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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제일 많이 달라졌어!”​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63세로, 2012년 9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다.

사실 나는 1999년 ‘7·20’ 전에 대법(파룬따파) 책을 읽었다. 책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부족한 데다 작은 사업을 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대법을 스쳐 지나쳤고, 책은 병약한 여동생에게 주었다. 여동생은 보물을 얻은 듯했다. 나는 비록 대법에 입문해 수련하지 못했지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게 십여 년을 보냈다. 2012년 8월 18일, 나와 함께 살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늘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땅바닥에 뻣뻣하게 누워 있다가 순식간에 화장되는 모습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모든 일이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 정말 좋으셨던 어머니라는 존재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다니? 사람이 된다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은가? 수련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사람이 된다는 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무서워. 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여동생은 “그럼 언니도 대법을 수련해 봐”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대법을 수련하며 반본귀진(返本歸真)의 큰길로 들어섰다. 나는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나 길다고 생각해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하기로 결심했고, 시간만 나면 다섯 가지 공법을 두 차례 연마했다. 특히 제5장 공법은 반가부좌에서 결가부좌로, 겨우 몇 분 결가부좌 하던 데서 30분으로, 다시 1시간 10분으로 늘렸다. 처음 다리를 올릴 때는 다리를 묶었는데, 아무리 아파도 느슨하게 풀지 않았고, 땀과 눈물이 함께 흘러내려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1] 내가 업의 빚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고생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동안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내 앞에 나타나셨고, 여러 차례 관정(灌頂)을 해주셨다. 한 차례씩 열류가 전신을 관통했고, 커다란 연꽃 보좌도 보였는데 너무나 예뻤다. 나는 책에 나온 신기한 일들을 거의 모두 체험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사부님의 격려였다.

어린 손녀

손녀는 아기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했다. 폐가 짓물러 늘 수액을 주입 받았고, 눈 주위가 검어 사람들이 모두 ‘판다 눈’이라고 불렀다. 손녀는 5살 때 내가 법공부 하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할머니, 저도 연공할래요”라고 했다. 내가 “힘들 텐데 참을 수 있어?”라고 묻자, 손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날 밤, 나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 우리 집 문이 열리고, 키 큰 남자가 한 어린 소녀를 데리고 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손에 잡고 있던 그 작은 손을 내 손에 쥐여주고 몸을 돌려 떠났다.

꿈에서 깬 나는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나에게 손녀를 잘 돌보라고 하신 것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어린 손녀는 확실히 고통을 잘 참았다. 한번은 포륜(抱輪)을 하다가 잠이 들어 땅에 쓰러졌는데, 울지도 않고 일어나 포륜을 계속했다. 집에서 산 과일은 늘 먼저 먹지 않고 법상 앞의 상에 얹어 사부님께 드렸다. 물론 심성 고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해, 할아버지가 새해를 맞아 집에 와서 5백 위안을 꺼낸 다음, 손녀에게 돈을 줄 테니 절을 하라고 했다. 손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한테 절 안 해요. 사부님한테만 절해요!”

어린 손녀는 정말 정진했고, 반년도 안 돼 모든 병이 나았다. 할아버지는 대법이 신기하다며 탄복했다! 사실은 할아버지도 대법을 인정하고 있었고, 늘 대법 음악을 들었다.

사람 구하는 길에 고생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노수련생인 윈(雲, 가명) 언니가 매일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빨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학교에 잘 다니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하지 못해 걱정됐다. 그래서 나는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연습했다. 어느 날 문득, 우선 지인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2백 리 떨어진 도시에 사는 옛 이웃을 찾아갔다. 마침 그녀의 딸이 대학에 갓 입학한 때였다. 나는 2백 위안을 꺼내 축하의 뜻을 표하고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대 조직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말을 분명하게 하지 못해 그녀도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아무도 삼퇴하지 않았다. 나는 크게 낙심했다!

