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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보호 아래 신의 길을 용감하고 씩씩하게 걷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의 20여 년의 수련의 길을 돌이켜 보면, 발걸음 하나마다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가 있었다. 수련 중에서 내가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셨고, 내가 고통에 직면했을 때 역시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주셨고, 내가 막막해하고 있을 때도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셨다. 바로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신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정진할 수 있으며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정체 협조해 하룻밤 사이 세뇌반을 해체하다

1999년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3~4년간, 내가 있는 지역의 610, 정법위, 공안, 파출소는 여러 명의 사오한 자를 이용 조직해서 현지 요양원에서 세뇌반을 만들었다.

그때 사악들은 내가 있는 도시의 시내, 향진(乡镇), 촌락(村屯) 등의 지역에서 미친 듯이 대법제자들을 세뇌반에 보내 박해했다. 주변 도시의 사악들도 그 도시의 대법제자들을 내가 있는 지역의 세뇌반으로 보내왔으며, 그때 당시 우리의 수련 환경은 아주 열악하였다.

수련생 한 명이 우리 지역의 이런 환경은 다른 공간의 사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그것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뇌반에 가서 현수막을 치고 포스터를 붙여 사악을 철저하게 해체하기로 했다.

수련생의 제안은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일치했다. 모두가 공통된 인식을 가진 후 협조인 수련생이 회의를 열었고 우리는 이 일을 논의했다. 이렇게 해서 주변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맴돌고 있었던 수련생, 시내에 있던 수련생, 시 동쪽과 서쪽에 살고 있던 수련생, 주변 시골에 살고 있던 수련생들 …… 20여 명의 수련생이 모였다.

첫날 회의에서 우리는 1차 계획을 잡았다. 첫 번째로 세뇌반의 지형을 알고 그 지형에 따라 다음 일을 진행하기로 계획하자 바로 한 부부 수련생이 자진해 “우리가 가서 지형을 그리겠다”고 했다.

회의 후 수련생은 자전거를 타고 부인과 같이 요양원에 갔으며 아주 순조롭게 들어갔다. 두 사람은 내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고 완전한 지형 약도를 그렸다. 요양원 내부에는 건물 몇 개가 있고, 앞에는 요양원 직원이 있고, 제일 뒤편에 세뇌반이 있는데, 세뇌반 건물은 담장과 2m 거리가 있으며, 안에서 담장을 봤을 때 2m 정도 높이며, 세뇌반 건물 옆에는 공터가 있고 공터 옆에는 냉동창고 건물이 있다고 했다.

세뇌반 건물은 2층 건물이었다. 1층은 로비고 아주 큰 유리창이 있고, 2층에는 방이 있다. 여기에 사악 610 공안과 사오한 자(유다)가 있었다. 2층 창문 밖에는 쇠줄로 만든 빨랫줄이 있으며 아주 길었다. 세뇌반 건물 앞에는 많은 나무가 있었다.

요양원 담장 너머로 작은 마을이 있으며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요양원 담장과 아주 가까운 집에는 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어 밖에서 조금만 인기척이 나도 “멍멍멍”하고 끝없이 짖었다.

담장 밖은 지세가 높아 1m 정도 높이여서 쉽게 담장을 넘어 요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련생이 돌아온 후 협조인 수련생은 모두를 조직하여 2차 회의를 하였다. 지형에 따라 2번째 계획을 수립했다. 20여 명의 수련생은 2팀으로 나눠 한 팀은 밖에서 근거리 발정념하며 지원하기로 했다.

다른 한 팀은 3개 조로 나눠, 한 조는 잉킹 작업을 하고, 한 조는 2층 빨랫줄에 현수막을 걸고, 한 조는 요양원 나무에 현수막을 붙이기로 했다.

먼저 마친 조는 철수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지막 조도 완료하면 모두가 같이 요양원을 떠나기로 했다. 회의 후 잉크 구매하기, 현수막 만들기 등 각자 담당한 일을 진행했다.

