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문장에서 수련생은 주로 대법제자가 일하는 상태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했지만, 진정한 수련 상태라는 이 문제가 아직 진정으로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래에 정리해보겠습니다.
여러 해 제가 보고 접촉했던 수련생들에게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수련에서의 문제를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제기하는 문제는 일을 겨냥한 것이지 사람을 겨냥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 같이 수련해 함께 올라갈 수 있게 하고 싶을 뿐입니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해 원만하지 못한 것은 유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깊고 뼈저린 후회입니다.
1. 자신을 방종해 속인과 혼동하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되면서부터 대법제자의 수련은 전면적으로 정법시기 수련으로 돌입했습니다. 전 세계 대법제자는 모두 대법을 수호하고 반(反)박해를 하며 중생을 구하는 정법 형식에 돌입했으나, 가장 중요한 수련은 오히려 그다지 중시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했습니다. 특히 개인 수련에서 해내야 할 좋고 나쁨의 표준마저 사라졌습니다. 수련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심성 수련이라는 이 일은 마치 중시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고, 겉으로만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며 발정념을 하면 바로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실제로는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하고 진상을 분명히 알리지 못했습니다. 발정념하는 자신조차 자신이 생각한 것이 정념(正念, 神念)인지 아닌지 몰랐습니다.
대법제자의 수련 상태가 모두 이러한데 원만하고 싶어도 가능할까요? 모두 원만의 표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2.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하고 언행이 속인을 따라가다
법을 공부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비록 많은 수련생이 매일 법공부를 하고 게다가 단체 법공부를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이며 누군가 글을 잘못 읽거나 빠뜨리지 않았는지만 살펴봅니다. 법공부를 마치면 당신 집안일, 내 집안일, 이 수련생의 일, 저 수련생의 일인데 모두 사람의 관념으로 상대방의 난관을 해결해주려 합니다. 1999년 박해받기 전, 수련생들은 법공부를 마치면 모두 법에서 승화한 것, 법에서 얻은 새로운 깨달음, 어떻게 가정관과 병업관에 직면해 정념을 확고히 해 지나오게 됐는지 등 심성 교류를 나눴는데 요즘은 이런 일이 극히 드뭅니다.
중국 대법제자가 이 극도로 사악한 박해 속에서 교류한 것은 물론 어떻게 반박해를 하고 어떻게 하면 사악에게 박해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입니다. 이렇게 여러 해의 반박해 속에서도 수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예컨대 많은 수련생이 모두 법에 있으면 박해를 받지 않기에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외웁니다. 발정념을 하면 사악을 깨끗이 청리할 수 있기에 발정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발정념을 하면서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를 빨리 죽게 하고 즉시 죽게 하는 것, ○○의 병을 빨리 낫게 하는 것, ○○를 교란하는 것을 모두 깨끗이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더 우스운 것은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저는 많은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매일 ‘전법륜’을 배운 후 다른 설법을 보는지 물어봤습니다. 매우 많은 수련생이 매일 한 강의를 읽는 것만 보장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 수련생을 구해야 하고 저 수련생을 도와야 하며, 또 그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매일 한 강의 씩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정진요지’를 배우는지 물어봤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새로 나온 경문은 한두 번씩 읽어봤지만 보관이 어려워 어디에 뒀는지조차 모른다고 했습니다. 또 매우 고생스럽게 수련하는 많은 수련생이 늘 한 가지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병업관인데, 몇 년이 지나도 돌파하지 못했고 정말 자신에게 화가 나서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못했는지 물어보고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이 매일 법공부를 하는데도 무슨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했고, 법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아파서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개별적인 상황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해 병원에 가서 속인 방법대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법을 배우고 법을 얻지 못해 수많은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진정으로 법에서 승화되어 올라오고 싶고, 진정하게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진요지’를 열 번 읽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워서 법을 이해해야 한다고 거듭 알려주셨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신경문을 감히 보관하지 못했고 온갖 이유와 핑계로 법을 잘 배우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비를 넘고 시련을 지날 때 정념이 없어 고비를 넘지 못했고, 심성이 승화돼 올라오지 못했으면서도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며 사부님을 탓했습니다.
3. ‘안으로 찾기’를 전혀 모르다
또 한 가지 매우 보편적인 큰 문제는 바로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 문제에 있습니다. ‘안으로 찾기’란 말뿐이고 실제로 무엇이 안으로 찾는 것인지 모릅니다. 안으로 찾는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찾은 것은 모두 외부적인 원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사람 마음이 집착하는 관념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안으로 찾기란 하나의 공허한 말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한 수련생이 9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여러 해 수련생을 만나지 못해서 이 수련생은 매우 열정적으로 저와 교류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이것저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모두 다른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밖에서 이렇게 여러 해를 방황했지만 이제는 착실히 집에 머물면서 법공부를 많이 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심성을 많이 높여야 합니다. 사실 매 수련생은 모두 사부님 법신이 책임지고 계십니다. 매 수련인의 길은 모두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고비와 시련은 모두 스스로 법리상에서 승화되면 건널 수 있으며 수련인이 제고될 기회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련생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오늘 잘 교류해봐요. 당신은 제게 무슨 집착, 사람 마음이 있는지 보고 저를 도와 지적해주세요.” 이 말이 나오자마자 저는 수련생에게 체념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수련은 바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입니다. 자신의 사람 마음, 집착, 관념을 닦아 없애는 것이지요. 당신은 스스로 대법에 따라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봐야 합니다. 당신이 큰 시간을 들여 이 수련생, 저 수련생을 찾아 교류하는 것보다 사부님의 그렇게 많은 설법을 대량으로 배우는 게 훨씬 낫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모두 점화해주실 거예요.” 이 수련생은 제 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결국 기분 나쁘게 헤어졌습니다.
