응은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저의 쟁투심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주 동안 지속되어 참을 수 없게 되자,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비행기 표를 사서 빨리 집으로 가려 했습니다. 당시 감정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저의 유일한 정념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또 다른, 깊이 숨어 있는 집착과 자만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길을 가야 하며 저에 대한 다른 사람의 관점을 너무 의식해서는 안 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할 수 있고, 나는 일상생활에서 사부님의 법에 따라 요구하기만 하면 돼, 내가 법을 어기지 않는 한 타인의 생각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내 길을 똑바로 가는 것이므로 단지 내 일에 집중할 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저는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다”[1]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그러나 저는 똑같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행할 수 없었고 치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체면을 살려야 한다는, 그것은 속인의 말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체면을 위해서 산다면, 사는 것이 힘들지 않겠는가?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가치가 있겠는가? 한신은 필경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그보다도 훨씬 나아야 한다.”[1]

제가 더는 자만심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때, 상황은 완화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태도도 예전으로 돌아갔음을 깨달았습니다.

3. 진정한 선(善)을 깨닫다

‘진선인(真·善·忍)’의 특성 중에서 저는 항상 진(真)을 잘 실증해 왔습니다. 속인일 때도 매우 성실해서 말이 직설적이고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발정념하고 있을 때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심지어 풀도 검고, 익숙하지 않은 흰옷을 입고 있는 저를 보았는데 강한 에너지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놀라서 깨어났습니다.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한 후, 우리는 꿈속에서의 복장이 무당과 도교 도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소매는 열려 있었고, 보통 산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입었던 것입니다. 한 수련생은 “당신이 진의 이치로 다른 사람을 깨우치게 한 것이 틀림 없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을 실증하려는 강한 마음이 있어 저는 주변 사람의 거짓말이나 부정직함, 꼼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답장하거나 직접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거나 아니면 다시는 그들과 연락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선이란 무엇인가?” 제가 하고 싶은 유일한 것은 그들에게서 본 부족함을 사석에서 직접 알려주려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저는 그들을 위해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저로서는 이것은 단지 사실을 말할 뿐, 그러나 이것은 좋은 사람의 인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욱 경계하게 하고, 간격이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인류사회는 올바른 이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사람의 이치가 되었다. 사람이 신(神)이 되고자 한다면 사람의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慈悲(츠뻬이)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3] “사실 慈悲(츠뻬이)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慈悲(츠뻬이)할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3]

수련자로서 우리는 모두 착하고 우호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리의 본성이 드러나고, 시련 속에서 우리의 행동이 우리가 정말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합니다. 제가 진에 대한 고집으로 가장 필요할 때 자비를 베풀지 못한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4. 발정념의 중요성

병업을 겪으면서 몸을 정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소극적으로 견뎌야 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밤 기숙사에 돌아왔는데, 온몸에 열이 나고 기침도 조금 나며 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팠습니다. 룸메이트는 저에게 발정념을 보내기 시작했고, 다른 룸메이트에게도 발정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몸을 정화하고 소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것이 소업인지 방해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모두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좀 나아졌는데 룸메이트의 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 등 통증이 증가하여 제2장 공법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때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이것이 바로 소업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침상에 오르자 통증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잠이 들고 아픔을 잊을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몸은 여전히 뜨겁지만, 갑자기 매우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통증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침대에서 내려와 히터 앞에 앉았는데도 떨렸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았던 룸메이트가 제 목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저는 업력이 없어지면 괜찮을 거니 걱정하지 말고 침대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야, 발정념을 해 줄게!”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굳은 의지를 보이자 저도 그녀와 함께 사부님의 안배만 받아들이겠다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두번째 발정념이 끝날 무렵, 떨림은 멎었고 통증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발정념이 끝났을 때, 마음이 평온해졌고 조금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룸메이트는 저에게 “내 생각에, 두번째 발정념을 마친 후, 당신의 정념이 강해졌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통증이 어떻게 사라졌고, 그리고 저의 놀람을 알려주었는데 저의 인식도 달라졌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가 어떤 마난(魔難)을 수동적으로 감당하고 받아들인 것을 알게 됐는데, 그것은 잘못된 길을 실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나는 마난을 교란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있다는, 이런 인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주 후, 소셜 미디어의 한 친구는 오미크론 변종에 감염된 이후의 경험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녀의 증상은 저와 똑같았습니다.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나?” 하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등 통증이 발정념 후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떠올리며 저의 첫 반응이 속인의 관념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자로서 우리가 수련 중에 누락이 있으면 방해를 받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병업의 표현 형식입니다. 그것을 바이러스나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특히 심각한 경우 교란을 배제하기 위해 마땅히 발정념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발정념의 힘을 터득한 저는 발정념할 때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너그럽고 관대한 룸메이트가 있다는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 대법에 부합되는 사람

본국으로 돌아오자 수련의 시련이 크게 바뀌어 사람이 많고 활동적인 환경으로부터 저 혼자 온종일 컴퓨터 앞에 있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남의 방해 없이 내 일을 할 수 있는 나만의 환경을 원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오니 제 일과 세 가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강한 외로움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작업 중에 많은 제작사와 배급사가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기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주 열심히 일을 잘해서 고객을 만족시켰지만, 결국 모두 헛수고로 끝났습니다. 예전에는 오직 일만이 저의 삶에 만족감을 주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견지하도록 지지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하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일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희망도 삶의 의미도 볼 수 없을 정도의 곤경에 처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한국 리얼리티 쇼를 듣고 그들이 너무 웃겨서 보기 시작했는데, 출연자와의 호흡이 저에게 약간의 생활감을 주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그들을 보며 마치 약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스스로 병을 낫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논어’를 외우면서 저는 “대법에 녹아들지 않고 오로지 대법을 따르러 왔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법을 배우지만 모두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연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법의 도리에 따라 자신을 지도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생활 방식이 되었고 이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며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련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7·20’ 기념으로 전국 법회를 포함하여 많은 홍법(洪法)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3일 동안 일상 관례를 이행하지 않고 전국에서 온 수련생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교류를 들었습니다. 행사의 장중함이 다시 잘 수련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경지를 승화시키고 층차를 높여야 하는 소망을 다시 1순위로 놓기 시작하는 내면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이 일념을 갖자 저의 마음속에 세상사에 대한 집착이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이 저의 향상을 가로막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걸 깨닫기 전까지 제 마음은 내심으로부터 정진하기보다는 여전히 속인의 상태였습니다.

수련을 통해 본래의 순수함에 도달해야 함을 깨닫는 데 7년이 걸렸고, 어떻게 진짜 수련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데 9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돌아가서 일할 때 또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단지 저의 이해일 뿐이니, 바르지 않은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거듭 저에게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청리(淸理)’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2022 유럽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9/18/4497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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