현수막 담당 수련생이 아주 좋은 방식을 생각해 냈다. 2층 빨랫줄의 실제 상황에 맞춰 고리가 있는 “시간 연장 현수막”을 만들었다. 현수막을 접착제로 붙여 놓고 30분 후 접착제가 자동으로 풀리면서 현수막이 펼쳐지는 것이다.

준비작업 완료 후 협조인 수련생은 수련생들을 불러 요양원과 제일 가까운 수련생 집에서 발정념을 하고 새벽 2시에 출발했다.

발정념할 때 한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개 2마리한테도 발정념하여 짖지 못하게 하자.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협조하고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게 하자.”

또 다른 수련생이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발소리도 빗소리에 묻혀 버릴 수 있다. 사부님한테 도움을 요청하자. 하늘이 비가 좀 오게 해달라고 하자.” 모두 동의하고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해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기적이 나타났다. 그날 날씨가 아주 맑았는데, 발정념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 내렸으며 2시 이후에 조금씩 멎기 시작하였다.

수련생들은 신심이 가득 찼으며 2시에 맞춰 출발했다. 담장 밖에 도착했으나 개 2마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우리가 담장 밖에 도착하고부터 철수할 때까지 한 번도 짖지 않았다. 너무나도 신기했다.

수련생들은 담장을 넘어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고 밖에 있던 수련생들은 근거리 발정념을 시작했다. 요양원에 들어간 수련생들은 각자 맡은 일을 진행했다. 잉킹 작업을 담당한 수련생은 신속하게 냉동창고 벽, 1층 로비 외벽, 창문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붙였다. 그때 1층 로비에는 전등을 켜놨지만, 사람은 없었다. 수련생들은 정념이 강했으며 어떤 두려운 마음도 없었다.

한 수련생은 현수막을 2층 빨랫줄에 걸었고, 또 다른 수련생은 요양원 안에 있는 정자와 나무에 걸었다. 잉킹 작업과 현수막을 거는 수련생들이 철수하고 남자 수련생 1명이 엎드려 사다리 역할을 해 다른 수련생들은 그의 어깨를 타고 담장을 넘었고, 담장 밖에 있던 수련생들은 담장을 넘게 도왔다.

마지막으로 나무에 현수막을 걸고 있었던 우리 4~5명이 철수하려고 하는 찰나에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차량 1대가 나타나 냉동창고 앞에 주차했다. 차에서 몇 명이 내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급히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마음속으로는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 사람들이 이쪽을 보지 말고, 현수막을 발견하지 못한 채 빨리 냉동창고에 들어가라는 염을 내보냈다. 그 몇몇은 진짜로 이쪽을 보지도 않고 바로 냉동창고로 들어갔고 우리도 신속하게 요양원에서 철수했다.

다음날, 악인들은 포스트와 현수막을 발견하고 매우 놀라며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상급 시의 공안국, 610이 모두 왔으며, 요양원의 담당자를 크게 혼내고 이번 일을 큰 사건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이튿날 세뇌반도 열수가 없어 바로 해체되었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수련생들도 모두 무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발생한 모든 상황은 사악이 다른 공간에서 교란한 것이며, 수련생들의 정념정행으로 위험한 일은 없었다. 그 날 사오한 자가 밤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올라와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때 에너지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정사대전에서 사악은 자멸한 것이다.

이 사건 후에도 우리 지역의 610 사악들은 단념하지 않고, 또 각 마을에서 세뇌반을 만들어 그 마을에 있는 수련생들을 박해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610과 사오한 자가 어느 한 마을에 도착한 당일, 수련생들은 지난번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번과 같이 하룻밤 사이 세뇌반이 있는 집의 외벽에 포스트를 붙이고, 마을의 전화선에 전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 (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글귀를 쓴 현수막을 걸었다.