나는 늘 윈 언니 뒤에서 윈 언니가 진상을 말할 때 발정념을 했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배우게 됐다. 그러다 처음으로 혼자서 한 남자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마구 욕을 하면서 대법에 불경한 말을 퍼부었다.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상처받아서가 아니라, 말을 잘하지 못해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서였다. 또 중생이 대법에 죄를 짓게 했으니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착실하게 수련하고, 수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윈 언니와 협력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시장에서, 걸어가는 길에서, 버스에서 사람만 보이면 알렸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삼퇴를 권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탈퇴한 사람이 많지 않은 날은 집에 돌아가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큰길에 나가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 60여 세의 퇴직 교사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지만 1년 동안 기회가 없었다.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 산에서 흙을 파다가 때마침 등을 나무에 부딪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우리 둘만 있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동유럽의 격변부터 소련 해체, 그리고 파리코뮌에서부터…. 그녀는 아주 많이 충격받은 듯하더니 내 학력을 물었다. 내가 중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하자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그녀는 아주 기분 좋게 자신이 가입한 사당(邪黨) 조직에서 탈퇴했다. 현재는 나를 볼 때마다 친척을 만난 듯이 다정하게 인사한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2020년 어느 날, 윈 언니와 내가 돌아가는 길에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몸이 비스듬했고, 입꼬리에서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병세를 묻자 그 남자는 뇌혈전 후유증이라고 했다. 윈 언니가 그에게 진상을 알린 후, 삼퇴를 시키고 호신부 하나를 주었다. 그는 우리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기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며칠 후 같은 길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가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우리는 그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으로 걷고 있었을 뿐 아니라 걸음이 아주 빨랐다. 그 남자는 우리를 향해 “고마워요. 저 나았습니다! 저 나았어요!”라고 소리쳤다. 구원받고 기뻐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도 기뻐하며 웃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순조롭지 않은 때도 있었는데, 2020년에 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윈 언니와 내가 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도중에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공안국이에요? 여기 파룬궁 두 명이….” 우리는 선의로 그에게 이런 일을 하지 말도록 권했고,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또 한번은 큰길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한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소리야? 더 말하면 공안국에 신고할 거야!” 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원 언니는 웃으며 그에게 인사하면서 오랜 지인처럼 자비롭고 자상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단번에 풀이 죽어 말을 멈췄다. 나는 그 순간 나와 윈 언니 사이의 격차를 보았다.

“네가 제일 많이 달라졌어!”

“네가 제일 많이 달라졌어!”라는 말은 많은 친척들이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나는 성격이 비교적 거칠었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아주 강했고, 시댁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과 반목했다. 부부 사이에는 끊임없이 다툼이 있었고, 감정이 아주 많이 쌓여 결국 남편이 외도해 이혼을 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그를 원망할 뿐 조금도 미련이 없었고, 시댁에서도 그렇게 행동했다.

친정 올케와도 감정의 골이 아주 깊었다. 한번은 올케가 양식이 떨어졌다며 옥수숫가루 한 봉지를 사게 7위안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옥수숫가루 한 봉지가 7위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각박하게 거절하면서 상처 될 만한 말을 많이 했다. 올케는 눈물을 글썽이며 가버렸다. 오랜만에 올케가 우는 모습을 보는데 속이 시원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의 미움을 샀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법을 얻어 수련한 후,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안을 향해 찾음에 따라 점점 내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느꼈고, 너무 부끄러운 것이 참기 힘들 정도였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걸어, 시아버지가 중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어 하루 종일 1천 위안을 빌렸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에게는 아들 넷과 딸 셋이 있는데, 누구도 치료비를 내놓으려 하지 않고, 빌려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1만 위안을 드리겠다며 갚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감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남편이 외도해 이혼하고 시댁과도 관계가 그렇게 나빴는데, 1만 위안은 고사하고 시어머니에게 한 푼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고소해하면서 전화에 대고 설교를 했을 것이다. 사실 아무도 몰랐지만, 당시 나도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어 1만 위안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나는 법을 배운 후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더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힘이다. 대법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 일로 시어머니 집에서는 적지 않은 파문이 일어났다. 모두 내가 대법을 배워 좋게 변했다고 했고, 대법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제자를 길러내신 데 대해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 새해를 앞두고 조카가 빚을 갚지 못해 몹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여동생을 통해 조카에게 1천 위안을 보내면서, 내가 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고,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조카 이야기를 하자면, 올케와 내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조카는 자연히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됐고, 나를 여러 차례 비웃고 조롱했을 뿐 왕래한 적이 없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달라진 나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 항상 남을 먼저 생각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알듯이 과거에 나는 돈을 아주 중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마음속에 대법만 있고, 몸 밖의 그런 것들을 아주 가볍게 보고 있다. 나는 또 변호사를 선임한 동료 수련생을 위해 수차례 비용을 내줬고, 감옥에서 돌아와 곤경에 처한 수련생에게 음식과 물품, 돈을 보냈다. 나는 내가 대법을 얻었기 때문에 바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쓸 줄 모르고, 수련교류 원고를 써본 적도 없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나는 수련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것을 사부님께 보고 드려야 한다는 걸 인식했고, 특히 윈 언니에 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면서 윈 언니가 정말 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시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작은 시를 덧붙인다.

대법을 수련해 환골탈태하네
법에 녹아드니 나는 가장 행복하네
진상 알림에 즐거움 있고 고생도 있네
사령(邪靈) 없애니 처량히 울부짖고
진상 밝히니 복을 얻고 구원받네

내용 중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사존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 고생’

 

원문발표: 2022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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