또 많은 수련생이 법을 매우 잘 배웠고 많은 법을 외울 수도 있는데 한 단락 한 단락씩 법을 외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무슨 사람 마음의 집착이 있는지 똑똑히 압니다. 하지만 한사코 자신은 닦지 않고 타인에게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그야말로 한 송이 꽃처럼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전혀 사람 마음의 집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더 수련할까요? 수련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신의 행위가 법에 부합하는지는 더욱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오만방자한 말을 하게 되고 심지어 대법을 파괴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4. 무신론 속에서 벗어나지 않고 중독이 매우 깊다
사실 안으로 찾을 줄 모르는 것은 바로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고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자신을 찾을 줄 모르며, 자신에게 무슨 사람 마음의 집착이 있는지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의 관념을 사용하며, 특히 인류 사회가 전면적으로 붕괴한 후의 도덕, 현대 당(黨: 공산당) 문화의 무신론 관점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은 더욱이 좋고 나쁨, 선악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는데 자신이 일을 잘못해도 전부 타인을 원망합니다.
삿된 무신론을 언급하다 보니 ‘홍음6’을 배울 때 거의 매 한 수의 가사가 모두 무신론과 진화론은 사설(邪說)이라고 언급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우리는 이 사설에 매우 깊이 세뇌됐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이 나온 지 이렇게 여러 해 됐지만 사악한 당문화의 독소는 아직 깨끗이 제거되지 않았고 또 어떤 것은 보기에 매우 평범해 보이고 자연스럽게 습관된 것 같지만 자세히 변별해보면 사실 무신론의 사악한 독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 문제를 인식했을 때 우리 많은 수련생이, 실제로는 절대다수 수련생이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사실 여전히 무신론 중독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악한 박해에 직면해 매우 쉽게 ‘삼서(三書: 결렬서, 회개서, 보증서 등 수련포기 각서)’를 썼고 사악에게 보증한 다음에도 여전히 수련하려 하고 또 건강을 얻고 싶어 엄정성명을 썼습니다. 전부 수련을 장난삼아 했습니다.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선악유보(善惡有報)를 믿지 않기에 감히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고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면 끝까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 중에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제게 직접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궁을 도대체 왜 수련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건강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건강이 좋아졌고 일할 때 힘이 나서 비료 두 포대를 지고 산에 오를 수 있었으며 수천 평방미터의 황무지를 개간해 옥수수를 심고 한 해에 돼지를 여러 마리 길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며 매우 행복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법공부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배우고 있고 ‘전법륜’을 외우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얼른 외워보라고 하자 그는 정말 ‘전법륜’ 제1강을 외워서 들려줬습니다. 그의 인식에서 저는 자신을 찾아봤는데 마찬가지로 ‘무신론’ 독소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저를 100%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이전에 읽은 ‘장도릉(張道陵, 장천사)이 조승(趙昇)을 일곱 번 시험하다’라는 이야기를 단번에 떠올리게 했습니다.
장도릉의 제자인 주창(周倀)이 그의 사부에게 “무엇 때문에 뭇 제자 중에 조승(趙昇)만 수련성취 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장도릉은 “조승만 속세에 연연하는 마음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조승은 그의 사부에 대한 100%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장도릉 입장에서 보면, 그의 제자라면 마땅히 신이 되려 하고 세속을 벗어나려 하며 수련해 원만을 성취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저는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 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라는 사부님의 ‘심자명(心自明)’의 한 구절 법이 떠올랐습니다.
5. 천박한 속인의 감격과 사람의 정으로 법을 대하다
우리는 대법에 대한 천박한 이해로 인해 사부님을 속인과 같은 감격으로 대하고 사람의 감정으로 대법과 사부님을 이해하는 이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모두 ‘경고하는 말(警言)’이라는 이 경문을 다시 배우거나 ‘정진요지’를 반복적으로 배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를 법리상에서 매우 빠르게 제고되어 올라오게 할 것입니다.
6. 사부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대해주심을 소중히 여겨야
사부님께서는 스스로 파룬궁을 수련해 오늘날까지 걸어온 사람들을 모두 매우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더는 속인의 이치로 일을 잘못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지난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어떤 사람은 바르게 걸었고, 어떤 사람은 비뚤게 걸었으며, 어떤 사람은 도중에 그만뒀고, 어떤 사람은 철저히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걸어오는 동안 시련이 겹겹이 쌓인 것을 보시고 한 번씩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고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기에 종결 시간을 거듭 미루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잘못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잘해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돼 올라올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중국 대법제자는 일함에서는 비교적 성숙됐지만 수련은 매우 잘하지 못했습니다.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은 사악이 더 얼마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람 마음의 집착이 지나치게 무거워 이 인피를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박해를 끝내려 하셨고 줄곧 우리에게 수련해 올라올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넘어졌다가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길을 비뚤게 걸었으면서도 뉘우치지 않는 사람, 명리정(名·利·情) 중 한 가지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며, 명석하고 이지적인 사람은 소수입니다.
저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며 이것은 확실히 제가 우리 이 지역에서 본 진실한 수련 상황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저 자신의 인식일 뿐이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9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9/6/4487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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