이튿날, 사오한 자는 610을 찾아 그의 마음이 너무 괴로워 여기에 있을 수가 없다고 해 사악들은 물러났고 세뇌반도 하룻밤 사이 해체되었다. 이후 사악들은 노골적으로 세뇌반을 열지 못하였다. 가끔 남몰래 시정부에서 잠깐 하는 것에 그쳤다. 그 뒤로 사악의 세뇌반은 우리 시에서 철저히 해체되었다.​

검은 소굴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경문을 전하다

남자 수련생 한 명이 중공에 의하여 불법적인 판결을 받은 후 감옥에 갇혔다. 어느 날 그의 아내(수련생)가 말하기를 면회할 때 남편 수련생은 밖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수련생이 검은 소굴에서 박해를 받고 있지만, 오히려 밖에 있는 수련생들의 수련을 염려하고 있는데, 이 얼마나 무사(無私)인가. 나는 또 그가 감옥에 갇혀 있어 얼마나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싶을까, 만약 사부님의 경문을 보내줄 수 있다면 암흑천지의 검은 소굴에 있는 수련생에게 얼마나 강대한 정념과 신심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그의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그녀도 동의했다. 우리는 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경문을 천으로 인쇄하고 생활용품 안에 봉해 넣었다. 가기 전날, 내 마음은 뒤숭숭하고 불안해졌다. 잡생각이 많고 새벽 2시가 되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사부님의 설법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꼭 그에게 전달하겠다는 마음을 굳혔고 마침내 내 마음은 안정되었다.

이튿날 나와 그의 아내는 감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하였다.

내가 정념을 내자 한줄기 뜨거운 흐름이 정수리에서 내려와 전신으로 퍼졌으며 온몸이 정념으로 넘쳤다. 사부님의 은혜에 너무나도 감격해 눈물이 흘렀다.

감옥에 도착 후 면회하기 전 안전검사를 받아야 하며 현장에는 경찰들이 많았고 우리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이런 상황을 보자 아주 평온했던 내 마음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의 내심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이 두렵냐? 심장이 왜 빨리 뛰냐? 넌 죽음이 두렵냐?

이때 또 뜨거운 흐름이 정수리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2번째 관정을 해 주셨다. 관정 후 나의 마음은 아주 담담해졌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나는 제일 앞줄의 의자에 앉아 그의 아내에게 정념을 보내고, 의념으로 감옥의 경찰에게 말했다. ‘나의 사부님께서 너희를 구하라고 하셨으니 너희가 대법제자를 도와준다면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이다.’ 감옥 경찰이 경문이 있는 생활용품을 불빛에 이리저리 비추어 봤지만, 경문을 발견하지 못했다. 2번의 검사에서 모두 순조롭게 통과했으며 결국 수련생의 손에 경문을 전달하게 되었다.

또 한번은 우리 시에서 아주 견정한 여자 수련생이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박해받고 있었다. 그녀는 의지가 아주 견정하고 신사신법해 사악들은 그녀를 전향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남동생을 찾아가 같이 면회하자고 했다. 처음에 그녀의 남동생은 면회 가기를 꺼렸다. 그가 계속 꺼렸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설득해 결국 그는 나와 함께 면회 가기로 했다.

경문을 생활용품에 넣고, 밀봉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나는 한 수련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였다. 하지만 면회 가기 전날 그는 일이 있어 오지 못했다. 나는 가족 수련생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가족 수련생이 화를 내 도움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밀봉하지 못한 생활용품을 가지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하나의 의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바로 알아차렸다. 오기 전 부딪힌 여러 가지 시끄러운 일들은 바로 사악의 교란이며, 그들은 내가 가는 것이 두려웠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견정한 신념을 보고 나를 도와 사악을 전부 해체해 주셨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어떻게 하면 나머지 작업을 다 하고 밀봉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마트에 가서 양면테이프를 사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의 좌석에 앉자 나의 머리에 갑자기 한 단어가 떠올랐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나는 바로 깨달았다. 어떻게 양면테이프로 밀봉을 하면 좋을지, 밀봉하고 보니 정말로 천의무봉 이었다.

가는 길에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께 가지를 빌었다.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도착 한 후 우리는 수련생이 전향하지 않아 면회가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련생의 남동생은 나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노동교양소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하여 그들과 교섭했다.

좀 지나 노동교양소의 소대장이 나왔다. 그는 화난 표정으로 전향을 안 해서 면회가 안된다며 가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렇다면 달걀과 생필품을 전달해달라고만 했다. 그는 한번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가지고 들어갔다. 안으로 가져간 다음 소대장은 철창에 수갑을 찬 수련생의 수갑을 열어 주고 물건을 전달해 줬다.

수련생은 손이 가는 대로 생활용품 하나를 꺼내서 다른 수련생에게 줬다. 그런데 건넨 생활용품 안에는 경문이 있었다. 생활용품을 건네 받은 수련생은 안에 있는 경문을 발견하고 다시 남몰래 경문을 그 수련생에게 돌려줬고, 그 수련생은 또 지혜롭게 또 다른 엄격하게 감금을 당하고 있는 다른 수련생에게 전했다. 이렇게 경문은 사악의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돌려졌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나는 검은 소굴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경문 전달을 6번 성공했다.

정체협조 신사신법으로 수련생 구출에 성공하다

2011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전날 저녁,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정체협조해 같이 법을 실증하러 갔다. 현수막을 걸고, 진상 전단을 붙이는 등등. 하지만 당일 저녁 경찰들은 시내의 주요 도로에서 잠복해 불법적으로 우리 수련생 4명을 잡았으며 그중 한 명은 나와 직계친척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소식을 듣고, 붙잡힌 수련생의 가족들과 같이 공검법사(公檢法司)에 가서 붙잡힌 수련생들을 찾아오는 일을 상의했다. 출발하기 전 우리는 협조인 수련생에게 알려, 그가 우리 시 주변의 수련생들에게 전달해 근거리 발정념으로 우리를 돕도록 요청했다. 우리가 국보와 공안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수련생을 찾아오려 했지만, 그들은 모두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고 이 일을 전부 610으로 밀어 버렸다.

내 친척의 아이가 권선편지를 썼다. 친척이 법을 얻게 된 계기와 신체의 변화 그리고 대법의 진상을 모두 썼다. 그 권선편지를 가지고 우리는 현지 610을 찾아갔다. 그때 당시 610과 시 정부 기관은 같은 건물에 있었으며 1층은 610, 2층은 정부 기관 부서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부시장 사무실 등이 있었다.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고 우리가 이번에 간 목적은 중생구도였다. 2층에 도착한 후 우리는 사무실에 사람이 있으면 들어가 권선편지를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렸다. 수련생의 수련 전후 신체의 변화, 연공 전 신체가 어떠했는데 연공 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만약 사무실에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편지를 문틈으로 집어넣었다. 우리가 610 우두머리를 만났을 때 그에게도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독해를 심하게 받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

수련생의 불법감금 기간에 다른 수련생은 610 우두머리의 사진을 양면테이프로 만들어 610이 사는 동네와 다른 동네에 붙였다. 다시 한번 우리가 찾아갔을 때 그는 “봐봐, 내가 이런 옷을 입은 사진을 당신이 찍어 보냈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

수련생이 구치소에 감금된 후 ‘이전에 앓던 병’이 발작 한 것을 알고, 우리는 구치소를 찾아가 소장한테 진상을 알렸다. 처음 소장을 만났을 때 그는 아주 난폭하고 악랄했는데 고함을 질렀다. “뇌전증 같은 작은 병은 많고도 많다. 우리가 어떻게 다 관리하냐”며 큰소리로 우겼다. 우리는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했다.

내가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자 그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고 인상도 펴졌으며, 마지막에는 180도의 변화를 보여줬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파룬궁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감시만 하지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당신 친척 사건은 오늘 검찰에 넘겨졌으니, 빨리 검찰원에 가서 알아봐라.” 이 소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했다. 우리는 권선편지를 그에게 주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바로 검찰원으로 달려갔다.

검찰원에 도착하자 경비는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 우리는 또다시 검찰원을 찾아갔다. 한편으로는 수련생 가족들이 경비에게 진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 수련생들이 검찰원으로 뛰어들어가 바로 2층에 있는 사건 담당 검찰관을 찾아가 그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명확한 대답을 받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고향의 이웃이 검찰원에 아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다른 부서의 책임자라서 우리 사건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이웃을 찾아가 그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가기 전 나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그곳에 도착 후 우리 수련생들은 서로 협조했다. 한 사람이 얘기할 때 다른 한 사람은 발정념을 했다. 검찰원의 다른 부서 책임자를 만나고 나는 동수의 수련 후 신체의 변화, 대법이 세계에서 널리 전해진 상황,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 중공의 대법제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등등 만행을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들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는 나에게 수련생 3명의 이름을 묻고 기록을 했다(당시 4명의 수련생이 붙잡혔지만, 1명은 십몇일 감금 후 석방되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 사람은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얼마 안 돼 승진했다. 그들은 불법감금 된 지 18일 되는 날, 정정당당하게 구치소에서 나왔다.

그 한 달 정도 바삐 보내면서 나는 정말로 밖에서 발정념을 해준 수련생들의 무사(無私)한 헌신과 정체협조에 감동했다. 우리가 어느 부서에 가든, 몇 시에 가든, 몇몇 협조인과 시간을 말해주면 우리가 그 장소에 도착해서 보면 밖에 하나둘씩 많은 수련생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많은 수련생은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우리의 정체협조에 문제가 없었다. 불법 감금된 수련생이 구치소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밖에 있던 수련생들은 그때 묵묵히 돌아갔다.

수련생들이 묵묵히 지지해 주고 마음을 낸 협력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구출이 있었다. 소중한 수련생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대법제자가 없는 지역의 중생을 구도하다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시 주변의 향진촌락을 팀으로 나눠 각 구역을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 팀은 4개 향 구역을 맡았는데, 매 향에는 10~20개 촌락이 있다. 어느 한 명의 중생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해상도가 높은 구글 지도를 인쇄해 지형을 숙지하고 또 답사도 해 움직이는 노선에 대해 계획했다. 어느 길을 걸으면 어느 촌락에 먼저 도착하고, 그 촌락에 도착하면 어떻게 전단을 배포하고 끝나면 어떻게 다음 촌락으로 갈지, 어느 길로 돌아올지… 우리의 목적은 최대한 한 집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진상 자료를 돌리는 날 우리는 저녁에 차를 운전하여 지정된 노선에 따라 자료를 중생의 집 앞에 놓았다. 자료를 돌리는 그날부터 대법제자가 없는 공백 지역을 우리는 전부 다 돌았다. 어느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다. 연말 진상 달력이 나올 때 우리는 일부 향진에 가서 대면 진상을 하고 삼퇴도 시켰다.

우리 지역에는 아주 특별한 향이 있다. 이 향은 한 섬에 있고 주위는 바다로 둘러쌓여 그 섬에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섬에는 5~6개 촌락이 있고 천여 세대의 주민이 있다. 이곳은 좀 외진 곳이어서 대법제자가 없으며 많은 주민은 대법의 진상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가서 진상 자료를 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이곳에 가서 진상하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다른 공간의 사악들이 교란하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나와 남편은 각자 자전거를 타고, 남편은 아이를 태우고 나는 자료를 싣고 앞뒤로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앞에서 웅덩이를 피하려 급정거하면서 핸들을 틀었는데, 미처 간파하지 못한 내 자전거 앞바퀴가 남편 자전거 뒷바퀴에 걸려 평행을 잃고 넘어졌다. 달걀만 한 돌에 머리를 부딪쳐 바로 피가 흘러내렸다. 자료도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지혈할 새도 없이 자료를 주워 담았다.

일어나서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싸고 다른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나보고 빨리 병원을 가보라고 하였다. 나는 병원을 가서 뭐하냐고 빨리 발정념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물로 간단히 머리를 씻고 앉아 발정념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집착심이 있는지 안으로 찾아봤다. 이때 사부님의 설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공덕을 성취함은 나중의 일이라 하늘을 바로잡고 땅을 바로잡고 중생을 바로잡노라”[1] 나는 바로 나의 명(名)을 구하는 마음, 공덕을 구하는 마음을 인식하고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청리했다. 내가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자 피는 바로 멈췄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다. 그 후에 한 달간 나는 여러 차례 가려고 계획을 했지만, 계속해서 교란이 심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다른 일이 발생해 갈 수가 없었다. 그 후 법공부를 하면서 나는 이것이 교란임을 알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먹고 어느 날에 가려고 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하늘에서 뭐가 내리든, 하늘에서 칼날이 떨어져도 나는 간다고. 그 결과 가는 날에는 날씨가 엄청 좋았으며 아무런 교란도 없었다. 나는 애를 데리고 친척 수련생 가족과 같이 오후 2~3시쯤 배를 타고 섬에 갔고 친척 집을 찾아 머물렀다. 저녁에는 속인 친척이 길을 안내해 우리 4명은 2팀으로 나누어 각 500부의 진상 자료를 가지고 섬의 한쪽 끝에서 출발했다. 섬의 가로 거리가 20리 정도 돼 우리는 그날 저녁에 엄청 많이 걸었고 새벽 3시가 다 되어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이 섬은 난리가 났다. 향 마을방송은 계속해서 외쳤다. 처음 이 자료를 받았으므로 많은 사람이 무서워했고, 어떤 사람은 감히 보지도 못하고, 어떤 사람은 받치고, 어떤 사람은 자료를 태워 버렸다.

그 뒤로 우리는 매년 섬에 가 그 섬에 있는 중생들에게 진상 자료를 줬다, 대부분 10월에 갔었다. 후에 이 섬은 여행지가 되고 많은 호텔이 생겨 우리는 호텔에 들 때도 있었다.

뒷문이 있으면 우리는 저녁에 뒷문으로 나가고 날이 밝기 전에 들어와 주인을 깨우지 않았고, 뒷문이 없으면 우리는 창문으로 나가 자료를 다 돌리고 창문으로 들어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느 해는 우리는 호텔에 묵지 않고 친척이 새로 산 집에 묵었다. 저녁 바닷바람이 아주 세게 불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 우리 몇몇 수련생은 가지고 온 가방 위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온돌은 불을 때지 않아 엄청나게 추웠고 서로 눈만 마주치다가 이튿날 날이 밝아서야 배를 타고 돌아왔다. 그날 우리는 너무 추워서 혼이 났다.

우리가 자료를 지속해서 돌리자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했다. 사람들은 진상 자료를 받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끔 우리는 배에서도 사람들이 작은 책자를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마다 우리는 아주 뿌듯했다. 중생이 구도돼 기뻤다. 아무리 고생해도 너무나 보람찼다.

수련의 길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정말 감개무량하다. 감은(感恩), 희열, 막막함, 고통 등등이 있었다. 신의 길에서 나의 한 발짝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있었다. 내가 곤란과 위험에 부딪혔을 때, 사부님의 가지를 빌면 바로 유암화명(柳暗花明)이 되고,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해졌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은하며, 신성한 서약과 사명을 명심하고 남은 수련의 길에서 나는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아무리 어려워도 초심을 잃지 않고 꼭 용감하고 씩씩하게 걸어가겠다.

개인의 체득이오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2-일념중(一念中)’

 

원문발표: 2022년 6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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